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이곳은 무엇이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 게시판입니다. (댓글 기능을 다시 활성화시켰습니다.)
2월 17일 오늘은 이탈리아의 철학가이자 사상가인 조르다노 브루노가 종교 재판을 거쳐 화형에 처해진 날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도미니코회의 수사로서 철학, 과학 등에 폭넓은 지식을 갖고 각지에서 학문을 가르친 그는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 있고 태양은 그 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도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 같은 무한 우주론을 비롯한 각종 발언으로 이단으로 몰려서 처형되고 말지요.
화형을 당하던 그 순간 브루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뚝에 묶여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 하는 당신들 쪽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혁신적인 주장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러온 했습니다. 그들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나머지 그 주장을 일방적으로 배격하고 심지어는 말살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내용이라면 결국은 그 내용은 자연스레 밝혀지게 됩니다.
왠지 "최후의 날 그후"라는 SF 단편집 중 존 윈덤의 "바퀴"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핵전쟁으로 멸망 직전에 몰렸던 인류는 기술이 재앙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면서 기술의 사용을 이단이라고 가로막습니다. 한 소년은 그것이 위험한 일임을 모르고 우연히 '바퀴'를 발명하고 사용하게 되고 그것이 드러나면서 처형될 위기에 몰립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바퀴를 만들었다고 꾸미면서 대신 처형됩니다.
그리고 손자에게 말해주죠.
"사악한 건 바퀴가 아니라 두려움이란다, 데이비. 그걸 꼭 기억해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조르다노 브루노의 가설이 맞았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그는 과학의 순교자로서 기억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악한 건 두려움이다."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되지요.
아무리 다른 것이라도 한번은 돌아볼 수 있는 것, 듣기 싫은 말이라도 귀를 열어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를 이끌어준 과학의 모습이며, 우리 인류가 발전해온 길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허황된 이야기라도 아무리 다른 것이라도 일단 눈과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받아들인 이후에는 우리의 이성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평가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정말로 맞는 것인지 아닌지 말이지요.
선입견이나 편견, 그리고 고집 등의 이유로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좋지 않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이성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설사 틀린 이야기라고 해도, 다른 내용이라도 배격하거나 비방할 필요는 없겠지만, 잘못된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안 됩니다.
그리고 주장하는 이들도 어쩌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르다노 브루노의 가설은 타당했기에 훗날 받아들여지게 되고 그를 순교자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 옳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순교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평가와 의견은 무시한채 자신의 고집스러운 말만 반복하는 것은 자신들을 틀리다고 말하는 조르다노 브루노를 두려워한 나머지 화형에 처한 당대의 '겁쟁이들'과 다를게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 : 오늘의 SF - 2월 17일
여담) "최후의 날 그후"는 핵전쟁 이후 문명이 붕괴된 세상을 소재로 한 단편 SF 모음집입니다. 내용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고 만족스러운 명작으로 제가 보았던 SF단편집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죠. 기회가 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아쉽게도 절판되어 도서관 등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spacelib.tistory.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
신념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숭고한 행위죠. 중요한 건 그 신념에 어떠한 근거가 있느냐는 점인데…. 세상에 믿음만큼 무서운 게 또 없는 터라 환상을 신념으로 오해하고 무조건 빠져드는 경우가 훨씬 많은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적인 자세, 그러니까 논리적인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논리적인 자세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게 아니라 그만큼 자료를 많이 수집하고 교차 검증해야 한다는 뜻이죠. 유명 학자들도 툭하면 실수를 하는 마당이니까요. 예전에는 필트다운인 같은 사건도 있었고.
※ 예전에 썼던 <최후의 날, 그 후> 소감문입니다.
http://www.joysf.com/?_filter=search&mid=world_gac&search_target=title&search_keyword=%EC%B5%9C%ED%9B%84&document_srl=4798619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걸음 내딛는 것이다'
어디서 처음나온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주 나오는 뉘앙스의 대사입니다.
요즘 '신념이나 주관은 자신이 옳다고 확고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에 따라 확인하고 번뇌하면서도 추구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확고한 신념, 혹은 신념을 넘어선 신앙은 때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스스로를 순교자의 길을 가도록 하지만 자신에 대한 의심이나 번뇌, 고민이 없는 신념일 수록 스스로 순교자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다른 이를 메달아 순교자로 만들곤 합니다. 막상 스스로 시험대에 섰을 때, 너무도 쉽게 흔들리기도 하죠.
최후의 날 저도 참 재밌게 봤는데요, 자동화 집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아무래도 소재가 특이해서라고 생각합니다.
IS의 신념도 신념. 신념이라고 다 맞는것도 아니고 옳은 신념도 있지만 잘못된 신념은 잘못된것일 뿐입니다. 상상의 이야기라면 모를까 과학을 말하면서 그 어떤 근거도 부정하며 신념을 찾는다면 그저 망상일뿐이죠.
한길아트북으로 부르노가 쓴 주저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가 번역된 바 있죠.
대략 15년 전 번역본이 처음 나오자마자 바람처럼 달려가 사 들고 짬짬히 읽었습니다만,
"신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부르노의 썰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는 그래도 현재 알고 있는 우주론과 비슷해서 어떻게 때려맞출 수 있는데
함께 합본으로 수록된 <원인과 원리와 일자>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