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대통령이 된 사람만 놓고 볼께요.
야당과 여당 그러면 헷갈리니까,

이해하기 쉽게 범보수진영 vs, 범민주진영으로 범례를 정하고 이야기하죠. 
   
범보수진영이든 범민주진영이든... 초심은 진보적인 개혁을 표방했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보수주의자가 되어 독재도 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한 대통령들이,
본래 청년 장년시절에는 진보적인 개혁을 외치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했던 인사들이라는 겁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말년에 오죽하면 나라에서 쫓겨나 해외에 망명가서 귀국도 못하고 죽었으니,

범보수진영의 대통령 중 가장 실패한 사람이고 가장 썩어빠진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 양녕대군의 핏줄을 이은 왕족이었고 한학을 공부한 선비였지만

청년 시절의 이승만은 개혁/개방을 외치며 독립협회에서 활동하고 고종에게 상소를 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이승만은 청년 시절 개혁/개방으로 근대적인 나라를 건설하고 싶어했던 전형적인 진보주의 투사였던 것이죠.

그러나 말년의 이승만은 부정선거, 시민에게 발포, 능력도 없으면서 권력만 탐한 천하에 몸쓸 보수주의자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심한 독재자이고, 공안 정치를 감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쿠데타 후 국민 직선으로 대선을 치룰 때, 처음에는 국민들에게 진보주의자로 떠올랐습니다.

쿠데타 후 JP가 서울대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을 때, "진보적이기에 지지한다"는 게 서울대 학생들의 결론이었고,

박정희가 표방한 개혁과 근대화 비전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면서 젊은이들로부터 상당히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당시 대선에서 박정희와 경쟁하였던 윤보선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낡은 보수주의자로 비추어졌고,

쿠데타를 감행하면서까지 개혁을 하겠다고 비전을 제시한 박정희는 진보주의자로 각인되었죠.

다시 말해 박정희의 초심은 결코 보수가 아니었고, 당시에는 진보의 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국민들도 그렇게 받아들였고, 박정희의 진보적인 마인드와 비전에 표를 주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죠.

하지만 말년에는 평생 독재를 하려고 들었다가  부하 손에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자초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최악의 보수주의자로의 말로를 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두 말 할 필요 없죠.

   

MB도 마찬가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청년 MB는 대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하면서 데모하다가 투옥되었고,

감옥살이를 마치고 기업에 입사하여 미친 듯이 일하여 샐러리맨으로 정상에 오릅니다.

이건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치열하게 싸운 사람의 전형입니다.

청년 시절의 MB는 진보적인 사람이었지 결코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MB의 모습은 보수주의의 전형이었고, 답답하고 한심할 뿐이었습니다.

   

흔히 보수진영의 대통령이라고 욕먹는 전직 대통령들을 가만히 보면,

젊었을 때는 굉장히 열정적인 진보주의자였고 실제로 개혁을 위해 싸운 투사였는데,

나이 먹고 정권 잡은 지 오래되고 뭐 그렇게 되고 나니 죄다가 보수주의자가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보면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범민주진영의 대통령이라는 DJ와 노짱을 생각해 보면...

DJ의 경우 사람들이 민주진영이 낳은 첫 대통령이라면서 진보 쪽으로 분류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대통령이 된 후 펼친 정책은 거의 대부분 보수적인 내용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DJ의 경제 정책은 신자유주를 실천하는 베타 테스트의 장과 다를 바 없었고,

주변 가신들을 활용해서 국내 정치를 하는 것도 매우 보수적이고 노회한 모습을 보였죠.

하지만 젊은 시절의 DJ는 매우 진보적이었던 청년 기업가였습니다.

맨주먹으로 창업하여 기업을 몇 개씩 운영하였던 유능한 사업가였고,

그의 도전하는 모습에 감명받은 정치권이 DJ를 영입하여 정치가로 변신한 것이었습니다.

청년 시절 적극적이었고 활기넘치던 DJ는 팔순이 다 된 나이에 대통령이 되어 꽤 보수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노짱은 대통령이 된 시기가 50 대 후반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시절의 열정이 남아 있었던 시기였고,

실제로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도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젊은 시절의 노짱은 법관 출신이어서 그런지 별로 진보적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맨주먹으로 창업하였던 DJ라던지, 학생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던 MB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노짱이 진보적인 인사로 변모한 것은 영화 <변호인>에서 상징적으로 그려지기도 헀지만

법관을 그만두고 변호사로 일하다가 차츰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젊은 시절만 놓고 비교해 보면....  진보주의자로 세상과 싸웠던 이승만, 박정희, DJ, MB의 모습과

어려운 가정 형편을 극복하기 위헤 혼자 고시공부해서 법관이 된 후 묵묵히 법관으로 일하던 노짱의 모습 중

어느 쪽이 더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는지는 분명하게 답이 나옵니다.

하지만 나이 먹고 대통령이 된 후의 모습을 보면.... 이게 정 반대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대통령이 된 후 노짱은 확실히 진보적인 사람이었고, 혁신을 위해 애썼습니다.

실제로 공무원 조직은 노짱 당선 후 많이 바뀌었고, 부분적으로나마 혁신에 성공했죠.

실패한 개혁을 위해 애쓴 대통령이라고 비추어지지만, 실패든 성공이든 노짱은 진보적인 대통령의 전형이었습니다.

전임 DJ가 범민주진영의 대통령이었을망정 실제 정책은 매우 보수적이었던 것에 비하여,

노짱은 대통령 당선 후 정말로 혁신과 진보를 위해 노력했던 전혀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습니다.

    

그냥 대통령만 놓고 보면...

청년 시절 진보주의자가 장년시절, 또는 노년에 이르러 계속 진보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을 때 진보와 혁신을 위해 투쟁하여 옥살이를 했던 사람이, 노년이 되고는 보수적인 대통령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 시절 별로 진보적이지 않았던 노짱은, 오히려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진보적인 혁신을 위해 노력했죠.

   

그냥 이러한 결과만 놓고 생각해 보면,

"사람은 변하는 존재"라고 보는 게 오히려 맞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이 든 사람, 또 가진 게 많고 지킬 게 많아진 사람은

젊은 시절 꿈꾸었던 진보와 혁신를 버리고 어느덧 보수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다고도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