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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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지라: 파이널 워즈>와 <퍼시픽 림>의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갑각류는 예전부터 주인공에 대적하는 괴물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아무래도 단단한 껍질이 내구력을, 큼직한 집게가 공격력을 높여주는 호전적인 모습이거든요. 당연히 SF물에도 갑각류 괴물이 종종 등장하고, 괴수물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괴수물의 대표인 고지라 시리즈에는 ‘에비라’라고 하는 놈이 나오죠. 생김새는 그냥 단순한 바닷가재에 불과합니다. 이놈이 등장한 영화 <남해의 대결투>도 그리 작품성이 있다고 하긴 좀 그렇습니다. 고지라와 배구(?)하는 장면은 헤도라의 비행과 함께 희대의 괴장면으로 꼽히니까요.
[고지라 시리즈의 가재 괴수 에비라. 하지만 찬밥 취급을 받는 형편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 담백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기억에 남는 괴수였습니다. 다른 특촬물을 찾아봐도 이만한 갑각류 괴수가 없는 듯하고요. 다만, 희한하게도 인지도가 꽤 떨어지는 편입니다. <파이널 워즈>에도 나왔는데, 다른 괴수나 거대 메카도 아니고 겨우 인간 특수부대에게 두들겨 맞는 꼴이에요. 이 특수부대가 거의 신인류에 다름없는 능력자들이었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눈물 나는 처지였죠. 여기 나오는 괴수들이 광속 퇴장하는 거야 익히 알려지긴 했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들에게 쫓기다니.
예전부터 이 점이 좀 아쉬웠는데, 마침 요즘 개봉한 영화 <퍼시픽 림>에도 갑각류 괴수가 나오더군요. ‘오니바바’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두터운 껍질, 거대한 집게, 어딜 보더라도 게나 가재를 연상시키는 생김새까지 끝내줬어요. 설정을 찾아보니, 갑각 때문인지 방어력 수치가 10점 만점에 9점이었습니다. 이게 오덕 영화라면, 오니바바는 당연히 에비라의 오마쥬겠죠. 첫 등장 장면부터 도쿄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무섭게 진격하길래 그 위용에 오금까지 저렸습니다. 오오, 저 정도의 카리스마라면, 억울하게 퇴장한 에비라의 한을 갚아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니바바가 하도 멋있게 나오길래 가재 괴수의 위용을 살리는가 싶었으나….]
그런 기대를 품고 이제서야 갑각류 괴수가 제대로 대접을 받는구나 희망을 걸었습니다만. 음? 갑자기 골목에 가려 본 모습은 안 보이고 집게만 긁적이는 겁니다. 뭔가 좀 이상하다 했더니, 갑자기 예거 코요테 탱코가 나타나더군요. 그리고 주인공에게 조명이 집중되는 사이, 뭔가 치열한 쌈박질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여전히 본모습이 안 나타납니다. 저는 예거와의 전투 장면을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만 들려주더니 어느 새 출현 끝. 아니, 이래서야 에비라의 울분을 풀기는커녕 똑같이 별 거 없는 조연에 불과하잖아요.
설마 길예르모 델 토로가 <파이널 워즈>를 감명 깊게 보고, 오니바바를 대충 넘긴 건 아니겠죠. 듣자 하니, 프리퀄 코믹스에서는 제대로 등장한다 하더라고요. 허나 그건 만화책 사정이고, 실사물에서는 대접 받기 참 힘든가 봅니다. 갑각류 괴수는 인기가 많지만, 정작 주역으로 쓰기엔 2% 부족한가 봐요.
※ 오니바바를 보고 발탄성인의 오마쥬라고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집게가 달린 것 빼고는 별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발탄성인은 갑각류보다는 야비하고 치사한 첩자, 닌자 스타일이죠. 껍질이 두터운 것도 아니고, 집게 힘이 굉장한 것도 아니고…. 물론 발탄성인의 유명세는 에바라 따위는 비교가 안 되니까 저런 의견도 나오는 것이겠습니다만. 그래도 이왕이면 진짜 갑각류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소설판에서는 오니바바의 비중이 좀더 늘어 난다고 하니 약간 기대하셔도 좋을거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