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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콘라드의 이야기는 이런 묵시록에 영감을 줬습니다.]

 

 

 

조셉 콘라드가 쓴 <어둠의 심연>은 파격적인 소설입니다. 내용이나 주제도 그렇거니와, 다른 창작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죠. 시대 배경은 19세기 아프리카입니다. 주인공 말로는 교역 항해 와중에 교역상 커츠를 만나러 떠납니다. 배를 타고 열대우림의 강을 거슬러 가면서 당시 영국이 지배했던 식민지의 참상을 목도하죠. 마침내 만난 커츠는 그런 참상을 지휘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암흑 대륙에 빛과 질서, 종교를 가져다 주겠다는 명분으로 원주민을 짓밟는 중이었죠. 심지어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이 더없이 끔찍하다며 광기를 부립니다. 머나먼 미지의 땅, 고립된 왕국, 거기서 철권을 휘두르는 백인 지도자, 핍박 받는 원주민, 사방에 몰아치는 공포와 광기…. 거기서 차마 탈출할 길이 없이 주인공은 주변의 어둠에 물듭니다. 이런 구도가 상당히 섬뜩했는지, <어둠의 심연>을 본뜬 작품도 더러 나오곤 합니다. 그런 작품들은 처절한 폭력과 종말에 가까운 세상을 또 다른 방식으로 그려냅니다.

 

 

 

가령, SF 독자에게도 친숙한 제임스 발라드가 콘라드의 팬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종말 3부작도 <어둠의 심연>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에 잠긴 세계>에서는 스트랭맨이, <불타버린 세계>는 아무래도 로맥스가 커츠 느낌을 풍깁니다. <크리스털 세계>에서는 아프리카 지류 부분이 교역소를 찾아갈 때와 비슷합니다. 특히, <크리스털 세계>의 지류 부분은 아예 대놓고 콘라드에게 바치는 오마쥬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 소설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모습, 그러니까 고립된 지역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꾸미고 살아가며, 거기서 이성이 광기로 변하는 것도 비슷한 설정이고요. 그리고 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해도 종말 3부작은 무대가 꽤 비좁습니다. 석호 주변이나 내륙 마을, 강가의 정글 지대가 전부이고, 다른 지역은 어찌 되었는지 직접 나오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이것도 콘라드의 영향일 수 있겠네요. 어차피 주인공들이 멸망 풍경에 매료되는 줄거리이며, 고립감을 풍겨야 하니까 굳이 넓은 지역으로 여행할 필요가 없기도 합니다.

 

 

 

<어둠의 심연>을 영상물로 시도한 경우는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지옥의 묵시록>일 겁니다. 하지만 SF든 전쟁물이든, 기본적인 감성은 비슷합니다. <크리스털 세계>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지옥의 묵시록>도 아포칼립스라는 제목을 쓰잖아요. 결국 전쟁과 학살 혹은 그와 비슷한 멸망에 다다른다는 느낌을 풍기죠. 프란시스 코폴라의 영화는 시대 배경이 바뀌었습니다. 베트남 침공이 한창이고, 주인공 윌라드의 목적은 커츠의 암살입니다. 아울러 원주민들의 핍박도 핍박이지만, 전쟁의 참상과 군인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에 주력했죠. 공격 헬기 편대가 날아가며, '발키리의 비행'이 흐르는 장면이야 두 말 할 필요 없겠습니다. 네이팜 탄의 냄새가 좋다 어쩌구 하는 대사는 하도 유명해서 이걸 따라하는 밀리터리물이 많을 정도. 사실 <어둠의 심연>을 원작 그대로 영상화하려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그 중에 오손 웰즈도 있었죠. 하지만 베트남으로 소재를 바꾼 영화가 하필 제일 유명해졌으니 뭔가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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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군들, 사막 세계의 신비한 묵시록, 두바이에 온 걸 환영한다.]

 

 

 

소설과 영화 이야기를 했으니까, 게임도 하나 꺼내야겠네요. 이번에는 무대를 중동 두바이로 바꾼 <스펙 옵스 더 라인>입니다. 줄거리는 거의 <지옥의 묵시록>과 비슷합니다. 배경은 한창 전투가 치열한 지역이고, 엘리트 고위 장성(하필 이름이 콘래드)이 잠적했고, 미군은 콘래드를 찾아내기 위해 델타 포스 3명을 파견합니다. 하필 모래 폭풍이 불어닥친 후라서 두바이 상황은 총체적인 파국에 이르렀습니다. 곳곳에 모래가 건물을 덮고, 군인들이 사방에서 총질하고, 시체가 나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입니다. 여기서 사투를 벌이는 미군들은 서로 적대하고, 민간인까지 몰아칠 만큼 제정신이 아닙니다. 문제는 주인공 델타 포스 대원들도 거기에 서서히 물들어간다는 점이죠. 상황은 점점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군인들이 붕괴하는 것처럼 플레이어마저 무너질 지경입니다. 여기다 모래 폭풍까지 더해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뺨치는 기이함을 자랑합니다. 마치 사막 행성에 온 것처럼 사방에 모래가 쌓이고, 모래 폭풍에 고생하는 장면은 아름다울 정도에요.

 

 

 

이 외에도 <어둠의 심연>을 모티브로 이용한 작품들이 많다고 합니다. 위에서 열거한 소설이나 영화, 게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고요. 주제와 소재, 갈등 구도가 어둡고 매혹적인 만큼, 앞으로도 비슷한 작품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인공이 광기의 지도자를 찾아서 기괴한 세계 속으로 점점 빨려든다는 플롯이 인상적이죠. 활용 가능성이 꽤나 풍부합니다. 마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복수극의 전형을 확립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프랑스 작가가 쓴 19세기 소설이지만, 아직까지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죠. 억울한 누명, 천재적인 스승, 극적인 탈출, 비밀스러운 초인, 통쾌한 반격까지…. <어둠의 심연> 역시 암울한 세계로 여정을 떠난다는 점에서 하나의 전형을 제시했다고 봅니다. 특히, <지옥의 묵시록>이 후대 창작물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2차 창작이 3차, 4차 창작으로 이어지는 경우라고 하겠네요. 어떻게 보면, 2차 창작이 원작을 잡아먹은 셈이지만, 그만큼 원작이 풍기는 아우라가 대단했다는 반증입니다.

 

 

 

둘째 문단에서 말했듯이 <어둠의 심연> 파생작들의 특징은 묵시록에 가깝다는 겁니다. 실제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도 있고, 다른 작품들도 거의 그런 지경에 다다르죠. 그다지 큰 연관은 없지만, 비디오 게임 <파 크라이 2>도 소설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막판에 탈출하는 헬기 착륙장 이름이 '어둠의 심연'인데, 이 정도면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 아니겠죠. 게다가 <파 크라이 2>도 <지옥의 묵시록>이나 <스펙옵스 라인> 못지않게 살벌한 전쟁 풍경을 자랑합니다. 핵심 인물인 자칼도 커츠 대령이나 콘래드와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고요. 결국 기괴하고 우중충한 세계를 표현하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만한 게 없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세상이 파탄난 건 아니지만, 짓밟히는 주민들 입장에서야 세상이 멸망한 것과 다름 없겠죠. 그런 점에서 본격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들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딱히 근거는 없지만, 워낙 유명한 소설이니까요. 만약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만들고 싶다면, <어둠의 심연>은 좋은 참고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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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에서 이런 테마의 소설들이 나온 건 그저 우연이 아닐지도….]

 

 

 

※ 저는 <어둠의 심연>을 보면서 느낀 것이 <모로 박사의 섬>이랑 비슷했다는 겁니다. 모로 박사도 외딴 곳에 자신만의 왕국을 차리고, 자기를 떠받드는 생명을 억압하고, 신처럼 행동했죠. 하는 짓거리나 사상을 보면, 커츠랑 별로 다를 것도 없어요. 어차피 이런 줄거리의 창작물이 많긴 합니다만. 각 작품이 1896년, 1899년에 나왔죠. 그만큼 19세기 영국이 잔혹했다는 뜻이 아닐지. 조셉 콘라드는 영국이 아니라 폴란드 사람이지만, 나중에 영국으로 이주했으니까요. 실제로 허버트 웰즈와 콘라드는 친하지는 않았으나 관계를 유지했고, 서신도 주고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서로 의견이나 철학이 맞지 않아 갈라서긴 했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창시한 허버트 웰즈와 묵시록에 가까운 세상을 그린 콘라드. <어둠이 심연>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비슷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