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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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664994.html
정치꾼 눈에는 정치만 보이나 봅니다.
직장 잃고 억지로 농부가 되었다가 무인기 쫓느라 옥수수밭 뒤엎던 쿠퍼가 노동자를 상징한다니 이거 참...
이상 사회는 이상 인간만이 만들 수 있어. 보통 사람은 보통 사회밖에 못 만들지.
- 애플 시드: 아테나 -
글세요. 전 하언님이 더 이해가 안가는걸요...
르혼님이 적었다시피.
부처 눈에는 부처밖에 안 보이니까 하언님이 이해를 못하고 뚜드리는것일수도 있겠죠.
덧:
조중동도 그렇지만 한계려 역시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는건 둘다 똑같죠.
그래서 나이 지긋하신 동네 어른들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을 내려주시곤 했죠.
"신문을 하나만 사지 마라"
우리나라에서는 조중동과 한겨례 양쪽을 하나씩 사서 봐야 진짜 소식을 가려낼수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외국의 언론매체와 달리 한가지 성향에 지나치게 올인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반대되는 성향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축소발언한다고 말이지요.
따라서 양측의 신문 모두를 구독해서 같은 주제에 대한 두 신문의 내용에서 "중간" 합일점을 추려내면 그게 대한민국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오히려 하언님처럼 어느 한쪽의 주장만 너그러우신 태도야말로 이해할수 없는 태도 아닐까요.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후 한겨례의 메인...>
한겨례의 시각과 내재된 정치꾼적 기질을 생각해볼때 영화의 해석을 이렇게 들어가는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겨례는 가끔 부끄러워요. 근데 심하게 질타받아야 할 수준이냐 하면 그정돈 아니고 내부비판이 필요한 정도라... 내안에 흑염룡같은거라 생각합니다.
한겨레도 비판 받아야 할 사안에 대해선 비판 받아야죠. 이 기사도 쓸데없이 지나치게 나간 부분이 보이구요. 다만, 한겨례가 비판받아야할 기준으로 보면 10~100배는 더 비판받아야할 매체들에게는 같은 잣대를 안내미는 분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SF의 관점에서 한정해서 보자면...
동아와 조선은 SF 동네에서 비판을 받기에는 선구적인 역할을 과거부터 꽤 열심히 했거든요.
동아는 과학동아를 중심으로 SF를 전문적으로 다루고자 무척 오래전부터 애써왔습니다.
이한음의 SF 단편집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는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내용이었습니다.
장강명의 <클론 프로젝트>는 무려 동아일보에서 출간되었죠. 장강명씨는 동아일보에 SF 소설도 연재합니다.
또한 과학동아는 일찍이 1990년대에 SF 영화에 대한 칼럼을 정기적으로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동아일보는 SF에 관한한 아마추어가 아니에요.
조선일보는 과거에 토요일 책 특집 섹션을 꾸미면서 듀나와 진산을 고정 필자로 섭외하여
<성밖에서>라는 SF 및 판타지 장르소설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전문성 높은 칼럼을 1년 넘게 연재했습니다.
한겨례가 이 쪽에 전문성을 갖추었다면 <씨네 21>을 갖고 있는 게 강점일 것인데,
조선일보에 듀나가 <성 밖에서>를 연재할 무렵 바로 그 듀나가 <씨네 21>에 연재했던 영화 칼럼을 묶은 책이
나중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문고판 문지스펙트럼으로 나온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였습니다.
실은 한겨례가 문화 쪽으로 그나마 말이 되게 기여하는 유일한 매체가 <씨네 21>이라고나 할까요.
전문성 있는 필자가 글을 게재하는 경우도 많고, (듀나처럼 그 필자는 조선이나 동아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 내용이 한 쪽으로 너무 치우지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는 케이스가 꽤 되거든요.
어느 누구든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사실을 자신만의 안경으로 재단해서 보고 멋대로 판단해 버립니다.
실은 그게 인간이라는 것이죠 -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이 말하고 보는 관점을 토대로 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완고해지면서 내 가치관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통해 만든 자신만의 성채가 있고, 그것은 남이 뭐라건 스스로에게는 옳은 것입니다.
그 관점이 편협할수도 있고, 옹졸할 수도 있고,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일수도 있지만, 내 자신은 옳다고 믿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내가 믿는 것에 대한 비판을 받아드리지 않고, 내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필터링해서 보게 됩니다.
조금 더 나은 사람, 조금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남의 관점도 받아들이는 사람일 겁니다.
남의 관점에도 호기심을 갖고, 내 관점만 주장하고 나와 관점이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대화하고 어울리기보다는
나와 전혀 생각이 다른 사람, 관점이 다른 시각도 인정하면서 남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사람인 것이죠.
그게 무지하게 어려운 겁니다. 내가 보기 싫은 주장을 똑바로 직시하고 계속 보고 듣는 것은... 인내를 요하죠.
한겨례는 한국 사회의 양 극단 중 한 쪽으로 치우친 진영을 대변하는 언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저렇게 평범한 SF 팬의 입장에서는 척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특이한 칼럼이 나올 수 있는 것이구요.
한 쪽으로 치우친 관점도 우리사회의 한 일면이므로, 그 쪽 관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말이 된다고 느끼면 말이 된다, 어이없다고 느끼면 어이없다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입니다.
10 여 년 전 [TV 책을 말하다]에서 "듀나 특집"을 할 때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사조를 들고 나와 SF를 정의하는 사람을 보고
저는 "도대체 듀나가 쓴 SF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고 여기면서 저 사람이 오늘 프로그램 망치는 거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받아들일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진 '틀'과 '안경'을 가지고 SF를 재단했을 뿐이거든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는데, 누구든 자신의 관점이 있고 자기 생각대로 반응할 뿐인데,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하죠.
다만 그것을 듣고 제가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혀 별 문제인 것이구요.
[결론]
한겨례의 칼럼은 나름 그 시각이 "평범한 사람이 느끼기에는 상당히 희한해보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런 시각의 기사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죠. 누구나 자기 관점에서 시각으로 재단해서 세상을 볼 뿐이니까요.
저 기사는 한겨례라는 신문이 가진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가치도 있다고 봅니다.
그게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것이죠.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인 것이구요.
" 평범한 사람이 느끼기에 상당히 희한해보인다" 이 말에 동의할수가 없군요( 그렇다고 나머지 의견에는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님)
같은 방식으로 전혀 다르게.
" 평범한 시각으로 볼 수 없는걸 볼수 있는 기회를 줘서 신선하다 " 라고도 해석할수 있거든요.
전자의 뉘앙스와 후자의 뉘앙스는 완전 다르죠.
그리고 애초에 이건 맞다.틀리다를 논할 사안이 아니죠. 영화를 보고 뭘 느끼느냐는 전적으로 각 개인의 자유죠. 이건 자연과학이 아니에요. 느낌을 풀어내는 과정에 대한 논박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라는 카테고리로 묶어서 비판한다면 이거야 말로 비판받아야할 대상이라고 봅니다.
같은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건 반박 당사자인 하언님 생각이고요. 3자인 제가 봤을땐 저 리뷰와는 별도로 벌거지님과 하언님의 얘기 사이엔 차이점을 거의 못느낀다니깐요. 두 분 다 재현에 대한 일반적인 담론을 풀어쓰신 것으로밖에 안 보여요. 게다가 문장에서 늬앙스따지긴 힘들죠. 같은 "ㅋㅋㅋ"도 받아들이기는 천차만별인데...(두 분의 결론 : 저렇게 보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잘잘못가릴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엔 논박과정이 필요없을 정도로 저 리뷰의 댓글들에 달려있는 찬반 비율도 어느 정도 대등한 수준인데다가 글만 보고 판단했을 땐 정치를 영화해석의 도구로 사용했는데, 해석 과정에서 비약이 군데군데 끼어있다보니 과도한 대입이 눈에 보인다 정도에요.
내 의견 중 한부분은 맞다 틀리다을 논하는 게 아니라. 논외의 영역이라 말인데요. 요지를 잘 이해못하신듯.
자연과학이 아니다. 이말입니다.
벌거지님이 결론은 맞다 틀리다를 따질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결론을 이끄는 과정을 함께 보면 차이가 확실하죠.
이둘이 같다는 겁니까?
독해를 자의적으로 하시는 것은 말리지 않겠으나 동의를 받기는 어렵겠군요.
뉘앙스는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위에쓴 두문장을 단순히 "ㅋㅋㅋ" 수준의 뉘앙스와 차이가 없다는 말씀인데.
이역시 받아들이수 없는 주장이네요. " 단순히 " ㅋㅋㅋ" 만을 봤을때는 여러의미가 있을수 있겟지만
문장속에서 그것이 사용되어질때는 문맥과 상통하는게 일반적이죠. 그런 뉘앙스는 받아들이는 가짓수에 제한이 오고요.
" 천차만별 "은 아니지요. 그리고 뉘앙스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의미가 전혀 다를수 있죠.
제3자라는건 일반적으로 객관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역시 주관적일수 밖에 없죠.
객관성(그럴 의도로 거론했다면)을 보증하기엔 여기서 제3자를 대변하고자 하는 님 개인의 의미가 너무 약하군요.( 수치적으로 )
찬반비율로 논박과정을 생략한다.. 논리의 타당성을 투표로 결정한다는 의미인지????
그 비약과 과도한 대입을 논하시면 됩니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죠.
-그리고 애초에 이건 맞다.틀리다를 논할 사안이 아니죠. 영화를 보고 뭘 느끼느냐는 전적으로 각 개인의 자유죠.- 하언님의 의견
-그게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것이죠.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인 것이구요. - 벌거지님의 의견
두 분의 주제와 결론 자체가 해석의 자유인데, 어디서 상충하는 표현이 발견됩니까? 늬앙스는 빼고요. 그건 그냥 하언님 생각(일반적으로 공통으로 느껴지는게 있어야 늬앙스라고 하죠.)이예요. 하언님 말씀처럼 문맥이면 모를까. 근데 벌거지님은 지속적으로 결론에 대한 경험과 근거를 제시할 뿐입니다.
찬반비율로 논박과정을 생략한다.. 논리의 타당성을 투표로 결정한다는 의미인지????
그 비약과 과도한 대입을 논하시면 됩니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죠. - 하언님의 저에 대한 의견
찬반비율이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느끼기엔 상당히 희한해보인다."라는 벌거지님의 생각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겁니다. 비SF 팬덤인 한겨레 기사의 댓글란에도 저 리뷰가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의 글이 있는데, 이는 지속적으로 한겨레가 정치적 스탠스가 같은 방향에 있는 사람들에게마저도 항상 들어왔던 얘깁니다. 그냥 한겨례의 논조가 그래왔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거지님은 해석의 자유와 논조는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음을 얘기하셨는데...발꼬리만 붙들린 느낌이네요.
뭐, 그냥 두 분 이야기의 논점이 다른게 없는거 같은데 하언님이 날선 반응을 보이시는 것 같아 끼었다가 이상한 사람된 느낌인데...그런거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제글이 주제와 결론을 말할 정도로 확실히 씌여졌다고 인식하신 것인지 묻고 싶네요.
짧은 단문 몇개에 불과한데 말이죠. 애시당초 겟우님 혼자서 그렇게 몰아가신 면은 없는지 되새겨보시기 바람니다.
해석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내글에서 발췌한 그 구절의 핵심은 논외의 것이다 이말입니다. 이것과 벌거지님의 의견이 같다. 차이점이 거의 없다라고 해석하는건 님의 자유지만 전 결코 동의할수도 없고 왜곡이라고 봅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내용을 받아들인다는것은 독자의 몫이다가 벌거지이 얘기하신 것이고요.
논외의 것과 독자몫이 같다라고 이해하신다면 다시한번 재고바람니다. 어디가 같다는 것인지.
제글은 자연과학처럼 답이 있는것이아니다. 즉 옳고 그름을 가릴수 없다는 것입니다. 논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고요.
벌거지님의 글은 논의 자체의 성립을 제한하는게 아닙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말고는 독자의 선택이라는 말입니다.
벌거짐의 생각에 대한 논거를 왜 제글에 다시는지 우선 의문이네요. 본인이 찬반비율로 볼때 ~ 어떻다 주장하시고선 이제 그건 벌거지님의 생각에 대한 논거였다??
논박과정이 필요없을 정도로 저 리뷰의 댓글들에 달려있는 찬반 비율도 어느 정도 대등한 수준인데다가 - 겟우님의 주장
논박과정이 필요없을 정도라고 말하려면 일반적으로 압도적인 찬성. 혹은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찬반의견이 대략 비슷하다면 그건 논박과정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야되는게 일반적이지요.
겟우님의 주장은 일반론적인 상식과 배치되는군요.
논리를 다수결로 하냐는 원론적인 얘기를 배제하더라도 말이죠.
덧붙여서 윗글에 대한 찬반이 비슷하게 나왔다는 가정하에 그렇다면 그것이 희안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보기 드문 예인가라는
의문이 뒤따라오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요즘 나름 인기있는 " 미생 " 에 나오는 멘트를 좀 인용할까요.
바둑 돌에 "그냥 "두는 돌은 없습니다. 돌 하나하나 의미가 있죠. 아무생각없이 두는 사람이 아니라면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의미없이 " 그냥 " 쓰는 단어는 없습니다.
벌거지님이나 겟우님이나 공통적으로 " 그냥 "이란 단어를 쓰는데 그걸 보니 미생이 떠오르네요.
날선 반응이라,, 그렇게 치부하고 싶으신 거겠지요. 본인의 바램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동의하셔도 되고, 안하셔도 됩니다.
그건 하언님의 자유이십니다.
제가 "신선하다"고 받아들이건 "희한하다"고 받아들이건 그것도 제 자유입니다.
그리고 제가 받아들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쓰는 것도 제 자유입니다.
한겨례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느꼈다면, 그것을 자유롭게 쓰고 말할 수 있는 자유도 소중한 겁니다.
한겨례 칼럼의 시각이 신선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을 자유롭게 쓰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소중한 것과 동격인 것입니다.
저는 한겨례 칼럼에 대해 "신선하다"고 느낌 관점도 중요하다고 여기고,
"너무 정치적이고 너무 나갔다"라는 관점도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둘 다 중요한 겁니다.
저는 한겨례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적 카테고리로 재단한다"라고 비판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면, 그 비판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비판을 수용하고 받아들일지, 그냥 묵살하고 나의 길을 갈지는 자유입니다 - 비판이 옳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비판에 완전히 귀를 닫고 자기 갈 길만 가는 대중매체의 앞날은 뻔합니다 - 파산 말고는 다른 길이 없죠.
남이 하언님처럼 "신선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신선하다라고 받아들여라" - 이렇게 강요할 수 없는 겁니다. 그 순간부터 악이 태동하는 것이죠.
내 의견을 억지로 강요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비판을 또 비판할 수도 있고, 그 비판을 또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비판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만 안하면 됩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만 안하면 됩니다.
"한겨례니까 비판하면 안된다"는 태도만 보이지 않으면 됩니다.
조선을 비판하든 한겨례를 비판하든 비판하는 것은 무한 자유이고,
이런 비판 행위에 재갈을 물리는 태도만 버리면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정치적 카테고리로 묶어서 비판하는 것도 자유이고,
그런 행위를 더 비판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또한 그것에 대해 또 한 번 비판하는 것도 자유인 것이죠.
제 의견에 동의하시던, 다르게 생각하시던,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막아서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내가 마음대로 비판하는 것은 보장되어야 하고, 남이 마음대로 비판하는 것은 안된다는 태도만 없으면 되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 저 한겨례 칼럼은 비판 받을만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무 나갔습니다.
너무 정치적으로 나갔고,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판하는 목소리는 자유로와야 합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저 칼럼을 보고 "신선하다"라고 느끼기보다는
"희한하다", "너무 치우쳤다"라고 느끼는 것이 보다 더 강했을 거라고 봅니다.
제게 반드시 "신선하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요하신다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선하다"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그런 의견은 적극 수용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언제나 벌거지님이 글은 한결같습니다. 주로 양비론이고 카오스적이지요.
그치만 글을 읽어보면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요.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내가 강요한거 없는데? 신선하다는 느낌을 강요했습니까? 동의할수 없다와 강요는 완전 다른데 말입니다.
벌거지님의 글을 보면 합리적 비판과 무분별한 비판, 근거없는 비판을 다 같은 비판으로 한테 묶어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요?
잔치집에 먹을게 없다라는 속담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이야기 가지고 오바하시지 마세요. 전~ 수 있다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결론은.
정신승리네요. 하언님. 축하합니다.
정신승리 이루셔서...T.T
애초에 글을 잘 읽어 보면. 벌거지님의 글이 중립적이라는건 누구라도 알수 있는데 말입니다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건 자유이지만. 그 의견에 동조할지 아닐지는 그 개개인 당사자의 몫입니다.
자신의 잣대에 어긋난다고 하여 상대방을 "오바한다느니, 먹을게 없다라느니" 하는 식으로 깔아내리면...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일이 아닐까요?
덧:
~~할수 있다를 전제로 사용한다는 내용 자체가.
본인 스스로 불명확한 전제와 증명할수 없는 사안을 가지고 추정에 근거하여 대충 이야기했다는 소리밖에 안 됩니다.
~~할 수 있다 라는건 가정. 추측의 단계죠. 난 그렇게 이야기한거니까 오바하지말라는 소리는.
속된 말로,
난 증빙할수 없는 사안을 소재로 가능성만 갖고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라고 광고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하언님 아이디를 허언님이라고 했다면.
더할나위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정치를 떠나서도 한겨례는 참 재미있는 집단이죠... 신문의 논조가 반재벌, 반 대기업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에 반해 재별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광고와 상품광고는 가리지 않고 받으니까요... 가끔 삼성이 광고 좀 안준다 싶으면 비판(을 가장한 비방)의 수위는 더 높아지더군요.
그것도 사실 2007~8 년도 이야기이고 지금에 와서는 어린아이라도 기사에 문제를 눈치챌수 있게 엉터리 비판기사를 쓰면서(혹은 인용보도) 겨우겨우 연명하는걸 보면... 좋았던 중2병 시절이 끝나간다는 느낌도 지울수가 없더군요...
중학교 논술 과제 제출문 같은 기사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