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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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 슈트가 쓴 <해변에서>는 조용하고 서정적인 소설입니다. 일부 군사 작전 장면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일상에 치중합니다. 집에 모여서 파티하고, 아기를 키우고, 정원을 가꾸고, 해변에 놀라가서 수영하거나 보트를 타고 등등.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핵전쟁 아포칼립스입니다. 이미 북반구는 코발트 폭탄과 수소 폭탄으로 쑥대밭이 되었죠. 작중 무대인 남반구로 방사능이 밀려오고, 최후를 의연하게 맞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설정 자체는 그 어떤 희망이나 내일도 없이 절망적이지만, 정작 아비규환이나 광기, 혼돈 등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나온다고 해도 비중 없이 넘어가고요. 작가는 평화로운 일상을 강조하며, 인류 종말을 비극적으로 그리는 모순을 택했어요. 이 책은 1959년에 스탠리 크레이머가 영화로 찍었는데, 역시 수작으로 널리 알려졌죠. 허나 영화는 소설과 반대로 지옥 같은 최후를 강조하고,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반전이나, 열정적인 로맨스 등을 추가했습니다.
당연히 네빌 슈트는 영화판을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냥 안 좋아하는 걸 넘어서 굉장히 싫어했다고 하네요. 작품 주제가 완전히 달라졌으니, 마음에 들 턱이 없겠죠. 알고 보면, 네빌 슈트처럼 영화화를 싫어하는 작가들은 많은 편입니다. 감독과 협력하거나 재해석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자기 주제를 그대로 지키고 싶어하기도 하니까요. 재해석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그걸 원작 훼손이라고 판단하죠. 아서 클라크와 스탠리 큐브릭처럼 서로 보조하면서 소설과 영화 두 개를 모두 전설에 올리는 사례도 있습니다. 클라크는 책과 영화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고요. 그러나 항상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영화의 평가가 좋고 작품성이 뛰어나도 작가들은 자기 철학을 고수하고 싶은가 봅니다. 하긴 그만한 일념이 있으니까 창작 활동도 하고 그런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훌륭했지만, 원작 소설가는 감독과 싸우거나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퍼졌죠.
이 방면에서 제일 유명한 사례가 아마 <솔라리스>일 겁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인류가 미지와의 조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논했습니다. 다른 존재와의 만남은 SF에서 가장 흔하고 중요한 화두임에도 대개 통속적입니다. 은하를 넘어서 교유하거나, 우주 전쟁이 벌어져 승리하거나, 결국 패배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식이죠. 렘은 이러한 결론이 너무 진부하며 지구 중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지와 소통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솔라리스>로 서술했습니다. 인류는 살아있는 플라즈마 바다와 어떻게든 교류를 시도하지만,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는데도 결국 성공하지 못하죠. 허나 안드레이 타크로프스키는 미지와의 조우에 별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타르코프스키가 말하고자 한 바는 외부가 아니라 인간관계였어요. 그래서 원작에도 없던 지구의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반면, 정작 비중이 높았던 움직이는 바다 모습은 별로 나오지 않죠. 인간 외부와 내부라니, 두 사람의 시선이 완전히 정반대였던 셈입니다.
주제 말고 다른 이유도 있긴 합니다. 스탠리 큐브릭은 <샤이닝>도 찍었지만, 스티븐 킹은 별로 탐탁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얼개는 비슷하지만, 스티븐 킹은 광기에 빠져드는 과정과 초자연적 능력을 중요시했죠. 대개 킹의 소설 주인공이 그렇지만, 소설 작가가 주인공이고 알코올 중독이나 생활고, 교사의 고뇌 등이 줄줄이 나옵니다. 자기 본인의 애환을 담아낸 듯한데, 그만큼 창작가로서의 압박을 공포와 절묘하게 연관시켰죠. <미저리>를 제외하면, 스티븐 킹 소설 중에서 작가 주인공이 제일 고생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제목처럼 초자연적 능력이 인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요. 반면, 영화판은 이런 과정이 거진 빠져서 잭의 광기가 어디서 비롯했는지 뚜렷이 나오지 않죠. 작가라는 점은 동일하고, 편집증적으로 글을 쓰긴 하는데, 소설만큼 유기적으로 원인을 연결하지 않는 편입니다. 대신 영상미와 상징성이 훨씬 깊이 있지만, 주인공 설정이 이리 달라졌으니 원작자 입장에서는 화가 날만도 하겠죠.
<특전 유보트> 역시 소설과 영화가 다르기로 유명하죠. 이건 고증과 분위기에서 차이가 난다고 원작자가 싫어했다고 하네요. 영화는 잠수함 승무원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데 치중합니다. 연합군 구축함이 계속 쫓아오고, 사방에서 폭뢰가 터지고, 툭하면 긴급 상황이고, 언제 심해에서 수장될지 모릅니다. 사방은 꽉 막힌 강철 벽이고, 좁은 방구석에서 자야 하고, 일말의 여유조차 즐길 수 없죠. 은폐에 의존하는 유보트는 노래도 제대로 부를 수 없습니다. 덕분에 승무원들은 갈수록 피폐해지며, 영화는 이를 가지고 반전을 주장합니다. 허나 작가 로타 귄터 부하임은 이런 줄거리나 연기가 너무 과장이 심하고, 클리셰 천지라고 비판했습니다. 소설을 안 읽어봐서 얼마나 현실적인지 모르겠지만, 부하임은 실제로 잠수함에 승선한 경험도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잠수함의 은폐 전략이나 승무원 행동을 전문적으로 서술했는데, 영화는 그걸 망쳐놨다는 뜻이죠. 반전을 강조하는 건 좋지만, 굳이 그렇게 고증을 어긋나야 하냐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작가와 감독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죠. 원작이 있으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주장과 다양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부딪힙니다. 뭐가 나은지 독자나 관객마다 생각이 다르겠죠. 개인적으로 이왕이면 소설을 따라가는 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해변에서>는 서정적으로 이어지다 마침내 몰락하는 결말의 괴리가 중점이죠. 굳이 이걸 로맨스 첨가하고, 아비규환을 만들어야 했나 싶습니다. <솔라리스>는 미지와의 소통이라는 주제 때문에 원작자의 분노에 200% 공감하는 편이고요. 최소한 솔라리스 바다에 신경이라도 써줄 것이지. <샤이닝>은 영화가 훨씬 깊이 있지만, 스티븐 킹의 팬이라면 좋게 보이지 않겠죠. 인간사를 줄줄이 늘어놓는 특유의 미덕이 없으니까요. 극적 구성을 위해 그런 부분을 빼버린 감독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특전 유보트>는 책을 못 봐서 뭐라고 말하기가 힘듭니다만. 작가 말처럼 절제한 연출이 어땠을까 싶기도 하네요.
훌륭한 리메이크라고 해도 원작 작가와 미디어 매체와의 불화는 끊이지 않을 것 같아요. 소설은 소설만의 작법이 있고, 영화가 이를 재현하는 건 어려우니까요. 게다가 사람마다 자기 철학이 따로 있는지라…. 누가 옳다고 함부로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만.
위에 말씀하신 것처럼,
대개 감독이 원작의 특정 부분에 주목하여 집중하거나
영상물에 더 적합한 주제를 별도로 상정하여 추구할 때 좋은 영화가 나옵니다.
<스타쉽 트루퍼스>는 하인라인의 원작 소설과 폴 버호벤의 영화의 주제가 정반대라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원작에 거의 없는 사이보그의 삶에 대한 열망과 좌절이 영화의 라스트신을 장식하면서 명작이 되었죠.
물론... 이렇게 원작과는 다른 시각을 담은 영화가 아무리 훌륭하게 만들어지더라도,
해당 작품의 원작을 쓴 소설가는 자신의 주제와 다른 시각의 영화판을 접하면
당혹감을 느끼면서 아무래도 마음 속이 편치 않을 수 밖에 없겠죠.
영화가 명백한 실패작이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면 "원작 그대로"라고 욕을 먹고, 원작과 달리하면 "원작을 망쳤다"고 욕을 먹게 됩니다. 원작이 많이 사랑받은 작품일수록 욕의 강도도 비례하지요.
저로서는 원작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감독의 재해석이 들어간 쪽이 좀 더 흥미롭더라구요. 사실 원작 그대로 따라가면 "영상화에 성공했다"는 정도의 생각만 들거든요. 기왕에 다른 매체에 실을 거면 그 매체다운 뭔가 다른 점을 기대하기 때문이지요.
가장 좋았던 예시라면 "공각기동대"가 있겠구요. 최근의 "엣지 오브 투머로우"도 꽤 괜찮았습니다.
그대로 따라가는 바람에 실망했던 작품은 "시간 여행자의 아내" .......아, 그토록이나 아름다운 작품을 이리 망쳐 놓다니......왜 에릭 바나는 그런 작품에 나온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