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린다면, '할머니'를 그려보자. 이 엉뚱한 생각을 적습니다. 다른 사람과 달라 보여야 한다. 이 얊팍한 속셈이 있긴 하지만요. 많은 사람이 눈여겨 보지 않을 부분을 찾아서 관찰하며 거기에서 '남다른 정수'를 얻을 수 있다고 살피고요. '틈새'를 노린 전술이 잘먹히면 당분간 살아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앞문단에 나타난 생각을 드러낸 계기를 이 문단에서부터 이어 적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전라남도 화순으로 갔습니다. 가는 목적이 그 고을에 있는 활터인 '화순 서양정'에서 열리는 전국남녀궁대회 개인전입니다. 개인전 2일차이며 대회 마지막 날이니 간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 날에 갔습니다.

  임실에서 순창. 순창에서 광주. 이렇게 직행버스를 번갈아 탄 뒤에도 화순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습니다. 그 버스 안에서 첫 문장에 나타낸 생각을 확실하게 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버스 안에 있는 통로를 기준으로 제가 탄 좌석 맞은 편에는 어느 할머니가 앉으셨습니다. 옷, 특히 '바지'에 주목했습니다. '몸빼'였기 때문입니다. '왜정 시대'가 남긴 잔향이 오랜 세월이 흘렸어도 남았구나. 이 생각부터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왕 그림을 그린다면 지금 보았던 할머니 같은 사람을 나타내자는 마음을 확실하게 먹었습니다. 모습 뿐만 아니라 모델이 되신 분의 삶같은 내면을 철저하게 나타내기를 갈망하면서요. 그림 연습을 꾸준하게 하기는 커녕 선 한 줄도 안그은 처지에서는 꿈만 같은 일이긴 하지만요.

  저한테 이렇게까지 한심한 일면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 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니까 결점을 제 스스로 드러내는 일도 감수합니다.  제 자신 뿐만 아니라 이 글을 보실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언제 될 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를 나타낸 그림을 그립니다. 누가 보더라도 훌륭하다고 감탄할 만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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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우리가 여기서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는 그대여, 그대의 기도 속에서 우리를 잊지 마오.>

  - 출처 : 듄 우리말 번역본(출판사 : 황금가지) 제 1권 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