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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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이야기는 크게 둘로 나뉜다고 봅니다. 이름 그대로 시간대에 따라서 미래로 앞서가느냐, 과거로 돌아가느냐로 갈리죠. 미래로 날아가는 경우, 어떤 점이 어떻게 바뀌는가 알려주면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대개 주인공이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 현재를 바꾸는 게 주된 테마이고요. 그런데 이 둘 중에 굳이 우열을 가린다고 하면, 미래보다 과거로 여행하는 쪽이 인기가 더 많은 듯합니다. 고전적인 <코네티컷 양키>부터 나비효과를 대중화시킨 <천둥소리>나 역사 개입을 주제로 삼는 <타임 패트롤>, 온갖 시간여행 클리셰를 주워담은 <여름으로 가는 문>과 <당신들은 모두 좀비>, 평행세계 개념을 알린 <타임라인>, 밀리터리 떡밥 <최후의 카운트다운>, 자기 살해 패러독스를 말하는 <터미네이터>나 <백 투 더 퓨처>, 루프 이야기를 담은 <사랑의 블랙홀> 등이 대표작들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 시간여행 이야기는 셀 수도 없이 많고, 미래를 배경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도 허다합니다. 이 분야의 선조격인 <타임머신>부터 미래로 갔다가 돌아오고, <닥터 후>처럼 과거와 미래를 모두 넘나들거나 <스타트렉>처럼 이것저것 합친 사례도 있으니까요. 과거 배경이 미래 배경보다 더 인기 있는 소재라고 딱 단정지을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클럽을 비롯해) 사람들이 흔히 논하는 시간여행 성향은 아무래도 과거 쪽에 치우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간여행 토론이라고 하면, 으레 위에서 예시로 들었던 창작물의 주제가 주로 나오거든요. 과거의 잘못이 현대를 망하게 한다는 나비효과부터 시작해서 존속 살해로 일어나는 패러독스, 현대 군대가 2차 세계 대전으로 돌아가 활약하는 떡밥,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가정, 현대인 최강 논란 등등 전부 과거 지향이잖아요. 이에 비해 미래로 건너뛴다는 설정은 과거 귀환만큼 매력적이지 않고, 논란도 덜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미래보다 과거를 공유하기가 더 쉽기 때문일 겁니다. 역사는 어떻게든 족적을 남기니까요.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에게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가서 자료를 찾아봐도 되죠. 근대는 물론이거니와 중세만 하더라도 수많은 기록이 남았을 테니까요. 시간대가 더 뒤로 흘러가면, 그러니까 고대나 그 이전이라면 정확히 알기 힘들지만, 그래도 시도는 가능합니다. 얼마 안 되는 자료라도 교차 검증해볼 수야 있겠죠. 반대로 앞으로 닥쳐올 상황은 예측하기 어려워요. 100~200년은 고사하고 10~20년도 내다볼 수 없는 걸요. 많은 사람들이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상하지만, 과연 누구 말이 옳을지 모를 일입니다. 신흥 강대국이 등장하거나 세계 재난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입니다. 가끔씩 미래 상황을 잘 맞추는 작가들도 있습니다만, 대개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와 다르게 흘러가는 법입니다. 그러니 미래 시간여행은 공감대가 떨어지고, 자연히 과거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걸 수도 있죠.
또한 향수라고 해야 하나, 그런 감성이 있잖아요. 지나간 세월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돌이켜보면 아름다웠던 것 같은 느낌 말입니다. 보상 심리 때문인지 과거를 미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덕분에 복고풍 마케팅이나 추억팔이 상품은 잘 먹히는 수법입니다. 특히 살기 어려울수록 ‘예전에는 참 좋았는데’ 같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죠. 과거로의 여정은 그런 향수를 자극하기 좋고요. 과거가 미화되는 반면, 미래는 두려움의 표상이죠. 사람은 미지를 무서워하는데, 앞날이 어떻게 흘러갈지 제대로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현대 사회는 너무 급격하게 변화해서 (위에서 말했다시피) 100년은 고사하고 50년조차 내다보기 까다롭습니다. 50년 후에 로봇이나 강화복이 상업용으로 나올지 아닐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니 미래로 나가는 것보다 과거로 돌아가는 설정이 더 안정적이고 친근하다는 겁니다.
음, 그리고 창작 상황이나 설정 환경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과거는 꾸미기가 간편합니다. 제작하는 수고가 훨씬 덜 든다는 소리입니다. 2014년을 기준으로 30년 이후를 묘사한다고 치죠.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으니, 국제 정세나 경제, 과학 기술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을 겁니다. 작품에 그런 변화를 반영해야 하고, 당연히 그만큼 골머리를 싸매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30년 이전, 그러니까 1984년은 표현하기가 쉽습니다.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고스란히 재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재연이 결코 만만한 작업이란 건 아닙니다. 목격자가 없거나 기록이 빠지기도 하고, 실수로 고증이 틀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소설과 만화라면 모를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실사 영상물에서는 당시 모습을 복고하려고 진땀 흘리기도 하죠. 가령, 단종 차량을 등장시키려면 개조하거나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과거 재연이 미래 구상보다는 비교적 낫다고 봅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야 참고 자료가 풍부한 게 좋겠죠. (대체역사 장르는 다른 SF에 비해 쓰기 편하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겁니다.)
여기다 역사적 가정도 불을 지핍니다. 현재를 만드는 것은 과거이므로 누구나 한번쯤 ‘그때 이랬다면 어땠을까?’하는 물음을 던져보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강대국 지도자나 정치인, 군인들이 실제와는 달리 행동했다면? 이른 죽음을 맞이했던 유명인사가 급작스러운 죽음을 피한 덕분에 못 이뤘던 이상을 실천에 옮긴다면? 중대 사건에 사소한 변수가 끼어들어 우리가 알던 역사와 정반대로 흘러갔다면? 아무리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해도 이런 물음은 눈을 반짝이게 합니다. 특히 현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근/현대사는 더욱 그렇고, 잘 알려진 중세나 고대사도 도마 위에 자주 오르죠. SF 소설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역사적 가정은 호기심을 보이는 편이며, 따라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물은 접근성이 꽤 낮아요. 따지고 보면, 대체역사물도 이런 전제로 시작하는 장르죠.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가정하는 재미가 떨어집니다.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현재이지, (분명히 오긴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가 아니니까요.
음모론도 과거 여행의 좋은 디딤돌입니다. 세상은 넓고 별의별 사건이 벌어지기에 음모론도 그만큼 다양하게 판칩니다. 위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었거나, 규모는 큰데 미결된 연쇄살인이나,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과학기술 같은 것들이 있죠.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전사했는지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국제 사회에서는 존 케네디 대통령의 최후를 두고 아직도 말이 많습니다. 그리스에서 군사용으로 쓴 화학, 아서 왕이나 로빈 후드가 실제 인물이냐는 질문, 잭 더 리퍼의 진짜 정체 등등 과거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꽁꽁 감췄습니다. 그런데 시간여행을 통해서 이런 사건에 개입하게 되면 어떨까요. 현대적인 지식을 동원해 과거에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파헤친다면, 정말 짜릿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음모론 가지고 미래사를 꾸미는 경우도 있지만, 횟감은 싱싱할 때 먹어야 제맛이죠. 그 사건이 벌어진 시대에 직접 발을 담그는 게 낫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여행보다 미래 여행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과거 여행물도 재미있긴 한데, 요즘은 레퍼토리가 고정적이더라고요.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간다, 과거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시간대에 억제력이 있어서 현재(미래)는 결국 원래로 돌아오는 것이 기본 골자 되겠습니다. 저 억제력이란 게 나비효과, 우주를 관장하는 초인, 시간 그 자체의 동향 등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대략적인 결론은 비슷하더라고요. <타임패트롤> 같은 고전부터 <11/22/63> 같은 최근작까지요. 뭐, 어느 장르든 고정적인 공식이 있긴 합니다만. 과거 여행은 자칫 역사물이나 시대물로 흘러갈 가능성도 높아서 상상 과학적인 재미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중요 사건에 개입해서 우리나라 짱 먹는 플롯처럼 자위용으로 자주 쓰일 때도 있고요. <타임머신>처럼 미래를 살펴보며 현재를 반추하는 것이 보다 SF답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 그렇다는 겁니다. 과거가 현재를, 현재가 미래를 만드니까 어느 한 시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죠.
시간여행에서 '미래'로의 여행보다 '과거'에의 여행이 더 큰 매력을 가지는 것은
시간여행에 대한 욕망 자체가 '과거'로 향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또한 SF라는 장르 자체가 어떤 의미로는 미래로 향해있다보니... 미래를 통해 현실을 반추하기 위한 장치로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활용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경우도 많겠구요... ㅋ
사실 미래로의 단방향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다면 과거로의 여행과는 다르게 너무 평범한 느낌이죠.
어떤 의미로는 모든 인류나 사물이 아주 천천히 반복적으로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걸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극대화한다고 하더라도,
'냉동캡슐이나 아광속 우주여행을 다녀와보니 너무나 바뀐 미래가 눈 앞에 있다'라는 느낌인데,
이건 '시간여행'이라는 감각과는 약간 다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미래'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와 미래에서 본 것을 바꾸거나 미래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해
현재에서 고군분투하거나 해프닝이 발생하는 스토리들이 존재하게 되는데, (최근에 개봉했던 '열한시'가 좀 그런느낌?)
'미래로 갔다가 현실로 돌아온' 순간부터 이 스토리는 미래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과거가 되어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거로의 여행이 가지는 내러티브를 비슷하게 가져오게 되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사실 '열한시'는 과거로의 여행이 가지는 내러티브를 답습하는 것보다는 그리스신화의 예언패러독스의 답습에 가깝겠지만)
사실 SF로써의 시간여행물의 재미는 '과거'로의 여행이냐 '미래'로의 여행이냐를 떠나서 시간을 쌍방향으로 오고가며
시간여행이 가지는 타임패러독스를 얼마나 맛깔나게 가지고 노는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동하는 시간시점이 미래든 과거든 현재에 가까울 수록 말이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