귄터 그라스가 오늘 세상을 떠났군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귄터 그라스였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이 바로 <양철북>이었습니다. 

           
격동의 청소년시절, <양철북>은 1년 이상 중2병에 허덕이던 저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중2 시절까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책만 붙들고 있으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상과
"학생은 공부가 우선이고 주입식으로 들이 파야한다"는 강요된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죠.
수학은 본래 취미가 있어서 그럭저럭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게 어렵지 않아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건 관두고 당최 학업 자체에 대해서 아예 관심이 없어졌다는 게 그 시절의 본심이었기 때문에...
뭘 해도, 뭘 읽어도, 뭘 봐도 만족스러운 게 없었고, 부모님과 제 인생 자체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그냥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중2 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어느날 YMCA 지사를 배회하다가 잠시 쉬었다 가자고 서점에 들렀더랬습니다.
그 당시 YMCA에는 구내서점이 있었고, 또 고맙게도 정가의 15%를 무조건 할인해 주었습니다.  
단골로 들락거리며 책을 한 권씩 사 읽던 중...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잡은 게 <양철북>이었습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해서... 대략 2~3 달 동안 <양철북>에 완전히 매료되어 혼백까지 사로잡혀버렸습니다.
그라스의 <양철북>을 읽는 동안 그 전까지 1년 가까이 심각하게 괴롭혔던 중2 병은 스르르 사라졌고,
그간 멀리하던 학업도 어느새 시키지 않아도 다시 하고 있었고,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힐링이 되었고, 책을 읽으면서 정신적으로 한 꺼풀 성숙하여 일어서게 되었죠.
당연하게도... "그라스의 <양철북>이야 말로 진정한 문학의 표상"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비로 그 귄터 그라스가 작고했다는 것은... 한 시대의 퇴장을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체험하고 그 시절을 주제로 글을 쓰는 마지막 거인이 물러난 것으로 여겨지거든요.

   
몇 년 전, 커트 보네거트가 작고하였을 때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른이 되기 전이었던 청소년 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가 귄터 그라스였고,
성년의 나이가 된 후 대학생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작가는 바로 커트 보네거트였습니다.
한창 책을 읽던 시절에는 두 작가 모두 노장이기는 해도 활발하게 신작을 내는 현역이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흘러... 지금은 이 사람들이 모두 다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어느새 나이를 꽤 먹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작가들은 대부분 나이를 많이 먹어 작고하고 있고,
또 어린시절 열광했던 운동선수들 역시 이제는 모두 다 은퇴해버렸으며,
청소년 시절 즐겨 듣던 음악을 취입한 가수들도 사실상 한 두 걸음 뒤에 서 있습니다.
인생이 그런 것이고, 세상의 이치가 그런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