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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한 외계인 차례 표시. 어둠 속에서 이빨을 드러낸 저 외계인은 누굴까요.]



<엑스컴: UFO 디펜스>는 턴 전술 게임입니다. 그러니까 엑스컴과 외계인이 차례를 바꿔가며 싸운다는 뜻입니다. 엑스컴 차례일 때는 대원들을 움직이면 됩니다. 외계인 차례일 때는 플레이어가 두 손 놓고 화면만 쳐다봐야 하죠. 그렇다고 외계인 행동을 보여주면 전술 노출입니다. 그래서 그림 한 장 띄우는데, 외계인이 현재 비밀스럽게 움직인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울러 차례가 몇 번이나 돌아갔는지 가리키죠. 위 그림에서는 세 번째 차례고, 외계인 행동이 끝났으니 이제 엑스컴 대원들이 개시할 참입니다. 외계인들이 공격하는 시점이므로 그림 내용도 상당히 긴박합니다. 엄폐물에 뚫린 탄흔, 벽 뒤에 숨어 인상을 구기는 엑스컴 대원, 어둠 속에서 두 눈과 이빨을 빛내는 외계인, 벌건 피칠갑. <UFO 디펜스> 자체가 쫄쫄이 강화복 입고 광선총 뿅뿅거리는 레트로 SF임을 생각하면, 꽤나 진지한 그림이죠.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저 그림에서 어둠 속에 숨어 이빨을 드러내는 외계인은 누구일까요? 하나씩 따져볼까요. 일단 섹토이드는 절대 아닙니다. 크기도 작고, 눈 비율도 안 맞고, 흉악한 송곳니도 없죠. 마찬가지로 이서리얼도 해당이 안 됩니다. 사이버디스크와 섹토이드는 당연히 논외로 칩니다. 셀라티드나 실라코이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리퍼 역시 우제류 같은 얼굴 구조 때문에 탈락입니다. 크리살리드는 흉악하지만, 눈과 치아 모양이 모두 다르죠. 스네이크맨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치아 구조가 아니고요.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인데, 플로터 아니면 뮤톤입니다. 그런데 플로터는 뿔이 있으니까 얼굴 윤곽을 고려하면, 뮤톤일 확률이 높습니다. 마침 오프닝 동영상이 좋은 증거가 됩니다. 도시를 공격할 때, 뮤톤 얼굴을 자세히 보여주거든요. 그림과 대조하면, 어둠 속의 외계인은 뮤톤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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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동영상에 나온 뮤톤 모습. 의외로 이 게임은 뮤톤이 얼굴 마담인가 봐요.]



이게 좀 의외인데. 오프닝 동영상이나 외계인 행동 그림에 하필이면 뮤톤이 나올까요. 내구력이 좋아서 무시무시한 적이지만, 솔직히 <UFO 디펜스>를 대표할만한 종족은 아니잖아요. 생긴 것도 촌스럽고, 뇌가 근육이라서 멍청하고, 어디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요즘 매체에 이런 외계인 나오면 다들 외면할 겁니다. 투철한 전사 종족이야 인기 만점이지만, 뮤톤은 해당 사항이 안 되요. <헤일로>의 샹헬리나 <프레데터>의 프레데터 정도는 되야 전사 종족이네 어쩌네 해주는 거죠. 뮤톤은 그냥 갑빠만 투박한 고기 방패에 불과해요. 차라리 전형적인 그레이인 섹토이드나 비밀스러운 이서리얼, 절지류 괴물다운 크리살리드가 얼굴 마담으로 나을 텐데요. 참고로 동영상의 붉은 뮤톤은 작중에 안 나오죠. 이걸 반영해서인지 <에너미 언노운>에 붉은색 뮤톤 버서커가 나오긴 합니다. 남들은 총 쏘는데, 혼자 돌진해서 갈퀴로 할퀴는 무식한 놈입니다.



하고 많은 외계인들 놔두고, 뮤톤을 고른 이유는 분위기 때문일지 몰라요. 어쩌면 레트로 SF에 제일 어울리는 종족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UFO 디펜스>는 미국식 펄프 SF 분위기도 상당히 섞였는데, 여기에 알맞은 놈이 뮤톤이니까요. 특유의 촌스러움과 무식함을 보유했고, 그게 잘 맞아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이것도 시대상의 산물일지 모르겠네요. SF 역시 당시 사회 흐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90년대 초반은 아직 펄프 SF 분위기가 잔재할만한 시기니까요. 아무튼 저 외계인 행동 그림은 긴박하고 진지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그림만 유난히 튀는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레트로 SF인데, 혼자 호러 SF인 척하는 느낌이에요. 오프닝 동영상이나 다른 디자인도 저런 분위기로 꾸몄으면 어땠을까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