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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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앤더슨이 쓴 <상아, 원숭이 그리고 공작새>는 중동이 배경입니다. 그것도 10세기 티레 지방입니다. 이 소설은 시간여행물인데, 미래의 악당이 과거를 바꾸려고 이곳으로 찾아왔죠. 그걸 막으려고 시간 경찰이 쫓아오고요. 하지만 제아무리 시간 경찰이라도 낯선 곳에 함부로 잠입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티레를 연구하는 감시원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들 역시 현대인이고 시간 경찰 소속이지만, 다른 시간대를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오직 10세기 티레에서 살아가며, 실제 역사가 어땠는지 관찰하고, 시간 범죄자가 나타나면 고발하죠. 감시원은 남녀 두 명이고, 부부 관계입니다. 희한하게도 둘 다 이스라엘인이에요. 그러니까 10세기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현대 이스라엘 부부가 감시원으로 활동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들 부부가 현지인을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정성으로 도와주는 편이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거두어줍니다. 당시 종교나 풍습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요.
심지어 감시원들은 이런 뉘앙스의 말까지 합니다. “미래에 우리들이 팔레스타인을 괴롭혔으니, 여기서라도 도와준다.”고요. 그러니까 중동 전쟁이나 학살 등에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뜻이죠. 소설 출간 시기(1983)를 보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1982)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부녀자와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죠. 팔레스타인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의 화약고입니다. 바람 잘 날 없는 곳이기에 이 대목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폴 앤더슨은 미국 작가잖아요. 그리고 미국/유럽의 유명인들은 대개 이스라엘에 호의적이고요.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잘못했고, 팔레스타인을 두둔하는 식으로 말하기에 살짝 놀랐습니다. 물론 미국의 유명인이라고 해서 죄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만. 가자 지구 공습으로 시끄러울 적에 저 소설을 읽은 터라 남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폴 앤더슨은 다른 작품에서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충돌을 집어넣는다고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폴 앤더슨은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베트남 침공 지지자로도 알려졌습니다. 중동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을 두둔한 작가가 왜 베트남 침공을 지지했는지 좀 의아하기도 합니다만. 미군이 참전해서 혼란스러운 남베트남 상황을 정리하자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네요. 미군이 들어서기 전까지 남베트남은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치안도 엉망이었으니까요. 애꿎은 서민들이 죽어가고, 보호해줄 이도 없었죠. 그러니 미군이라도 끼어들어 정황을 수습하자는 취지였을 겁니다. 실제 미군이 베트남을 침공한 명분도 혼란 수습과 북베트남 방어였으니까요. 실제로는 피 튀기게 싸웠으나, 어쨌거나 명분은 방어였으니…. 물론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알 수 있듯 미군이 (명분상) 방어 목적으로 참가한다고 해도 치안 유지가 되는 건 아니죠. 어쩌면 폴 앤더슨도 베트남에서 그렇게 삽질할 거라고 예상 못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이긴 합니다만.
요즘 중동 뉴스는 이슬람 국가(IS)가 충격적이라서 팔레스타인 쪽은 뒤로 밀렸죠. 공습을 한창 보도한 게 두어 달 전이니. 여하튼 가자 지구 폭격을 봤을 때, 소설의 저 대목이 떠오르더라고요. 1983년에 출간한 책 내용이 2014년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으니, 씁쓸하기가 더합니다.
※ 사족으로 <셜록 홈즈>의 아프가니스탄 상황도 전혀 변하지 않았죠. 1887년 소설과 2010년의 드라마에서 존
왓슨은 아프가니스탄에 영국군으로 참전하니까요. 2세기가 흘렀는데도 변함없는 전쟁이라니,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