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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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동대문 PDD 때문에 헐려버린 동대문운동장을 떠올렸습니다. 그 때문에 해묵은 앙금이 도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로 보존할 건물을 헐어버리고 세운 건물이 나을 게 없다>. 앙금이 커진 나머지 백 마디 천 마디 할 얘기를 한 문장으로 줄입니다. 힘은 써야 할 상황이 올 때까지 아끼면 좋으니까요.
동매문 PDD처럼 현대에 나타나는 그릇되기 그지없는 꼴을 계속 보니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옛날에 있었던 올바른 면모를 되살리는게 마땅하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수원 화성을 떠올립니다.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알면 알수록 여러 각도에서 훌륭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실 얘기이나, 수원 화성은 복원한 성입니다. 6.25로 일컫는 치욕스러운 동족상잔으로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몇 차례에 걸쳐 복원했습니다. 이 불편한 내막을 고려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에는 역부족이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행히도 그러지 않았는데 제대로 남긴 기록이 있는 덕분에 거기에 맞추어 복원한 덕분으로 짐작합니다. 우선 순위에 따로 두는 저로서는 건물 자체보다 그 건물이 어떠했는지를 상세히 나타난 기록부터 우선시 해봅니다. 그 기록을 후대에 남겨준 선대를 향한 존경을 깊게 품으면서 말입니다.
한편, 기록을 최우선으로 하며 건물을 둘째로 치더라도 건물 자체도 훌륭합니다. 기록을 토대로 복원한 유적인 점을 감안해도 역사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재입니다. 수원 화성을 직접보면서 조선 후기에는 어떤 체계로 방어 진지를 짰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서 수원화성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까지 보면서 수원 화성을 세운 과정을 다룬 역사까지 꿰뚫으면 여로모로 도움이 된다고 확실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그릇된 편견을 깨는데 안성맞춤이겠습니다.
이 얘기만 해도 수원 화성을 향한 칭송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수원 화성, 그리고 화성행궁이 있는 덕분에 수원이 확실하게 터를 닦았다는 인식을 적습니다. 나라님을 향한 불신과 의심이 지독한 나머지 성군이 한 업적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정조 대왕께서 수원 화성을 세우신 업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조어찰집을 사서 읽었을 때, 그도 여느 권력자처럼 자신이 권력을 제대로 구사하려 막후 작업을 한 내막을 접하니까 수원 화성과 화성 행궁을 설립한 목적도 권력 행사를 확실하게 하려는 기반 쌓기 작업으로 판단합니다.
정조께서 하셨던 선정을 의심이 깊은 사람처럼 삐딱하게 보지만, 그 선정 덕분에 수원시가 생겼다고 판단합니다. 이겨놓고 싸우듯이 사람이 많이 모이도록 성을 잘 쌓았으니까요. 수원이 이름 뿐만 있었을 고을에서 명실상부한 큰 도시로 거듭난 과정에서 수원 화성이 '반석'같은 든든한 기반으로 확신합니다. 수원 화성을 떠올리면서 이 교훈을 살핍니다. <건물을 세우려면 거기에 오고가며 살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생각하라. 큰 건물일수록.> 동대문 DDP를 오세훈 전임 서울 시장이 자기 허명만 높이려고 했던 삽질로 생각하니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반동으로 수원 화성을 떠올립니다. 되살리면 아주 좋은 올바른 면모를 찾아내면서입니다.
다른 이야기) 수원시에 사는 분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계 어디에도 알려도 손색없는 멋진 문화 유산이 있는 고을에 사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부러운 마음이 깃든 호감까지 적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이 얘기를 다급하게 적습니다.
<오. 우리가 여기서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는 그대여, 그대의 기도 속에서 우리를 잊지 마오.>
- 출처 : 듄 우리말 번역본(출판사 : 황금가지) 제 1권 177쪽
조금 핀트가 어긋나 있습니다만.. 화성 성 자체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아닙니다.
세계 유산에 들어간 물건은 화성성 의궤입니다. 정확히 기록유산 항목입니다.
이론적으로 100% 완벽하게 화성 성을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게한 완벽한 문서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입니다.
그 화성성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 항목에 사진이 들어간 것은 별거 없습니다. 문서에 맞추어 복원한 물건이라는 정도 뿐.. 의궤 설명할때 사진이 나와주기는 합니다만.. 문서에 맞추어 복원한 성정도의 가치밖에 없다고 전 봅니다.
이정도로 성 건축에 관한 자세하고 세밀하며, 참가한 사람 이름에서 건축에 사용된 도구 돌등의 제조 및 제조 도구의 모습까지 기록한 장대한 레시피는 보기 드문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건축에도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봅니다.
실제로도 화성성은 복원한 비율이 상당히 높고 복원한 부분과 원래 있던 부분은 확연하게 들어납니다. 화성 위치가 위치인 만큼 전쟁이 터지면 가장 많이 시달렸던 곳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성을 한번 일주해 보시면 압니다.
현재 화성성 모습은 근 10년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모습입니다. 성벽 아래까지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쌓아올라갔었기 때문입니다.
건축 역사적 가치로 따지자면.. 한국내에 잔존해 있는 왜성이나 복원한 읍성들이 더 의미 깊습니다. 어이 없지만 말입니다. 유명한 일본의 성들 원형에 해당되는 물건들이 조선 남해안에 널려 있으니 말입니다. 실제로도 조선의 왜성들은 전국시대 말엽에 만들어진 유명한 성들을 축조한 가문들이 건축한거라.. 상당히 비슷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양쪽 모두 한번정도 찾아가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건축역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화성성보다는 그 문서 화성성의궤가 백배는 더 중요합니다. 조선시대 건축할 떄 사용되는 용어를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이기 때문이죠.
ps.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현재 그나마 보존된 성문 보수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현존하는 화성성도 처음부터 설계서 대로 만든 물건이 아니라는 거죠. 일부 공정이 생략되었다고 합니다. 추정이라고 전제를 다시지만, 건설비용 절감을 위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화성성 자체가 왕실 금고로만 건설된 물건이다보니.. 하하하하
초점이 많이 어긋났다. 이렇게 느낍니다. 그렇지만, 무르쉬드님이 다신 이 덧글 덕분에 제가 드러낸 오류를 많이 잡습니다.
수원 화성보다 화성성역의궤. 복원된 건물보다 건축 과정을 상세하면서 정확하게 나태닌 기록을 우선시 합니다. 글을 써야 할 때, 이를 제대로 알려야 했으나 쓸 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는 지를 모르다가 무르쉬드님이 다신 댓글을 살피고 나서야 이를 알아차립니다. 몰랐던 사항을 제대로 안 기쁨을 누립니다. 정확하게 기록의 명칭을 명확하게 아니 더욱 기쁩니다.
수원 화성을 일주하는 제안을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돈이 넉넉해서 수원 연무정에서 열리는 전국남녀궁도대회에 참가하는 경우에서나 가능하겠지만요. 직접 보면 무르쉬드님의 견해가 맞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텝니다. 설계와 실제 구축 및 복원에는 어떤 간극이 있는 가를 꿰뚫으면 여로 모로 좋을 텝니다. 벌거지님이 앞서 제시하신 수원 화성 때문에 생긴 수원 시민의 애환도 직접 느낄 수 있겠고요. 여건이 힘드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왜성터나 읍성터를 찾는 제안도 여건이 되면 여기에 따릅니다. 울산 왜성터(현재 학성공원)에는 한 차례, 순천 왜성터에는 두 차례 찾아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각기 아키너스님의 결혼식에 참여하려, 순천 충무사에 찾아가는 목적으로 온 김에 왜놈이 자리잡았던 터전을 보았습니다. 왜성을 향한 견식이 밝지 못하니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요. 그렇지만, 무르쉬드님이 하신 제안에 왜성터를 가려 합니다. 이미 갔던 곳이어도 말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이 있으니까 가기 전에 알 수 있는 사항을 모조리 알고 가렵니다.
수원은 바로 그 성곽 때문에...
어찌할 방도가 없는 교통 지옥이랍니다.
수원 주민들에게 성곽은 애환 덩어리 그 자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