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중에는 삽화가 들어간 종류도 꽤 많습니다. 특히 독서 연령이 낮으면 글만으로 이해가 어려운 터라 그림을 곁들이는 편이죠. 문제는 소설 내용이나 문체, 분위기와 삽화가 영 어울리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겁니다. 청소년용이라고 무조건 유치하고 어수룩한 그림만 집어넣거나, 작중 설정을 제대로 읽지 않고서 삽화가 주관대로 그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시각적인 동물이라서 이럴 경우, 그림이 오히려 훼방꾼으로 돌변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괴리감이 꽤 컸던 책이 예전에도 종종 언급했던 <공룡 박물관의 공포>입니다. 소설이 아니라 게임책이지만, 텍스트 비중이 대다수를 차지하므로 사실상 소설 읽는 것과 다름 없는 작품이죠. 영문판은 제목답게 섬뜩한 것들 위주인데, 국내 번역본은 공룡이 나와서 그런지 동화 같은 그림체로 그려놨더군요. 그나마 원래 삽화를 남겨놔서 다행이었습니다.



더러 아동용 말고 성인 대상의 소설에도 이런 실수가 생깁니다. <야만인 코난> 번역본이 이것 때문에 말이 참 많았죠. 머리털이 곤두서는 공포와 괴물에 맞서는 광기가 놀라운 작품입니다만. 중간에 나오는 삽화는 뭐라고 할까요, 꼭 아이들 만화에 나오는 분위기입니다. 고전적인 영웅 신화나 음험한 던전 탐험과 영 동떨어졌어요. 그냥 유치한 거라면 모르겠지만, 반라의 여성을 그려놓거나 해서 더욱 이질적이고요. 인터넷에 코난 삽화라는 그림들도 돌아다니던데, 그게 영문판에 있는 공식 그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걸 보니까 책 내용을 훨씬 그럴듯하게 반영했더라고요. 그게 진짜 공식이라면, 그대로 쓸 것이지 왜 어울리지 않는 삽화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번역본이 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지만, 삽화 문제는 두고두고 걸리네요. 지하철 등에서 함부로 펼치기가 좀 난감할 지경. (같은 작가가 쓴 <솔로몬 케인> 번역본은 삽화도 정말 멋지던데요.)



한편으로 소설 설정이 모호하면, 그림 때문에 이미지가 고정되기도 합니다. <야생의 부름>은 버크라는 개가 주인공인데, 세인트버나드와 스코티시 콜리의 잡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 읽었던 책에서는 삽화가가 이 놈을 붉은 눈의 독일 셰퍼드로 그려놨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직도 버크라고 하면, 두 눈이 시뻘건 셰퍼드가 떠오릅니다. 어차피 버크가 무슨 종이든 소설 감상에는 큰 지장이 없긴 하지만요. <해저 2만리>도 이런 경우인데, 노틸러스는 본래 둥근 시가 형태에다가 갑판에는 조종실과 전등이, 전면에 충각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읽었던 책에는 삽화가 저런 묘사와 영 딴판이었습니다. 함수에 헤드라이트처럼 불이 들어오고, 충각이 없는 대신 간판 앞부분에 큼지막한 톱날이 달렸어요. 그걸로 전함이고 향유고래고 죄다 썰어댔죠. 그래서 노틸러스라고 하면 항상 그 모습이 기억나요.

 

아이러니하게도 <야생의 부름> <해저 2만리>는 오히려 내용에 걸맞지 않은 저 삽화들은 참 마음에 들었네요. 세인트버나드와 닮은 버크와 진짜 노틸러스 모습이 좀 시시했을 정도로요. 이것도 삽화의 부작용이긴 한데, 그림만큼은 아직도 멋지다고 생각하니, 흐음. (하긴 저 두 소설은 책마다 버크와 노틸러스 생김새가 제각각이기도 합니다만.)



어렸을 적에 읽었던 <드라큐라> 소설은 좀 아리송했습니다. 삽화가가 공포를 중점적으로 표현하려 애썼고, 그래서 소름 돋는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드라큐라>는 아무리 인지도가 높다 해도 아이들이 보기엔 좀 거시기한 책이고, 삽화 또한 그러했습니다. 게다가 무섭게 그리려는 나머지 소설과 동떨어진 희한한 괴물체가 나오기도 했죠. 이건 화가 잘못이라기보다 드라큐라를 아동용으로 편집한 게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공포 소설이니 무섭게 그려야 하는데, 아이들 보는 책이니 너무 정도가 지나치면 안 되죠. 그렇다고 대충 표현하자니 분위기랑 동떨어지고요. 더군다나 드라큐라는 영화판 이미지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소설이랑 상관없이 영화 쪽으로 그리기도 하더군요. 아무리 명작이지만, 솔직히 이런 공포소설을 굳이 삽화까지 곁들어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비단 삽화만이 아니라 표지 그림에도 이런 문제가 따르죠. 삽화는 그나마 실리지 않는 작품이 더 많지만, 표지 그림은 거의 대부분 첫인상을 장식하니 더 심각한 수준일지도 모르겠네요. 표지 그림은 그래도 장식에 가까워서 경우에 따라 신경이 덜 쓰입니다. 어차피 첫 장만 넘기면 별로 볼 일도 없으며, 추상적인 면모를 표지로 삼는 책도 많으니까요. 사실 표지 그림을 상세하게 그리지 않고, 대략적인 분위기만 잡거나 추상적으로 그려놓는 쪽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반면, 삽화는 분량도 꽤 되는지라 읽는 내내 눈에 밟히며, 소설 내용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므로 그냥 넘어가기 힘들더군요. 그림체도 좋고 설정 반영도 잘 되었다면 텍스트를 보강하는 걸 넘어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기까지 합니다만. 간혹 작가와 삽화가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례가 있어서요.



개인적인 경험을 좀 이야기했는데, 소설과 삽화의 괴리를 아예 없애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전용 삽화가를 둬서 찰떡궁합인 쪽이 운 좋은 거죠. 혹은 작가가 직접 그리는 방법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훌륭한 작가가 훌륭한 그림을 내놓지는 못합니다. 글과 그림을 모두 담당하는 창작가는 손에 꼽을 만할 겁니다. 당장 기억나는 사람은 영화 개봉이 얼마 안 남은 존 로널드 톨킨이 있습니다. <호비트>에 호비트와 지도, 스마우그, 독수리를 비롯한 여러 삽화를 남겼죠. <반지전쟁>에는 지도만 그려서 좀 아쉽더군요. 거대 전투 장면을 그릴만한 솜씨는 아닌가 봅니다. 어니스트 시튼은 작가이면서도 화가였는데, 동물기를 쓰면서 직접 그림까지 그렸습니다. 늑대 로보나 회색곰 와브, 까마귀 실버스타 등의 삽화는 역동적이면서도 세세하기에 그림만 떼놔도 볼만합니다. (누구는 글 하나 쓰는 것도 힘든데, 누구는 그림까지 잘 그리다니, 하늘은 참 불공평하군요. 흑흑.)



하지만 저런 방법도 임시방편에 가깝긴 합니다. 아무리 톨킨이 직접 스마우그를 그렸어도 다른 삽화가들이 이를 꼭 지키지는 않아요. 알란 리나 존 호 같은 화가들이 그린 스마우그도 톨킨 그림과 차이가 나니까요. 그나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글과 그림이 세트로 묶여 다니지만, 이런 경우는 상당히 희귀하다 하겠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대에요. 소설 특성상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글은 상상력을 유도하는 것이 장점이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상상을 하진 않거든요. 어울리지 않는 삽화가 나오는 건 당연하고, 이런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독자 몫으로 남겨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