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한달 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전봇대 아래 버려져 있는 검정 비닐봉지를 보았다. 분명 그 날은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 아니었는데 누군가 불법투기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쓰레기를 투척한 인간을 크게 원망하며 쓰레기를 걷어찼다.
퍽 소리와 함께 아이쿠 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 목소리였다. 물컹한 발의 감촉도 소름끼쳤다.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나는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여차하면 도망칠 생각을 하면서.
그때 비닐봉지가 벌떡 일어났다.
"저기 밥좀 주세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비닐봉지 안에선 옷차림은 좀 기괴했지만 제법 말쑥한 남자가 나왔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더니 눌러 앉았다.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하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자신은 미래에서 왔단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몇가지 가벼운 재주를 보였기에 그가 정말로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눌러 앉은 게 한달이었다. 그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집 안에서 빈둥거리면서 청소나 좀 하고 주는 밥 먹고 똥싸는 게 전부였다.
미래에서 왔다면 미래기술로 세상을 바꾸거나 잘 살거나 뭔가 세상을 바꾸든가.
하다 못해 존 코너를 암살하러 가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렇게 빈둥거릴 수 있는 거지!
로또 번호라도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분개하는 나에게 그는 말했다.
"형은 1회차 로또 번호 알아요?"
"그걸 어떻게 외워!"
"저도 몰라요."
할 말이 없었다. 그럼 토토라도 하게 경기 결과라도 알려달라니 역시 모른단다. 관심이 없었단다. 애초에 과거로 올 생각 같은 게 없어서 준비한 게 없다고 했다. 하기야 지금 내가 조선시대로 날아간다고 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럼 미래 기술이라도 좀 풀어보라니까 물끄러미 날 보며 하는 말이 가관이다.
"형은 지금 세상에 불만 많아요?"
"아니."
"근데 왜 세상을 망하게 할라고 해요?"
그가 배운 미래기술이라는 건 영능공학이라는 건데 뭐 초능력과 강령술 중간쯤 가는 거라고 했다. 그나마 그가 흉내내는 건 초보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그 기술에 큰 부작용이 있다고 했다. 현재의 화석연료나 원자력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부작용이라 했다.
그걸 개발하면 빌게이츠 저리가라 할 정도의 부자가 되는 건 순식간인데 그 부작용이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면서 그 부작용을 극복하려면 인류가 깡그리 망할 정도의 고난을 수없이 겪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뭐! 알 수 있는 거 없어? 삼숑가 주가지수라도 어찌 되는 지 몰라?"
"형은 세종때 가장 성행한 상단 이름 알아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역사 학자도 아닌데!"
"그럼 그 상단이 언제 흥하고 언제 망했는지 알아요?"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나도 몰라요."
아무래도 이 미래인 자식이 배웠던 건 영능공학이 아니라 사람 복창 터지게 만드는 기술 같았다. 그런 놈이 TV나 끼고 앉아서 라면 후루룩 거리면서 낄낄대고 있다. 인생관이나 다른 건 몰라도 유머코드와 입맛은 아주 원시적인 놈이었다.
"너 임마 이렇게 놀고 먹을 거면 나가서 일이라도 좀 구해봐. 알바라도 하라구! 평생 이렇게 살 거야?"
"형. 가만 있어 봐요. 조금만 있으면 먹고 사는 건 걱정 안 해도 될 거에요."
뭔가 있어 뵈는 투로 지껄이던 놈은 다시 방구석에 드러누워 주워온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좋게 말하면 느긋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날백수 건달 멍게 해삼 같은 놈이었다.
"너 그거 지지난달 신문이야!"
"형.. 작년 신문이랑 제작년 신문이랑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게 그거지."
"나도 그래요."
나는 졸지에 불어버린 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한참 동안 알바를 두배로 늘려야 했다. 왜 내가 이런 놈을 키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힘든 알바도 마다할 수 없었다. 모처럼 페이가 짭짤한 알바를 구했지만 멀리 지방까지 이동해야만 했다. 잠깐 쉬는데 예전에 알고 지내던 후배가 연락을 해 왔다. 한참 사귀기 직전까지 갔다가 파토난 녀석이었다.
"오빠 오늘 바빠요?"
"응 오늘 알바가 있어서...."
"그래도 나 오늘 오빠 많이 보고 싶은데 시간 내주면 안되요?"
"어.. 그게 빼먹을 수 있는 알바가 아니야. 정말 미안하다. 내가 꼭 오늘 말고 .. 아 내일도 안되고 모레도 안되고.. 조만간 꼭 보자 응?"
"오빠 변했어요. 싫으면 싫다고 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정말 가고 싶은데 알바가...."
그녀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본심은 그게 아닌데. 화가 났다. 갈 수 없는 알바를 하고 있는 자신이 화가 났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지방에 내려와서 차편도 없는 곳에서 하는 알바인지라. 돌아가려고 해도 방법조차 없었다.
그 날 밤 늦게 집에 들어갔을 때 미래인 녀석은 평소와는 달리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저 이제 가봐야 겠습니다."
"뭐? 갈 데가 생긴거야? 정말 다행이다."
"형님께선 사실 제 관찰 대상으로 위험인자 가좌코-2411345-개조리 의 먼 조상뻘 되시는 분이었습니다. 연속 시공 파괴체유발인자였거든요. 그래서 형님이 만날 위험인자 유발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폐를 끼쳤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내 후손중에 고질라라도 태어나는 거야?"
"그 비슷한 거죠. 근데 이제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형님이 오늘 저녁에 시간이 남아서 만났던 여성과 맺었을 인연이 사라졌거든요."
그 순간 오늘 나를 찾았던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상부에선 세가지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형님을 거세하던가, 죽이던가, 아니면 납치하던가. 하지만 위험인자가 해소되었다고 판단되므로 이제 더 이상 감시도 필요 없겠죠."
"아. 그래. 그러니까 니가 우리집에서 더부살이 한 이유가 내 연애를 파토내려고 온 거구나."
"그런 셈이죠. 미래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랄까요?"
"그런 놈이 로또 번호를 모른다고? 이 밥만 축내는 놈아! 이번 주 로또 번호를 당장 내놓지 못할까!"
놈은 웃으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엔 번호 여섯 자리가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매우 정확하게 그놈의 한달 식비 만큼의
당첨금이 내 손에 쥐어졌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제 앞에 미래놈을 만나고 미래놈이 번호여섯개를 남겨두면 전재산을 탈탈 털어서 해당번호로 로또를 사야겠군요(웃음)
덧,
로또 당첨금액에 맞춰서 식비를 조절하려면 꽤 힘든 직업인 듯 합니다.
혼자서 당첨금을 독식하려고 여러장의 같은 번호를 구입했다고 해야 겠군요.
1등 총 당첨금이 100억일때
당첨자가 2명이면 50억씩 나눠 갖지만
한명이 같은 번호를 9장 사면..
장당 10억씩 나눠서 90억 vs 10억이 되겠죠.
여러장 샀더니 4등 되어 밥값이 나왔다. 이런 이야기 :)
사실은 로또 당첨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군요.
로또 당첨금 따위야 그냥 농담거리인 거고, 그러니 월 100원대 식충에 ㅋㅋ를 붙이신 거겠죠.
이 글의 흠이라면 '저도'와 '나도'를 통일시키지 못 한(혹은 않은) 점 정도인 것 같네요.
완벽해요.
4등이 5만원이니깐, 음. 3등 당첨 된거군요. 한달에 100만원대 식충...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