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송강호 연기가 대단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보고 나니까 그렇게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은 없더군요. 그 분이야 '진작에' 본좌급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새삼 대단하니 뭐니 할 것도 없이 그냥 믿고 보는 송강호일 뿐.

 

2. 직접 보고 나니 세대의 트라우마라는 말에는 전혀 공감되지 않더이다. 영화 보기 전에 그 당시 시대상을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고문과 인권 유린은 일제시대 이래로 1세기 가까이 쭉 이어온 터라 (국보법 뿐만 아니라 일반 형사 사건에서도 흔했을 정도), '그래서 저 사람들이 저렇게 뒤틀어졌구나'가 아니라, '용케도 저 시대를 겪으면서도 큰 희생 없이 지금 이 시대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광주와 박종철 사건 등으로 대변되는 수 없이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 건 사실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더 발전시켜나가야 할 민주주의의 과실에 비하면 희생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당장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저만 해도 거의 고생 없이 공짜로 그 열매를 따먹고 있으니 말이죠. (아직 풋과일이지만)
그 시대의 아픔을 겨우 '트라우마' 같은 말로 표현하는 건, 그 시대를, 그리고 그 전 시대를 계속해서 혁파해냈던 민주 열사들과 그 가족의 희생을 무시하는 것 밖에 안 됩니다.

 

3. 뻔한 이야기 전개에 피식거릴 개그 몇 개 들어가 있는 것 뿐인데, 영화 보는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단순히 '즐길거리'로서의 영화로 보더라도 준수한 수준. 연출과 편집, 그리고 연기의 힘이겠죠. 한가지 단점을 짚자면 '송우석'의 방향 전환이 너무 급박해서 위화감이 든 정도. (하루만에 사상 서적 십여 권을 독파해낸다니!) 물론 보통 머리와 근성이 아니라는 복선은 계속 깔아주긴 합니다만.

 

4. 영화 끝나고 나오는 데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이건 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같이 봤던 집사람은 저사람 국정원 알바 아닐까 하더라는..) 제 생각엔 국정원 알바는 아닌 것 같고 (국정원이 그런 목표가 있다 해도 다른 데 더 효과적으로 돈 쓸 데 많습니다) 정말로 세상엔 다양한 시각이 있는 거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거기서 나와 시각이 다르다고 발끈하고 공격할 게 아니라 그런 시각도 있다고 인정하고 왜 다른지 이해하며,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게 화합과 소통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5. 이제 중년을 넘어 장년의 풍모가 엿보이는 송강호의 얼굴에서, 자꾸 안철수 씨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는군요. 젊었을 땐 별로 닮은 데가 없던 왠지 두 사람이 점점 닮아가는 느낌.

 

사족)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사석에서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라고 예측한 적 있었는데, (불행히도, 5만원빵 내기를 걸었지만 아무도 안 받아줬음.) 다른 변수가 갑툭튀하지 않는다면 다음 대통령은 안철수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20년 전 나의 영웅이었던 사람이, 당장은 부족하지만 5년 동안 그 정도 성장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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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사회는 이상 인간만이 만들 수 있어. 보통 사람은 보통 사회밖에 못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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