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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와의 조우와 해저의 신비를 결합한 <어비스>]



광대한 대양은 예로부터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인류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생물인지라 깊고 푸른 바닷속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죠. 그래서 해저에 온갖 기괴하거나 신비한 존재가 살아간다고 여겼고, 아름다운 인어부터 거대한 크라켄까지 별별 전설이나 미신이 등장했습니다. 이점은 현대에 들어서도 다르지 않은데, 아무리 첨단장비를 동원한다고 해도 바다를 샅샅이 뒤지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심해는 여전히 밝히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았으며, 그래서 창작가들은 여전히 해저를 수상하고 기이한 장소로 취급합니다. 옛날처럼 바다괴물이 산다고 설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술 더 떠서 아예 외계인의 은신처로 삼기도 하죠. 외계인은 사실 지구에 내려왔지만, 육지가 아닌 물속에 있기에 아직 인간이 만나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최첨단 과학을 동원해도 심해의 비밀을 풀지 못하므로 이 점을 이용해 외계인의 미스터리를 부각하는 식입니다.



외계인이 바다로 들어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지구 면적 중 바다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넓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죠. 인류와 마주치기 싫어 모습을 감추려고 그럴 수도 있고요. 우연히 바다로 추락했거나 포탈이나 워프가 물속으로 지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지상의 외계인과 다르게 심해라는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릅니다. 똑같이 해저 외계인이라고 해도 그 모습은 창작물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지상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가 하면, 아예 바닷속에 맞도록 적응하거나 문화를 바꾸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우주선을 잠수함으로 사용하는 등 첨단 기술을 해저 생활에 이용하곤 합니다. 그 험난한 우주도 항해했으니 바닷속에서도 잘 살아간다는 전개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어느 정도 심해 공포증과도 맞닿았습니다. 온갖 어류, 갑각류, 두족류 등 해양동물이란 게 괴물을 디자인하기 알맞거든요. 무서움을 부각시킬 목적으로 바다생물의 모습을 빌리기도 해요.



이런 사례로 가장 대표적인 괴물이 다곤입니다.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존재인데, 생김새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달린 거인입니다.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바다괴물이고, 실제로도 심해의 공포를 담아낸 설정입니다. 얀스레이의 바다로 뛰어드는 결말은 해저의 환희와 섬찟함을 동시에 안겨주죠. 하지만 다곤은 지구의 바다가 아니라 외계의 어느 별에서 왔습니다.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구에서 태어나진 않았으니 사실상 외계 생명체라고 해야죠. 비단 다곤만이 아니라 통칭 위대한 옛 존재(그레이트 올드 원)은 모두 외계 출신입니다. 작가 러브크래프트는 심해의 공포스러운 존재가 미지의 외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봐요. 다만, 흔히 알려진 사실과 다르게 <다곤>이나 <인스머스의 그림자>에는 다곤이 외계에서 왔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크툴루의 부름>이나 <광기의 산맥>과 연결되는 부분(고대존재, 쇼거스 등)이 있어서 다곤도 외계 생명체라고 추정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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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우주와 짙푸른 심해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크툴루 신화.]



제임스 카메론의 저주받은 대작 <어비스>도 바다에서 외계 존재를 만나죠. 초반부~중반부만 하더라도 전형적인 해저물입니다. 심해로 내려가기 위해 각종 장비를 동원하고, 그러다가 바다 밑바닥에 갇히죠. 고립된 사람들은 혼돈에 빠지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 이상한 존재와 조우하며, 영화는 제3종 근접 조우물로 바뀝니다. 이때부터 이 작품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외계의 다채롭고 신비한 모습이 해저라는 환경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죠. 여기서는 오래 전부터 외계인들이 바다 밑에서 살았지만, 인간이 닿지 못해 그 실체를 몰랐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다곤과 해저인마냥 지구를 뒤엎고 인류를 정복하려는 악당은 아닙니다. 오히려 조우를 거부하는 쪽은 인류(미군), 외계인이 선하고 지혜롭게 그려지죠. 이후 확장판에서는 인간을 해롭게 여긴 외계인이 해일을 몰아치는 장면도 추가했습니다만, 결국은 해피 엔딩~.



마이클 클라이튼이 쓴 <스피어> 역시 외계와 해저의 공포를 결합한 소설입니다. 어느 날, 미군은 해저에서 미확인 비행물체를 발견합니다. 바닷속에 있으니까 미확인 잠항물체라고 해야 하나. 대관절 이게 뭔지 조사하러 과학자들을 투입하고, 이들은 금빛 구체와 대면합니다. 학자들은 이 물체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슨 목적인지 조사하지만, 원인 모를 사고가 발생합니다. 난데없이 바다 괴물이 들이닥치거나 이상한 해양생물이 나타나죠. 미확인 물체가 나오니 전형적인 외계 침략물인가 싶지만, 사실은 해저의 공포가 더 비중이 높습니다. 작중에서 아예 <해저 2만리>를 대놓고 오마쥬하니까요. 물론 인류가 외계 존재를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는 주제는 해저와 연관이 없지만요. 배경이 하필 바닷속인 이유는 인간이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외계인이 있긴 한데, 해저에 있어서 함부로 만나지 못한다고 설정하는 작품은 제법 많습니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도 유사한 흐름입니다. 처음에는 노틸러스 이야기로 시작하며, 해저의 신비를 강조합니다. 역시 <해저 2만리>에서 모티브를 따왔죠.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슬슬 이상한 떡밥을 던지더니, 급기야 후반부에서 외계 침공물로 돌변합니다. 잠수함은 우주선이었고, 선장은 외계인이었죠. 레드 노아는 우수한 기술력을 앞세워 인류를 지배하려 하는데, 이는 <우주전쟁>의 분위기나 주제와 비슷합니다. 노틸러스가 레드 노아와 대치하는 장면 역시 바다의 잠수함 대 외계의 전투 기계 구도이고요. 네모가 우주선을 잠수함으로 고친 이유는 다른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고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노틸러스와 가피쉬가 치고 박고 싸우든 말든 지구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를 테니까요. 바다에서 시작해 우주에서 끝나는 장면을 보노라면, 이들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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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을 잠수함처럼 사용한다는 설정이 기발하더군요.]



영화 <클로버필드>는 개봉하자마자 괴수가 어떤 존재인지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온갖 포화에도 아랑곳 않고 도시를 파괴하는데, 정작 이놈이 어디서 왔는지 전혀 설명이 없거든요. 대신 작중에 온갖 떡밥을 뿌렸고, 이 떡밥으로 수많은 추측과 논란이 비롯되었습니다. 내용 전개상 일단 바다 출신이라는 건 대부분 동의하는 듯합니다. 포스터 그림도 뭔가 상륙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요. 하지만 진짜 출신지가 우주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바다로 불시착했기에 클로버 괴수가 물에서 나온 것뿐이며, 실제로는 우주를 떠돌다가 지구로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영화 홍보에 따르면 불시착한 물체는 일본 인공위성이라고 하나, 영화 본편만 봐서는 위성인지 UFO인지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우주 추락설’은 개봉 당시 가장 큰 떡밥이기도 했죠. (아직도 낚이는 관객이 있을 정도.) 우주와 바다가 그만큼 미지의 괴물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최근 개봉한 영화 <퍼시픽 림>은 해저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거기서 거대괴수가 침공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일단 외계 생명체라고는 하는데, 작품 특성상 괴수물이죠. 사실 침공분위기를 극대화려고 외계 출신이라고 하는 거지, 실상은 그저 로봇의 스파링 상대에 불과합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이유도 고전 괴수물인 <심해에서 온 괴물>, <고지라> 등의 오마쥬이기 때문이고요. 위에서 언급한 <클로버필드>와 비슷한 사례라고 하겠네요. 해저에서 올라왔기에 일부 괴수는 생김새가 해양동물을 닮기도 했습니다. 나이프헤드(상어), 오니바바(), 라이주(바다악어) 등이 그러하고, 레더백은 이름도 그렇거니와 일부분 거북이를 연상시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투도 바다, 항구도시(홍콩, 시드니) 등에서 벌어지죠. 이점에서 러브크래프트를 기억하는 관객도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역시 다곤보다는 고지라에 가까워요.



<엑스컴: 테러 프롬 더 딥> 역시 우주와 해저의 공포를 혼합했습니다. <엑스컴>은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내용인데, 갑자기 웬 심해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용상 전편에서 폭발한 화성 기지의 여파로 해저에서 잠들었던 외계 도시가 깨어났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다시 엑스컴을 설립하고, 이번에는 바닷속으로 들어가 인류 사회를 지켜야 합니다. 시스템이 1편이랑 거의 똑같아서 판박이 소리를 듣긴 합니다만, 분위기만큼은 천지차이입니다. 등장하는 적들은 일반 외계인이 아니라 심해어를 과장한 것 같은 생김새입니다. 오징어나 해파리 등의 해양동물이 등장하기도 하며, 배경음악은 침잠하는 우울한 느낌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정말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죠. 해초와 해면이 흐느적대는 배경도 음울함에 일조하고요. 사실 1 <엑스컴: UFO 디펜스>는 평범한 지상전이라서 이계와 싸운다는 느낌이 덜한데, 2편은 바닷속이라 그걸 더욱 부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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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의 무서움이 심해 공포증과 제대로 맞물린 경우입니다.]



이렇듯 신비로운 바다는 미지의 외계 존재가 머무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우주와 심해는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많아요. 눈에 보이긴 하는데, 정작 그 속을 확실하게 알기 어려운 모순이라고 할까요. 바다를 접하는 거야 쉬운 일입니다. 해안가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웃이나 다름없고, 내륙 사람이라도 조금만 수고를 들여 여행하면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배를 타면 망망대해까지 나갈 수 있고요. 하지만 아무리 배를 타고 오대양을 누벼도 깊고 깊은 물속까지 내려가기란 불가능합니다.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밤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세는 것만으로도 우주가 있다는 걸 체험합니다. 망원경을 이용하면 외곽 행성도 관찰할 수 있고요. 하지만 우리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 실제로 거기까지 나가본 인간은 손에 꼽을 정도죠. 바라볼 수는 있으나, 감히 닿을 수는 없는 공간. 우주와 바다는 그런 곳이고, 그래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