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난중일기의 명량해전 기록을 다시 봤습니다.
보면 볼수록 초인의 기록으로 보입니다... ㄷㄷㄷ
오래된 기억으로 접현전도 꽤 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묘사에 의하면 이순신 상선 단함의 화력에 압도되어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 상황에서 다른 전선들이 전투에 합류할 움직임을 보이자, 승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인지 마다시의 대장선이 선두에 서서 부하들을 독려하며 휘하의 2척과 함께 안위의 배를 포위하여 접현전을 벌이지만, 결국 이순신의 상선에 두들겨 맞고 사망...
마다시를 건져올려 효수하자 아군은 사기가 올라 돌격. 적군은 사기가 떨어저 패퇴.
이 좋은걸 저만 볼 수 없기에 여기에 올립니다.

-----------------------------------------------------------------------

난중일기 9월 16일 [양력 10월 26일]<갑진> 맑다.
아침에 별망군이 나와서 보고하는 데, 적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울돌목을 거쳐 곧바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곧장 온다고 했다. 
곧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백서른세 척이 우리의 여러 배를 에워쌌다. 
대장선이 홀로 적진 속으로 들어가 포탄과 화살을 비바람같이 쏘아대건만 여러 배들은 관망만 하고 진군하지 않아 사태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여러 장수들이 적은 군사로써 많은 적을 맞아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돌아서 피할 궁리만 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물러나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나는 노를 바삐 저어 앞으로 돌진하여 지자총통·현자총통 등 각 종 총통을 어지러이 쏘아대니, 마치 나가는 게 바람같기도 하고 우레 같기도 하였다.
군관들이 배 위에 빽빽히 서서 빗발치듯이 쏘아대니,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하곤 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겹으로 둘러 싸여 앞으로 어찌 될지 한 가진들 알 수가 없었다. 
배마다의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었다. 
나는 침착하게 타이러면서,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에게는 감히 곧바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일체 마음을 동요치 말고 힘을 다하여 적선에게 쏴라."고 하고서,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니, 물러나 먼 바다에 있었다. 
나는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자니 적들이 더 대어들 것 같아 나아 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어서 중군에게 명령하는 깃발을 내리고 또 초요기를 돛대에 올리니, 중군장미 조항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차로 내 배에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몸소 안위를 불러 이르되,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너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해서 어디 가서 살것 같으냐? 고 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을 불러 이르되,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 고 하니, 두 배가 곧장 쳐들어가 싸우려 할 때, 적장이 그 휘하의 배 두 척을 지휘하여 한꺼번에 개미 붙듯이 안위의 배로 매달려 서로 먼저 올라 가려고 다투었다. 
안위와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 몽둥이로 치기도 하고, 장창으로 찌르기도 하고, 수마석 덩어리로 무수히 어지러이 싸우니 배 위의 사람들은 기진맥진하게 된데다가, 안위의 격군 일여덟 명이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는데 거의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배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선 세 척이 얼추 엎어지고 자빠지는데 녹도만호 송여종·평산포대장 정응두의 배가 줄이어 와서 합력하 여적을 쏘아 한 놈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항복해온 왜놈 준사란 놈은 안골포의 적진에서 투항해온 자이다. 내 배위에서 내려다 보며, "저 무늬 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놈이 적장 `마다시'다"고 하였다. 
나는 김돌손으로 하여금 갈구리를 던져 이물로 끌어 올렸다. 그러니 준사는 펄쩍 뛰며, "이게 마다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명령하여 토막으로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여 버렸다. 
이 때 우리의 여러 배들은 적이 다시는 침범해오지 못할 것을 알고 일제히 북을 치며 나아가면서 지자총통·현자총통 등을 쏘고, 또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그 소리가 바다와 산을 뒤흔들었다. 
우리를 에워 싼 적선 서른 척을 쳐 부수자, 적선들은 물러나 달아나 버리고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그곳에 머무르려 했으나 물살이 무척 험하고 형세도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건너편 포구로 새벽에 진을 옮겼다가, 당사도(무안군 암태면)로 진을 옮기어 밤을 지냈다.
이 것은 참으로 천행이다.

 9월 18일 [양력 10월 28일]<병오> 맑다.

그대로 어외도에서 머물렀다. 임치첨사가 왔다. 내 배에서는 순천감목관 김탁과 본영의 종계생이 탄환에 맞아 죽고, 박영남과 봉학 및 강진현감 이극신도 탄환 에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순신 상선의 피해만을 말합니다. 다른 배에서는 안위의 격군 7~8명을 비롯하여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

선조94권, 30년 11월 10일 5번째기사
배신 겸 삼도 수군 통제사(兼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의 치계
한산도가 무너진 이후 병선과 병기가 거의 다 유실되었다. 
신이 전라우도 수군 절도사 김억추(金億秋) 등과 전선 13척, 초탐선(哨探船) 32척을 수습하여 해남현(海南縣) 해로의 요구(要口)를 차단하고 있었는데, 적의 전선 1백 30여 척이 이진포(梨津浦) 앞바다로 들어오기에 신이 수사(水使) 김억추, 조방장(助防將) 배흥립(裵興立), 거제 현령(巨濟縣令) 안위(安衛) 등과 함께 각기 병선을 정돈하여 진도(珍島) 벽파정(碧波亭) 앞바다에서 적을 맞아 죽음을 무릅쓰고 힘껏 싸운바, 대포로 적선 20여 척을 깨뜨리니 사살이 매우 많아 적들이 모두 바다속으로 가라 앉았으며, 머리를 벤 것도 8급이나 되었다. 
적선 중 큰 배 한 척이 우보(羽葆)* 와 홍기(紅旗)를 세우고 청라장(靑羅帳)** 을 두르고서 여러 적선을 지휘하여 우리 전선을 에워싸는 것을 녹도 만호(鹿島萬戶) 송여종(宋汝宗)·영등 만호(永登萬戶) 정응두(丁應斗)가 잇따라 와서 힘껏 싸워 또 적선 11척을 깨뜨리자 적이 크게 꺾였고 나머지 적들도 멀리 물러갔는데, 진중(陣中)에 투항해온 왜적이 홍기의 적선을 가리켜 안골포(安骨浦)의 적장 마다시(馬多時)라고 하였다.
노획한 적의 물건은 화문의(畫文衣)·금의(錦衣)·칠함(漆函)·칠목기(漆木器)와 장창(長槍) 두 자루다.’
*우보(羽葆) : 새털로 만든 의장(儀仗)의 일종. 
**청라장(靑羅帳) : 푸른 비단 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