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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임입니다. 하지만 결국 피자 값은 못 받고 말았죠.]

 

 

Michaelangelo: Wise man say: "Never pay pull price for late pizza."
(미켈란젤로: 현자께서 가라사대, "늦은 피자에 절대 제값을 치르지 말라.")

 

 

사이버펑크 소설 <스노 크래쉬>는 피자 배달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히로는 가상 세계에서 유명한 해커지만, 현실에서는 한낱 노동자에 불과하거든요. 일자리를 찾으려고 전전긍긍 하는데, 그러다 얻은 자리가 피자 배달부입니다. 흔히 이탈리아라고 하면, 축구, 마피아, 피자를 떠올리죠. 그런 만큼 이 소설에서 피자 회사는 사실상 마피아와 같습니다. 히로는 자기 정보를 몽땅 털린 덕분에 마피아와 손잡고, 결국 배달부까지 됩니다. 문제는 30분 내에 배달 못 하면, 피자 값도 못 받는다는 점이죠. 덕분에 수많은 피자 배달부들이 죽어라 핸들을 꺾고, 마침내 온갖 교통사고에 휘말리고 맙니다. 배달부 경력 6개월이 긴 편이라고 하니, 이만하면 말 다했죠. 사이버펑크답게 히로는 별별 정보망을 몽땅 동원해서 배달에 나서지만, 어느 날 참담한 실패를 겪고 맙니다. 담벼락을 뚫고 물이 빠진 수영장에 자동차가 추락했어요. 이걸 확인하려고 회사 헬기까지 뜹니다. 배달부가 제 시간에 도착했는지, 진상 고객이 억지 부리지 않는지 녹화하죠.

 

 

피자라면, 대중 매체 캐릭터 중에 닌자 거북이도 빠질 수 없죠. 90년대 개봉했던 영화 초반부에 배달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하수구에서 피자 배달을 시켰습니다. 배달부는 열심히 오토바이를 몰고 왔지만, 도저히 주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긴 아무리 뉴욕 토박이고, 안 가 본 곳이 없어도 하수구로 배달한 적은 없을 테니까요. 결국 2분 늦고 말았고, 미켈란젤로는 10달러만 지불합니다. 배달부가 13달러라고 항의하자, 늦은 피자에 제값을 줄 수 없다고 반박하죠. 어쩌겠습니까. 업계에서는 시간 엄수가 규칙인 걸요. 배달부는 어깨를 으쓱하고 돌아섭니다. 상당히 아이러니한 장면인데, 닌자 거북이는 슈퍼 히어로잖아요. 슈퍼 히어로가 하는 일은 서민을 지켜주는 거고요. 하루하루 벌어서 근근이 먹고 사는 배달부한테 제값을 쳐주지 않다니요. 미켈란젤로가 아무리 엉뚱해도 그렇지, 서민 일자리를 이렇게 위협해서야 되겠습니까. 피자 배달과 시간 엄수의 대중적인 인식을 반영했다고 하겠습니다.

 

 

샘 레이미가 감독한 <스파이더맨 2>도 초반부가 피자 배달이었죠. 피터 파커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는데, 그 중에 피자 배달부도 있었습니다. 시간 내에 도달 못 하면, 값을 못 받는 건 똑같습니다. 당연히 피터는 죽어라 오토바이를 몰고 갑니다. 허나 뉴욕 도로가 워낙 복잡해야죠. 좁은 틈새를 이리저리 누비지만, 시간 엄수하기는 빠듯합니다. 심지어 사고까지 날 뻔했죠. 그나마 초인적인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큰일날 뻔했을지 몰라요. 하는 수 없이 쫄쫄이 뒤집어쓰고, 거미줄 활공으로 날아갑니다. 허나 어찌나 시간이 모자랐는지, 결국 늦고 말았죠. 중간에 아이들을 구해주기도 했지만, 그거 몇 분 안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몇 분 정도 늦었고, 그 바람에 피자 값을 못 받았다고 해야겠죠. 빈손으로 돌아간 피터는 애처롭게 쫓겨나고 맙니다. 애걸복걸해도 먹고 살기 빡빡하니, 가게 주인도 할 수 없었어요. 피터 파커가 미켈란젤로를 봤으면 화딱지가 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피자라는 음식은 애초에 배달이랑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본래 나폴리 빈민들이 싼값으로 사먹던 길거리 끼니였어요. 시커멓게 눌어붙은 크러스트, 질척거리는 싸구려 치즈, 느끼한 라드, 비린내 쩌는 안초비, 곪아터진 토마토…. 피자의 이미지란 게 대략 이랬죠. 그러던 것이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으로 퍼졌습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했고, 그 바람에 피자까지 유행했죠. 미국답게 패스트푸드 산업으로 확장했고, 각종 도시에서 별별 피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배달 경쟁이 일어났고, 시간 엄수 못하면 공짜나 할인이라는 규정까지 더해졌죠. 이걸 시작한 게 도미노 피자라고 하는데, 그래서 <닌자 거북이>에도 도미노 피자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도미노 피자는 본토에서 배달 보증 때문에 말이 많았죠. 우리나라에서도 사고가 일어났고, 최근 몇 년까지 시행한 정책입니다. <스노 크래쉬>가 풍자하는 것도 이런 속성일 테고요. 종종 배달부를 욕하는 경우도 있는데, 배달부한테 뭐라고 해봤자 소용없죠. 회사가 문제지.

 

 

피자 하나 배달하려고 온갖 정보망을 쓰는 히로든, 거미줄 활공을 하는 피터 파커든, 불쌍하기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배달 사고가 '그냥 교통사고'로 보이지 않나 봐요. 사이버펑크와 슈퍼 히어로물에서 비슷한 소재를 쓰다니…. 하긴 사고 뒤에는 으레 돈벌이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