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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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아마 구글급?의 회사에서 못해도 상급)이 정보가 점점 전자화되고 있는 세태에 대해 "님들 그러다가 님들이 살던 시대에 대한 정보가 암흑기로 빨려들어가는 수가 있음"이라고 말했었죠.
옛날에 석벽에 망치질해서 새긴 글자나 그냥 쌩 종이책은 두 눈만 제대로 붙어 있다면 (이해야 둘째치고) 그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전자화된 정보는 접근하기 힘들단 말로 받아들였습니다.
만약 어떤 학자가 자신의 평생 연구자료를 10개의 CD에 보관하고 사망했다면, 나중에 CD가 현재의 플로피 디스켓의 지위보다 훨씬 더 뒤로 밀려났을 때 그 정보들은 죄다 어떻게 될까요?? 전세계에 있는 박물관들 중에서 CD가 들어가고 제대로 작동되는 컴퓨터가 없다면 그 정보는 영영 손실된다는 것입니다.(미래의 사람들이면 문명이 퇴보하지 않는 이상은 따로 CD 속의 정보를 해독할 방법을 고안해낼 것 같지만...)
학자의 연구자료에 대한 예 말고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아~주 옛날에 풀린 게임이 요즘 우리가 쓰는 윈도우 7은 커녕 윈도우 XP에서도 전혀 돌릴 수 없는 것이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건데 여러분들은 전자화로 인한 기록 대소멸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교 다닐때 도서부원이었는데 1년에 두번, 여름/겨울 방학때 학교 나와서 며칠씩 도서관 책털기를 했습니다. 먼지 털면서 재고와 책상태 확인하고 상태 안 좋은 책은 빼서 폐기하던지 수리하던지 했죠. 저희 학교 같은 소규모 도서관도 그랬으니 대형 도서관들은 기본적으로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디지탈 정보도 저장하고 끝낼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새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일하는 부서도 1년에 2번씩 백업을 하고 총 3세트의 백업본을 보관하는데, 옆부서는 백업을 제대로 안해서 낭패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관체계의 문제는 지금 한국이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자에서 한글로 문자체계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날로그 체재에서 디지탈 체재로의 변환에 가까운 일입니다.
조선시대 내내 선비들이 만들어낸 많은 저작물들이 전부 내려오지도 않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기타 등등의 사유로 인해 없어진 것도 있지만 보관소에 쳐박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그다지 찾아볼 생각도 안합니다. 조선시대에 살아남은 남겨진 서책들 번역작업을 기다리며 박물관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조선에 대해서 모르는 게 그 후예들이라는 재미있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죠.
이렇듯, 사회적인 환경변화에도 디지털 블랙홀 그 이상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굳히 디지탈 정보 저장체계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정보 전달수단은 종이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리 긴 시간을 가지지 못합니다. 종이가 오래 갈 것 같지만, 화학적 공정을 거친 종이는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합니다. 20세기 이후 만들어진 서책들은 하나같이 자연소멸될 예정입니다. 이때문에 서책 중성화 과정이라는 기술이 필요해졌죠. 상대적으로 긴 수명을 자랑한다던 한지조차도 환경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괜히 조선왕조 실록이 3군데로 나누어져 보관된 게 아닙니다.
기록이나 전달 매체의 소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건 소재의 문제에서 발생하는게 아니라 우리의 삶자체나 환경이 결국은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비는 백업의 중요성이죠. 항상 3군데 이상의 백업이 필요합니다. 요상한 결론이군요.
한동안 인기 있었던 멸망 이후의 지구에 대한 다큐가 생각나네요. 오랫동안 남아 있을 자료는 결국 돌에 새긴 자료일 것입니다. 다행히도 요즘도 집집마다 돌로 된 자료가 좀 있죠 (저희 집에선 저희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묘비를 남기겠네요)
발굴된 하드 디스크에 남은 자료를 살리는 기술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드네요.
IT 업종에서 일을 오래하다보니...
1980년대 1990년대 이전에 IT 시스템으로 관리되던 내용이 이후 개비되면서,
필요없어보인다고 그냥 폐기처분하고 그래서 다시 복구조차 불가능해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정보시스템 교체 시 수행하는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과정에서 날라가는 자료가 많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삭제한 데이터는 당장 경영 활동에는 크게 필요없는 자료라고 보는 게 맞겠죠.
하지만 사람의 선택으로 과거 정보를 그냥 다 폐기하는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단 한 번의 결정으로 History 자체가 통채로 다 사라지는 게 옳은가 싶더군요.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에서 동료에게 비디오테이프가 전달됩니다. 그것도 VHS가 아닌 베타... 이걸 재생하려고 그야말로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되는 장면이 등장하죠. 그 시대에 베타 비디오는 그야말로 박물관 소장급의 희귀품이니까요. CD나 DVD라면 아마도 좀 더 먼 미래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의 블루레이 플레이어에서도 CD는 읽힙니다. 앞으로 나올 매체가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DVD나 CD 등을 읽지 못하는 일은 적어도 당분간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그렇지만, DVD나 CD 등의 매체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실제로 현재 노트북에는 DVD가 달리지 않은게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해 둔 것이라면 어떨까요?
게다가 재생이 가능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터가 열화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공 CD 등에 넣은 데이터는 보통 수명이 10년 정도, 일반 CD라고 해도 5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DVD, 블루레이... 정보의 집적도가 올라갈수록 그 수명은 짧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잘 보관하더라도 언젠가는 매질이 분해되어 버립니다. 당연히 지금 열심히 모은 자료가 훗날엔 전혀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전자화로 인한 기록 대소멸보다도 저는 정보의 양이 지나치게 늘어남으로서 중요한 내용이 묻혀버릴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의 전자책 문화 속에서는 더욱 쉽게 일어나는 일인데, 어떤 곳에서도 모든 자료를 보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중 중요한 뭔가가 제대로 보관되지 않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