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스샷 많고 재미 없고 글자 많은 게임 감상입니다. 저기 모 님이 바이오웨어의 적그리스도를 보고싶다고 하셨기에요.
어쨌든, EA가 왜 사악한 기업인가 하는 문제는 별로 대답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게임 괜찮게 하나 만들어놓아 팬층을 확보한 다음에 개발진들을 후속작 빨리 만들라고 갈궈서 버그투성이 어설픈 후속작을 열심히 팔아먹는 전략을 쓴다는 것만 해도 답이 되죠. 게임이란 건 대체제가 흔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전작의 유명세로 보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샀다가 배신감에 치를 떨며 EA를 욕하곤 합니다. 물론 EA만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난 2014년만 해도 심즈 4가 딱 그 경우였습니다. 원래 심즈 시리즈는 혼자서 컴퓨터 붙잡고 열심히 하라고 만든 게임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앞으로는 온라인 게임만 만들 거라고 EA CEO가 발언해버렸고, 그 덕분에 심즈 4는 온라인용으로 만들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만들다 보니까 이거는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몇 년 뒤 싱글플레이용으로 대충 개조해서 마무리한 뒤 발매했고, 그 덕분에 버그투성이에 내용 부실하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게 됩니다. EA는 너무 반응이 부정적이자 뒤늦게 수습한다고 발매 이후 몇 달 가량 무료 내용 추가 패치를 뿌려댔지만, 그럴 바에야 그냥 그 몇 달 동안 더 제대로 만든 후 발매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물론 버그가 완전히 없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왼쪽의 어새신 크리드 유니티는 EA가 아닌 유비소프트쪽 물건인데, 보시다시피
황당한 버그로 욕을 많이 먹었죠. 한편 오른쪽은 심즈 4...기대 잔뜩 받은 대작들이 다같이 이렇게 공포 영화를 찍어야 하는 걸까요.
한편으로 자신만의 게임을 잘 만들며 잘 나가던 회사들을 돈을 뿌려 사들인 뒤 그런 식으로 소모시켜가며 돈을 버는 것 역시 EA의 흔하고 사악한 전략이고요. 맥시스 역시 처음엔 심즈 1, 2편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지만 EA가 사버린 이후로 심시티에 이어 심즈 4라는 비극을 연타로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도, 서구 CRPG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바이오웨어 역시 2007년 EA에 인수된 이후로 드래곤 에이지 2와 구공화국 온라인과 매스 이펙트 3으로 전작보다 못하다, 대충 만들었다는 소리를 줄줄이 들어먹으며 평판을 추락시켜 갔죠.
맥시스건 바이오웨어건 게임이 부실해진 이유는 똑같습니다. 심즈 4가 온라인용 게임을 대충 급히 오프라인용으로 바꿔서 발매한 것처럼, 드래곤 에이지 1편과 2편의 작곡가였던 이논 저(Inon Zur) 역시 2편 작곡 당시 EA가 빨리 하라고 너무 갈궈대서 작곡이 너무 힘들었다고 밝힌 바 있고, 실제로 1편 개발에는 5년이 넘게 걸렸지만 2편 개발은 11개월밖에 안 걸렸습니다. 당연히 전작에 많이 못 미쳤죠. 그리고 EA는 그 발언에 대한 보복인지는 몰라도 3편의 작곡가를 갑자기 트레버 모리스로 갈아치워 버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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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EA로서도 너무 갈궈대긴 그랬는지, 드래곤 에이지 3은 바이오웨어가 너무 욕을 많이 먹은 나머지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다며 몇 년간 절치부심한 물건입니다. 결과물은 일단 평가가 굉장히 좋습니다. 판매랑도 상당히 좋고요.
물론 제 평가는 그리...아주 좋지는 않아요. 왜냐고요?
바이오웨어의 전통에 따라, 드래곤 에이지 3에서도 역시 주인공은 뭔가 폼나는 조직에 들어가서 세계구급 위기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하늘에 녹색 구멍이 잔뜩 생기더니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주인공만 그 구멍을 닫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죠. 왜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는 이야기 전개에 편리하게도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쨌건 이 능력에 사람들이 너무나도 감명을 받은 나머지 주인공을 이단심문관(인퀴지터)라 이름 붙이고 신의 사자라고 떠받들어 이단심문용 군대(인퀴지션)를 결성하고 괴물들과 싸우러 나서게 된다는 게 주된 이야기죠.
개인적으론 여기서부터가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게임을 평가하는 데는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적어도 게임을 하나의 일관적이고 유기적인 체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게임의 시스템과 설정과 이야기의 세 가지가 일치해야 합니다.
예시로 포탈 2라는 게임을 생각해 보죠. 퍼즐을 푸는 게 이 게임의 기본적인 시스템이고, 이를 위해서 사실 이 퍼즐을 푸는 것은 플레이어를 실험하는 것이라는 설정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이 설정을 기반으로 살짝 제정신이 아닌 등장인물들을 잔뜩 넣어 이 이상한 실험들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를 구성해내서 좋은 평가를 받았죠.
헌데 드래곤 에이지 3은 주인공이 거대한 군세를 이끄는 지휘관이라는 설정을 도입하는데도, 크게 보면 게임 시스템은 바이오웨어가 익히 만들어온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RPG란 말이죠. 상당히 넓은 맵을 동료 세 명 데리고서 돌아다니다 보면 동네 사람 아무개가 저기 잃어버린 반지 찾아주실 수 있나요 같은 허접한 퀘스트를 던져주고, 고급 회복 물약 만들기 위해서 길가의 약초를 찾아서 직접 뜯어야 하며, 손수 몹 잡아서 장비 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물론 커크 선장이건 오비완 케노비건 커맨더 쉐퍼드건, 픽션에서는 명색이 지휘관이란 양반이 액션이 넘치는 현장에서 마구 뛰어다니고 적 지휘관과 일기토를 뜨는 전개가 많이 나온다는 건 진행상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요소입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다른 거 제쳐두고 그렇게 사소한 일을 하는 건 문제가 있죠. 누가 봐도 이런 건 평범한 모험가들이나 할 일이지, 한 나라와도 싸워볼 만하다는 군세를 지휘한다는 주인공이 할 일이 아니에요.
-오른쪽 아래의 3시간 12분은 실제로 플레이어가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입니다. 소위 소셜 게임류와도 비슷하죠.
왜 플레이어는 그렇게 사소한 일은 돌아다니며 직접 해야 하고 중요한 작전에는 메인퀘스트 몇 개를 제외하면 참가할 수 없는 걸까요? 작전 내용 보면 재밌어 보이는 이야기도 많던데요. 이건 앞뒤가 맞지 않아요. 게임 시스템과 설정이 맞질 않는 겁니다. 큰 맵에서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게임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군대를 이끄는 이단심문관이라는 설정을 억지로 덮어씌우려고 하는 덕분에 둘이 서로 충돌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 부분을 스크립트나 연출로 커버하는 것도 아닙니다. 판타지에선 늘 그렇듯이 악의 세력에 맞서 군대를 결집시켜 대전투를 준비하지만 정작 전투 벌어진다고 해놓고 플레이어는 실제로 그걸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이벤트 영상으로 아주 조금 나오고, 실제로 플레이할 때는 아래 스크린샷에서 보시다시피 적과 아군이 2:2 정도로 아담하게 싸우고 있는 걸 군데군데서 마주치는 게 전부죠.
-스카이림의 전쟁 연출도 참 규모 작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건 뭐...드래곤 에이지 1편 최종전의 감동은 다시 못 보려나요.
한편으로 맵은 상당히 넓고, 초반부터 꽤 많은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 1이 오픈월드였긴 했지만, 바이오웨어의 새로운 시도지요. 스카이림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고 실제로 비슷한 느낌을 주는 구석이 좀 있습니다. 특히 로딩속도의 한계로 느려터져서 별 쓸모가 없는 말이라던가.
그런데 굉장히 넓은 맵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있으나 정작 그 넓은 곳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랜덤으로 튀어나오는 적 몇 무리들과 싸우고 (병력들이 텐트 옆에서 노닥거리는 동안 왜 지휘관이 동료 세 명만 데리고 직접 나가서 싸워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을이나 변변한 NPC조차 손에 꼽는 황량한 벌판을 이리저리 쏘다니는 게 전부죠.
심지어 주어지는 퀘스트들도 정말로 단순합니다. 성우 고용할 비용조차 아까웠는지 어딘가 떨어져 있는 쪽지 하나 읽고 어느 지점 근처에 숨겨져 있다는 아이템 찾으러 가거나 몬스터 몇 마리 잡아달라는 대사 한 줄 듣고 잡고 돌아오면 고맙다는 대사 한 줄 듣는 방식이 압도적인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숨겨진 구역이나 설정 자료 같은 게 가끔 있기는 하지만 장소마다 텍스트로 늘어놓는 그곳의 역사에 관련된 글줄들은 갈수록 읽기 귀찮아지고, 퀘스트 자체도 보자면 말 그대로 단순 반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에서 가장 자주 눌러야 할 키는 아이템 탐색 버튼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찾아서 주워야 할 아이템이 정말로 정말로 많으니까요. 매스 이펙트 시절에 스캐닝 짜증난다고 욕을 그리도 먹었는데 왜 그렇게 버튼 눌러서 탐색하는 걸 좋아하나 모르겠어요.
-인퀴지션의 공간 묘사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황량하고 특기할 구석이 별로 없죠.
-편지 하나 읽고 표시된 지역 근처 어딘가에 떨어져 있다는 아이템 찾으러 가는 퀘스트. 역시 특기할 구석이라곤 없고 반복적입니다.
-궁정 무도회를 다룬 메인 퀘스트는 바이오웨어치고도 상당히 독특하고 멋진 시도입니다. 허나 여전히 숨겨져 있는
아이템들을 마구 찾아야 하고 엄청난 양의 텍스트와 대화로 마구 설명하려 든다는 전개는 변함없이 등장합니다.
아직까지도 바이오웨어 게임에서의 등장인물들은 과격한 표정을 짓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한계를 보입니다.
한편으로 전투는 변함없이 재밌고 캐릭터 육성 등도 잘 맞춰져 있기 때문에 황량한 사막을 쏘다니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기는 합니다. 디아블로처럼 열심히 던전 뺑뺑이 돌면서 스킬 포인트 찍고 숫자 높은 아이템 나오기만 기대하는 게임도 잘 만들면 정말로 재밌으니까요. 그게 뭐 거창한 퀘스트 있고 거창한 연출 있고 해서 좋은 게임인 게 아니잖아요.
-일례로 드래곤과의 전투는 상당히 멋집니다. 굳이 10마리를 복사 붙여넣기 해야 했는가는 조금 의문이지만서도.
반면에 이 전투의 재미를 깎아먹는 요소로는...일단 레벨 스케일링이 잘못되어 있고요. 넓은 맵을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식이라면 적들의 레벨도 어느 정도 이에 맞춰서 조정되는 시스템이 있어야겠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런 건 없습니다.
좀 더 귀찮은 걸로는 PC용 인터페이스는 매우 불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있네요. 드래곤 에이지 1편은 PC용으로 아주 훌륭한 인터페이스를 뽑아줬다가, 2편에서는 PC 유저들을 많이 신경을 덜 써줬고, 3편에서는 아예 별 필요 없다고 신경을 끈 수준에 가깝습니다.
물론 제가 그랬듯이 PC에서도 패드 꽂고 하면 되는데요, 이 경우 마우스처럼 정밀한 조작이 불가능하므로 동료들을 정밀하게 움직이기가 매우 귀찮아지고, 따라서 난이도가 높아 동료들의 움직임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는 경우엔 여전히 매우 불편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동료들의 AI를 전작처럼 세밀하게 설정해줄 수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다 직접 조작해줘야 하는데, 이건 난이도 쭉 내리고 3인칭 액션게임처럼 주인공 혼자서 다 썰고 다니면 해결되는 문제긴 하죠. 그게 제대로 된 해결책인지 아닌지는 좀 고민해 봐야겠지만 말예요.
-저 불벽은 폼나라고 연출한 게 아니라 전투 중에 쓴 게 사라지지 않은 버그입니다. 쓸데없이 멋있죠?
또 다른 문제점으로서는 버그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위 스크린샷에 나오는 것처럼 그냥 사소한 것들이지만 결코 적지는 않습니다. 이외로 자동세이브가 있으니까 별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두 시간에 한 번쯤 튕기곤 했고요. 본격적으로 짜증나는 것으로 전작의 선택들을 제대로 반영 안 해주는 게 있네요.
전작에서 기존 게임들의 세이브파일을 불러오기만 하면 어떤 일이 있었는가가 자동으로 반영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 3편에서는 플레이어가 꽤 느린 인터넷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일일이 전작들의 선택들을 귀찮게 설정해준 뒤 다시 게임상에서 불러와야 합니다. 그리고 한참 하다가 버그 덕분에 이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네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제 게임에서 1편 주인공은 벌써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고, 엉뚱한 사람이 국왕이 되어 있었으며, 2편 주인공은 다른 성별로 게임상에서 등장하더군요. 네. 고마워요, 바이오웨어. 워낙 오래 전이라 이야기가 잘 기억이 안 나서 위키를 뒤져 가며 30분 동안 열심히 선택했는데 게임에 그렇게 공들이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시간낭비였는지를 잘 이해시켜주셨네요.
그 못지않게 짜증났던 걸로는 배경음악이 안 나오고 동료들끼리 대화를 안 나누는 버그가 있네요. 원래 이 시리즈가 동료들 데리고 다니다 보면 자기들끼리 농담도 하고 논쟁도 하고 장난도 치고 하는 거 듣는 재미가 쏠쏠한데, 초반에 배릭과 카산드라가 투닥거리는 몇 개를 제외하면 그런 대사를 거의 못 들었으며 배경 음악도 거의 못 들어서 꽤 심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원래 조용한 건가 생각했는데, 엔딩 거의 다 와서야 그게 버그였고 이 버그에 걸린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걸 알게 됐네요. 그래요, 뭐, 가상 캐릭터 따위에 정 쏟는다는 건 역시 무익한 시간낭비라는 걸 잘 표현해주는 수단이라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RPG를 할 경우 메인 퀘스트 주어지면 언제나 반대방향으로 가서 뭔가 숨겨진 것, 추가로 할 만한 거 없나 싹 훑고 진행하곤 했지만, 이번 인퀴지션에서는 사이드 퀘스트는 몇 개 하다가 다 똑같고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도, 혹시나 달라지는 건 없을까 꾸역꾸역 참아가며 동료들의 침묵 속에 한참을 샤드 주우러 다니다가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간신히 때려친 뒤, 사이드퀘스트를 먼저 한 덕분에 레벨이 많이 올라서 메인 퀘스트의 적들이 상당히 약해졌다는 걸 느껴 가며 엔딩을 봤습니다.
제가 정확히 이런 느낌을 받고 도중에 거의 때려치다시피 엔딩만 보기 위해 달렸던 RPG로 예전에 킹덤 오브 아말러라는 게 있었는데, 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네요. 그게 온라인 RPG로 만들다가 오프라인용 액션 RPG로 개조한 거라서 딱 혼자 하는 와우 비슷한 느낌입니다. 엄청나게 넓지만 상당히 공허한 맵을 자랑하고, 동료 따위 없이 혼자서 콤보 넣고 괴물들을 다 때려잡으며, 들리는 마을마다 가서 몬스터 몇 마리 잡아 깃털 몇 개 얻어오라는 식의 재미없는 퀘스트가 한가득이지만 최소한 거기에도 어설프게나마 스토리는 넣어주었기에 드래곤 에이지 3편보다는 사이드 퀘스트의 퀄리티 자체는 낫다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 게임은 메인 퀘스트가 엉망이고 그 이외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지만 말예요.
욕을 많이 했군요. 남이 공들여 열심히 만들어 놓고 다들 재밌게 하는 걸 쓰레기 취급하는 것만큼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도 별로 없...흠흠.
흠흠.
-한편으로는 그래도 여전히 '영화적인' RPG의 선두주자로는 바이오웨어를 꼽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문제점들이 있고 그 덕분에 뒤로 갈수록 많이 짜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버그 같은 것들을 제외한다면 인퀴지션을 하면서 바이오웨어는 여전히 실력 있는 개발사라고 느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기는 합니다. 그래픽, 음악, 목소리 연기, 캐릭터 디자인, 대사, 설정, 후속작을 위한 떡밥 뿌리기 등등. 하지만 실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잡는 것이고, 드래곤 에이지 3에서는 2편보다는 훨씬 넉넉한 여유와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그 방향을 제대로 못 잡았다는 생각을 게임 하면서 계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긍정적으로 보자면 어쨌건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뜻도 되기는 합니다. 2편에서 좁은 맵 재탕한다고 욕을 너무 많이 먹은 김에 이번엔 맵 하나는 무진장 넓게 만들어줬으니까요. 다만 2편은 맵을 재탕한 대신 사이드퀘스트는 괜찮았고 선택권도 많았지만, 3편에서는 맵 만드는 데 시간 든다고 다른 것들을 희생시켰습니다. 둘 중에 어느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차라리 2편의 개발 방향을 고르겠어요. 당연히 3편의 넓은 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차기작에서는 좀 더 균형을 잡을 수 있길 바래 봅니다.
캐쉬템을 파네요.
안 해요.
Our last, best hope for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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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역시 바이오웨어의 적그리스도!
저와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으셨네요. 일단 게임을 하면 맵이 넓은데다가 무의미한 지형이 많아서 무지 피곤하더군요. 말이건 패스트 트레벨이건...그냥 피곤...무도회는 풀어가는 방향은 탐정물같고 재밌었는데, 뭐 이리 빙빙 돌아야되는지 싶었고요. 게다가 벽에다가 박치기 해가면서 뿅뿅해야되는 스캐닝이라든가...은근히 무의미하게 시간을 잡아먹는게 많은 게임이다보니 PC앞에 진득하게 못붙어있는 저같은 경우는 30분 플레이가 버겁더라구요. 역동적인 전투에 간지안나는 모션까지 ㅠ.ㅜ
무도회 클리어하고 플레이를 잠정중단한게 함정이라면 함정이겠네요. 흠흠.
사족) 그 와중에 '네들님...인퀴지터 예쁘게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이...크흐흠! 으흠!
인퀴지터 외모는...사실 사진빨입니다. 대부분의 외모 커스텀이 가능한 게임이 어느 정도 정해놓은 폭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에 외모 좀 만지작거려 봐야 한계가 있죠. 다만 심즈를 좀 해보시면 얼굴 잘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위에 평을 남기신 분들 모두 오래 전 부터 활동을 해왔고, 아마 짐작하기에는 저도 비슷한 연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는 것은 "PC게임의 여명기"인 90년대 중반부터 게임 경력을 섭렵한 사람들이라는 소리거든요.
90년대 중반에 486 PC가 보급되면서 비로서 VGA카드를 통해 "눈"이 열리고, '애드립'이나 '사운드블래스터'를 통해 "귀"가 트이면서 PC게임의 첫 황금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94~95년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오늘날은 딱 20년 후가 됩니다. 그 20년의 세월을 보낸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오늘날 '정형화' 내지는 '정립'되기 이전 초창기 게임 트렌드를 생생히 기억하니까요.
아직 어색하거나 어눌한 면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수 많은 실험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던 게임업계 초창기다보니, 그 때 그 시절 즐기던 게임들과 지금 게임들은 정말 차이가 크죠. 특히 RPG는 더더욱 그렇고요.
뭐, 배경설명이 장황했지만 문제는 이겁니다. 게임업계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우리는 지켜보았고, 이후 그 '다양성'이 '적자생존' 앞에서 이리저리 몇 갈래로 정리가 되면서 이후 '초기진화의 실험'이 끝나고, 척추동물들이 '어류, 양서류, 포유류, 파충류, 조류' 다섯 갈래로 딱 정리가 된 것처럼 게임의 트렌드, 구성방식 등 중요 요소 들도 오늘날에는 완전히 정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진화의 결과물'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한 세대 위인 우리와는 전혀 다른 기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되죠. 특히 "시각적 자극" -- 즉, 그래픽에 대한 집착은 사실 우리와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들 같으면 조금 낡은 식 인터페이스에 약간 도트/스프라이트/픽셀식 2D 그래픽을 접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재미가 있으면 그 자체로 '게임성이 있다'라는 평가를 하지만, 우리 다음 세대에 있어서는 사실 그 시각적/감각적 묘사의 완성도가 곧 게임성의 일부입니다. 그 둘은 떼어놓을 수가 없거든요.
'게임성'이라는 것이 결국 몰입도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한다면, PC게임의 여명기와 진화과정을 지켜 본 우리들과는 달리, 우리와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오늘날 세대의 게이머들에게는 시각적/감각적 자극과 게임에 대한 몰입도는 서로 분리가 된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우선 "보기에 끌리지 않으면" 게임에 대한 흥미 자체가 생기지를 않습니다. 특정 쟝르의 게임들이 꾸준히 쇠퇴하는 이유죠. 대표적인 것이 "거시적" 전략시뮬레이션들 -- 단순화된 도표/그래프, 수치, 약간의 그래픽 인터페이스 등을 사용 -- 이 있죠. FM(풋볼매니져) 시리즈나, Paradox 사의 크루세이더킹즈/EU/VIC 시리즈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사실 이 게임들은 큰 호응을 얻은 게임에 속하지만, 전체 게임산업계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굉장히 마이너한, 일부 매니아들의 쟝르거든요.
마찬 가지로 오늘날 게임들의 또 다른 트렌드는 바로 '캐쥬얼'함인데, 아무래도 예전에 우리들이 즐기던 게임들은 전반적인 난이도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다보니 어떤 것들은 정말 엄청나게 어렵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 그 도전의식이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그 오묘한 시스템을 깨우쳐 "고수"가 되어 클리어 하게 되면 얻는 성취감도 매우 컸거든요. 그런데 대체로 오늘날 게임들은 그렇게 장시간의 시간투자를 거쳐 '아주 고수가 된' 이후를 기다리게 만들지 않죠. 좀 더 여유가 없어진 세상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게이머들 성향이 바뀐것인지, 아무래도 딱, PC나 게임기를 키고 일정 시간 플레이하면 그에 대한 결과물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뽕~ 하고 나와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어려워서 할 가치가 없는 게임'으로 취급받거든요.
20년이면 긴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커리어 내에서 충분히 감당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게임산업 초창기에 회사를 세운 사람들은 20년 전과 오늘날과 소위 "주류" 플레이어들의 성향 차이에 아마 눈이 돌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많이 다르거든요.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전 DAI는 솔직히 선방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