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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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 소설 공모전의 최종 심사를 진행하면서 정말로 아쉬운 일이 있었습니다.
대상 작품 3개 중 SF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니, 최종 추천작 중에서도 하나도 없었고 최종 심사 후보작 중에서도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고민하면서 SF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린게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SF, Science Fiction.... 많은 팬이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름에 질려서 SF 자체에 경기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사실 SF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고 거창한 것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공모전에서 '파운데이션'이나 '당신 인생의 이야기'나 '2001년 야화'나 '프라네테스' 같은 작품을 바란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은하영웅전설이나 마일즈 보르코시건 연대기, 또는 성계 시리즈나 무책임함장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또는 견인도시 연대기나 메트로 2033, 메이즈 러너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아니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마이클 크라이튼처럼 쉽게 읽히는 작품이었거든요. 아니면 슈퍼 히어로나 금서목록 같은 초능력물이라도 좋았어요. 물론 이들에 맞먹는 수준을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추어로서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정도로 충분했습니다.
[ 우주 무협지라고? 그럼 어때, 재미있으면 되는게 아닌가? ]
하지만 그런 작품은 없었습니다. 최종 후보작에도, 최종 후보작에 들지 않은(적어도 제가 본) 작품 중에도...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에는 김상현씨의 '하이어드', 이종호씨의 '피라미드' 정도를 빼면 여러 권의 장편 SF가 거의 없습니다. (이재창씨의 '기시감'도 있군요.) 은하영웅전설처럼 가볍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찾기 힘듭니다.
오늘 나온 이야기 중에서 '스릴러'와 '미스터리'에서도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SF 기획자들이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 또는 스타워즈 같은 작품을 SF가 아니라고 무시하듯, 많은 미스터리 팬이나 기획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이의 작품을 '수준 낮다'라고 얘기하는 것 말이지요.
조금 이상합니다. 취향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수준 낮다'라고 이야기하는 기준은 뭘까요? 마츠모토 세이초나 요코미조 세이조 같은 작가 작품만 미스터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는 미스터리가 아닐까요? 셜록이나 CSI 같은 드라마를 보고, 명탐정 코난 같은 만화나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만화영화를 보고서 '미스터리가 좋아'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걸까요?
SF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테드 창이나 그렉 이건만 봐야 하고(반드시 봐야 하고?) 아시모프나 하인라인을 모르면 안 되고, 블레이드 러너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만 봐야 하는 걸까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마이클 크라이튼, 아니면 스타워즈나 아바타, 어벤져스를 보고 'SF도 재미있네.'라고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아니,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나 '에반게리온'을 보고 'SF는 뭔가 특이하네.'라고 하면 안 될까요?
미국이나 일본의 SF 붐은 하드 SF로부터 시작된게 아닙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도 펄프 잡지를 열심히 보고, 슈퍼맨 같은 만화책에 빠져들곤 했으며, 고마츠 사쿄나 츠츠이 야스타카도 캡틴 퓨처나 화성의 공주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즐겨 보았습니다.
[ 캡틴퓨처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가 일본에서 더티페어를 낳고, 이게 다시 미국에서 그래픽 노블로 제작된다. ]
한국의 1세대 SF 팬들은 아이들용의 '아이디어 문고' 같은 작품을 보고 자라났고, 라이파이나 로보트킹, 20세기 기사단 같은 작품에 열광하며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SF 현황은 캡틴 퓨처나 벅 로저스가 최신 유행으로 인기 끌던 일본의 195~60년대, 슈퍼맨에 열광하며, E.E.스미스와 에드거 라이스 버로우가 호평받던 미국의 192~30년대와 비교해서 그다지 나은게 없습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특히 양적으로), 충분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최신의 SF 작품을 선호하는 건 좋습니다. 심각하고 진지한 하드 SF를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하드 SF만이 SF고, 그렇지 않으면 SF가 아니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하드 SF 팬의 수는 생각만큼 많지 않으며, 전체 SF 팬의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하드 SF 팬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하드 SF팬 취향의 기획이 넘쳐나지만, SF를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SF가 재미있어서, 즐겁고 놀라워서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이트 노벨이건, 스페이스 오페라건, 아니면 만화책이건, 애니메이션이건 상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 더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SF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바타 같은 3D 영화만이 SF 영화가 아니라, 비카인드 리와인드처럼 쌈마이 스타일로도 SF 영화는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과학 공식이 잔뜩 흘러나오고 양자 역학이니 상대성 이론이니 하는게 없어도 SF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건, 포스트 아포칼립스건, 슈퍼 히어로건, 아니면 거대 로봇과 괴수 이야기건 상관없습니다. 일찍이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철인 28호'로 과학 기술의 양면성을 보여주었고, '고지라'로 과학이 가져오는 재앙과 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듯이, 테즈카 오사무가 '철완 아톰'으로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그렸고,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사이보그 009'로 개조 인간의 고뇌를 그렸듯이, 그리고 마츠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999'로 우주 여정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듯이 어떤 이야기이건 SF로서의 과학적 상상력은 충분히 그려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뭔가 심각한 고뇌와 진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좀비 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차별이나 사회적인 무관심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레지던트 이블(바이오해저드)'처럼 액션물을 만들어도 좋고, '세계대전 Z'처럼 '어떻게 좀비를 때려 죽일까?'만 연구해도 좋습니다. 주제 의식에 얽매여서 또는 '과학적 상상력'에 집착하여 머리를 썩힐 필요는 없습니다.
SF의 S는 과학의 S이며, SF의 F는 상상의 F입니다. 그리고 둘 중에 F... 즉 '상상'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상상 속의 세계에서 상상속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것에 약간의 과학을 양념으로 치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구성하면 그것이 SF가 되는 것입니다.
네이버 웹 소설 공모전에서 다음 번에는 판타지와 SF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다시 판타지와 SF 공모전을 진행하겠지요. 아니 반드시 네이버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어디에서든 공모전을 하게 될때 즐겁고 재미있는 SF, 유쾌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심각한 얼굴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이 넘쳐나는 얼굴로 볼 수 있는 SF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3작품 중 최소한 1개는 SF를 선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개 다 SF면 더 좋겠지만, 그건 바라지 못하겠기에...)
그리고 'SF는 재미있구나. 나도 써 봐야지.'라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서 정말로 다채로운 작품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하드 SF팬들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선보이길 바랍니다. 한달에 나오는 SF를 하나 둘 세면서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뭘 골라서 봐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게 되길 바랍니다.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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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의 흐름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SF보다 판타지에 치중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인터넷 소설은 예전 통신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그때 유행했던 소설들 중 검마 판타지나 무협풍이 많았습니다. <드래곤 라자> 같은 작품이 인터넷 장르 소설의 기틀을 잡았다고 해도 거짓이 아닐 겁니다. SF 소설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소위 '판협지'나 '양판소'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죠. 그런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기에 SF보다 판타지가 강세를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죠. 일종의 고정 관념이 생겼다는 생각도 드네요. 인터넷 소설은 판타지와 무협이어야 하고, SF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요.
물론 왜 하이텔이나 천리안 시절에 하필 SF가 아니라 검마 판타지와 무협이 강세를 보였는가 하면…. 역시 표도기님 말씀처럼 과학이 들어가면 뭔가 복잡하게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하더라도 초광속, 웜홀 통과, 항성간 항해 등의 용어는 낯설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이공계를 안 좋게 보거나 우주 진출에 관심이 별로 없는 풍토에서 독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기 일쑤겠죠. 무늬만 SF라고 해도 SF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차라리 마법 서클이나 정파와 사파를 논하는 게 훨씬 마음 편합니다. 그래서 통신 시절부터 그런 흐름이 생겨났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족으로 소프트 SF를 무시하는 풍조는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았죠. 하지만 그런 우주 활극이 넘쳐났기에 서구 SF 시장이 이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모 작가의 말처럼 결국 시장의 90%는 양산형 아니겠습니까.
메트로 2130은 무엇인가요? 포스트아포칼립스물 중에서 메트로 2033, 2034는 있는데...
(SF하면 옛날의 저처럼 뭔가 과학상식이 풍부해야 독자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스토리를 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심사 고생 많으셨습니다.
으음;;;
본선 47작 중에 SF가 하나도 없었다니...
예선 탈락한 모양이네요. ㅠ.ㅠ
다음엔 본선 진출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차이도 큰거 같습니다.
어느정도는 한국인의 특수성도 있는 거 같아요.
사실상 판타지와 별다를바 없는 내용에 SF 용어를 덧씌우기만 해도 사람들이 집어 던지거든요. 집 근처 대본소에서도 '총몽' 이랑 '플루토'를 빌리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뭔가 설정이나 배경상의 '머리아픈' 용어들이 나오면 그걸 즐기는게 아니라 공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인들의 대다수는 과학용어를 지긋지긋한 수험 시절때 외에는 관심있게 읽어 볼만한 여유도, 이유도 없어서일런진 모르겠지만서도........
실제로는 그런 용어들이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는 '마법' 과 별다를바 없는 설정 용어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크나큰 의미와 정합성을 부여하는지도.
읽는 사람이 그런 부담을 갖고 있다면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렇겠죠.
한국에서 SF로서 성공하려면 탈 SF적인 성향을 띄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판타지는 흥했지만 SF는 비교적 흥하지 못한 이유는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크지않을까요
드래곤라자를 읽고는 뭐 그때에도 마법은 어쩌니 오크는 이것이 맞는것이니 엘프가 어쩌니 D&D가 어쩌니 해도
결국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누군가 이것은 틀렸다라고 말하기 힘들지요
하지만 SF는 아무래도 '과학'과 '기술'이라는 느낌이랄까
만약 제가 소설에서 주인공이 '레이져'소드로 싸운다고 글을 쓸 경우
읽는 사람들 중에 '레이저'가 어떻게 검으로 사용이 가능하느냐 빛을 어떻게 잡아두느냐 차라리 플라즈마라고 해라 플라즈마소드면 스타워즈를 배낀거 아니냐 등
질타를 하며 그평가와 덩달아 제 소설을 읽지 말아야 할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흐를지도 모릅니다
본래 예술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죠.
쉬워도 한없이 감동적일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것은 훌륭한 것이고 꼬진 것은 꼬진 겁니다.
그래서 어렵죠. 정답도 없고 평가도 제맘대로인데, 분명 레벨 차이가 존재하니 원...
게다가 예술의 퀄리티라는 것은 작가가 타고난 천품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예술가에게는 노력과 훈련도 필요하지만 천부적인 자질이 더 중요하죠.
이성수 교수의 <스핑크스의 저주>는 1권짜리 장편이고, 딱히 그렇게 긴 작품이 아닙니다.
실은 시간여행 또는 대체역사를 테마로 하는 여러 권짜리 SF가 유명 작가에 의해 쓰여지긴 했죠.
고원정의 <횃불>,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입니다. - 둘 다 중간에서 멈춰버렸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