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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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爆大怪獣 ゴジラ (수폭대괴수 고지라)]
고지라는 흔히 괴수왕으로 불리는데, 또 다른 별명도 있습니다. ‘수폭대괴수’란
명칭이 그것입니다. 이름처럼 ‘수소폭탄 때문에 생겨난 거대 괴수’란
뜻이죠. 어렸을 때 고지라를 봤는데, 한자를 잘못 읽어서 뜻풀이를 다르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수폭대괴수(水暴大怪獣)라고 잘못
봤거든요. 그래서 ‘수중에서 등장한 폭력적이고 거대한 괴수’라고 오해했죠. 이런 선입견도 생길만한 것이 사실 커다란 괴물들은 물속에서 주로 나오잖아요. 고전적인 크라켄부터 거대한 고래나 바다뱀이나
용, 레비아탄 같은 것들도 그렇죠. 그래서 한동안 저런 별명으로 알았다가 원래 뜻을 알고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괴수왕은 괴수들끼리 레슬링
하면서 생겨난 수식어죠. 그래서 수폭대괴수란 단어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냥 쌈질 잘 하는 놈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를 상징하는 단어니까요.
1954년 개봉한 원작 주제(수소폭탄의 괴물화)도 단적으로 드러내고요.
개봉이 코 앞인 리메이크 판도 그렇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가 전쟁의 공포를 그려낼
거라고 했죠. 예고편도 굉장히 암울한 데다가 오펜하이머의 문구도 나오고요.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을 반대했다는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이 영화가 욱일기를 사용한 포스터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죠. 전쟁의 공포를 그리겠다고 한 작품이 제국주의 상징을 포스터에 도입한 거 보면
참….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홍보부의 잘못입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은 욱일기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죠. 원작이 일본이니까 별 생각 없이
분위기 내려고 사용했을 거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중대한 잘못을 덮을 수는 없어요. 포스터 하나 잘못 만들어서 멀쩡한 작품이 물의를 일으키는 걸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다행히 배급사에서 해당 포스터는 사용하지 않기로 공식 발표했죠. IMDB 등지의 사이트에서도 모조리 삭제했고, 오프라인에서도
죄다 철수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번 리메이크를 계기로 수폭대괴수라는 별명이 다시 떠올랐으면 합니다. 그간
너무 괴수왕이라는 타이틀만 부각했는데, 고지라의 진짜 주제는 전쟁 공포니까요. (물론 이번 작품도 괴수들과 한판 붙으니, 괴수왕 이미지는 여전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