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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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과학소설은 미래, 가치 모르는 한국 안타깝다" 전문 링크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mcate=M1001&nNewsNumb=20141216275&nidx=16276
지난 2014년 말에 복거일 작가분이 강연을 하시면서
강연을 위한 자료 - 발제문으로 기고하신 내용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충실하고 긴 글입니다.
SF의 역사와 의의, 읽을만한 명작 SF와 괜찮은 SF 비평서 등에 대해 두루 다루고 있는 글이고,
복거일 작가가 평생 SF를 읽고 쓰고 생각하면서 담아두었던 것을 한꺼번에 풀어놓은 글입니다.
말기암 투병 중으로 삶의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이미 받아들인 상황에서,
'SF 작가로서의 인생'에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히 풀어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정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거일 작가 본인이 SF의 팬이라는 단적인 증거이고,
작가가 가슴 속에 품어 온 SF에 대한 큰 관심과 사랑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복거일 작가가 직접 쓴 이와 비슷한 글을 예전에도 한 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략 [월간중앙]인가에 아마도 20년 정도 전에 실렸던 칼럼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전반적인 내용은 비슷하지만 이번에 올라온 글이 훨씬 더 풍성하고 정제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복거일 작가는 예전에 <세계환상소설사전>이라고 팬터지 문학을 정리한 책을 내기도 했는데,
이제 마지막 힘을 기울여서 SF에 대한 사랑을 담은 책도 펴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위에 링크한 글은 긴 시간 준비해 온 책의 첫 번째 챕터로 쓰여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SF에 막 입문해서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는 독자에게 권유하기 좋겠네요. 클럽 회원이라면, 강연 내용의 정보는 대부분 아실 것 같습니다. SF의 정의와 역사, 하위 장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네요. (애시모프라니, 뭔가 좀 희한하기도.)
다만, 여러 소설들을 영국과 미국 중심으로 소개한 건 좀 아쉽네요. 소련과 동유럽 번역본도 요즘에는 나오던데, 그런 것들도 거론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알고 보면, 저쪽도 SF 기틀을 세우는 데 한몫 했으니까요. <1984>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실 디스토피아 체계는 자마친이 <우리들>부터 잡았다고 하죠. 물론 너무 체제 비판적이고 암울한 물건들이 많아서 저런 소개문에서 선뜻 읽으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소설들이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소련, 동유럽 SF가 이렇게 절망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뭔가 적막하고 혼란스럽고 우울하니…. 입문자가 읽으면 장르에 고정관념이 생기거나 너무 우울해서(=_=;;) 안 읽을 수 있겠죠.
한편으로 인공인간 항복은 차라리 바이오펑크로 분류하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시리우스> 같은 소설도 분명히 인공 창조물의 생득권과 생명 윤리를 다루죠. 하지만 시리우스는 동물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모로 박사의 섬> 같은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인이 등장하지만, 한편으로 동물에 관한 비중도 큽니다. 사실 생명체를 조작하는 행위는 인간, 동물, 식물을 가릴 것 없이 생명 윤리와 맞닿습니다. 그 중에서 인간 복제가 자주 나올 뿐, 동물과 식물 개조 역시 중요한 SF 소재입니다. 그러니 비단 인공인간으로 한정하지 말고, 바이오펑크라는 커다란 장르로 분류했으면 훨씬 좋았을 듯합니다. 바이오펑크와 사이버펑크, 로봇 개념을 혼동한 듯한 설명도 들어있네요. 복제인간과 로봇은 비슷한 개념으로 놓을 대상이 아닌 듯한데….
재앙 후 세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일반적인 용어인데, 정작 이건 안 나왔네요. <유리알 유희>는 당연하겠지만, <파리대왕>을 SF로 넣는 건 좀 거시기하지 않나 싶고…. 아울러 과학소설이라는 용어는 좀 잘못 되었다고 봅니다. 이거 예전에도 몇 번 나왔던 말이지만, 사이언스 픽션은 비단 소설만 가리키는 게 아니죠. 영어권에서는 사이언스 픽션 필름, 사이언스 픽션 게임 등의 용어를 씁니다. 즉, 사이-파이 자체는 상상 과학을 가리키는 말이지, 소설에 한정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러니 SF 소설이나 상상 과학 소설이라고 불러야 올바르겠죠. 과학소설은 너무 제한적인 번역이고, 단어가 가리키는 범위 역시 한계가 큽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배제하는 뉘앙스니까요. SF 팬들 중에는 소설, 게임, 영화를 넘나들며 소비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약간 아쉬움이 남는 소개글이지만, 이거야 제 눈으로 봐서 그런 것이겠죠. 사실 이만큼 정리한 소개글도 찾기 힘드니, SF의 역사와 종류를 살피고 싶은 입문자에게 편리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정작 저렇게 깔끔하도록 정리하기란 어렵죠. 자신이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무슨 책을 보면 될지 가이드로 삼기 적당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