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밤...

빗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히는데..

 

세상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는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그 괴로움이 너무 커서 이곳에나마 글을 남겨 봅니다.

그나마 이곳에 계신분들은 이성적인 조언을 주실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여자가 맘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만남을 거듭하던 중 우연히 알게된 그녀의 이메일 주소를 통해

인터넷에서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개팅을 하면 전화번호, 이름으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거의 대부분 찾아내던게 제 버릇입니다.

인터넷 뒤적이면 중요하건 아니건 무언가는 나타나는게 보통입니다.

 

그렇게 인터넷을 뒤적여 그녀에 관한 글을 찾아 냈는데..

산부인과 게시판에 남겨진 중절수술에 관한..

무려 10년도 더 지난 상담글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출근한 몸인데도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을 보냈던게 며칠 전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제 정신은 정상이 아닙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적인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제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서 그녀가 겪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란게 이렇게 뒤죽박죽인걸 보면 

저란 인간은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가 봅니다.

 

서로 늦은 나이 인데다 결혼을 목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도 잘 통하고

밤 11시가 넘어서 그녀가 일이 끝나는 관계로 늦은시간에 만나

불면증으로 새벽녁에야 겨우 잠드는 그녀를 위해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공원에서

함께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게 주된 데이트 코스 입니다.

겨우 세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출근해도 저는 피곤한 줄 모르고 행복했습니다.

 

그녀의 집에서는 이미 저와의 궁합까지 본 상태이고 안좋게 나온게 없다며

아직 만나뵙지 못했지만 그녀의 부모님께서도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녀도 잘 나와서 좋다며 저에게 이 사실을 듣자마자 알려왔습니다.

궁합이란걸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게 나왔다고 하니

저역시 기쁘기만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녀의 일상은 평범합니다.

누군가의 딸이고, 누나이고,  이런저런 소소한 고민들을안고 사는,,,

동물 좋아하고 문구류, 캐릭터 상품을 좋아하는, 아직도 어린왕자를 동경하는 여자 입니다.

 

그녀가 이십대 초반 사귀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한번.

그리고 성폭력에 의해서 또 한번의 중절수술을 겪었나 봅니다.

저는 산부인과 공개 게시판에 남겨진 글을 보고 말못할 충격을 받았지만,

외면하고 싶었던지 어쩌면 그녀가 남긴 글이 아닐거라며 애써 부정하려 했습니다.

그녀는 꽤나 이성적이고 자기 결단이 강한 여자입니다.

그러한 그녀가 저렇게 부주의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탓에...

 

가입절차가 필요없는 비공개 게시판이 있음에도 공개 게시판에 그러한 상담 글을 남겼을 만큼

그녀가 부주의해 보이지 않았고 글의 내용이 너무 적나라해서

이건 마치 누군가 그녀의 닉네임과 이메일을 이용해 남긴 글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녀가 정말 힘들었던 지난날이 있었다며 눈물을 비치는걸 보고

제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그 글이 그녀가 쓴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몇년간을 방황하며 보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듯 합니다.

저는 무슨 내용인지 물을 필요가 없었기에 애써 위로한답시고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중요한것 아니겠느냐며

상처를 통해 더 성숙해지고 강해지는게 인간이라는

준비된 말을 이용해 그녀를 위로했습니다.

참...제 자신이 가증스럽다고 느껴집니다.

 

엊그제, 그 산부인과 전산 담당자에게 전화해 글을 지워줄것을 요청했고

그녀의 글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인터넷으로 그녀의 과거가 드러나는 일은 없을텐데...

겨우 그만한 일을 했다고 제 마음이 좀 진정되는것 같다니...

도대체 저란 인간은..

 

데이트 하고 난 이후마다 그녀는 저와 함께 있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카카오 스토리에 남기고 있습니다.

읽어보면 자신도 이제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것 같다는...

저와 함께 있었던 몇시간이 자신에게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온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영어로 남깁니다.

입시학원 영어 강사 거든요..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녀의 글을 해석해 가다 보면 그녀가 제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 느껴 집니다.

 

하지만 저는 흔들립니다.

미칠것 같습니다.

그녀의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훗날 저는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그녀의 과거를 탓하지 않을까

제 자신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솔직히 그녀의 과거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의심스러울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어떨때는 여기서 끝내야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흔들립니다.

키작고 못생긴 저같은 노총각이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한편으로는 2세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두번이나 중절 수술을 받았다는건 아무래도...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저란 인간의 멘탈은 그리 성숙하지 못합니다.

살다보면 이러저리 갈등을 겪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내뱉을 수 있는게 ...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를 더 다독이고 아껴주거나

반대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게 결혼생활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저 하나만 온전하게 마음을 다잡으면 ...

그리고 저만 변하지 않으면 될것 같은데

정작 저는 ....스스로를 못믿겠습니다.

 

결국 제 스스로의 마음에 달린 문제임은 분명한데

어떠한 경우에도 그녀에게 과거를 들먹이며 상처를 주고싶지 않은데...

성숙치 못한 저란 인간을 스스로 믿지 못하고

이 밤에...이러고 있습니다.

괴롭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보니

그나마 이성적인 분들이 모인 이곳에 이렇게 주절 거립니다.

 

그녀를 만나면서 감정이 더더욱 깊어지면 저는 그녀의 과거 상처를

온전하게 끌어 안을수 있을지...

또다른 상처로 서로를 마음아프게 할지....

 

미치도록 괴롭습니다.

그녀의 과거를 제 머리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차라리 알지 못했다면...그리고 계속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면 저는 행복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