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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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임에도 허세 가득하고 독특한 인간상으로 유명한 허드슨 일병]
며칠 전에 <터미네이터> 리부트 소식이 나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떠오른 배우가 하나 있으니, 마이클 빈과 빌 팩스턴입니다. 마이클 빈이야 그렇다 치고, 빌 팩스턴이라니 좀 엉뚱하죠.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아저씨는 제임스 카메론 영화의 감초입니다.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2>, <트루 라이즈>, <타이타닉>까지 주요 작품에 한 번씩 얼굴을 비쳤으니까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엑스트라인데다가 상당히 찌질하게 나와서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요. 뒷골목 깡패로 나와서 T-800에게 덤비다 죽거나, 가짜 첩보원 행세를 하며 여자나 꼬시는 중고차 판매원이거나 등등. 외계 괴물과 싸우는 우주 해병대로 나온 전적도 있지만, 역시나 허세에 찌들었지, 폼 나는 역할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고 항상 바보나 얼간이만 연기한 건 아니라서 <타이타닉>에는 정상적인 탐사대장으로 나왔죠. 이쯤 되면, 농담 삼아 카메론 감독의 마이너 페르소나가 아닌가 싶기도.
[코믹한 이미지로 알려져서 그렇지, 이런 진지한 작품에도 출현했죠.]
또한 떠벌이 허드슨 일병을 워낙 인상적으로 연기해서 코믹한 배우라는 이미지가 짙은데요. 알고 보면 진지한 인물도 자주 맡았고, 진지한 작품에도 종종 출현합니다. 앞서 말한 타이타닉 탐사대장도 그렇고, <트위스터>에는 열정적이고 총명한 기상학자로 나왔죠. <아폴로 13>처럼 묵직하고 잔잔한 작품에도 등장했고, <U-571>에서는 근엄한 미 해군 잠수함장까지 맡았습니다. 똑같은 미 해군 소속이지만, 허드슨 일병과 잠수함장이 동일한 배우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연기폭이 상당히 넓으며, 그 때문인지 골든 글로브 연기상에 거론된 적도 많아요. 물론 빌 팩스턴이 연기한 인물 중에서 허드슨 일병이야말로 가장 독특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거칠고 냉철한 우주 해병대임에도 허세 가득하거나 인간미가 팍팍 풍기는 모습을 보여줘서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일조했죠. 흔히 간과하는 점인데, 빌 팩스턴이 없었다면 이런 긴장감이 다소 낮아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고니 위버도 나왔으니, 속편에는 빌 팩스턴 아저씨도 나와줬으면 좋겠네요.]
사정이 이런지라 예전에 <아바타>가 개봉했을 때, 빌 팩스턴이 조연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역할일지 은근히 궁금했어요. 하지만 시고니 위버만 나오고 이 아저씨는 빠졌더군요. 으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두 배우가 한꺼번에 나오면 에일리언 이미지가 너무 짙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고니 위버가 나온 것만으로도 에일리언을 연상하는 관객들이 많을 텐데, 여기다 빌 팩스턴까지 얼굴 내밀면 완전히 도장을 찍는 셈이니까요. 2015년에 <아바타> 속편이 개봉한다는데, 그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시고니 위버가 속편에 다시 나온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러면 빌 팩스턴은 또 빠지겠죠. 아니, 어차피 <아바타>는 명성을 탄탄하게 쌓았으니, 이제 두 사람이 함께 나와도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속편에서는 저 배우의 감초 연기를 좀 봤으면 싶습니다. 시각효과가 화려한 작품이긴 한데, 인간미 넘치는 인물이 모자라니 그걸 보충해줬으면 해요.
※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빌 팩스턴은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프레데터를 모두 상대했던 경력으로도 유명하죠. 터미네이터에게 뒷골목 깡패로, 에일리언에겐 우주 해병대로, 프레데터에겐 LA 형사로 싸웠으니까요. 물론 호기롭게 덤볐다가 전부 처발려서 3전 3패라는 눈물 나는 전적이긴 합니다. 그래도 저 세 가지 로봇/괴물/외계인을 각각 상대했으니, 이 얼마나 흔치 않은 경험이겠습니까.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 프레데터까지. 저걸 전부 상대한 전적도 자랑하죠. 하핫.]
아바타 속편이 제작되거나 개봉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탁월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마련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생각부터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빌 팩스턴이 영화에 관계 없이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한 영화에 나오면 매우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야구아님이 쓰신 이 얘기를 살피니까 그 배우가 제임스 카메론 관련 영화에서는 <약방의 감초>로 확신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