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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손과 하얀 이빨. 공포와 탄식이 엇갈리는 영화입니다.]


공포영화 중에는 동물을 소재로 한 것이 많습니다. 공포영화의 주역은 괴물인데, 괴물들 중에 동물 속성도 흔해요. 아무래도 괴물이란 놈들이 으레 육탄 공세를 벌이며, 물고 뜯고 씹고 즐기고 하니까요. 블록버스터 공포물인 <죠스>부터 상어가 나와서 난리법석이죠. 이런 연유로 꽤나 다양한 동물들이 스크린에 얼굴을 비춥니다. 그 중에도 개도 있는데,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니 여러 모로 써먹기 간편하죠. 공포영화에서 개가 인간을 공격하는 이유는 광견병부터 유전자 조작까지 원인도 다양합니다. 이런 건 SF 영역에 속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습니다. 사무엘 풀러가 만든 1982년 영화 <화이트 독>입니다. 토요명화 납량특선 시리즈로 방영한 적도 있는데, 개를 소재로 한 공포물 중에서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제목처럼 하얀 셰퍼드가 나오는데, 이 놈이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는 바로 '피부색'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제목인 흰 개가 가리키는 것은 털가죽 색깔이 아닙니다. 그보다 이 놈을 훈련시킨 방식 때문이죠. 인종차별주의자 백인들이 흑인만 공격하도록 훈련시킨 결과입니다. 그래서 백인들이 있을 때는 멀쩡하게 굴지만, 흑인만 보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듭니다. 훈련 방법은 간단합니다. 성질 더러운 흑인 깡패들에게 사례를 주고, 개를 공격하도록 시킵니다. 그러면 개는 자기를 학대하는 상대가 흑인이므로 나중에 독기를 품고 덤벼들죠. 작중에서도 이 놈이 지나가던 흑인을 죽기살기로 공격하는 살벌한 대목이 나옵니다. 오래 전에 봤던 영화라 정확한 기억은 안 나는데, 사람을 거의 피투성이 걸레로 만들 정도였죠. 백인 사이에서는 그렇게 순진하고 해맑던 녀석이 흑인만 보면 눈깔이 뒤집히고 돌변하는 게 소름 끼쳐요.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보다 이 놈이 언제 변할지 모른다는 게 더 무섭습니다. 이건 무슨 이중인격 사이코도 아니고, 원.


당연히 이런 놈을 사살해야겠지만, 주인공의 조련사 친구가 만류합니다. 개는 잘못이 없고, 그저 인간에게 이용 당한 것이니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죠. 조련사는 흰 개를 정상으로 돌려 놓겠다며, 목숨 걸고 치유 과정에 돌입합니다. 이쯤 되면 알겠지만, 그냥 미친 개가 나와서 사람 공격하는 3류 공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종차별에 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죠. 단순한 공포물로 생각하고 접했던 터라 줄거리나 주제, 결말이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설정과 발상만 특이한 게 아니라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사회를 풍자하는 비유도 대단합니다. 인종차별에 관한 작품을 찾는다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입니다. 감독 자신도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터라 1980년대의 검열이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긴 한창 인종차별이 뜨거울 때 이처럼 대놓고 문제를 거론하는 감독을 헐리웃 같은 곳에서 좋아할 리 없겠죠.


괴물 장르를 오마쥬한 <캐빈 인 더 우즈>에 개 두 마리가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볼 때, <흰 개>가 떠올랐습니다. 온갖 SF, 판타지, 오컬트 오마쥬 영화를 보며, 인종차별 영화가 떠오르다니. 그만큼 <흰 개>가 공포물로도 뇌리에 깊게 박혔나 봅니다. 나름대로 트라우마가 강렬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동네 개를 보면, 그냥 개로 안 보일 정도니까요. 털가죽이 흰 색이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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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의 공격성보다 인간들의 공격성에 중점을 둔 원작소설.]


그런데 이 책은 동명 원작소설이 있습니다. 로맹 가리가 쓴 소설 <흰 개>입니다. 희한한 건 영화와 달리 소설은 별로 공포물 분위기가 안 납니다. 영화에서는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흑인을 육포 조각으로 만드는 장면이 자극적이죠. 소설은 정반대입니다. 공포보다 풍자나 해학이 넘쳐요. 1인칭 시점(사실상 작가 자신)으로 진행하는데, 체념적인 지식인에 가깝습니다. 이런 사람이 사회를 바라보며 늘어놓는 넋두리가 대다수를 차지해요. 따라서 공포가 들어설 자리 대신에 분노, 후회, 회한, 슬픔, 배신감이 자리하죠. 책은 크게 3부로 구성하는데, 1부가 지나면 흰 개 이야기도 비중이 줄어듭니다. 조련사에게 맡기고 가끔 찾아가는 터라 자주 등장하지 않거든요. 흰 개가 소재인데, 개 자체보다 인종차별을 둘러싼 사회상을 고발하는 것에 주력하죠. 영화를 보고 피서용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좋습니다. 작품성이 높아서 읽어도 후회할 일은 없겠지만요.


개의 공격성에 중점을 두었던 영화와 달리 소설은 주인공의 주변을 조망합니다. 작가임에도 글을 쓰는 것 말고 정면에 나서지 못하는 주인공, 화려한 영화계 스타지만 진영 논리에 이용 당하는 아내, 아내를 둘러싼 다양한 정치 세력들의 알력 다툼, 주인공이 만나는 흑인들의 여러 모습을 줄줄이 나열합니다. 특이하게도 소설은 그냥 인종차별이 나쁘다고 외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차별이 또 다른 역차별을 낳고, 역차별이 각종 싸움을 불지른다고 토로하죠. 책에 나오는 흑인들은 마냥 순진무구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백인에 항거하거나 또는 백인을 이용하려 듭니다. 심지어 흰 개를 치유하는 조련사마저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합니다. 여러 세력이 뒤엉킬수록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누구를 어떻게 보호하고, 어디서 끝맺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아요. 교과서적인 교훈을 던지는 게 아니라 사회의 혼돈을 보여주기에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책을 읽으면 좀 당황스러울 겁니다. 공포물인 줄 알았는데, 정작 무섭거나 끔찍한 부분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전반적인 설정과 발상, 줄거리만 따왔지, 사실상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바뀐 이유는 배급사의 압력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시다시피 1975년 <죠스>가 대박을 터뜨린 이후로 야수가 나오는 공포물이 인기였죠. <흰 개>를 배급한 파라마운트도 그런 효과를 노렸을 겁니다. 그래서 흰 개가 사람을 물어죽이는 공포 속성에 초점을 맞춘 거죠. 반면, 인종차별 주제는 희미해지기 원했습니다. 이유야 뻔하죠. 1980년대잖아요. 흑인 학대를 공공 극장에서 함부로 논하기 껄끄러웠겠죠. 21세기인 지금도 그러한데, 그 당시는 훨씬 더했을 겁니다. 그러나 감독인 사무엘 풀러는 무시무시한 공포물로 만들면서 원작의 뉘앙스와 철학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차별과 역차별, 다양한 진영 갈등이 사라진 건 아쉽지만, 그 대신 흡입력도 강하고 대중에게 어필할만한 공포물이 나왔죠. 현명한 선택과 연출이었다고 봅니다.


로맹 가리가 공포물로 변한 영화를 두고 무슨 평가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작가들은 자기 작품이 바뀌면 화를 많이 내잖아요. 하지만 로맹 가리가 화를 냈다는 말은 못 들은 것 같네요. 하긴 영상 매체로 옮기면서 가지를 칠 수도 있는 법이고, 무엇보다 소설 주제를 간직했으니까요. 덕분에 파라마운트에서 뒷말이 많았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책과 영화 모두 훌륭한 작품입니다.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영화가 더 강렬하지만, 책은 좀 더 다양한 함의를 담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