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패키지 시장이 침체된 원인에 대해서 많은 원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분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이야기를 하시지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불법 복제 탓이라는 말도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패키지 게임의 몰락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보는 것은 온라인 게임만이 넘쳐나고 있고 모바일 게임이 대세처럼 보이는 현재의 한국 시장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바라본 것이 뿐, 그 당시대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 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도 담아서 간단히 당시의 '추억'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는 일찍부터 게임을 많이 사서 했고 게임을 분석하고 열심히 추천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불법 복제를 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MSX 시절 게임을 테이프로 복사해서 친구에게 주고, 디스크 시절엔 세운상가에서 YS 같은 게임을 구해다 지인에게 선물했으며, 자료실이나 메일을 통해서 뿌리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에 전용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해서 인터넷으로 게임이나 애니 자료를 공급한 것도 빼놓을 수 없군요.(일본 음악 CD를 테이프로 더빙해서 친구들에게 뿌리거나, 애니메이션 비디오나 VCD를 복사해서 돌린 것도 있겠군요.)


동시에 저는 게임업계와 함께 일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잡지에 게임 분석 기사를 쓰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게임 시연회나 대회를 진행하고 심지어 주최하기도 했지요. 물론 공동 구매는 말할 것도 없고 한글화, 매뉴얼 제작, 판매 협력 등 다양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은 제게 있어 놀이이자 일이었고(지금도 일이지만) 분석할 대상이며,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말하건데 게임 패키지가 몰락한 원인은 불법 복제가 맞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불법 복제라는 것은 제가 위에서 고백했던 그런 형태의 불법 복제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아래 쪽에서 소개하지요.)



한편 불법 복제 이외의 원인은 생각만큼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번들이 구매 시스템에 이상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었지만,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그렇게까지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커멘드&컨커가 몇 달만에 번들로 나오거나 한게 구매 의욕을 떨어뜨리기는 했을지언정 시장을 몰락시킬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온라인 게임이 분명히 영향을 주었겠지만, 사실 한국 시장이 온라인 게임만으로 몰리게 된 것은 온라인 게임이 잘나가서가 아니라 패키지 시장이 몰락했기 때문으로 보는게 더 맞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반대라는 것이지요.(물론 여기엔 일부 개발사들이 패키지 게임을 엉망으로 만들고도 '패키지가 안 팔리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형태도 있습니다만.)


마그나카르타나 천랑열전 같은 게임이 버그 투성이의 최악으로 나오면서 한국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구매 의욕을 떨어뜨린 사실도 틀리지 않습니다. 마그나카르타가 판매된 것이 2001년. 이 제품은 솔직히 무진장 욕을 먹으면서 소프트맥스를 침몰시켰지만, 2000년에서 2001년 사이에 패키지 시장이 완전히 죽은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개발된 게임들이 죽을 쑤면서 사라지긴 했어도 같은 시기에 들어온 외국의 게임들은 꽤 팔렸거든요.(2000년과 2001년에 발매된 "메크워리어 4"를 기억하시는 사람들이 꽤 있을텐데, 더빙까지 했음에도 충분히 본전은 뽑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팔린 게임은 꽤 많았지요.)



한편, 아래에 보면 IMF 당시 소득의 감소가 게임 판매량을 줄이고 불법복제를 부추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1997년부터 시작된 IMF는 생각보다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불황일 때 판매가 줄어들 가능성은 높지만, 때로는 불황일때 놀거리가 더 잘 되는 경향도 있는 법입니다. IMF가 시작되는 1997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패키지 분야에서는 괜찮은 게임이 꽤 선보였고, 상당한 판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를테면 "은하영웅전설 4"가 나와서 호평받은 것도 이 시기입니다. 번역을 했고 공동 구매를 했기에 더욱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만,(그때는 택배업조차 제대로 없어서 우체국에서 대량으로 소포를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러가지 게임이 몇 만개씩 판매되며 상당히 잘팔렸습니다. 당시에도 분명 불법복제는 존재했는데 말이지요.


2000년대 초반, 용산 한가운데서 버젓히 게임을 복사해 팔고 있던 당시, 굴레방다리를 지나면 CD 목록을 든 복사업자들이 줄을 섰던 당시에도 패키지 게임은 꽤 많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팔릴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패키지 판매 매장만이 아니라, 유통사들도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1990년대 말(아니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불법 복제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엔 초고속 통신의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이를테면 1998년 말, 저는 PC통신보다 조금 빠른, ISDN을 이용해서 조이 SF 클럽의 원형이었던 스페이스판타지의 데이터를 업로드했습니다.)


1990년대 말... 분명히 복사를 해서 즐기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PC 통신에서 게임을 받는 것은(고작 플로피 몇 장의 대항해시대 2 같은 게임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PC 통신에선 이런 걸 발견하면 삭제하곤 했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죠. 새벽에 몰래 돌리곤 하던 일이 많았으니까요.(MSX 시절에 세운상가를 헤집고 다니며 게임 하나 복사하고(그것도 몇 만원씩 들여가며) PC 통신 시절에 밤새면서 게임 하나 겨우겨우 받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불법복제가 어려웠다."라는 말에 공감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물며 윙커멘더 3(1996년) 이래 늘어난 CD-ROM 게임을 불법 복제한다는 건 어림도 없었습니다. 정말로 얼리어답터나 용산 등을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 일부만이 게임을 복사해서 할 수 있었습니다. 동네 컴퓨터 상점에서 게임을 복사해주기도 했는데, 복사할 수 있는 게임 숫자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상점 숫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정품으로 나온 게임은 당연히 복사해주지 않았습니다. 파는게 더 이익이니까요. 이 당시 불법 복제라면 친구들끼리 소규모로 하는 정도였는데, CD레코더 역시 흔한게 아니었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불법 복제는 지인들에 의해 소규모로, 또는 음성적으로, 또는 유료로 진행되던 행위였습니다. 당시에도 물론 '불법 복제 때문에 게임이 망한다'라는 사람이 없지 않았지만, 솔직히 당시의 그 말은 그냥 못 만든 게임에 대한 변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1998년...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은 이 같은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메가패스를 비롯한 당시 신흥 초고속통신 업체들은 초고속통신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공유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공유 서비스에는 엄청난 양의 불법 자료들이 가득차게 됩니다.


초고속 인터넷을 활용한 불법 공유는 2000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99년까지는 클럽박스 같은 공유 서비스가 없었고, 메가박스의 게시판 등을 이용해서 불법 자료들을 유통하곤 했는데, 역시 오래지 않아 삭제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에 제가 서버 호스팅을 신청했는데, 당시 이 서버를 자료실로 이용해서 불법 자료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주로 일본의 게임,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저 역시 초고속 통신의 잘못된 매력에 빠진 사람이었던 거죠.


그리고.... 몰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분명히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용산 각지에 존재했던 패키지 업체들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동서 게임채널이니 SKC 소프트랜드니 하는 업체들이 게임 사업을 접기 시작했지요.(사실 그 후로도 꽤 시간이 걸렸지만요.)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게임 패키지 시장의 몰락은 분명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초고속통신을 이용한 공유 업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른바 '웹하드 업체'라고 주장하는 그들 불법 복제 조장 센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에서는 DVD, 패키지 게임 판매 사업이 이 정도로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덧붙여 '잡지 사면 게임 껴주는' 번들이라는 기묘한 시스템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요.)



이는 '불법 복제'의 문제와는 다릅니다. 인식의 문제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불법 복제 공유 업체들을 IT 산업이라면서 묵인하고 놔두었던 정부의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문제입니다.


불법 복제를 하기 어렵다면 사람들이 정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 반대로 불법 복제가 쉽다면 정품의 구매 욕구가 떨어집니다. 



초고속 통신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아니, 초고속 통신을 이용한 대량 공유 업체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한국에서 불법 복제 상품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윈도나 컴퓨터 구매 시 깔아주는 게임 정도를 제외하면 용산 같은 전자 상가를 뒤져야 겨우 불법 게임이나 비디오, DVD 등을 구할 수 있을 뿐이었지요.


이 같은 음성 시장은 정규 시장에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아예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규 시장을 몰락시킬 정도는 되지 않습니다.(그런 점에서 2000년대 이전에 '불법 복제 때문에 게임이 망했다'라는 건 변명입니다.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불법 복제로 인해 게임이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마그나카르타(만들다말았냐?)"를 비롯한 일부 게임이 욕을 먹고 사라진건 단지 그들 게임이 최악이었기 때문이지요. )



하지만 인터넷 공유 업체가 늘어나면서 불법 복제는 더 이상 음성 시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불법복제가 자연스럽고 정품 구매가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건 '구매 의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눈 앞에 돈을 뿌려 놓고 "맘대로 집어가"라고 말하는 상황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패키지 게임을 돈을 주고 사라고요? 농담도....



한국의 패키지 게임 시장이나 DVD 시장 등은 불법 복제(더 정확히는 불법 공유)로 인해서 망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들 모두는 다 합쳐도 불법복제 하나만큼의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불법복제조차 표면적인 원인에 불과합니다.
 
그 내면에는 초고속 통신이 갑자기 급증하면서 IT 산업이라는 허울을 쓰고 저작권을 완전히 무시하며 돈벌이에 급급했던 인터넷 공유 업체들의 행동과 이를 관리하지 않았던 정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니 업체를 욕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업체는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니까요. 결국 이를 관리하지 못한 정부의 문제죠.

저작권과 문화 사업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정부의 행태가 바로 패키지 시장의 몰락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정부의 사고 방식은 전혀 바뀌지 않고 한국의 문화 산업을 모두 말아먹을 만한 행동을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담) 여기에 한가지 추가하자면, 게임의 사전 심의 제도가 좀더 강력하게 변형된 것도 약간의 원인은 있습니다. 하지만 번들 게임과 마찬가지로 몰락의 첫번째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심의 제도는 도리어 아케이드 게임 몰락의 한가지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담) 한가지 추가하자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당시 게임 업계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업체들이 한목소리로 불법 공유에 대해 대처했다면, 그래서 일찍부터 이 같은 행위를 막았다면 문제는 많이 줄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공유 업체가 훨씬 힘 있는 회사이고, 한편으로 통신 사가 뒤에서 밀어주었던 만큼 게임 업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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