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대한민국 정부는 놀라운 발표를 하게 된다.

대촌리에 떨어진 유성을 조사하던 중 그 유성에서 엄청난 발견을 한 것이다.

외계인으로부터 온 메시지, 그것도 미래기술에 대한 것이었다.


그 기술인즉, 초월 컴퓨터에 의한 차단 필드였다.


이건 기술의 혁명이었다.


인공지능과 공간장악에 있어서 초월적인 의미를 갖는 발견이었다.


이 기술은 이러했다. 문 크기의 공간에 특정한 역장을 설치하는데 이 역장엔 미리 지정된 부류의 것은 통과하지 못했다.

금속탐지기고 화학검사기고 다 필요없었다. 폭발물이라 지정하면 그 어떤 정교한 폭발물도 그 문을 통과하지 못했고

무기라 말하면 무기로 쓰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그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도둑이라 말하면 그 문으로 도둑질을 할 의도를 가진 사람은 절대 통과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봤지만 그 논리적 판단력은 절대적이었다.

이 역장을 관리하고 있다는-그러나 누구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초월공간의 컴퓨터에는 예지 기능이 있다고까지 생각될 정도였다.

기계는 간단했다. 인터폰보다 좀 더 작은 상자 하나만 벽에 달면 끝이었다. 전기도 그리 많이 먹지 않았다.

불량품 검수에서 부터 위조품 파악, 안전, 보건, 위생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인 기술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보낸 특사는 구성전자와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지금이라도 기술을

덮고 파기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포기하기엔 그 가치가 너무나도 컸던 것이다.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했고 사람들은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말했다. 추산되는 경제적 가치는 100경원!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부를 안겨줄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기업인 구성전자가 독점 생산을 시작했고 이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다른 나라들은 외계로부터 습득한 기술임과 그 기술의 공공성을 생각해 그 기술의 특허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지만

구성전자는 요지부동이었다.


공장에 침입해 정보를 얻어내갈 수 있을 거라 낙관하던 외국 기업들과 정보원들은 자신들이 핵심 지역에 접근할 수 없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공장의 출입구마다 '산업 스파이' '스파이' 등에 대한 차단 필드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매수한 그 어떤 직원 혹은 위장취업자 단 한 사람도 핵심정보를 얻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그들은 완저품을 분해해 복제를 시도했다. 하지만 초월기술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다른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 구성전자는 승승장구해 나갔다. 시가 총액은 끝을 모르고 상승했다.

그러던 와중, 다른 나라에도 유사한 유성들이 떨어졌고 그 안엔 완전히 똑같은 기술이 적혀 있었기에 그들 역시 기술을 획득했다.


그리고 더 싼 가격에 시판을 시작했고 구성전자에 대해 배타적 정책을 펼치며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구성전자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며 몰락해 갔다.


그 필드의 보급 이후 세상은 많이 변했다. 빈집털이들은 동네마다 설치된 차단막을 우회하기 위해 땅굴을 파던가 벽을 뚫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테러분자나 간첩은 공항의 검색대를 결코 통과할 수 없었다. 일부 독재국가들은 반체제 인사를 걸러내기 위해 차단막을 사용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동안 구분 불가능했던 것들을 구분하기 위해 초월 컴퓨터를 이용해 보았다. 쓰레기 불쏘시개라 욕했던 책들을 차단막을 향해 던지는 시도도 해 보았다. 십 수년 뒤 시험에 통과할 학생을 어릴때 미리 걸러내는 학교도 있었다.


어느새 인류의 인식과 분류기준은 차단막을 관리하는 초월컴퓨터의 기준으로 재편성 되고 있었다.


어떤 신흥종교 단체는 새 간부를 뽑는데 '거짓 신도' 를 걸러내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기업의 인재 채용기준도 좀 더 간단해 졌다. '기업에 꼭 필요한 인재' 라는 필드만 통과하면 그만이었다.


거리엔 가볍게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필드방 같은 곳도 생겼다. 첫 만남을 하는 남녀가 나에게 맞는 타입인지 판단할 목적으로

설치한 필드를 통과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곳이었다.


타인을 속이는 사람들, 거짓말 같은 것들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세상은 굉장히 기묘하게 변했다.

사람들은 신의 뜻을 알게 된 세상이라고들 말했다.


물론 세상의 모두가 만족한 건 아니었다. 성범죄자 출입금지라고 설정된 유치원 문턱을 넘지 못하던 어떤 아이 아빠의 당황한 표정부터 도둑놈 출입금지라고 직접 설정한 자기 회사 대문을 넘어가지 못하는 사장, 거짓말쟁이 출입금지라고 설정한 차단막을 지나가길 거부한 정치인, 차단필드를 거부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은 불만을 갖고 세상에서 차단필드를 없애자고 주장했지만 하지만 한번 시작한 시대의 흐름은 쉽게 바꿀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도 필드에 의존했다. 내 몸에 필요한 음식인지도 필드로 판단했고 몸에 병이 있는지도 필드로 판단했다. 의사들은 진단능력을 의심받았다. 필드가 암이라고 판단했는데 의사가 찾아내지 못하면 무능하다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필드는 언제나 옳았다. 의사들도 진단장비로 필드를 설치했다. 판사도 필드를 사용할 것을 요구받았다.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상인도 연인도 학생도 군인도 학자도 정치가도 그 누구도 이 필드를 통과해야만 했고 필드의 판단을 믿었다.


가장 진보한 과학 논문도 필드를 통과하는가가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필드를 테스트하려던 그 어떤 가장 복잡하고 모호한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필드는 인간이 알고 있는 그 모든 기준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절대적인 신성함을 갖고 있었다. 우선, 그 어떤 힘이나 에너지도 필드를 강제로 돌파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어떤 판단보다도 절대적으로 옳았다. 사람들은 필드에 자신을 비추어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다. 당장 바르게 살지 못하면 먹고 살 수가 없었다. 인간은 시계속의 톱니바퀴처럼 딱 맞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류는 필드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인간성과 인류의 본질에 대해 논하는 소수의 반대파가 남아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필드를 통과하기를 거부하는 인간은 변변치 않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필드가 뚫리는 일이 생겼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떤 필드가 분류 기준을 어긴 불량품을 통과시킨 것이다.

기술 개발팀이 원인 조사를 위해 파견되고 재현을 시도했지만 되지 않았다. 사실 기술 개발팀이 할 수 있는 일이래봐야 필드가 작동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차단어가 제대로 설정되었는지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들도 그 기술의 진짜 원리는 몰랐다.


기술 원리를 이해하는 인간을 필드로 걸르면 단 한명도 남지 않았다.

그만큼 기술은 난해하고도 이해불가능했다.


결국 그들은 필드가 오작동한 사실을 무시했다. 아니 오작동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지구에서의 수십, 수백억, 아니 수백조 수천조의 사례중 오작동은 언제나 차단어의 모순이나 인간 인식의 구조적 한계였다. 그러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외가 생겨났다. 이 딱딱하게 짜여진 필드의 세계 속에 누군가 필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가 있었다.


그가 그 능력을 처음 자각한 건 15살 때였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필드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아니 자유가 아니라 초월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필드 앞에 서 있든 그 필드의 조건을 알 수 있었고 자신이 필드를 통과할지 하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세상 모든 일이 장난 같았다.

필드를 믿고 따르며 신성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


'절대자' 를 믿고 따르며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자를 판단키 위해 예비된 종교단체의 제단 가장 위에 있는 필드도 맘만 먹으면 바로 통과할 수 있었으니까. 가장 훌륭한 지도자감을 뽑기 위한 선거 필드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난 뒤엔 필드의 오류도 한눈에 들어왔다. 세상 사람들은 참 바보같았다. 저런 분류기준에 얽매이고 서로를 상처입히며 살아가다니.


그는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꾸고 이 멍청한 필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 세상이 거짓말쟁이 사기꾼에게 이로운 사회가 아니었던 탓도 있었다. 필드의 허상을 알고 그것을 조롱하던 그였지만 그 역시도 사회에서 말하는 선과 정의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 역시도 세상의 분류기준과 필드에 대해 절대적으로 믿는 이였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고백했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보여주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류기준은 그녀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고 그 사실이 무너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정신병원에 갖혔고 그는 정보기관에 잡혀갔다.


이젠 사라진 창살있는 방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에 갖혀서 그는 취조를 받았다.


필드를 통하지 않고 하는 심문은 심문관들에게도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들도 그들의 전임자의 전임자의 전임자들에게서나 듣던 원시적인 고문을 생각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무엇보다 필드가 그런 그들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곳 지하실에서 범법을 저지른 자들은 당장 내일부터 월급을 받으러 가는 것도 어려울 터였다. 이미 모든 공공장소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법을 지켜야만 했고 필드에 의해 감시받았다. 고발자도 판사도 검사도 필요없었다. 필드가 모든 것을 판단했다. 법을 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문관들은 매우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지만 그가 필드로부터 자유롭다고 하는 증거를 얻을 수는 없었다.

자고 있을때 몰래 실험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테스트도 그가 필드에서 자유롭다는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는 죄가 없다고 판단되어 풀려났다.


밖으로 나온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 엉터리 같은 세상에 본때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에게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모두를 속이고 이 필드로 세워진 가짜 정의를 붕괴시키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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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