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시위에 대한 글이 있고, 거기 어떤 분이 폭력시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덧글을 단 걸 보며 기분이 상당히 씁쓸하더군요.

폭력은 시위대가 행사하며 전의경이 일방적으로 맞더라는 늬앙스의 이야기를 하고선 누가먼저 선빵을 치는 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표리부동한 논리를 보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물론 70%정도는 경찰이 선빵을 치고, 나머지 30%의 시위대 선빵은 경찰의 도발로 야기되는 게 90%입니다). 

폭력시위가 나쁘다는 인식을 갖는 것부터 대한민국 교육과 학습의 문제인데 결과를 원인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분뿐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정도의 차이지, 덧글 전체에 흐르는 느낌도 그러했기에 더 씁쓸하기도 했고요.


시위(demonstration)란 단어를 찾아보면 국어사전과 영영사전 공히 그 안에 위력(force)를 과시한다는 의미를 암암리에 전재하고 있습니다.(주 의미 이후 여타 의미부터는 군사적 억지력을 드러낸다는 의미긴 한데 애초 그게 1번과 상관관계를 가진 겁니다.) 간단히 말해 시위란 건 처음부터 위력(force)를 과시함으로써 대상에게 위압감과 위협을 주어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한 방법이란 거죠.


이게 의미하는 바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시위가 길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혹은 둘 중 하나가 임계점을 넘으면서(시위의 기간과 규모는 상관관계를 갖습니다.) 폭력이 수반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우며 또한 당연한 거라는 겁니다. 


문제는 한국에서

1. 폭력 = 악

2. 시위 =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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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위 = 악

이라는 도식을 계속 주입시켜왔고 지금도 그 세뇌를 계속 하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시위 상황에서 발생하는 소요사태란 건 개인이 저지르는 폭력과는 양상과 의미가 다릅니다. 그건 이익집단이 지켜야 할 보루를 두고 싸우는 일종의 전쟁이에요. 나라끼리 하는 전쟁은 (자국이 정당하고 아니고를 떠나)'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처럼 시위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어쩔 수 없다는 거죠. 영원히 언제까지나 평화적으로 진행될 거라는 알흠다운 생각으로 헌법에서 시위,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게 아니에요. 그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시위, 집회, 결사를 할 자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걸 보장해 준 겁니다.

즉 시위에 폭력이 개입되기에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상황 자체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 의식 수준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은 시위가 뭔지도 모르고 왜 하는 지도 모르고 그게 어떤 의미인 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럼 시위에서 폭력이 수반되는 건 당연한 거니 그냥 놔둬야 하느냐?

아니죠. 시위에서의 폭력은 핵이랑 비슷합니다. 하는 쪽에서나 막는 쪽에서나요. 일단 시작되면 양쪽 다 피를 보고 여론도 급격히 악화되거든요. 대한민국의 경우는 좀 더 그런 경향이 심하죠. 대한민국 시위의 99%를 차지하는 어중이떠중이 시위대는 그냥 어중이떠중이다보니(...) 계획된 폭력시위따윈 있을 수가 없고, 전문 시위꾼들조차도 개전과 동시에 핵을 투발하지는시위하자마자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아요.(전경 본대가 지키는 정문 돌파를 시도했다고 정치적 운운하는 것 보고 혼자 풉 하고 웃었는데,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라 그렇게 된 걸 가지고 너무 쎄리오우스하게 이야기 하니 실소가 나온 거였죠.)


시위가 폭력소요까지 번지는 경우는 협상이 결렬되는 상황이 반복될 때입니다. 이건 시민 시위건 노동자 시위건 똑같아요.

보통 상식이 통하는 법치 국가에서는 시위대의 요구 사항을 상식 선에서 들어주며 협상을 시도합니다. 양쪽 다 충돌이 안 생기게 하려고 노력을 하죠. 애초 시위대의 목적은 피를 보는 게 아니라 법원 명령 이행, 법원 판결 이행, 건강권 보장, 부당해고자 복직, 부정선거 타도, 최저임금 상승, 복리후생 보장 따위의, 사소하다면 사소한(그러나 의미는 클 수도 있는)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거든요. 당연한 거지만 대한민국 경찰말고 다른 나라의진압대도 피를 보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머리에 총맞지 않고서야 다른 할 일도 많고 날도 더운데 그러고 싶겠어요?

그러나 한국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요구를 받는 쪽, 즉 국가, 회사, 고용주, 행정부 등등이 등따고 배째라고 나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기 때문에, 가령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는 것보다 용병과 경찰을 고용하는 가격이 싸게 먹히면 그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경찰이 노동자들을 때리고 찌르는 용병들을 경호해주는 그림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시위대의 인내력은 임계점으로 다가가게 되고 어느 순간 선이 툭 끊어지는 거죠. 그러면 온건한 시위에 폭력이 수반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한국 언론이 많이 쓰는 표현으로 폭력시위로 변질 됐다는 문구가 있는데, 기자고 데스크고 시위의 의미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그렇게 하거나 하는 겁니다. 시위란 건 처음부터 폭력 가능성을 내포한 행위에요. 변질되는 게 아닙니다. 시위대의 인내력이 폭력 돌출을 봉인저지하는 거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봉인인내력은 약해지고 결국에는 터져나옵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시위 대상의 성실하고 진정성 어린 협상입니다. 시위대의 윤리관을 탓할 게 아니라는 거죠.


정리해 보죠.

시위란 건 목적을 얻기 위해 위력을 과시하는 행위고 폭력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습니다. 시위에서 폭력이 보이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짜 민주주의 의식을 가진 시민은 폭력시위를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인지합니다. 그러나 폭력 시위를 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며 그 상황까지 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주체는 시위대의 윤리도덕의식이 아니라 협상대상자의 진실되고 성실한 대응입니다.

한국처럼 돈으로 해결하면 되니 등따고 배째라는 나라에서 원하는 시위는 어쩌면, 인도에서의 보행조차 방해하지 않고 열과 오를 맞추어 조용히 행진하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실제로 거의 99.99%의 시위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문제는 그걸로 끝나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조용히, 군대 행진하듯 하다 끝나는 시위는 공산당빨갱이 국가에서 국가주도로 하는 퍼포먼스 뿐입니다.



p.s1 불법폭력시위 통계청 자료(새 창 열기) 이 통계는 철저히 경찰의 시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진압하러 갔다가 지들끼리 장난치다 넘어져 긁힌 생채기나, 시위대와 부딪힌 걸로 전치 4주 끊고서 집어넣은 자료죠.(의료소견과 시위대 상황을 고려해서 만든 민변 자료가 있었는데 찾질 못하겠네요.당연히 저것보다 훨씬 적어요.) 그런데도 불법폭력시위란 게 1%에요. 

다시 말하지만 철저히 경찰쪽 자룝니다. 지들이 둘러싸고 자리 좁혀 오기에 비키라며 툭 건드리기만 한 시위대 사람을 폭력이라고 연행한 다음에 내는 자료요. 할 수 있는 한 자기들에게 편리한 쪽으로 해석해 우기는데도 폭력 시위는 1%도 안 돼요. 

그러나 대다수의 언론은-그 하나는 폭력시위 나쁘단 분 말 맞아요. 극히 일부 언론만이 시위대가 경찰에게 쥐어터지는 걸 보도할 뿐이니- 경찰을 쌈싸먹으며 국가를 멸망시킬 집단으로 시위대를 묘사하며 폭력시위 나퐈요~ 라고 하거든요.


p.s2 비록 얼마 안 되는 짧고 좁은 경험이었지만 호주나 미국에서 시위란 건 아주 당연한 권리고 개인에서 집단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한국에서야 그 나라 경찰들이 시위대를 개발살내는 것만 보여주지만 거기 경찰들은 시위대를 도발하거나 먼저 때리지 않음은 물론 일개 경찰 주제에 시위를 해도된다 하면 안된다 이런 거 못하는 나라라는 게 진짜 핵심이죠.) 시위에 폭력이 수반될 경우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는 '그럴만 하니까 그렇겠지'란 반응이었지 '그래도 폭력은 좀...'이나 '폭력시위 나빠'가 아니었어요. (계네는 피와 땀으로 자유를 쟁취했기에... 하는 논의는 일단 접어둡시다. 논점은 한국의 시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