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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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 이상은 감정과 자신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입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인간이란
자신이 가진 잣대에서는 단 한치도 너머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게 한계겠죠.
논리니 이성이니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딱 거기까지.
가지고 있는 잣대, 그릇의 틀을 넘는 것을 담을 도리는 없어보입니다.
가장 완벽한 중립을 말하는 자는
그가 정말로 가장 완벽한 중립을 말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격받을 겁니다.
어느 누구도 내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테니까요.
개구리는 올챙잇적 생각을 할 수 없고
가재는 게 편이며 초록은 동색이게 마련입니다.
작자 자기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 바라본 시각만으로 세상을 볼 뿐입니다.
탓할 생각도 비난할 생각도 없습니다.
쿨게이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던 말, 옳고 그른것 보다 약자의 편에서서
세상을 보겠다. 라는 말을 믿는 게 어리석은 일일까요?
정말로 공자왈 맹자왈처럼 정의를 추구하고 바른 길을 말하는 것도 삽질일까요.
인간은 본디 약하고 타락하기 쉽고 자기중심적이고 눈앞의 것밖에 살피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안의 고귀함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네요.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만 보이는 시각이 달라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지사지와 공감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 사람입니다만..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 에 보면 카시다 암각문이라는 옛날 비석이 나오죠.
지배자, 상인, ……등 ……의 권능을 소원하는 많은 이들이 분명히 ……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용인들 중에는 영웅이나 위인은 커녕 이름이 좀 알려진 ……조차 없다. 용인의 권능은 타인을 지배하거나 타인이 소유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에게 지배당할 위험에 노출되게 만드는 것이 용인의 능력이다.
……들은, 둔감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는 이 사실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문장에 작중에서 최초로 새겨지는 글씨는 '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미움'을 다시 지우죠.
살면서 계속 곱씹게 되는 글귀나 장면이 있는데 이 부분이 저에게는 그렇네요. 사람들의 마음에는 역시 '미움'과 '증오'가 가득한 것이라 한탄하고 끝날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움이라는 단어를 지우는게 맞는 것인가..
하고 말이죠.
어느 한쪽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겐 이해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중립은 중립끼리도 적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중립은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라, '공정함'을 따르는 성향인데, 중립끼리도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이 '공정하지 않아' 보기 때문이지요.
이는 중립이 정말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중립 역시 자기가 보는 '정의'를 따를 뿐인 거죠. 쉽게 말하면 중립은 양쪽의 중간이 아니라 그냥 제3의 '자기 자신의 편'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립이 중립일 수 있는 이유는, 누구를 편들기 위해서 스스로의 정의를 왜곡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100개가 맞다 하더라도 하나 틀린 (정확히는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그리고 남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는 첫걸음이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다 해도 객관적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중립은 만인의 적이자, 만인의 동반자입니다. 적으로 보면 적이 보이고, 친구로 보면 친구가 보이는 거울이지요. 물론 완벽한 거울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하고, 지금 내가 보는 거울이 얼마나 사물을 왜곡해 비추고 얼마나 혼탁한지는 거울을 보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할 몫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는 수많은 약자들의 악의와, 수많은 강자들의 선의를 보아 왔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수많은 약자들의 선의와, 수많은 강자들의 악의를 보아 왔습니다.
불행히도, 개별 행동에 대해서는 악행이 선행보다 여파가 큽니다. 특히 강자의 악행은 강자의 선행보다 여파가 큽니다. 능력이 큰 만큼 선행과 악행의 갭도 더 커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강자들은 악해 보이기 쉽습니다. 큰 행동일수록 눈에 잘 띄는데, 강자의 악행이야말로 가장 눈에 잘 띄는 행동이니까요.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선과 악이 반반 섞여 있는 게 아니라, 자잘한 선행 쪽을 훨씬 많이 하다가 가끔 악행을 하는 식입니다. 그 덕에 눈에 띄는 개별 악행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대체로 선하게 굴러갑니다. (사회가 얼마나 선한지는, 사회 없이 혼자서 사는 생활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생존 자체가 악전 고투, 웬만한 주변 환경이 모두 '악'이 될 겁니다. 우리가 사회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사회를 못 떠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딱히 언제나 약자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약자가 더 가치있는 것도 아니고, 더 도덕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면에서는 약자의 편을 드는데, 바로 부의 재분배입니다. 약자가 약자인 이유는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보통 사회 자원을 강자에게 '빼앗겨서'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강도를 당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사회의 판이 짜여져 있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강자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약자들의 자원을 수탈하며 살고 있고, 약자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늘 삶이 곤궁하고 불행한 겁니다.
그러나 이 판은 복잡한 역사의 산물이지 특정한 인물, 혹은 계급이 의도적으로 짜놓은 판이 아니며, 당대의 강자, 기득권자의 책임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단순한 상속자, 혹은 그 판에서 활로를 찾은 수완가일 뿐이죠 딱히 부도덕하게 약자를 수탈하는 악의에 찬 돼지여서 그런 게 아닌 겁니다.
우리가 중시해야 할 것은 약자와 강자가 아니라 그 둘을 나눠버린 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판이 그대로인데 강자와 약자의 차이에만 눈길을 주다 보면, 약자의 편을 들어서 힘을 실어준다 해도 결국은 그냥 새로운 강자와 약자로 자리만 바꿔 앉을 뿐, 누군가는 약자가 되어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겠죠.
분명히 불법이며, 도덕적 잘못임을 알고서 불법적인 이득과 탈세를 찾는 놈들은 존재합니다, 이들을 단순한 상속자, 수완가로 붙여버리면 곤란하죠.
법리적으로는 부도덕한 돼지 따윈 찾아볼수 없다고 해도 딱히 부도덕하게 약자를 수탈하는 악의에 찬 돼지는 가상의 상상속에 존재하는 악인이 아니에요.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지.
법리적으로 찾을수 없다고 없다니... "원칙은 그냥 원칙일 뿐이고, 목적이 아니고 수단에 불과합니다." 라고 하신분이 이러시면 안되는 거신데...
이런식이면 뭐... 똑같은 논리를 한번 사용해봅시다. 일본은 복잡한 역사 속에서 한국을 먹음으로서 활로를 찾은 수완국일 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네요? 이 같은 논리가 친일파, 뉴라이트 들의 논리입니다. 그저 당대에 잘 사는 길을 찾던 사람일뿐이다.
우리 모두 법으로는 걸리지 않지만 부도덕하게 쉽게 돈을 법시다. 어짜피 그저 활로를 찾는거잖아요?
나쁜짓을 한 놈들 보고 저거 인간은 나쁜짓을 할수도 있는 본성이 있다며 커버를 치고, 우리가 저 자리에 있으면 똑같이 할거라면서 커버치면 안되는거죠. 아무리 판이 짜여 있다손 욕을 할건 욕을 하고 말합시다.
르혼님이 써두셨던것 같이 보통 인간은 보통 사회밖에 못만듭니다. 강자와 약자는 언제나 존재해 왔고 언제나 존재할겁니다. 그 판을 없애는건 불가능해요. 판 자체를 없애려면 인간을 초월 혹은 그 이하가 되어야 할겁니다. 판 자체를 없애는건 불가능하니 우리가 할수 있는건 말씀하셨던 것처럼 판 자체의 잘못을 고쳐 나가는겁니다.
잘못을 고쳐 나가는중에 그 와중에 사회적 비효율도 발생하는거고, 무단횡단 만화 같은 일도 생기는겁니다.
애초에 엘리트 정치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 판을 공격하지 못하는 사회적 비효율을 포함한 사회적 비효율의 발생은 필연적이며, 사회적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효율을 원하면 북쪽으로 가면 됩니다.
약자는 힘이 없습니다.
경제력이 곧 힘인 자본주의 특히 한국같은 천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은 힘 곧 권력입니다.
약자는 돈이 없고 권력이 없어요.
직장 없이 1년을 버티기 힘든 사람들이 분명한 법의 지원을 받을수 없다면 한국에서 목소리를 내는건 힘든 일입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면 고작 30~50 만원도 내기 힘든 사람은 지하철 바닥에서 돈을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 길가에서 지나가다 쉽게 만날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력 사무소에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대도시 뿐만 아니라 전국에 무료 급식소가 있는것도 아닙니다. 지금의 한국처럼 빚지기 쉬운 사회도 없을걸요.
옷 잘 입고 돌아다닌다고 사람 할거 다 하고 돌아다닌다고 딱히 약자가 아닌게 아닙니다. 애초에 대한민국에서는 사람 할걸 못하면 약자도 못되요. 사람도 아니지.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건 그들이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약자의 편을 드는게 항상 옳은것도 아니죠. 그러나 후에 번복할지언정 일단 약자의 편에 서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이기 때문입니다.
강자는 자신 스스로를 도울 힘이 있습니다. 약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더 뭘 설명해야할까요.
잠깐... 약자를 보호하라는건 중세 기사도에도 나오던 이야기 아닙니까...
강자와 기득권자의 '잘못'을 커버치는 게 아닙니다. 강자, 혹은 기득권자라는 것 만으로 잘못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강자라고 더 도덕적일 이유가 전혀 없으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많을테고, 약자의 동일한 잘못보다 사회적인 여파가 더 클 테고 (더 큰 악을 가져올 테고), 그 힘 때문에 처벌 받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잘못하면 누구든 처벌해야 한다는 원론 안에서의 얘기지, 강자라고 해서 무조건 죄악시 하고 약자라고 해서 편들어주는 게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회는 강약의 이분법으로 간단하게 나눠지지 않으며 약자 위에 좀 더 큰 강자가 있고 그 강자 위에 좀더 큰 강자가 있는 먹이사슬 같은 관계입니다. 일반 사회 기준으로는 서민에 불과한 궁핍한 생활을 해 나가는 시골 사람들도 지적 장애인을 노예 부리듯이 하면서 그 사람에 한해서는 강자의 횡포를 부리는 경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마을 사람들은 강자일까요 약자일까요.
이 사회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기엔 너무 복잡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각자 사연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약자가 핍박받는다면 그 핍박받는 구조를 고쳐야지, 무조건 약자 편을 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건 마치 로또 복권 제도나 같아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활로를 찾은 약자는, 그만큼 누군가를 약자 쪽으로 밀어넣게 됩니다. 일종의 '정원제'가 있는 피라미드형 사회 구조에서는 한 사람이 올라서면 다른 사람이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거죠.
개별 약자의 당면한 아픔, 억울한 상황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억울함이 생기지 않게 예방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예방은 강약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면 처벌 받을 수 있는 공정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사회에서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건 제도를 고치고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으로 해결되지, 무조건 약자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당장 억울한 약자 편을 들어주는 것은 질병 치료라면, 그런 약자가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신약 개발에 해당되겠죠. 둘 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억울하든 아니든 상관 없이 무조건 약자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약품 오남용에 해당합니다.
강자와 기득권자의 '잘못'을 커버치는 게 아닙니다. 강자, 혹은 기득권자라는 것 만으로 잘못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 직접 강도를 당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사회의 판이 짜여져 있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강자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약자들의 자원을 수탈하며 살고 있고
이게 커버치는거 아니면 뭔가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왕 나는 나는 지금 불법적인 탈세와 이득을 취하지만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불법적인 탈세와 이득을 취하게 되었구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기득권자와 강자가 되었지만, 난 잘못 없엉 판이 그렇게 짜여져 있는걸?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했었을거라고?
필연적이라손 존재하는 잘못이 잘못이 아니게 되는건 아닙니다.
물론 강자라고 더 도덕적일 이유가 전혀 없으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많을테고, 약자의 동일한 잘못보다 사회적인 여파가 더 클 테고 (더 큰 악을 가져올 테고), 그 힘 때문에 처벌 받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겁니다.
-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이러시면 안되시는 거신데...
하지만 이것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잘못하면 누구든 처벌해야 한다는 원론 안에서의 얘기지, 강자라고 해서 무조건 죄악시 하고 약자라고 해서 편들어주는 게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 강자라고 무조건 죄악이라고 한분은 어디 계신가요? 전 안보입니다만 유토피아라도 가셨나 보네요.
이 사회는 강약의 이분법으로 간단하게 나눠지지 않으며 약자 위에 좀 더 큰 강자가 있고 그 강자 위에 좀더 큰 강자가 있는 먹이사슬 같은 관계입니다. 일반 사회 기준으로는 서민에 불과한 궁핍한 생활을 해 나가는 시골 사람들도 지적 장애인을 노예 부리듯이 하면서 그 사람에 한해서는 강자의 횡포를 부리는 경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마을 사람들은 강자일까요 약자일까요.
- 마을사람들이 강자인 문제에 있어선 강자죠.약자인 문제에선 약자구요. 뭐 강자면 죄다 부자고, 약자면 죄다 거지꼴로 이분한다고 보시나본데. 제가 보는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은 미리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상황과 문제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전체적으로 완벽히 보느라 참 고생하십니다. 사람인줄 모르면 인공지능 컴퓨터가 계시는줄 알겠습니다.
이 사회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기엔 너무 복잡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각자 사연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약자가 핍박받는다면 그 핍박받는 구조를 고쳐야지, 무조건 약자 편을 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건 마치 로또 복권 제도나 같아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활로를 찾은 약자는, 그만큼 누군가를 약자 쪽으로 밀어넣게 됩니다. 일종의 '정원제'가 있는 피라미드형 사회 구조에서는 한 사람이 올라서면 다른 사람이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거죠.
- 무조건 문제가 해결되지 않죠. 세상에 완벽한건 애초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 허다한 진상 관련 글에 반대편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그런거죠. 무조건 문제가 해결안된다고 눈앞에 강자와 약자가 구별되는 문제마저 내팽개치고 판을 때리고 앉아있으면 무단횡단 만화에서 등장하셔도 무방하겠네요.
개별 약자의 당면한 아픔, 억울한 상황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억울함이 생기지 않게 예방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예방은 강약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면 처벌 받을 수 있는 공정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사회에서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건 제도를 고치고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으로 해결되지, 무조건 약자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 그러니까 개별도 중요한거죠. 지금 문제가 터진사람이 있는데 어디있는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와 예방하는거 찾으러 가야지~ 이런식으로 행동하시고 계시네요.
말하자면 당장 억울한 약자 편을 들어주는 것은 질병 치료라면, 그런 약자가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신약 개발에 해당되겠죠. 둘 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억울하든 아니든 상관 없이 무조건 약자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약품 오남용에 해당합니다.
- 결국 도덕적 문제는 상관도 없으시다는건데... 도덕도 버리고 눈앞을 보는 시력도 버리고 얻으신 공정한지 조차 의심스러운 공정함... 오 고귀하네요.
약자의 편을 일단 들어줘야 하는건 약자가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에서 약자가 생기고 약자라는건 그 문제의 판 안에서 차지한 부분이 적기 때문에 약자라고 하는거겠죠.
약자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건 그게 문제 해결을 하려면 약자의 편을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건이 생존에 중요하건 중요하지 않건 약자는 애초에 나아갈 힘도 적은데 한번 밀리면 더더욱 다시 나아가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약자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겁니다.
적어도 제 3자의 입장에선 상황파악 전까진 누구라도 판에서 떨어지진 않게 해야할것 아닙니까? 고놈의 공정성 지키자고 놔둬서 판에서 떨어진 사람이 사람이 알고보니 진짜 억울한 사람이면요?
후에 번복할지라도 일단 약자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건 그게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아니고 그게 도덕적이기 때문입니다.
약품 오남용이 걱정된다고 지금 눈앞의 죽어가는 사람을 무시하는게 더 경악스럽게 무섭네요.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로 들면서 그 문제 해결의 목적을 밟고 가시네
""원칙은 그냥 원칙일 뿐이고, 목적이 아니고 수단에 불과합니다." 라고 하신분이 이러시면 안되는 거신데..."
결국 강자, 기득권자의 잘못이 더 영향력이 있는 잘못인것도 인정하시고, 개별 약자들의 문제 해결도 중요한것도 인정하시지만, 놔두면 판에서 떨어질게 뻔한 약자가 진짜 옳은건지 틀린건지 몰라서 놔두자는게...
르혼님이 가지신 지켜줘야할 약자의 기준은 한없이 좁아 전국민에게 까이는 정도쯤 되어도 들수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려.
우왕 나는 나는 지금 불법적인 탈세와 이득을 취하지만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불법적인 탈세와 이득을 취하게 되었구나
'불법적인'에서 이미 잘못입니다. 잘못은 철저히 단속하고 처벌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죠. 현실적으로 강자의 잘못을 찾아내고 처벌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명백히 존재합니다만, 그건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하고 해결해야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무턱대고 '강자니까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강자의 잘못'과 '강자니까 잘못'은 분명히 다른 얘기에요.
강자 = 악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버리면, 최고 자산가중 하나인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은 존재 자체가 연쇄 살인범 못지 않은 악의 화신이 되어 버립니다.
강자가 자원을 독식하고, 아무 능력도 노력도 없이 출생에 의해서 강자가 되고 하는 판은 고쳐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강자니까 죄악시하고 약자를 선으로 보는 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한 치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위치가 아니라 행동을 보고 처벌을 하든 뭘 하든 해야지요.
- 그러니까 개별도 중요한거죠. 지금 문제가 터진사람이 있는데 어디있는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와 예방하는거 찾으러 가야지~ 이런식으로 행동하시고 계시네요.
이미 다른 덧글에서 말했지만, 저는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가 딱히 약자라고 생각 안 합니다. 평균적으로 볼 때 딱히 빈민인 것도 아니고, 배상/보상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못 들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한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 이슈에요.
세월호 유가족들의 원망은 내 가족을 죽인 사람이 치졸하게 목숨을 부지하려는 대리선장 따위일 리는 없다는 심정적인 억울함에 있지, 강자에게 짓밟히거나 재산을 빼앗긴 실제적인 억울함에 있지 않아요.
당사자들이야 슬픔 때문에 분별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3자는 정신 차리고 잘 봐야죠. 누가 진짜 가해자이고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아마도 배가 기울었을 때 선장이 구조 활동만 제대로 했었어도 사망자 90%는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다시 말해 원망의 90% 이상은 선장이 들어야 해요. 기껏해야 남은 10%를 가지고 안전 관리를 소홀히한 운항 회사나 그들의 규정 위반을 눈감아준 실무자들, 재빠른 구조 조치를 못한 관계 부처의 실무자 및 책임자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나눠 가지게 될텐데, 이 중에서 대통령이나 '정부' 같은 실제 책임자라기보다 대표자에 가까운 사람만 똑 떼어서 원망하는 것이 얼마나 이성적인 걸까요? 그리고 그런 책임 소재를 논하는 것과 무조건적으로 유가족들의 의견에 찬동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 결국 도덕적 문제는 상관도 없으시다는건데... 도덕도 버리고 눈앞을 보는 시력도 버리고 얻으신 공정한지 조차 의심스러운 공정함... 오 고귀하네요.
무조건 약자 편을 들지 말자는 것이 도덕을 버리는 거라면, 저는 그런 도덕 버리겠습니다. 저는 약하다고 해서 무조건 편들어주는 사회를 원하지 않아요. 나 자신이 약자여도 (대체로 봐서 실제 약자지만) 마찬가지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편 들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는 것은 고맙겠지만, 사회가 그렇다면 저는 실망할 겁니다. 세월호 안전 관리 부실도 결국 '그렇게 빡빡하게 하면 장사해도 남는 게 없다'라는 약자의 논리가 쌓여서 이루어진 거거든요.
세금 안내고 도로 불법 점거한 길거리 노점상과, 안전 관리를 사바사바로 때운 해운사의 경계는 명확치 않습니다. 매달 순익 1억 이상 버는 알짜배기 노점상과, 월 백만원도 못 버는 서민 노점상의 차이는 명확한 선을 가를 수 있을까요?
어디서부터는 되고 어디서부터는 안 된다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이상, 우리 사회는 사바사바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밑에서부터 점차로 좀먹고 썩어들어가는 겁니다. 위에서부터가 아니라요. 이번 사건에서 제가 몇 번이고 '내 탓'이라고 한 건 정말로 내 탓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런 부패와 비리가 일상이 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했으니까요. 현금으로 내면 깎아준다는 물건을 구입해 탈세를 조장하고, 신호 위반이나 과적/과속을 보면서도 신고 안 하고, 오히려 나도 동참해 과속하고. 만차 상태인 버스를 억지로 타려고 비집고 들어가고... 세월호 사고는 이런 사소한 위반들이 쌓이고 쌓여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생긴 결과물이지, 어떤 괴물같은 악인들이 아찔한만한 악의로 똘똘 뭉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닙니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은 그 약자의 잘못도 보호하고, 더 나아가 강자의 잘못까지 보호해버리는 결과를 만들어 버리는 거에요.
강자의 죄악은, 약자의 죄악 위에 군림합니다. 약자니까 봐준다는 발상은, 그보다 조금 덜 약하지만 그래도 약한 사람을 봐주게 되는 발상으로 발전하고, 그런 식으로 '자기보다 조금 더 약한' 사람을 봐주는 온정주의가 맨 윗선까지 쌓여서 강자의 죄악에 면죄부를 주게 됩니다. 1을 가진 사람을 10을 가진 사람이 봐주면, 10을 가진 사람을 100을 가진 사람이 봐주고, 그렇게 천 만 억까지 계속 올라가게 되니까요. 만을 가진 사람이 억을 가진 사람의 비호 아래에서 10과 1을 가진 사람을 핍박해도, '약자니까 봐주는' 온정주의가 지속되는 한 쉽게 처벌 받지는 않게 될 겁니다.
긍게 강자니까 무조건 잘못이란 말을 어디사는 뉘신지께서 하셨냐구요.
강자는 무조건 나쁘고 약자는 무조건 옳다는 이야기는 르혼님 머리속에 계시는 누군가께 할 이야기지 저한테 하실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단 약자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강자가 옳던 약자가 옳던간의 문제가 아니라구요.
간단하게 말해서 판에서 한발 밀리면 떨어질 사람하고, 한발 밀려도 별 문제 없는 사람하고, 누가 옳던 틀리건 제대로 볼수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일단 한발 밀리면 떨어질 사람한테 편을 들어줘야하는게 당연한거 아닙니까.
르혼님께선 강자와 약자의 논리 스테레오 타입에 빠지셔서 다른 시각을 못보시는것 같습니다.
그놈의 기준의 애매성이 무서워서 발 하나 빼는것도 못하겠다면 저 무단횡단 만화에 나오는 양반들과 다른게 없어요.
""원칙은 그냥 원칙일 뿐이고, 목적이 아니고 수단에 불과합니다." 라고 하신분이 이러시면 안되는 거신데..."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약자 편을 든다고 하니까 그러는 거지요. 만일 둘 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면 그건 '판'의 문제니까 그걸 해결해야 하는 거고, 둘 중 하나가 잘못했을 때에나 편을 든다는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강약을 따지지 않고 잘못한 쪽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고, 사이도니아 님이나 펭조 님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얘기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잘못된 판을 고치기 전까지 (잘못이 없는) 약자의 편을 들겠다' 라는 건 매우 가치 있는 일이고 판을 다시 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입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일 뿐입니다. 의식주조차 장만하지 못하는 빈민들을 국가적인 지원이 아닌 자원 봉사자의 자선 사업으로 구제하는 게 그리 좋은 사회 시스템이 아닌 것처럼, 무조건 약자의 편을 든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건 기부와 자선의 가치가 미약해서가 아니라, 그런 도움이 필요 없는 사회야말로 진짜로 좋은 사회이기 때문인 겁니다.
누가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약자의 편에 서겠다고 써놨냐구요.
르혼님이 직접 말하셨던것 처럼 애초에 사회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척보고선 상황파악이 안되니까 "제대로 볼수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일단 한발 밀리면 떨어질 사람한테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거 아닙니까 상황 파악이 되고 아 강자가 옳은거라면 강자편에 서는거겠죠.
잘못은 잘못이니까.
어... 잠깐만요. "제대로 볼수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일단 한발 밀리면 떨어질 사람한테 편을 들어줘야"...
"제대로 볼수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이거 제가 제대로 볼수 없는 상태라면 이라고 써놔야할걸 잘못 써놨네요. 적반하장 격으로 나와서 죄송합니다.
사과 드리겠습니다. 제가 잘못 써놓고 큰소리를 친격이네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래도 쓸건 써야겠죠.
"무조건 약자의 편을 든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건 기부와 자선의 가치가 미약해서가 아니라, 그런 도움이 필요 없는 사회야말로 진짜로 좋은 사회이기 때문인 겁니다."
일단 다시 말씀드리지만 약자란건 그 사건안의 판에서는 강자보다는 상황이 좋지 못한 사람이에요. 약자가 옳던 틀리던간에 일단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사형시킨 죄수가 알고보니 범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의 교훈하고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알고보니 약자가 '틀렸다면'? 그럼 그땐 다시 약자를 발로 차면 되는거죠 괴씸한놈. 그런데 그 공정성을 지킨답시고 중립인지도 의심스러운 중립을 들고 계시다가 약자가 판에서 떨어져 버렸는데... 알고보니 약자가 '옳았다면'? 어익후. 이미 프레임은 완성된 상태.
강자라는 위치 자체 때문에 패널티를 받는게 아니냐고 말하셔왔지만 맞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도덕적으로 보면 나쁜 이야기죠. 그런데 현실이 도덕적으로 잘만 돌아가나요?
제가 보기엔 이렇습니다. 저는 있는게 많으니까 강자를 희생시켜도 괜찮다는거고, 르혼님은 그 누구도 안된다는 거겠지요.
르혼님께선 옳을지도 모르는 강자 그러니까 게임의 무결성을 위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판에서 떨어질 약자라도 보고만 계시겠다는거고,
전 완벽한 공정성 그러니까 게임의 무결성 보다는 재미를 위해서 옳을지도 모르는 강자의 얼굴을 치겠다는 그러니까 개입을 하겠다. 이정도 같습니다.
물론 그런 개입이 필요없는 사회가 진짜 좋은 사회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런가요? 우리가 신경 안써도 알아서 잘 굴러가는 사회, 우리 궁민들이 원하는 사회 아닙니까? 정치판 신경 안쓰고 그냥 1번만 누르면 알아서 잘되고 국가가 부강해지고 만수 무강하는 사회.
지금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원리와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에서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전제로 행동한다면... 그야말로 공상이죠.
SF를 이야기 할때야 얼마든지 적용할수 있는 이야기지만 현실에선 현실에 맞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곁다리 다 처내고 근본적으로 보면 강자와 약자의 구도안에서 잘잘못을 알수없다면 일단 약자의 편을 들어 줘야 한다는건,
반드시 희생시켜야만 한다면 강자와 약자 중 누구를 희생시켜도 괜찮은가? 의 문제입니다. 현실과 얼마나 타협할거냐의 문제죠.
절대적으로 보면 그 누구도 도덕적이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에서 제가 말할수 있는건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타협
이건 근본적으로 가면 뉴타입이 필요한 이유로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아마 제 생각이긴 하지만 르혼님께서도 이런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가면 우리 모두 "인간들이 쓰레기 같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를수 밖에 없다는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고만하려구요. 뭣보다 제가 머리가 딸립니다... 힘도 딸리고...
확실히 강자와 약자가 구분되기 힘든 문제도 존재 합니다. 하지만 약자가 누군지 강자가 누군지 짚기 힘든건 애초에 이분법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문제에요. 누가 어거지로 넣는다면 그건 그게 문제죠.
아무리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하셔도 강자와 약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사회가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기엔 너무 복잡한건 사실이지만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다면 문제 될게 없습니다.
강자와 약자에 대한 기준이 틀렸다면 고쳐 나가면 됩니다. 처음 기준이 헛다리 짚었다구요? 어쩔수 없습니다. 애초에 완벽한것 따위는 없는걸요. 하지만 잘못은 잘못입니다.
욕 먹을건 먹고 죄라면 처벌을 받으면 됩니다. 사죄할것이라면 사죄하면 됩니다. 친일파 같은 놈들 같은 태도가 아니라 잘못에는 잘못을 인정 하면 되는겁니다.
그놈의 판이 존재하는 한 강자와 약자는 영원히 존재할거고 시대,상황,문제 에 따라 기준도 변하겠죠.
애초에 판 자체를 고치려는 노력도 오남용이 있는데, 오남용이 무섭다고 약을 안쓸순 없습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겠으면 손놔야죠.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국민들이며, 사고의 피해자일 뿐이죠. 피해 보상이 제대로 안 되고 그 때문에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면 약자라고 할만한데, 딱히 그런 기미를 보이진 않은 것 같더군요.
무엇보다 유가족 대표와 야권에서 말하는 '진실 규명'은 약자로서 억울한 일을 당해서 풀자는 게 아닙니다. 가해자는 명백히 있고, 수사 및 재판이 진행 중에 있으며, 피해 배상과 국가 보상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보통 교통사고 피해자를 '약자'라고 하지 않듯, 세월호 유가족도 약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말씀하신 이유들 때문에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글이 그 사람의 의견을 정당하게 피력하는 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보고요.
그러지 못하면 토론이 싸움이 되고,
각자가 자기 틀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빼앗깁니다.
완전히 객관적이기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포용력을 발휘하기는 어느정도 가능한 일입니다.
상대방 주장에서 적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만이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만 갖춰도
조금씩 견해를 넓힐 수 있는 계기는 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