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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외계인은 이처럼 대부분 고등 기술 문명입니다.]



외계인이라는 단어에 대부분 침략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습니다. 대중매체에서 하도 지구 정복을 남발하느라 외계인은 무조건 적대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어요. 각종 소설, 게임, 영상물에서 인류와 외계인은 치열하게 싸우고, 그런 만큼 인류를 몰아치는 외계인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하늘 아래 우주전쟁물이나 외계침공물이 셀 수도 없으니, 이들을 구분하는 기준도 천차만별이겠죠. 그나마 보편적인 기준은 생김새 혹은 기술 수준일 겁니다. 우리 인간이 시각적인 동물인데다가 도구를 사용하니까요. 외계인이 나타나도 인간적인 기준에서 바라보기 마련이죠. 덕분에 대중매체 작가들이 외계인을 만드는 방법도 대략 엇비슷합니다. 우선 나쁜 놈들이니까 괴악하고 흉측하게 생겨야 합니다. 파충류나 벌레의 특성을 따오거나, 신체를 기형으로 만들거나, 기계와 결합하는 수법을 자주 써먹어요. 허나 (인간이랑 싸워야 하니까) 지능은 높고 손재주도 좋아서 우주선, 건축물, 총기를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흉악한 지능형 외계인’이 소설이나 게임의 적대 종족 자리를 차지합니다. SF 역사에 영향을 미친 굵직한 우주전쟁물은 대부분 그래요. 이 분야의 원조로 꼽는 <우주전쟁>부터 그렇죠. 화성인은 촉수 달린 괴물이지만, 능숙한 솜씨로 로켓과 보행병기를 조립합니다.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지구인은 사면초가에 몰리죠. <스타십 트루퍼스>의 아라크니드는 거대한 거미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허나 생긴 것만 그럴 뿐, 우주선이든 광선총이든 못 만드는 게 없습니다. 기동보병 강화복을 두부처럼 썰 수 있고, 행성 너머 폭격도 감행합니다. 우주선도 만드니 공장이나 건물도 짓겠죠. 작중 등장하는 또 다른 종족, 갈비씨들도 마찬가지고요. <영원한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긴 건 희한하지만 어쨌든 토오란들은 인간 형태입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이지만, 건물, 탈것, 무기, 갑옷 등을 갖추었어요. 당연히 우주선도 있어서 함선끼리 어뢰 쏘며 싸우기도 합니다. 이를 계승했다는 <노인의 전쟁>에도 여러 종족이 나오는데, 주된 종족은 대개 기술 문명이죠.



제리 퍼넬이나 래리 니븐, 로이스 부졸드, 제임스 호건 등은 굳이 집어넣지 않겠습니다. 이쪽은 인류 대 외계인의 구도가 아니라 여러 종족이 뒤섞인 세력 싸움에 가까우니까요. 게다가 저런 작가들을 집어넣어 범위를 확장해도 결론은 다를 바 없습니다. 외계인들은 이상하게 생겼지만, 어쨌든 인류와 비슷한 문명을 갖춘 놈들이고, 그래서 싸움박질이 가능하다는 내용입니다. 게임 쪽도 그리 차이 나지 않는 상황입니다. <워해머 40K>에서 주인공은 스페이스 마린과 임페리얼 가드입니다. 이들과 적대하는 세력은 단연 카오스 군단인데, 역시 자기들만의 기술 문명이 있죠. 엘다나 오크, 타우도 마찬가지고요. <엑스컴>에 나오는 외계인 집단도 (레트로 SF지만) 모양만 괴상할 뿐, 기술력은 뛰어납니다. <헤일로>나 <기어스 오브 워> 같은 비디오 게임도 그렇습니다. 코버넌트는 모양이 이상하지만, 다들 인간 형상이고 총도 쏘고 갑옷도 입고 우주선도 탑니다. 로커스트 호드는 파충류나 곤충처럼 흉악하게 생겼지만, 역시 인간 형상이며 인간이 하는 짓은 모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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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크리쳐 집단은 고등 문명 집단에 비해 한계가 뻔합니다.]



영상물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종 종족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스타게이트> 시리즈도 그렇죠. 애초에 고대인이 등장하고, 레이스나 리플리케이터도 나중에는 인간 형태가 최종이고…. 우주선이나 총기가 있다는 점은 다른 침략 종족이랑 비슷합니다. <배틀스타 갤럭티카>에 나오는 사일론은 로봇이라서 침략외계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인류와 생존전쟁을 벌이는 세력이고, 인간형 로봇들이 많죠. 설정이 뻔하디 뻔한 외계 종족들과 다르지만, 기술 문명이라는 점은 유사하고요. <우주전쟁>부터 <스타게이트>까지 각각 소설, 게임, 영상물 쪽에서 나름대로 한가락하는 작품들입니다. 각 분야의 밀리터리 SF에서 획을 그은 작품들이니, 이 정도면 대표작으로 꼽아도 무방하겠죠. 작중 인류는 생김새나 세부 설정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외계 기술 문명과 싸우는 셈입니다. 토오란이든, 코버넌트든, 레이스든 간에 인간 기술 문명을 색다르게 바꿔놓은 것에 가깝습니다.



하긴 기술 문명이 없다면, 전쟁 양상을 꾸미기 어려울 겁니다. 에일리언 같은 괴물 집단은 우주전쟁물로 써먹기에 애로사항이 많은 소재입니다. 사격 무기도, 기갑 부대도, 우주선도 없습니다. 일꾼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지만, 그렇다고 전투기처럼 진화하거나 장거리 포격을 퍼붓는 수준은 아닙니다. 머릿수와 신체 능력으로 돌격하는 게 전부니까 한계가 분명합니다.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고 몸으로 부대끼니까 전략에 제한이 있습니다. 작가 입장에서 전쟁 양상을 짜거나, 이야깃거리를 만들기에 부족하죠. 그만큼 독자도 즐길만한 요소가 모자라고요. 가령, <에일리언 2>도 말이 좋아서 전쟁물이지, 본격적인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죠. 해병대 부대는 어디까지나 구출팀이었고, 기갑도 고작해야 장갑차 하나였습니다. 지구에서 대대나 연대급 부대를 파견했으면, 그깟 에일리언 떼거지야 간단하게 쓸어버렸을 겁니다. 제아무리 이빨이 날카로워도 장거리 포격을 퍼붓는 데 어쩌겠어요.



영화판 <스타십 트루퍼스>도 그런 결과물일 겁니다. 단순한 괴물 집단을 내보냈죠. 탱크 버그나 플라즈마 버그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돌격 병과니까. 대신 인류측도 오합지졸이죠. (제작비 문제도 있겠지만) 우주 군대랍시고 전차나 공격헬기는 고사하고, 장갑차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괴물 집단이라도 <워해머 40K>의 타이라니드는 천양지차입니다. 생김새만 괴물일 뿐, 병력 구성 자체는 기술 문명과 흡사합니다. 개인 화기부터 기갑 부대와 포병, 전투기, 우주선까지 골고루 갖추었습니다. 비록 모든 병기가 생체지만, 진화와 초능력이라는 명목 아래 없는 게 없습니다. 인류와 대등하게 총격전을 벌이거나, 기갑 웨이브를 하거나, 도그 파이팅을 하거나, 우주 함대전도 치를 수 있습니다. 과연 괴물 집단이라는 묘사가 옳은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괴물이라는 놈들은 동물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날카로운 이빨로 물고 씹고 뜯는 이미지가 강하죠. 하지만 막상 전투에서는 생체 포탄을 쏘거나 초능력 파장을 날리기 일쑤입니다.



순전히 이빨과 발톱으로 동물처럼 싸우는 괴물 집단은 드물 겁니다. 달려들어 물어뜯는 게 전부거든요. 쓰임새가 제한적입니다. 알보병 부대와 싸우는 소규모 국지전이나 힘없는 사람들을 기습하는 공포물에 한정되고 맙니다. 거창한 스케일을 좋아하는 작가나 독자에게 어울리지 않겠죠. 굵직하고 중요한 작품들은 대개 외계 문명을 적대 세력으로 설정합니다. 아라크니드와 타이라니드 같은 절지류 외계인도 결국 기술 문명이나 다름없고요. 그러니 똑같이 괴물 집단으로 일컬어도 속성에 따라 다르게 분류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아라크니드도 소설과 영화에 따라 쓰임새가 전혀 다른 종족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