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묻고 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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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배상금 문제하고, 초 인플레이션을 겪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경제사정이 한참 좋지 않은 와중에서 유럽속에서 경제도 무너졌던 독일이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쟁은 물자하고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요.
합병한다고 해도 그 영토를 통제하려면 사람이 또 필요하고...
그런데 독일은 정말 그 단시간내에 군비증강을 통해서 유럽을 어지럽힐만한 군대를 만들었지요. 쉬지도 않고 전쟁을 했고...
전쟁이란게 결국 소모전인데, 저번에서 한번 졌던 독일이 어떻게 그렇게 전쟁을 계속 할 수 있었던건지 궁금합니다.
오스트리아-독일 합병도 잘 이해가 안가는것이, 오스트리아에 무슨 배경이 있었길래 나치가 그렇게 득세할 수 있었던건가 하고 궁금하네요.
ps : 전에 중립국 어쩌구하면서 폴란드 군대에 대해 말한적 있었는데... 잘못 알았습니다. 네덜란드였네요.
Hominis Possunt Historiam Condonare, Sed Deus Non Vult
책을 권해 드리고 싶군요. 대단히 광범위한 애기입니다.
1차세계대전떄 독일이 가지고 있는 생산기반이나 기술인력의 인재 풀은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독일 경제는 배상금 부담과 대공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어느정도 잡아내어 회복기에 들어설 무렵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셈이죠. 2차세계대전에 진입할 무렵에는 어느정도 회복된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독일군대도 나름 미래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단시간의 군비 증강이 성공적이었냐고 하자면 절대로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격전의 전설이라는 책을 보시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주식을 초반에 크게 돈을 벌고 계속해서 거기에 매달리다가 패가 망신하는 사람 애기와 비슷합니다. 독일이 장기전이 가능했던 이유도 결국 초반의 승전 영향이 큽니다.
그리고 독일이 점령지를 통치 했냐 그것도 아닙니다. 프랑스는 비시정권이 대행한 셈이었고, 폴란드 정도가 다 입니다. 폴란드도 결국은 기존 행정체재를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소련 지역은 직접 통치를 시도 했지만 가능할리 없죠. 인력과 장비 부족으로 그대로 파탄났습니다. 대부분 자기들이 직접 통치하기 보다는 기존 세력을 활용하는 걸 택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독일은 문화적으로 같았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굳히 따지고 들어가면 독일은 오스트리아땅이었으니 말입니다. 같이 망한 상황에서 게르만 주의를 내세우니.. 우리가 남인가 자세에 감격해서 품에 안긴 것입니다.
최소 1925년부터 이어지는 역사나 경제, 정치적 이해가 굉장히 많이 필요한 일입니다.
좀더 확대하면 사실 19세기 후반부터(독일 통일 이후) 유럽의 BOP까지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1. 영프미는 대소련의 방어막으로서 중부 유럽에서 독일이 방패가 되기를 원했고 이로 인해서
1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베르사유 조약의 독일 전책 조항이 완화되고 독일 경제 부흥 및 정치적 지원..
2. 1번의 연장선상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었는데 프랑스는 독일 지원을 마땅치 않아했지만
히틀러의 외교술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히틀러 취임이후 독일 확장에 대해서 영-프의 동맹이 작동하지 않았고 저지하는
시점을 놓친 상황에서 독일 팽창이 초반에 강력히 성공. 당시 독일은 1번의 상황에서 교모히 세력을 꾸준히 확장.
경제 부흥 자체는 이미 히틀러 이전에 당시 공산주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 이미 상당히 이뤄지거나 정책이 예정된 상황.
히틀러가 체코 병합후에 이것이 마지막이다라는 거짓말을 철썩 같이 밑고 영국 수상 체엄벌린이 이제는 평화가 왔다라고 해서
당시까지도 패권국에 밸런서였던 영국의 큰 착오가 독일 확장의 저지 실패 지대한 공헌..
그리고 1925년 이래 워싱턴회담등의 성과로 표면적인 군사력 증대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이 것을 깨고 갑자기 군비확대를 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미국이 무제한 생산에 돌입하고 나서는 도저히 게임이 될 수 없었음.
3. 1차대전 이전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부국강병 정책으로 독일은 유럽 최고의 공업생산국이었고 이것이 차츰 회복.
하지만 미국을 이길 수는 없음.. 결국 미국 참전 이후에 물량에서 게임이 되지 않았음. 거기다가 아프리카 전선등은
보급이 잘 되지 않았다는 사실등을 상기해야 함..
4.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대게르만주의와 소게르만 주의가 대립하기는 했지만 1차 대전이 독오동맹대 미영프러와의
싸움이었을 정도로 이들의 유대는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이후에 공고했던 상황이었는데 1차대전에서 패전후에
오스트리어-헝가리 제국은 아주 박살이 나버렸고 이 상황에서 독일의 확장은 약소국이 된 오스트리아 민족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같은 게르만민족이라는.. 히틀러도 오스트리아인...) 실제로 오스트리아에는 나치 SS 친위대가
상당수 나오고 영향력을 발휘.
굉장히 다양한 요인이 있었다고 이야기되는데 몇가지만 이야기해 보자면.
초기 독일의 침공 전쟁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처음부터 영국, 프랑스가 독일에 강경하게 대응했다면 이렇게 확대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소련도 비슷한 면에서 전쟁에 대비가 없었습니다.)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의 전술, 전략적 미숙도 굉장했습니다. 기껏 마지노선을 만들어놓고도 이를 믿지 못해 병력의 상당 수를 마지노선 쪽에 배치하여 국지적으로 전술적 열세에 처했다거나(마지노선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독일의 침공이 임박했음에도 국민동원령을 늦게 내림으로써 무기 없이 행군 중인 프랑스군 사이를 독일군 전차가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죠.
어느 쪽이건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을 생각하지 않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독일의 전격전이라는 개념조차 사실은 영국에서 나온 이론이었으니 말 다했죠.(뭐 사실 이 전격전 자체가 과장된 면이 많았지만요.)
독일의 병기가 매우 뛰어나다고 이야기되지만, 개전 초기 독일군의 전차 전력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독일군의 초기 전력은 솔직히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은 충분해도(그나마 폴란드의 삽질이 있었지만) 영국, 프랑스에 맞설 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할때 사실 2차 세계 대전은 초기에 진압할 수 있었던 작은 불을 방관하다 키운 셈이겠지요.
여담) 그런데 사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계속 우세였던 건 아닙니다. 영국 침공(배틀 오브 브리튼)에서도 초기에는 막 밀어붙이는 듯 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고(그 후에는 영국 공격을 포기하고 그리스나 아프리카 같은 지역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시작된 소련 침공은 스탈린그라드를 기점으로 반전되어 마구 깨지기 시작하죠. 미국의 지원으로 영국이 반격을 하자 각지에서 뭉개지는 모습이 펼쳐집니다.
소련 침공이 초기에 잘 진행되었던 것은 스탈린부터 시작해서 소련이 독일과 싸울 생각이 없어서 준비가 부실했던데다, 스탈린의 숙청으로 유능한 장교단이 사실상 증발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련의 공업력이 그만큼 대단치 못했던 것도 이유죠.
사실상 독일은 초기에 엄청나게 운이 좋아서(그리고 상대의 방심으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 후로는 판돈을 계속 까먹고 패망했습니다. 독일이 2차 대전 당시 계속 활약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독일군 멋지다."라는 이미지와, 초기에 -방심과 운으로 얻은- 엄청난 승리때문이죠. 그리고 또 하나 협력자인 이탈리아군이 워낙 형편없어서 비교되는 것이기도 해요.
애초에 독일이라는 나라가 아무리 공업력이 뛰어나고 전투력이 높아도 유럽을 모두 장악하고 점령하면서 전쟁까지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그냥 욕심이 컸고 처음에 너무 운이 좋아서 잘 나가다 보니...
여담2) 사실 유럽에서 독일이 활개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당연한 일입니다. 유럽에서 소련을 빼면 경제력으로 보나 인구로 보나 독일과 맞먹을만한 나라는 프랑스 하나 뿐이었습니다. 영국은 영토나 인구 규모에서 독일보다 훨씬 떨어지고요. 식민지가 있다곤 하나 전쟁은 총력전이고 식민지는 부록에 지나지 않죠.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방심과 실수, 그리고 온갖 바보짓으로 일찌감치 탈락해 버렸으니 유럽에서 독일을 막을 상대가 없었던 것이지요. 동네 양아치가 유치원에 뛰어든 상황. 막을 자가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독일이 혼자 활개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고 이른바 '독일군 신화'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본래부터 체급이 다른 미국이 개입하고, 덩치는 컸지만 물살이던 소련이 독일에게 무진장 얻어맞으면서 단련해서 나오게 되니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히틀러와 지도층의 바보짓이 문제가 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독일이 버티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종합해보면, 그때 독일이 정말로 절묘하게 운이 너무 좋았네요. 전 오스트리아 병합부터 시작해서 체코 먹을때만 해도 바로 몇십년전 승전국들이 왜 패전국한테 바르샤바 조약 안지키냐고 아무말도 안하고 그냥 던져준거부터 시작해서, 영국은 어차피 멀리 떨어져있고, 프랑스의 삽질은 그렇다치고 그럼 다른나라들은? 폴란드도 당시엔 군사력이 평균은 되었다는데, 그 모든 군사력을 독일 혼자 다 휘두를 수가 있는가... (이탈리아 논외) 보급은 합병한 나라서부터 끌어온다고 쳐도, 관리하는게 독일이니만큼 한계가 있을텐데 싶었는데, 결국 강력한 운빨과 천운이다 싶은 재능있는 인력, 공업력으로 인플레이션해결, 상대진영 삽질 이 모든게 겹쳐졌네요.
제2차 세계대전 일어난걸 가만히 보면, 그때 독일이나 왠지 지금 일본이나 똑같다라는 생각이 많이드는데... 닮아도 이건 너무 많이 닮은것 같아서... 그때의 영프가 지금의 미국에 대입가능할 것 같네요. 3차가 일어난다면 아마 일본발 전쟁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
폴란드는 영토 넓이만 보면 독일과 비교될 만 하고, 공업력이 상당히 뛰어난 수준입니다. 자원도 꽤 많고요. 하지만 인구는 두배 이상 차이나고 군대 규모에서는 더욱 압도적으로 부족하죠.
게다가 폴란드 역시 방심했습니다. 실례로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고 먹어치울 때 폴란드도 끼여들어서 일부 지역을 덤으로 얻기도 했으니까요. 설마 독일이 침공하리라 생각못했던거죠. 그 사이 독일은 소련과 짜고 폴란드를 갈라먹기로 했습니다. (서쪽 1/3은 독일, 동쪽 2/3는 소련)
연합군에서 이 비밀 협정의 내용을 알아냈지만, 정작 폴란드에는 제공하지 않았고 독일의 침공이 임박...아니 사실상 침공하는 상황에서도 프랑스 등은 외교로 해결하려 했죠. 독일군이 폴란드 국경을 넘으려는 그 순간까지도...
폴란드의 전차 중 일부는 독일의 1,2호 전차보다 우수했지만... 수가 너무 적었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편성된 상태도 아니었고요. 100만에 가까웠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류상 숫자일 뿐으로 대부분은 예비역이었습니다. 병기도 부족했는데, 전차의 수만 최소한 3배 이상 차이가 났다고 하니까요.
그럼에도 폴란드는 꽤 선전했습니다. 독일군은 예상 밖의 피해를 입고 심지어 탄약이 고갈될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하지만 병력면에서 너무 차이가 심했고,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갈라먹기로 진행한거라서 상대가 될리가 없었지요.
독일 초기의 승승장구 요인 중에는 이처럼 소련이 독일과 손잡고 뒤를 밀어주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소련군은 분명 장교단이 증발하고 전쟁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지만, 석유 같은 물자를 마구 퍼주었거든요.
여담) 사실 폴란드 침공 작전 당시 독일군은 그다지 잘 싸우지 못했습니다. 아니 폴란드군이 잘 싸웠다고 할까요? (사실 저도 잘못알고 있었지만, 폴란드군은 숫자는 부족했고, 상부가 구식으로 판단하긴 했어도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군대였습니다.) 독일군은 이 침공 당시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으로 인해 프랑스 진격 당시 훨씬 효율적인 전술을 구사하게 됩니다.
여담) 독일군의 선전 요인 중 하나로 기갑 부대를 활용한 기갑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이 기갑전 개념은 본래 영국에서 거론된 것이었다는 점이죠. 하지만 보수적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은 이를 활용하지 않고 기갑부대를 오직 보병의 지원 역할로만 한정한 반면 독일군은 기갑전을 주축으로 진행하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이 기갑전의 철저한 활용 방법도 폴란드 전쟁에서 단련하게 되죠.
음.. 히틀러가 집권당시 내세웠던 구호중 하나가, 독일의 위신을 다시 세운다 였고, 아베의 구호도 '토리모도스(다시 되돌린다.)' 였으며,
그때 영프가 속사정은 어쨌든 독일이 소련좀 막아줬으면 하고 체코가 독일한테 넘어가는걸 조약어기고도 그냥 눈뜨고 장님짓한거나, 미국이 중국견제위해 일본이 자위권 가지겠다는걸 그냥 어물어물 하고 있는거나...
우경화는 물론이고, 대단히 많이 닮은것 같지 않나요? 언젠가 독도 빌미로 자작극으로 한국부터 시작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것 같네요.
전 반쯤 운명론자이긴 하지만 2차세계대전사를 보면 그 운명이란게 확실히 있긴 있구나.. 싶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나치 독일이 강대국으로 돌변한 것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까고 까고 또 깠던 바이마르 공화국이 나치 독일의 경제와 군사력을 거의 재건해놓은 상태였죠.
히틀러는 다 해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자기가 잘났다고 방송했죠.
역사 교육이 갖는 맹점이긴 한데,
굵직한 사건들만 골라서 스냅샷으로 보다보니
마치 사건들이 연이어서 벌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로는 그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극이 있는데도 말이죠.
1차대전 종전이 1918년이고 2차대전 개전이 1939년입니다.
두 전쟁 사이에는 21년이라는 시간 간극이 있습니다.
21년이면 간난이가 대학생 될 시간인데 전후 복구 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뭏튼.... 1차대전 이후부터 2차대전 전까지
독일 상황은 대강 이렇습니다.
1) 전후 배상 처리
1차대전 종전 이후부터 세계는 미국이 주무른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 미국이 전후 배상을 처리한 게 조금 미묘했습니다.
왜냐면 바로 <<전쟁부채>> 때문이었죠.
유럽 승전국들은 1차대전 기간동안 막대한 금액을 미국으로부터 끌어다 썼습니다.
전쟁통에야 급하니까 마구 갖다 썼는데 전쟁이 끝나고 보니 그걸 갚기가 싫은 겁니다.
그래서 프랑스를 필두로 뻘소리 하기 시작합니다.
그 돈으로 결국 우리가 너네 무기 샀으니까 너네 경제 발전시켜준거고,
따라서 안 갚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논리왕)
당연히 미국은 빡치죠. 그래서 머리를 짜낸 게,
일단 독일 경제를 부흥시키면 독일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승전국들에 갚을 거고
그럼 승전국들이 그 돈을 미국에게 주면 된다는 거였습니다. (문제해결?!)
실제로 승전국들도 그 방식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그리하야,
어이없게도, 어제까지 적국이었던 독일에게 미국이 차관과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이 독일에 저렴하게 돈을 빌려주면 그걸로 독일이 갱제를 부흥시켜서 영프에게 배상금을 내고
그럼 영프는 그 배상금으로 미국에게 진 빚을 갚는 이 삼각 시스템이 한동안 지속됩니다.
그런데 1929년, 미국 은행들의 뻘짓이 극에 달하면서 경제 대공황이 뙇 터지죠.
당시 세계 경제 심장이 미국인데 심장이 멎어버리자 전 세계 경제가 추락합니다.
이걸 살리려고 미국 정치인들이 머리 맞대고 궁리하는데,
거기서도 엉뚱한 해결책이 나옵니다.
독일 배상금을 탕감해주면, 독일 경제가 살아날 거고,
그럼 유럽 경제가 살아나서 공황 극복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음?)
그래서 베르사유 조약이 사문화되면서 독일 전쟁 배상금이 큰 폭으로 탕감됩니다.
마침 정권잡은 히틀러는 탕감된 배상금 마저 한푼도 안 낼 거다!!! 라면서 국내 정치용으로 생색냅니다.
미국 묵인이 없었으면 꿈도 못 꿀 일이죠.
그런데, 그럼 대체 왜 미국은 집요하게 독일 경제를 부흥시키려고 했을까요?
당시 유럽의 코카콜라 공장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바로 독일입니다.
전쟁 이후 미국은 독일에 엄청난 규모로 투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독일로 몰려가서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해서 유럽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아직도 자기들이 강대국인줄 착각하고 콧대 세우고 있던 프랑스나 영국과 달리 독일은 패전국이었습니다.
따라서 얼마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2) 자국 국경 내의 산업적 역량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산업기반이 전적으로 국내에 있었습니다.
왜냐면 해외 식민지 개척에서 뒤처졌기 때문인데요, 이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당시 독일의 식민지 사정이 얼마나 웃기냐면,
1차대전 즈음에 이르러 독일도 상당한 해외 식민지를 갖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 쓰레기중의 쓰레기였습니다.
1차대전 뒤에 영국이 독일한테서 뜯어낼 게 없나 고민하다가
이거라도 뺏자 싶어서 해외 식민지들을 뺏었는데
죄다 수익보다 유지비보다 커서 골치를 앓았다고 하죠.
아뭏튼 독일은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공장들이 해외 이전을 안해서 국내 제조업 펀더멘탈이 튼튼했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2차대전이 시작되자 이건 중요한 지구력의 차이로 부각됩니다.
3) 재무장과 거품
경제공황 터지자 미국은 댐 짓고 고속도로 짓고 정부가 돈 풀어서 경제살리기 운동했죠.
실제로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제쳐두고..
독일의 히틀러도 경제살리기를 하긴 했는데 그게 조금 방향이 미묘했습니다.
바로 재무장을 통한 군수산업 부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실제 반짝 효과가 있었습니다.
탱크도 찍어내고 배도 띄우고 공장이 돌아가니까 노동자들도 먹고살만해졌습니다.
그리고 배상금이 탕감되면서 재정적으로도 갑작스럽게 여유가 생겼구요.
그런데 문제는 이겁니다. 군수산업은 선순환이 안돼요.
탱크나 기관총을 뜯어 먹고 살 순 없죠. 결국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독일이 2차대전으로 빨려들어간 이유를 이 경제구조 모순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만약 독일이 2차대전으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경제파탄으로 나찌가 실각하고
히틀러는 골방에서 자살했을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답니다. (시간을 달리는 총통?)
요약하면..
- 미국이 독일 경제 도와줬음.
- 독일 국내 산업 짱짱.
- 공황 터진 뒤 독일은 재무장으로 갱제를 살리고 있었음.
이건 여담인데,
일본 우경화는 제가 보기에 전혀 걱정할꺼리가 아닙니다.
여기 게시판에 있는 분들 살아생전에 일본의 재침략을 보게 될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해요.
오히려 한국의 장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은 다른 데 있습니다.
(나라 말아드시고 계신 윗 분들...)
승리에 승자만큼이나 영향을 미치는게 패자라는 말도 있는데 독일이 프랑스 전역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프랑스의 대응방식이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통신이 두절되서 최고사령부의 지시를 못 받는 부대는 결사항전을 하는데 정작 통신이 두절되기는 커녕 적군이 근처에 나타나지도 않은 부대는 스스로 와해되서 하루밤만에 사단 한개가 증발하던 것이 2차세계대전때의 프랑스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