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강하보병은 위성궤도에서 대기권을 뚫고 지상으로 투입되어 지상을 불태운다. 저궤도 폭격기와 전차 보병의 일을 모두 다 해치운다. 그 모든 일을 15cm 두께의 탄소복합구조체 강화복 안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채로 끝낸다. 먹고 싸고 숨쉬고 토하고 소리지른다. 항모전단에서 그들을 오줌싸개 똥싸개라 부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피를 말리는 지근거리 교전에서도 급한 설사라며 함교를 비울 수 있는 전함 승무원들과는 마음가짐이 다른 것이다. 강하보병들은 먹으며 달리고 싸면서 죽인다. 불타 무너지며 붕괴하는 함교를 지키는 하얀 제복의 함장도 똥을 싸면서까지 적을 죽이라 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강하보병은 한다. 주저하지 않는다.
강하보병들이 있는 곳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그건 강철의 혓바닥 때문이다. 이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강철의 혓바닥이다. 그들의 혀는 길다. 그리고 거칠고 또 강하다. 그들의 혀는 지치는 법이 없다. 그 모든 것들은 강화복 조작계 설계때문이다. 뇌파를 인지해서 더 빠른 대응을 가능하게 만들어진 AI 보조 장치가 달려 있고 눈동자의 움직임에 맞춰 상황을 보여주는 인터페이스가 있음에도 여전히 트리거는 혓바닥이다. 음료수 호스를 입에 꽂아 주는 장치도 3차원 퍼지 패턴인식 등 긁개를 꺼내는 스위치도 다 혓바닥으로 다루도록 되어 있다. 이유는 아마도 강화복을 처음 설계한 하인란박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면서 먹고 죽이면서 싸는 강하보병에게는 그게 당연하다. 양 손을 비울 틈은 없다. 양손엔 총화기, 피와 지방덩어리가 가득하고 전장의 상황에서 등은 예고없이 가렵다. 목이 탄다. 지체없이 혀를 뻗어 스위치를 조작한다. 이미 혀는 손가락처럼, 아니 그보다 더 정밀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전장 속에서 느끼는 아늑함. 전장의 동료와 나누는 담소를 방해받을 필요도 없다. 실시간으로 오가는 통신과 무관하게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누릴 수 있다. 처음 강화복을 접한 강하보병들은 혀로 조작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을 가졌다. 하지만 자세 제어와 무기 관제 화기 통제에 이미 양손과 발가락 턱과 콧구멍에 눈알까지 써먹지 않는 구석은 없었다. 남은 것은 혓바닥 뿐. 최초의 교전을 경험한 병사들이 원하는 기능이 하나 하나 추가되었다. 가려운 곳을 긁게 해 달라. 콧구멍을 파고 싶다. 귀가 간지럽다. 이에 뭐가 낀 것 같다. 눈꼽이 낀 것 같다. 사타구니를 긁고 싶다. 발바닥이 근질거린다. 상급 지휘관들은 가볍게 무시하거나 인상을 쓸법한 구석들, 동물적 본능이 시키는 일들에 대해서도 하인란 박사는 기꺼이 그의 재능을 베풀었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놀라웠다. 강하보병은 지상으로 내려간 뒤 보급을 받으면서 강화복 안에서 장기 임무를 수행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기갑계 장갑복을 장시간 착용했을때 발생하는 패닉이나 정신착란, 전투력의 급격한 저하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인란 박사는 이 모든 것이 콧구멍을 파는 것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원인이라 주장했고, 그 뒤에 혀로 이 모든 것을 조작하는 장갑복의 전통은 계속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강화복에 얼마나 익숙한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가장 숙련된 강하보병은 혓바닥 만으로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가끔 주변의 다른 병과원들이 똥싸개라든가 강하보변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놀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전사다. 그들이야말로 우리 조상 야만인들의 진정한 후예이다. 문명의 마지막 기둥 위에 서서 기꺼이 야만을 휘두르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거친 혓바닥을 마주해야 할 적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최악의 사태는 조작하다가 혀 씹어서 헐어버리는 것. 때문에 알보칠은 언제나 모든 기동보병의 구급킷에 상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