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묻고 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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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지고 있는 목표중 하나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자비로 번역, 출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작권료, 번역비용, 출판/인쇄 비용이 어느정도 들어가는지 감이 안오더라고요.
한 10년전에 얼핏 듣기로는 책 1권, 초판 3000부 기준으로 3000만원정도 잡아야 한다고 주워들었는데요.
요즘은 3000부도 못 찍죠. 초판 1쇄가 1000부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해외 SF 소설 400~500 페이지 1권 (국내 번역시 600페이지 정도 될듯) 기준으로 1권을 출판하는데 어느정도 비용이 들어갈까요?
Live long and Prosper~
으으. 그걸 공개하셨던 모양이군요;;
제가 알기로 페이지나 권수가 늘어난다고 그에 비례해서 (원가 말고)제작비가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그걸 감가상각이라고 하나 뭐라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서적도 대량생산품처럼 제작량이 늘수록 제작 단가는 낮아지거든요.
2천부와 3천부의 제작비 자체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아래 쓴 것과 달리 물류와 유통이 고정비용이라고 하셔서 다른 분들이 오해하실까 봐 여기에 덧붙이면, 제가 말한 물류/유통 비용이 가변이란 건 영업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제작비는 죽었다 깨나도 줄일 수 없는 고정비용이니까요.
그리고 평소에 출판사 사장님들과 자주 교류 하시면서 그런 부분을 넌지시 말씀하시면 출판사에서 아예 벌거지님께 기획안을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홍인수님도 그런 식으로 시작해 지금은 번역가로 활동 하고 계시죠. 그러니 술이 싫더라도 자주 음주를 하시는...
몇몇 출판사 사장님들과 술도 자주 먹고 놀며 저도 그걸 파 보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 자체가 자기 회사의 영업비밀인 만큼 노골적으로 물어보기도 그렇고 말씀도 잘 안주시다 보니 대충 흘러가는 걸로 추정해 보면 차 한 대 값입니다.
차 값이 천차만별이지 않냐고 하시면 맞습니다. 실제로 똑같은 부수라도 제반 여건에 따라 원가가 천차만별이거든요. 정확히는 대충 금액은 저도 알지만 자세한 금액은 사장님만 알고 있다일까요.
확실한 건 원가에서 인쇄비용과 종이값 자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적습니다. 작가에 대한 인세나 표지 그림등에 대한 저작권료 등도 그 수준에 따라 업계에서 통하는 표준 가격표가 있고요, 출판사는 상대적으로 가내공업회사에 들어갈 정도로 소규모인 경우가 절대 다수라 인건비도 고정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모든 제품이 그렇지만 가장 많은 비용은 보관, 물류, 유통에 들어갑니다. 전자책의 경우는 전자책 제작을 해야 하기에 편집실 인력이 증가하므로 인건비가 보관, 물류비를 인건비가 대체하고요.
유통 역시 총판을 통하면 증가하고 대신에 판매부수가 좀 더 늘며(보장되진 않습니다) 직접 서점에 넣으면 대폭 줄어듭니다. 오버마인님은 책벌레라 잘 아시겠지만 출판한 책 3천 권을 판매 가능한 상태로 보관할 장소를 돈 들이지 않고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총판을 통하면 유통비가 대폭 늘어나는 대신에 보관비가 약간 빠지죠.
물류비는 총판에건 서점에건 운반비가 들고 고객에 대한 배송비 또한 대부분 출판사가 부담합니다. 반품시도 마찬가지고 반품서적 자체도 출판사가 끌어안아야 하는 비용으로 생각하셔야 하고요. 또한 인쇄 돼서 갓 나온 책도 포장 과정에서 찌그러지거나 해서 팔 수 없는 파본이 생깁니다. 이 경우 인쇄소나 포장업체, 물류업체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역시 출판사 비용입니다.
정리해보면 인건비(인세나 저작권료 포함), 생산원가, 보관비용, 물류비용, 유통비용, AS비용이 출판 원가가 되는데 이 중에서 거의 고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인건비와 생산원가, AS비용이고 그 이후는 출판사의 영업력에 따라 대단히 큰 차이를 보입니다. 따라서 책 한 권을 출판하는데 드는 돈이 마티즈 값이 될 지 그렌저 값이 될 지는 출판사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보다 구체적인 금액이나 각 항목의 비율 같은건 게시판에서 밝힐만한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원하신다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출판사 사장님 몇 분을 소개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전부 술을 좋아하시는 지라 오버마인님이 조금 힘드실 수도 있겠지만...그것도 다 영업.
여담으로, 물론 상대적으로 적습니다만, 원가만 놓고 보면 전자책이나 종이책이나 큰 차이 없습니다. 같은 책인데 전자책과 종이책 가격차가 큰 차이 나지 않는 건 그래서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전자책에 '유통'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밥그릇 싸움이 굉장히 심하죠. 전자책의 유통은 바로 표준 포맷인데 그것이 구입하는 서점, 나오는 출판사마다 콩가루인 이유입니다.
벌거지님 / 불새출판사의 경우 디자인에서 번역까지 몽땅 사장님이 직접 해서 그 비용이 들었을 거고, 정상적(?)으로 루트 타면 그 돈으로는 안될것 같아서 아에 참조 안했습니다. 저도 단편까지는 번역해봤는데 중편만해도 찔끔찔끔 번역하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안되더군요. 차라리 영화나 미드 자막 제작이 더 쉽지..
모초무님 / 차 한대 가격이라면 역시 제가 생각했던 비용과 비슷하군요.. 창고/물류비용 문제는 전자책 Only로 가면 절약할 수 있지 않을가 생각되는데, 전자책 업체에 또 얼마나 뜯기는건지... (...)
그리고... 저도 초판 3000 부 비용 3000 만원이라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2001년 무렵 시공사 그리폰북스 1기를 편집하고 계셨던 Emily님께서
<추락하는 여인>을 출간할 때 천리안 멋신의 게시판에서 밝혔던 액수였습니다.
3000 부를 찍어 다 팔아야 수지를 맞출 수 있는데, 2000 부 찍는 것도 어렵다는 토로였죠.
(여담으로 그 때를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
당시 <추락하는 여인>의 각 챕터 번호는 마야어로 된 그림 문자로 넘버링 표시를 했는데,
그 마야어 그림문자를 제가 가지고 있었던 책 <마야 문명>으로부터 스캔하여 활용하였거든요)
하지만 단순 비교가 어려운 것이... 시공사는 무엇보다 출판한 책 종 수가 어마어마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출판 물류와 유통망 자체를 수직계열화 방식으로 죄다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물류를 규모의 경제로 커버하게 되면서 책마다 물류 단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였죠.
2001년 시공사의 비용 견적은 당시 상황에서 업계 최소 비용에 해당하는 숫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책 출판이라기보다 그냥 책 형태를 가진 인쇄물 제본이라면 몇 백만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디자인과 교정까지 완료한 파일을 을지로 쪽 제본소에 맡기면 되고, 100~200부 만드는 데 대략 200~300만원 정도 왔다갔다 할 겁니다.
'거울'의 초창기 단편집이나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 동인지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는데, 말 그대로 인쇄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편집, 교정, 디자인, 배송, 보관, 회계 등등) 회원들의 재능 기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용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서점에서 팔 상업적인 책을 내는 게 아니라 '이런 걸 책으로 만들었다'라는 느낌으로 지인들에게 유료/무료로 배포한다는 생각이라면 아마 직접적인 비용은 300만원 이내로 맞출 수 있을 겁니다.
아, 물론 원작이 있는 번역물의 경우 판권료는 따로입니다.
불새 사장님이 올해 초에 공개한 글에 의하면,
300 부를 권당 3 만원에 팔았을 때 60%를 출판사가 가져가면 똔똔이라고 하시더군요.
암산하면 500만원~600만원 정도이면 하나의 책을 만들어 300 부 찍을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불새 시리즈는 책 한 권 두께가 200~300 페이지 내외로 얇았습니다.
더 두꺼운 책을 만든다면 물리적인 비용이 더 들어갈 것을 예상할 수 있겠죠.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로, 과거 기적의책을 추진하신 대표님께 설명을 듣기로는
출판은 물류 비용이 사실상 책 종수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고정비라고 할 수 있는데,
창고 사용과 유통을 3PL로 위탁 관리하더라도 발행하는 책 종 수가 많아야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책 한 두 권만 찍는다고 해서, 들어가는 비용의 덩어리가 확 줄어드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죠.
사족으로...
저도 제가 좋아하는 책을 (실력이 되든 안되든) 번역 출간해 보고 싶어서
대략 10 여 년 전부터 조금씩 준비하면서 찔끔찔끔 번역하고 있었던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이 올해 봄 괜찮은 출판사에서 잘 알려진 번역자에 의하여 갑자기 떡하니 출간되었습니다.
- 남몰래 10 년 준비했던 것이 드낫없이 공념불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약간의 멘붕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