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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던전스 앤 드래곤스 CRPG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번 달 중반, 그러니까 2월 12일 즈음이군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계에 난데없는 소식이 날아 들었습니다. n스페이스 개발진이 <소드 코스트 레전드>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바로 포가튼 렐름입니다. 최신 <던전스 앤 드래곤스> 5판, 4인 파티, 풍부한 스토리, PC 기반(!), 던전 마스터 인터페이스를 내세웠습니다. 스크린샷을 보면, <네버윈터 나이츠 2>의 느낌이 진하게 풍기네요.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똑같은 게임이 아니냐고 헛갈릴 정도입니다. n스페이스는 게임 타이틀을 공개하기 전에도 세계적 명성의 판타지 게임을 만든다고 기대감을 부풀렸죠. 덕분에 <디앤디>가 나올 줄 알았다고 환영하는 유저들이 많네요. 한편으로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3.5판이 끝나고, 4판이 지나갈 동안 서사 구조의 CRPG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네버윈터 나이츠 2> 오리지날이 2006년에 나왔고, <웨스트 게이트의 미스터리>가 2009년입니다. 판이 갈리고 거의 6년만에 나오는 셈이네요.

 

 

<소드 코스트 레전드>는 공개한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과연 이 게임이 어떤 식일지 막연히 짐작할 뿐입니다. 다만, <발더스 게이트>부터 시작해 <템플 오브 엘리멘탈 이블>을 거쳐 <네버윈터 나이츠 2>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이번 신작도 비슷한 모양새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포가튼 렐름의 방대한 세계, 수많은 퀘스트와 다양한 캐릭터들, 압도적인 분량의 텍스트와 대사, 끝이 안 보일 듯한 깊은 던전, 가슴 설레는 탐사와 모험, 보물 상자에 넘치는 아이템 그리고 파티를 활용한 전술적인 전투. 듣기만 해도 흥분이 요동치는 요소들이죠. 어쩌면 막상 결과물은 전혀 다른 방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저들은 대부분 블랙 아일의 향수를 현대적으로 살려내기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아이소메트릭 롤플레잉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느냐고 비판할 수 있지만, 이런 스타일의 컴퓨터 롤플레잉을 원하는 유저들은 꾸준한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시기의 인피니티 엔진은 그만큼 신나면서 어둡고, 유쾌하면서 진중하고, 빠르면서 장황한 모험을 선사했으니까요.

 

 

이런 분야의 AAA급 타이틀로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가 있습니다. 작년 겨울에 최신작 <인퀴지션>이 나왔고, 컴퓨터 롤플레잉의 명가 바이오웨어답게 많은 호평을 받았죠. 다만, 워낙 대작이라서 그런지 참신한 시도는 많이 떨어진다고 평가합니다. 아무래도 수많은 유저를 확보해야 하니까 요즘 유행에 민감하기 마련이죠. 그렇고 그런 퀘스트의 연속, 너무 자잘한 채집과 수집, 쓸데없이 광활한 지형, 반복적인 이야기 구조, 유저를 짜증나게 하는 아이템 수색, 거창한 전쟁과 동떨어진 일상적 모험. 진짜 전쟁물을 원한다면, <아이스윈드 데일>처럼 아예 전투에만 몰빵하든가, 아니면 주인공의 신변을 탐구하는 모험으로 가닥을 잡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퀴지션>은 둘 다 아니었죠. 스케일이 커야 하니까 전쟁물로 만들었으나, 실상은 일개 모험가의 활약이었습니다. 아마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나 <배신자의 가면>처럼 개인적인 탐험으로 만들면, 대중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전형적인 검마 판타지가 아니고 다소 어두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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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적인 전투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아무래도 PC 인터페이스가 적절합니다.]

 

 

또한 진짜 전쟁물을 만들려고 해도 <인퀴지션>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콘솔 기반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입니다. PC 기반도 나오지만, 본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콘솔에 기반을 두고 만들었죠. 콘솔이 PC보다 훨씬 판매량이 잘 나오니까요. 여기서 크나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콘솔 인터페이스는 전술적이고 복잡한 전투를 구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전술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확인해야 할 정보와 내려야 할 명령과 움직여야 할 인원이 많다는 뜻입니다. 검투사 한 명이 지나가던 다이어 울프와 투닥거리는 장면을 보고 전술적이라고 하지 않죠. 적어도 4~6명 정도 되는 모험가가 그보다 많은 오크들과 맞서야 합니다. 전면에서 방어도 하고, 함정 깔고 유인도 하고, 우회 공격도 들어가고, 지형 차이도 이용하고, 진영도 바꾸고, 때때로 소모품도 던져주고… 이렇게 해야 비로소 전술적인 전투라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유저가 이런 전투를 플레이하려면, 이것저것 조작할 것이 많아집니다. 그러니 단축키가 많은 PC 인터페이스가 훨씬 어울리겠죠.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가 각각 차세대라고 나왔지만, 콘솔 패드는 이전 세대와 비슷합니다. 여전히 버튼과 스틱은 몇 개 안 됩니다. 그걸 가지고 조작하려면, 두 가지 결과가 나옵니다. 전투 자체를 단순하게 구현하거나, 아니면 인터페이스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드래곤 에이지>는 실상 <오리진>때부터 참으로 심심하고 단촐한 인터페이스를 보여줬죠. 기술 단축키는 기껏해야 한 번에 3~4개 쓸 수 있습니다. 가방을 보려면, 일일이 방향키를 눌러서 원하는 물품을 골라야 합니다. 혹은 원형 메뉴를 열고 사방을 돌려가면서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PC판은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기술 단축키는 한 번에 10개 혹은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가방 열고, 원하는 물품을 드래그해서 찍으면 간단합니다. 땅에 떨어지거나 배낭에 든 물품을 동료에게 넘기거나 단축키에 설정하는 것도 편리합니다. 키보드+마우스라는 도구의 편리함과 조작성을 콘솔은 죽어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PC 기반은 훨씬 복잡한 전술을 펼칠 수 있지만, 콘솔 기반은 금세 벽에 부딪히거나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실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희생하는 건 <드래곤 에이지>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콘솔 위주로 나가는 전술 게임은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니까요. 일례로 마르고 닳도록 욕을 먹었던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을 보세요. 콘솔 패드로 나오면서 전투기 후드마냥 눈 돌아가는 인터페이스를 아주 깔끔하게 정리했잖아요. 그 때문에 너무 가벼워졌다고 비판을 받았지만, 턴 전략 게임으로서 몰입도는 상당히 우수하죠. 아마 바이오웨어도 이 사실을 뻔히 알았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대규모 게임을 만들려면 그만큼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가벼워지는 게 필연적이에요. 게다가 요즘은 90년대 후반이 아니죠. AAA 타이틀 하나 뽑으려면 엄청난 제작비가 필요하고, 그래서 혁신적인 시도가 쉽지 않습니다. 바이오웨어가 나쁜 게 아니에요. 시장에서 계속 대작을 판매하고 덩치를 유지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게임계 환경을 감안하면 <인퀴지션> 같은 게임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인퀴지션>은 그런 점에서 수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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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의 게임은 킥스타터에 많은데, 퍼블리셔 출시작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다만, 좀 더 전술적인 물건을 바라는 유저는 <인퀴지션> 같은 게임에 아쉬움이 남을 겁니다. 아무리 PC판이 있다고 해도 결국 콘솔 위주로 만들었으니까요. 단순한 기술 단축키와 바닥을 뒹굴며 회피하는 캐릭터를 보면 구매 의욕이 나인 헬까지 떨어지기도…. 게다가 모험가 위주의 던전 탐사물을 바라는 입장에서 전쟁물은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검마 판타지가 무조건 마왕의 대군과 싸워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때로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던전이나 탐험할 수도 있는 거고요. 항상 거창하게 10만 군대가 평야에 돌격해서 죄다 때려부수고 해야 좋은 판타지인 건 아니죠. 이거야 취향 문제니까 취향에 맞는 물건을 찾으면 될 일입니다. 그래서 취향대로 만들 수 있는 킥스타터 게임이 각광을 받는 것이겠죠. 이런 게임들은 평가와 판매량도 좋다고 합니다. 클럽에서도 몇 번 언급한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웨이스트랜드 2>,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토먼트: 누메네라> 그리고 최근 커다란 화제를 모았던 <쉐도우런: 드래곤폴>까지 꼽을 수 있습니다.

 

 

추측하자면, 아마 <소드 코스트 레전드>가 나온 배경도 저런 게임들 때문일 겁니다. 킥스타터로 호응이 이어지니까 아예 정식으로 출시를 발표한 게 아닌가 싶어요.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추측이므로 킥스타터에 상관 없이 만든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게임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데, 과연 얼만큼 인기를 끌지 의문입니다. 위에서 줄기차게 지적했듯 콘솔 게임이 판치는 와중에 PC판 롤플레잉 게임이 얼마나 판매고를 올릴지…. 기사나 인터뷰를 보면 PC 위주로 설명하거든요. 게다가 던전 마스터 시스템 같은 건 사실상 콘솔로 어찌 할 수 없죠. 순전히 PC만의 영역입니다. 그러니 콘솔판을 병행하기 힘들 듯합니다. 어쩌면 제작비가 적을 수 있겠고, 그렇다면 게임 자체가 기대했던 것만큼 방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퍼블리셔 게임이지만, <오리지널 신>이나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같은 킥스타터와 비슷할 수 있어요. 옵시디언은 자기네 신작이 <발더스 게이트>보다 규모 면에서 작을 거라고 말했는데, <소드 코스트 레전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볼 뿐입니다. 뭐, 나온다고 해도 언어 장벽 때문에 금방 붙잡기 힘들겠지만. 어쨌든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가 나온다고 해서 기대 중인데, 여기다 <소드 코스트 레전드>라니, 뭔가 복덩이가 한꺼번에 굴러온 듯한 느낌이네요.

 

 

※ 그나저나 로열티 문제는 제대로 정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디앤디>를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면, 돈법사가 하도 참견을 많이 해서 플롯 짜기가 난감하다고 하던데… 배경이 소드 코스트니까 인피티니 엔진과 오로라 엔진의 추억을 자극할 셈인 듯한데, 이야기는 어떻게 할 건지?

 

 

※ 드루이드 클래스가 나올 텐데, 달의 드루이드는 적당히 너프 좀 했으면 좋겠군요. 어차피 컴퓨터 롤플레잉은 규칙을 전부 반영하지 않으니까요. 5판은 해본 적 없지만, 유저들이 하도 달의 드루이드만 선호해서 대지 드루이드는 찬밥 신세라고 하니…. 대지 드루이드 컨셉을 선호하는 플레이어는 뭔가 손해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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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나오는 디앤디이며 PC 서사 롤플레잉인 만큼, 결과도 좋았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