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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현실로, 다시 소설로 돌아가는 스토커. 방사능 아포칼립스의 낭만이죠.]



어떤 교실에는 방독면이 천장에 걸렸고, 바닥에도 무더기로 쌓였다. 안내인은 이 출입금지 구역에 몰래 들어온 '스토커들'이 두고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스토커들은 버려진 물건들을 훔쳐가기 위해, 나중에는 전율을 맛보기 위해 들어왔다. 그들은 방사선의 위험을 무릅쓰고 프리피야트 강물을 마시고, 프리피야트 해안에서 수영을 했으며, 자신들을 뒤쫓아온 경비대에게도 겁 없이 맞섰다. 나중에 카예프에서 만났던 스토커 한 명은 체르노빌에 100번이나 왔다 갔다고 했다. "그곳이 어마어마하게 넓고 모두 타 버려서 아무도 살지 않는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상상했어요."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스토커가 발견한 것은 숲과 강이었고, 모든 것이 오염되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위 내용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4년 10월호에서 인용한 겁니다. 프리피야트를 조망하는 기사인데, 아시다시피 원자력 발전소 여파가 크게 미친 곳이죠. 체르노빌 사고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도시예요. 특히 이 곳에 있는 회전 관람차는 방사능 오염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일 줄 알았는데, 관광지로서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엄청난 비극이 서린 곳이니 씁쓸한 맛도 묻어나지만, 한편으로 프리피야트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네요. 사고가 일어난 지 많은 세월이 지났고, 방사능 위험 수치도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취재 기사가 수치를 재봤는데, 우크라이나까지 비행기 타고 날아가다 맞는 우주 방사선이 더 걱정일 거라고 농담조로 말했네요. 사실 사람들이 떠난 뒤로 동물들은 진작 들어와서 살았죠. 숲이 우거지고, 사슴이나 늑대 등 평소 보기 힘든 야생동물들이 뛰어다니느라 자연 공원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정화된 건 아니지만.



그리하여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자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캐주얼하게 입고 동네 공원 마실 나오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만. 그럼에도 관광인지라 어떤 식으로든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폐허가 된 유령도시를 보며 오싹함을 만끽하거나, 당시 피해자들의 절박한 기분에 젖거나, 인권에 무심한 소련 시대를 조롱하는 흔적까지 남기죠. 아예 방독면까지 쓰고, 방사능 아포칼립스의 생존자 코스츔 플레이를 하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남들은 그냥 맨얼굴로 다니는데, 혼자 방독면 쓴 모습이 희한하게 비치네요. 원전 사고 지역인데도 방독면 쓴 사람이 오히려 튀어 보이다니….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경건할 줄 알았는데, 비극을 대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인가 봅니다. 이런 재난 관광은 비단 프리피야트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많다고 합니다. 네바다 사막의 핵실험 장소는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모자랄 정도라고 하니까요. 음, 언젠가 후쿠시마 쪽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요. 체르노빌처럼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면, 관광지로 바뀔지도? 일본 정부가 과연 허가할지 의문이긴 합니다.



저런 곳을 찾는 심정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을 읽는 거랑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무지막지한 방사능 사고가 일어난 현장. 그 곳을 몸소 찾고 위기감을 체험하는 과정이죠. 소설이나 게임은 상상력을 더한 간접 경험이고, 관광은 이미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는 직접 경험이라고 할까요. 세계 멸망은 언제나 인류의 화두였죠. 오늘날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은 방사능과 바이러스고요. 둘 중 뭐가 우위일지 모르겠습니다. 핵전쟁이나 원전 사고, 대규모 질병과 좀비 떼거리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소재니까요. 보다 현실적인 소재라면, 아무래도 방사능 쪽입니다. 지금도 에볼라 때문에 난리지만, 핵전쟁은 정말로 세계를 끝장낼 뻔했으니까요. 냉전 기간 동안에 단추 한번 잘못 눌러서 대참사가 일어날지 몰랐다고 하죠. SF 작품이 자주 나오는 서구권은 질병보다 방사능이 비교적 가까울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저런 지역에 사람들도 몰릴 테고요.



재미있는 점은 관광 안내원이 프리피야트에 몰래 들어오는 사람을 '스토커(ловчий)'로 부른다는 겁니다. 장르 작품 좋아하는 사람은 귀가 솔깃해지는 단어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떠올린다면, 대략 비슷합니다. 엄청난 사고가 벌어져 금지 구역이 생기고,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래 들어간다는 점이 흡사하죠. 사실 이것도 원작이 있고, 러시아 소설 <노변의 피크닉>에서 먼저 사용한 아이디어죠. 방사능 재난이 아니라 외계인 아포칼립스지만, 모두 러시아 작품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훗날 소설 <메트로 2033>과 게임 <스토커>로 이어집니다. 두 작품 모두 스토커가 등장하는데, 방독면, 프렌치 코트, 가이거 계수기, 기타 생존 장비로 무장했습니다. 그리고 방사능에 찌든 지역으로 목숨 걸고 잠입하죠. 소설과 영화, 게임에서는 희귀한 물건이나 자원을 찾으려고 그랬습니다. 이와 달리 현실의 스토커는 스릴을 느끼기 위해 혹은 현장의 기념품을 건지려고 저런 행동을 합니다. 방사능 찌든 물에서 헤엄치고, 경비대와 싸웠다니, 정말이지 소설/게임 속 스토커가 아닌지….



실제로 <노변의 피크닉>이 유명세를 타고 난 뒤, 스토커에 위험 지역 사냥꾼’이라는 의미가 덧붙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부터 사냥꾼이란 뜻으로 쓰였는데, 소설의 유명세를 타고 위험 지대에 침투한다는 이미지를 추가한 거죠. 영어권의 레인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노변의 피크닉>은 예전에 네드리님이 소개하신 적도 있는데, 외계인 방문 지역은 방사능 사고 현장이랑 거진 비슷합니다. 안내원이 스토커라고 지칭한 이유도 그렇고요. 기사에 소설이나 게임 이야기도 나왔으면 그럴 듯했을 텐데요. 참고로 <노변의 피크닉>은 1970년대 소설이고, <메트로 2033>은 2000년대 소설입니다. 전자는 외계 쪽이고, 후자는 방사능 쪽이죠. 그럼에도 두 소설의 감성이나 분위기는 흡사하며, 스토커라는 직업이 제대로 어울립니다. 어쩌면 그만큼 동유럽 정서는 7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뜻일 수도 있겠어요. 억압된 사회 생활 때문인지, 아니면 춥고 쓸쓸한 기후 탓인지. 푸틴의 폭정이나 언론 장악, 인권 유린 등을 보면, 소련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강한 러시아를 되찾을 수 있다면, 폭정까지 마다하겠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죠.



비극을 다룬 소설이 현실에 영향을 주고, 그게 다시 돌아오고…. <노변의 피크닉>에서 나온 개념을 실제 재난 현장에 적용하고, 다시 그 개념이<메트로 2033> 같은 소설이나 <스토커> 같은 게임으로 돌아갑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매력이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프리피야트 같은 곳은 언제까지고 추모 장소로 남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만도 아니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