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입니다. 저는 모든 것에 '논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재단하곤 했습니다.


내 자신이 '맞다'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내가 '틀렸다'라는 글에 대해서 가차없이 싸움을 걸며 바둥댔지요.


이를 위해서 각종 자료를 찾아보고, 계산을 하고, 논리를 붙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제 의견을 사람들이 받아들여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승리'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때는 상대를 설득하겠다며 더욱 더 발버둥쳤습니다.


기묘한 것은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면 할 수록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그 사람은 바보야'라고 자위하며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대개는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상대를 쪼아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입니다. 문득 심심했던 저는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었지요.


그 내용은 역시 "나는 옳음. 너는 틀림."이라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역시 나는 글을 잘 쓰는군."이라 생각하며 흥얼거리듯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쓴 얘기가 사실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중간부터는 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계속 같은 내용을 (방식만 바꾸어) 얘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글 속에서 나는 상대에게 "논리적이지 않다."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논리적이지 못했던 것은, 이성적이지 않았던 것은 나였던 것이지요.


결국 그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옳아.", 더 정확히는 "내가 이겼어."를 외치기 위한 '키보드 배틀'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내가 이겼어."라는 허망한 위안 뿐.


그때의 '쾌감'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로 아는 사람이 보았다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물론 저와의 키보드 배틀에 열중하던 누군가는 그것을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몰랐기 때문에 계속 서로 같은 내용을 반복했겠지요.) 하지만 게시물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이 보는 것. 그 많은 사람 중 저의 "한심함"을 느낀 사람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비록 한참 지난 뒤이긴 해도 저 자신이 "나의 한심함"을 깨달았으니까요.



그러면서 또 한가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딴죽과 비평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특히 SF를 이야기한다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과학적 상상력'과 '폭넓은 시야'라는 것을...



그리고 제 글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나 "SF와 과학 이야기"에서 온갖 종류의 황당한 이야기를 비교적 편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뭔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하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하다보니, 제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상대의 말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계산하는 것도 나름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뭔가 기발하게 보이는 내용에서 정말로 기발한 가능성을 생각해내는 것 이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공상과학대전"이라는 책처럼 '과학적으로 말이 안 돼!'라고 딴죽을 거는 것보다도 "굉장한 과학으로 지키겠습니다." 같은 책처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더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이 같은 훈련은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할 때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고쳐야 할 점을 꼼꼼히 이야기해 주면서도, 잘 했던 것을 찾아서 칭찬해 주신 것이 정말로 기뻤습니다."


학생의 이 같은 평가 내용을 볼때 정말로 가슴이 뿌듯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상대의 말을, 글을 좀 더 신중하게 보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 앞의 한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글을 볼 수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며, 함께 대화를 통해서 좀 더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만이니 뭐니 하며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40대에 이르렀음에도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상황이지만(공자님의 말씀대로 미혹됨이 없는게 아니라 미혹 투성이인 상황이지만) 그래도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서 최소한 부끄러움을 알고, 동시에 그 과거를 회피하지 않게 된 제가 있다는 사실이 즐겁습니다.


키보드 배틀이라는 것이 결코 재미있는 것이 아니며, 논리를 위한 것도 아니며 단지 "눈 앞의 승리"라는 허황된 가치에 몰입되어 장래의 내게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조금은 인식하게 된 자신을 깨닫는 것이 좋습니다.



게시판에 댓글을 달고 싶어질 때 한번 쯤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연 먼 훗날 나는 이 댓글을 자랑스럽게 볼 수 있을까 라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생각해 보면 좋겠지요.


"나는 왜 댓글을 달려고 하는가?"


라고 말입니다.


글에 공감하고 뭔가를 더 끌어내고 싶고, 그리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편하게 댓글을 달면 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평하기 위해 댓글을 달고자 한다면 좀 더 깊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1. 내가 말하려는 것은 정말로 옳은 것인가?

2. 그 내용이 -나만이 아니라 상대에게도- 도움이 되는가?

3. 상대(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그 내용을 납득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고 비추어보는게 우선되어야 하며, 상대가 그것을 좋게 받아들일수 있는지 생각하고, 그 글을 읽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할게 있습니다.


이따금 "세상은 모두 틀렸어. 나만이 옳아."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분이 정말로 옳거나, 또는 그 분이 틀렸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건 그르건 상대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으며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순교자이고, 세상의 잘못된 것과 싸우는 성전사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호응하면 됩니다.


만일 그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남들이 옳다고 이야기한다면, 그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댓글보다는 별도의 글로서 제시하는게 나을 것입니다. 그 편이 좀 더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다고 말한다면 굳이 그에 대해 반론을 더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순교자라고 생각하는 누군가는 "이렇게 반대가 많은 것이야 말로 내가 싸워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이야기건 무작정 틀리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허황된 이야기라도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의견에 대해 '맞다'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위안과 동조일 뿐, 응원이나 격려나 의견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야기하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승리하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그 글을 읽는 사람, 글쓴이 당사자만이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직 "세상은 다 틀렸어."라면서 키보드를 갈고 승리를 노리고 있는 키보드 워리어, 또는 키보드 팔라딘(성전사)와의 댓글 대결도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이기에 피하는게 좋을 것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수많은 이가 함께 보고 있는 것. 단지 댓글의 당사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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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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