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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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샷이 아니고 '책상샷'입니다.
말 그대로 책상 위에 쌓여 있고 지금 어떻게든 수납이 잘 안되고 있는 책들이죠.
저 책 무더기 뒤에 PC가 있습니다 - PC의 모습은 완전히 은폐와 엄폐가 되었습니다.
9개월짜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집에 오니, 와이프가 책상좀 치우라고 하더군요.
세월호 애도 시기에는 사실상 도서 구매를 완전 중단하고 SF 역시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오다가다 책을 사서 읽다가 말다가 하면서 책상 위에 쌓아 놓은 책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SF 신간이 은근히 많은 편이고... 신간 아닌 구간 SF도 제법 됩니다.
신간이건 구간이건 새책이건 뭐건... 정가를 제대로 주고 산 책은 없습니다.
<중력의 무지개>와 같이 장기재고 떨이 행사를 틈타 50%에 산 책도 좀 있고,
발품 팔아가며 헌책방 돌아다니다가 새책을 반 값 이하에 건진 게 대부분입니다.
올해에는 종로 5가에 위치한 고객사에서 오랫 동안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점심 시간에 인근 종로6가 대학천 총판으로 직접 가서 30% 빠진 도매가에 산 책도 있습니다.
<레드 셔츠>는 존 스칼지의 장편이고 <메타트로폴리스>는 존 스칼지가 참여한 앤솔러지입니다.
존 스칼지는 출판물로도 성공했지만 뿌리가 인터넷 연재 작가로 시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언제나 지나치게 가볍고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말하지 못하는 약점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 동안 쌓아 올린 작가로서의 위상이나 구력을 생각하면 한 단계 도약할 법도 한데, 그게 안되네요.
<메타트로폴리스>는 책세상에서 나왔습니다. SF보다는 순문학을 주로 찍는 곳이고, 밀리터리도 찍죠.
책세상에서 나온 SF로는 <최후의 성 말빌>, <크립토노미콘>, <철학적 탐구>같은 작품이 있었습니다.
책세상은 프랑스문학이 주전문이지만 꾸준히 장르문학에 관심이 많은 출판사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책세상에서 나온 장르문학 서적 중 시장에서 잘 팔린 히트 상품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왕년에 호러문학 앤솔러지를 찍을 때는 정체성이라도 확실했는데, 이제는 좀 묘해서요.
<세븐 킹덤의 기사>는 조지 R. 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프리퀄입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 본편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지도 않고 담백해서 그런지 더 재미있고 깔끔합니다.
<피버 드림>은 조지 R. R. 마틴의 뱀파이어 소설입니다. 뱀파이어물 열풍 덕분에 나온 듯 하더군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피버 드림>도 19세기의 뉴올리언즈가 무대입니다.
미국에서는 뱀파이어라고 하면 19세기 배경에 뉴올리언즈가 제격이라는 나름의 생각들이 있는지 원...
그 밑에 초록색 문고판이 지만지 시리즈입니다 - 금쪽같은 고전을 번역하면서, 억지로 축약하는 희한한 시리즈죠.
예를 들어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SF <아엘리타>는 안타깝게도 한국에 처음 번역되면서 축약본으로만 나왔습니다.
하지만 분량이 짧은 중편이나 희곡의 경우에는 간간히 완역본이 섞여 있어서... 저는 주로 그런 책들을 찾아 읽고 있죠.
예를 들어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쓴 미하일 불가꼬프의 SF 희곡으로 <적자색 섬>이 지만지 시리즈로 완역되었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헤라클레스와 아우기아스의 외양간>같은 희곡도 처음 완역된 것이 무척 반가운 책입니다.
저기 있는 책은 요즘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에서 권당 1천원에 떨이로 팔고 있어서... 희곡과 중편 완역본을 고른 겁니다.
아고라 재발견총서인가 뭔가는 19세기 고전 SF를 두 편 잇달아 출간해서 이게 왠일인가 싶어 사서 본 것인데,
<프랭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포스트아포칼립스 소설 <최후의 인간>은 시원스럽게 읽히는 고전이고,
벨라미의 <뒤돌아보며>는 아예 책 표지 디자인이 구소련 국기의 망치와 낫으로 되어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둘 다 사상적으로 조금 왼쪽에 치우친 면이 있어서 한국에 출간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밑에 수잔 쿠퍼의 팬터지 대표작 [녹색 마녀] 시리즈 2권, 3권과 <그림자의 왕>이 있습니다.
수잔 쿠퍼는 아동문학을 다시 읽을 때 팬터지를 새로 공부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준 작가입니다.
저 책들 중에서 <그레이 킹>은 [녹색 마녀] 시리즈 3권으로 뉴베리 메달 수상작이고,
수잔 쿠퍼는 제가 보기에 C. S. 루이스나 메들렌 랭글과 최소한 비슷한 레벨은 되는 작가입니다.
[녹색 마녀] 시리즈 1권 <어둠이 떠오를 때>도 굉장한 책이고... 아동문학이라고 폄하할 레벨이 아니죠.
그 밑에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완역본이 있습니다. 1주일 동안 1권 읽고 손 놓고 있습니다.
그 옆 줄에 하단에는 씨앗뿌리는 사람에서 새로 나오는 [보르코시건] 시리즈 1~8권이 있습니다.
중간에 3권과 4권이 빠져 있는데, 과거 행복한책읽기에서 <마일즈의 모험>과 <보르 게임>으로 사서 봤고,
그 책이 시골 집에 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재출간된 책으로 또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들은 별도로 헌책방에서 만나거나 그러기 어려워서 그냥 총판에 가서 할인해서 샀습니다.
그 위에 최근 SF를 적극적으로 찍어내는 새파란 상상의 책들이 있습니다.
E. L. 버로우즈의 <지저세계 펠루시다>의 완역본이 있고, 래리 니븐과 제리 퍼넬의 쓴 멸망물 <루시퍼의 해머>,
그리고 링 월드 프리퀄 세계 선단 시리즈 4권 <세계의 배신자>입니다.
세계 선단 1~2권은 다른 책장에 들어가 있고, 3권은 들고 다니면서 읽다가 어디 두었는지 못찾아서
저도 책이 어디 갔는 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3권을 다 못봐서 같이 산 4권은 그냥 놔두고 있는 상태이구요.
그 위에 닐 게이먼의 어른용 팬터지 <오솔길 끝 바다>와 닐 게이먼과 마이클 리브스의 SF 장편 <인터월드>가 있습니다.
닐 게이먼은 개인적으로 딱 존 스칼지가 조금 순화된 정도로 생각되는 작가이고, 작품마다 왠지 안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 중 소설이 나온 것 4권이 있습니다.
젤라즈니의 <집행인의 귀향>,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코넌 도일의 공포 단편집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그리고 최근에 나온 조 홀드먼의 <헤밍웨이 위조사건> 등 네 권입니다 - 다른 책은 소설이 아니라 장르문학 평론이어서...
요즘 왠지 평론을 잘 읽지 않고 있어서, 평론은 나중에 사서 보려고 후순위로 돌리고 소설부터 샀습니다.
[에스프레소 노벨라]는 장사가 그리 잘 안되는 지 헌책방에 자주 돌아다니는 관계로 주로 거기서 건져 모았죠.
<도롱뇽과의 전쟁>은 카렐 차페크의 대표작이자, 분량도 상당한 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입니다.
저는 열린책들에서 완역본 나오기 전까지 <도롱뇽과의 전쟁>이 이런 대작인 줄 꿈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완역본을 보니... 진짜 빵빵한 작품이더군요. 읽기도 만만치 않고, 작가가 오랜 세월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책입니다.
특히 재미있는 대목은 세계 각국의 보도물을 직접 보여주듯이 편집한 부분입니다. 출판사에서 참으로 애 많이 썼더군요.
<콰이어트 걸>은 페터 회의 청각 소설입니다 -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를 읽으면서 꼭지가 도는 듯 화를 낸 적도 있지만,
그래도 유럽 소설의 풍성함은 미국 작품이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끔 주사를 맞듯 읽어 줄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쥐스킨트의 <향수>가 절대 후각을 지닌 주인공을 내세웠듯이 <콰이어트 걸>은 절대 청각을 지닌 광대가 주인공인데,
절대 청각으로 온갖 난관을 헤쳐가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 무척 흥미롭고 은근히 잘 읽히는 맛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보다 더 낫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들 평은 안그런 것 같지만서도...
오른쪽 맨 위의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은 트루먼 카포티의 초기 장편입니다.
실은 저는 이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살았더랬는데, 2066년 정도에 영화 <카포티>가 개봉하던 무렵에
당시 시공사에서 그리폰북스와 추리물을 편집하시던 decca 윤영천님이 <인 콜드 블러드>를 보내오셨습니다.
(제목 그대로) 책을 읽으면서 제 피 역시 얼어붙는 줄 알았습니다. 가장 완벽하고 또 가장 무서운 책 중 하나였죠.
그리고 영화 <카포티>를 통해서... 트루먼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과정이 다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후 저는 이 작가의 책은 차마 읽을 수가 없었죠. 본래 이런 무서운 책만 쓰는 작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같은 로멘스물도 잘 썼던 작가라고 하지만, 제게는 <인 콜드 블러드>가 낙인으로 남았거든요.
그렇게 꽤 오랫 동안 외면했었던 트루먼 카포티의 작품들이 최근 시공사에서 선집으로 묶여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워낙 마력적인 작가여서 다시 읽을 생각을 하게 된 후 고른 게 작가 초기의 출세작인 <다른 목소리 다른 방>입니다.
책을 눕혀서 쌓았는데, 글자가 제대로 보이는 것들도 있군요. 저런 책들은 무슨 의도로 저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기도.
<도롱뇽과의 전쟁>은 처음 보고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분량이나 주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편집 방식이 독특했거든요. 일반 서술과 인터뷰, 기사 내용 등을 자유롭게 뒤섞었죠. 꽤나 산만한 방식이지만, 잘만 사용하면 몰입감과 현장감이 뛰어납니다. 게다가 인터뷰나 기사는 글자 크기와 폰트, 정렬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심지어 종이 색감까지 다르게 처리했죠. 저는 출판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책을 만들려면 상당히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 것 같은데…. 이런 책을 쓴 작가도, 출판사도 참 굉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