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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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를 꼽으라면 다들 망설일 겁니다. 하지만 질문을 살짝만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한국 영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여기엔 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겁니다. '쉬리'라구요.
쉬리는 평범한 A급 블록버스터지만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한국 영화의 역사가 달라졌습니다.
쉬리 이전의 한국 영화는 스크린쿼터의 그늘에 앉아 외국 영화의 짐칸에 탄 신세였지만, 쉬리 이후의 한국 영화는 외화에 결코 밀리지 않는 상영관과 관객을 확보했습니다.
그렇다면 쉬리 이전에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이 없었을까요? 당연히 있죠. 예를 들어 서편제.
서편제가 쉬리보다 뛰어난 영화라는데엔 누구나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역사에 있어서 서편제는 쉬리 이상의 무게감이 있는가?
그건 아닙니다. 영화 자체의 가치는 서편제가 높지만 서편제는 쉬리 만큼의 거대한 파급력이 없었으니까요.
잠시 훌륭한 영화가 나왔지만 반짝하고 그쳤고, 쉬리 이후의 한국 영화는 지금까지도 성공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으니까요.
그럼 쉬리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대단한 걸까요?
솔직히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외화에 필적하는 긴장감과 박진감이 있단 정도?
그것외엔 달리 생각나는게 없음에도 쉬리는 한국 영화를 완전히 재편해 버렸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역사가 오래된 게임입니다. 특히나 한국은 e스포츠로 발전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왔죠.
역사가 긴만큼 여러 사건사고도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사건을 들자면 3.3혁명. 곰티비 MSL 시즌1 결승전을 들 수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3종족중 프로토스는 그 마초적인 플레이로 가장 많은 남성팬을 확보한 종족이지만 E스포츠에선 오랫동안 찬밥신세였습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성적이 부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플레이 스타일이 정반대인 저그에겐 거의 한끼식사 정도로 취급받았죠.
때문에 많은 팬들은 결승전이 저그대 프로토스인걸 알자, 그것도 저그의 최강자와 지명도 없는 신인 프로토스와의 대결인걸 알자 금방 열기가 식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프로토스의 승리였습니다. 그것도 압도적인 대승.
그 사건 이후로 프로토스는 갑자기 강해졌습니다.
아마추어에서 프로에 이르기까지 전부요.
뭐가 달라졌나구요? 특별히 달라진게 없어요.
김택용이 새로운 빌드를 들고 나왔지만, 모든 선수와 팬들은 각기 스타일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굳이 달라진걸 들자면 지금까지 마초같이 힘으로 밀어붙이던 프로토스가 유연함을 얻은 정도?
그날만큼의 대승은 아니지만 프로토스의 눈부신 승리도 많았음에도 프로토스 전체가 한순간에 강해진전 바로 그 결승전입니다.
대체 뭐가 그리 특별한지 몰라도, 그날의 결승 이전과 이후는 차원이 다르게 달라졌습니다.
이번은 제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닙니다. 역사책 속의 일이죠.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대항해를 했습니다. 장장 2달이 걸리는 기나긴 항해를요.
기술적으로 보자면, 콜럼버스의 항해는 십자군 전쟁시절에 비해 크게 나을게 없습니다.
물론 그의 손엔 중국에서 건너온 비장의 무기, 자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이 비장의 무기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의 항해일지에는 태양, 별자리, 바람, 구름, 조류, 해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습니다만, 나침반에 대해선 열손가락으로 셀 정도밖에 적혀있지 않거든요.
그의 항해 이전과 이후에 대해서... 제가 무슨 말을 할지 다들 아시겠죠?
예. 정확합니다. 바로 그말이에요. 다들 아시는 말을 반복할 필요는 없죠.
그러니 이번엔 다소 방향이 다른 말을 해 보렵니다.
왜 콜럼버스 이전엔, 콜럼버스 이후와 같은 폭발적인 탐험여행이 없었는가?
가령 예를 들어 십자군 전쟁 시절은 어떨까요?
아랍인과 전쟁에 도가 튼 기사들은 항해술에도 도가 터 있었고 그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신대륙에 도착 할 수 있을 터입니다.
사실 전례가 없던 일도 아녜요. 바이킹과 중국인들은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신대륙에 발을 내딛었으니 말이죠.
이같은 질문은 다른 상황에도 붙일 수 있죠.
프로토스 게이머는 저그 게이머를 이기려고 아득바득 노렸했고 수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한국 영화는 활로를 찾아 무수한 영역을 뒤졌습니다. 심지어 한국인의 정서에 안맞는 관능영화까지요.
콜럼버스 이전의 탐험가들은 지식욕에 혹은 신앙심에 불타 머나먼 여정을 자발적으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들은 나름대로 큰 성과를 냈음에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데엔 실패했습니다.
반면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건 의외로 별거 아닙니다.
프로토스도 유연함을 시도해보자, 영화에 박진감을 넣어보자, 바다 멀리가면 뭔가 큰게 있음을 보여주자....
이런 시도가 그전 시대의 성공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하잘것 없다 못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실제로 이전의 성공보다 딱히 큰 성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어요.
분명 어제와 같은 오늘인데도,
뭐가 달라졌는지 딱히 찝어 말하기 어려운데도,
그 폭발은 너무나 거대해 우리의 눈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대체 뭘까요?
[물고기군] 밤이면 언제나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사랑하고픈 사람과 별을 바라다 보고 싶을때 비오는날 우산들이 공허하게 스쳐갈 때 노래부르는 물고기가 되고 싶고 날개달려 하늘을 날고싶다. 아침의 차가운 바닥에서 눈을돌려 회색의 도시라도 사람의 모습을 느껴본다 부디 꿈이여 날 떠나지 마소서... [까마귀양] 고통은 해과 함께 서려가고 한은 갑갑하메 풀 길이 없네 꿈은 해와 함께 즈려가고 삶과 함께 흩어지네 나의 꿈이여 나의 미래여 나의 길을 밝혀 밤의 끝을 보내길....
그럴듯하게 가설을 세우자면.. 임계점과 기폭제라고 봅니다.
즉 세상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술적인 면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거죠. 그런 임계점이 도달했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념이나 인식, 문화는 무거운 화물차 같아서 관성과 유사한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따라서 기술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태어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걸 폭발시켜 거대한 변화를 시작되는 사람들 혹은 사건이 있는 거죠. 기폭제입니다.
콜롬부스의 항해도 역시 같은 경우라고 봅니다. 유럽의 조선 기술이 대서양을 건널 정도로 견고한 배들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항해에 필요한 도구들이 개발되어 있으며 항해도 제작이나 지도 제작 같은 노하우, 천문학등의 다양한 학문이 새로운 항로 개척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가로 막는 것은 서쪽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지구가 둥글지 않다는 인식이죠. 콜롬부스가 위대한 인격자도, 또한 위대한 학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서쪽에 무언가 지금까지 알지 못한 땅이 있다는 사실(그는 중국의 동쪽 끝이라고 확신했지만)을 알려줌으로써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죠. 이미 그전에도 아메리카 대륙에 갔다 온 사람들은 의외로 여러 있었음에도 유럽에 알려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몇년 전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준 아이폰도 같은 경우입니다. 알다시피 애플은 혁신적인 기술을 사용하거나 최첨단의 기술을 마구마구 사용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응용력의 회사죠. 아이폰에 필요한 기술력은 이미 아이폰 이전에 다 개발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세상이 바꿀 수 있는 조건은 갖춘 셈이죠. 그걸 폭발시킬 기폭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냥 저냥 우리는 갈거라고 봅니다.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한 기폭제를 터트리신 분들은 선구자 소리 듣겠지만, 당대 시대를 바꾸지는 못하죠. 그래서 과거에 수많은 시도하신분들은 기술적인 수준이 따라가지 못해 실패하신 분들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회문화의 관성과 혁명의 상관 관계라 이름 붙힐 수 있겠군요. 그냥 물리학의 개념을 어거지로 가져다 붙힌 가설이자 개똥 이론입니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잠재력은 쌓였겠죠, 아마도. 콜럼버스가 항해하기 전에 이미 대양 항해 기틀은 마련했습니다. 실제로 포르투갈 등지에서 계속 항해를 지원하기도 했고. 그런 분위기가 융성하자, 콜럼버스도 에스파냐 여왕을 설득할 수 있었겠죠. 역사가 단숨에 바뀌느냐, 점진적으로 바뀌느냐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느 정도 점진적인 변화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허나 그런 변화는 대개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더불어 사람들 뇌리에는 커다란 사건만 남기 쉽죠. (생명 진화의 역사랑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할까요.)
막연함과 실증의 차이죠.
"그럴 것이다." 와 "그렇다." 의 차이.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은 사실 별게 아닙니다. 그게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죠. 그리고 그 믿음을 주는 것은 실제적인 증거입니다. 증거가 눈앞에 있고 없고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파급력이 다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