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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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으니 이 얘기를 씁니다. 몇 년 전부터 떠올린 생각을 쓰면서 다듬어 봅니다. 성상으로 쓸 돌을 정성스럽게 깎아내는 석공처럼 마음먹으면서요.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이다>. 제목에 쓴 이 문구는 어느 순간에 절로 떠올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책이나 영상 매체에서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직접 경험하다가 떠올린 생각했습니다. 옛사람이 이 생각을 나타낸 격언이나 명대사를 남겼을 테지만요. 어쩌면, 다른 사람이 일치감치 했는데 아직까지도 그 출처를 찾지 못했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4년 전이었을 텝니다. 그 해 2월에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자 저는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절두산 순교 박물관을 찾아간다. 이 목적이 앞섰습니다. 다른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쓰는 얘기와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니까 이를 쓰지 않습니다. 절두산 순교 박물관을 찾아갔던 목적이 이러합니다. 그 곳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전시회가 열린다. 늦었으나 이 전시회를 통해 그 분이 생전에 남긴 흔적을 접하자. 이 마음이 아주 컸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제 스스로 절두산 순교 박물관에 찾아갔습니다. 천주교도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 곳에서 도착하고 나서는 제목에 나타난 생각을 품은 계기가 생겼습니다. 전시회가 있는 건물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그 때는 어떠했는지. 이 기억을 되살립니다. 잊고 지내다시피 했기 때문에 희미하지만요. 전시관 내부에서 방명록이 있는 자리였을 텝니다. 혹은 성물을 파는 상점을 비롯한 다른 장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소가 어떠하든 한정판 사진첩이 보았던 기억만큼은 되살립니다. 저는 그 물품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 훌륭한 어르신이 생전에 활동했던 모습을 담아냈으니까요. 그런데 큰 벽이 부딪쳐서 그 마음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10만원. 저한테는 감당할 수 없는 큰돈이었기 때문입니다.
사고 싶었던 한정판 사진첩의 가격을 알아챈 순간, 머리 안에서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이다가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금방 각인되었습니다. 이 각인된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 했으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결례이다. 이 생각이 재빠르게 막아섰습니다. 한정판 사진첩을 파시는 아주머니부터. 선종하신 어르신과 그 분을 뵈려온 많은 사람들한테도. 장소가 장소이니 그 생각은 크나큰 결례이자 신성모독 같으니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마음 안에 깊게 박힌 이 생각을 다른 데에서 털어놓았지만요.
잠이 들지 않은 김에 제 삶을 되돌아보자. 다른 사람한테도 좋은 얘기이기를 바라면서. 이 마음으로 몇 년 전에 있던 얘기를 간간히 떠올리며 적습니다. 어느 시기가 정확한지. 여기부터 잊어버려 부끄럽긴 하지만요. 아주 뜻밖인 장소에서 매우 비딱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생각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자. 이 생각을 같이 하니까요. 글쓰기도 훌륭한 종교처럼 그런 마음을 움직이면 좋은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이 얘기를 씁니다.
여담) 이런 경험담을 털어놓으면서 다른 하나를 확실하게 알립니다. 저는 천주교와 그 종교에 깃든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신자한테서 호감과 존경심이 있습니다. 본문에 잘 나타난 대로 천주교도가 아니면서 절두산 순교 박물관에 찾아간 이유 중에는 이 감정이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냉소주의자에게 걸맞은 생각을 했다고 해서 천주교와 그 종교를 따르는 신자를 비난하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이 여담을 같이 씁니다.
<오. 우리가 여기서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는 그대여, 그대의 기도 속에서 우리를 잊지 마오.>
- 출처 : 듄 우리말 번역본(출판사 : 황금가지) 제 1권 177쪽
눈앞에 뻔히 보이는 오류조차도 신의 이름 아래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다 합리화가 된다는게 너무 이상했습니다.
신에게 간절히 빌고서 이루어지면 신의 뜻이고, 잘못 되면 자신의 믿음이 적어서라는 것도 너무 이상했습니다.
신성이 교육을 통해야만 체득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교리는 계속 변해가면서, 처음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진 교리에도 불구하고 다들 자기들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심지어 이교와 혼합되었음을 뻔히 알면서도요.
자기들의 성전이 과거 일부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간추려지고 편집되었음을 알면서도 오로지 그 성전 외에는 인정을 안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신에게는 거의 무의미한 것일텐데 왜 현재에는 인정받은 선지자나 예지자가 나오지 않는지 너무 이상합니다.
첨언하자면, 결국 종교가 되어 후대에 남는 것은.. 더 나은 진리라기 보다는..
국가, 혹은 지배권력과 하나가 되어 그 지배력을 더 강화하고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 경우에 일어나는 일이겠죠.
세계의 지배적 종교의 경우 그 과정이 생략된 건은 따져봐도 단 한건도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애초 본래의 뜻이 희석되거나 왜곡되는 일도 흔하게 일어나곤 하죠.
종교적 교리가 완벽한 상태로 태어나는 종교는 별로 없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겠죠.
보통은 후대의 해석과 첨언 집대성 등을 통해 보다 높은 경지의 철학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종교가 부패하지 않은 시절을 찾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창시자 당대에서도 쉽게 부패해 버리니까요.
신선한 종교의 유통기간은 사람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시스템으로서의 종교가 부패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과욕일지도 모르죠.
인간들 사이에서 존재하기 위해선 이미 부패를 감내해야 할 테니까요.
또 한 편으로는,
마음보다는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가 더 시급하기 때문에...
경기불황에 직격탄을 맞게되는 장사가 바로 종교이기도 합니다.
불황이 심각해지면 종교단체의 헌금액수가 가장 먼저 떨어진다고 하니까요.
한국에서 불교는 오래 전부터 산을 소유한 경우가 많아서 땅부자라는 면이 있지만
기독교는 겉만 번드르하게 교회 짓느라 빚을 많이 져서 거의 알거지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대형교회들도 빚이 수 백억을 훌쩍 상회하여 사실상 원금 상환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도 많죠.
해외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은 유럽과 미국의 경제가 결딴난 이상 앞으로 불경기를 겪을 수 밖에 없고,
한국 사람들의 엥겔 지수가 올라갈수록 당연히 종교단체로 가는 헌금액수는 나날이 줄어들 것이며,
수 많은 한국의 교회들은 앞으로 존립 기반 자체가 붕괴하면서 무척 어려워질 겁니다.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죠. 불교에서 흔히 하는 말중에 절에 왔으면 부처님을 봐야지 스님을 보려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만 종교인도 결국 사람이다는 뜻도 있지요. 위의 이야기중에 한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글쓴이가 김수환 추기경의 한정판 사진집을 본인의 구매한도 내에서 사지 못했다고 그런 생각을 품게 됐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설마 종교단체가 무일푼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신건 아니실테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비싼 가격이라고 해서 그걸 장사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사실 의아스럽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다양한 종류의 한정판이라 불리는 것들의 가격이 얼마일까요. 얼마전 팬들을 우롱하는 고가 연예인 기념상품에 대한 뉴스가 나왔었는데 손수건이나 공책 등에 연예인 얼굴이 그려졌다고 몇 만원씩 받는 경우가 나왔었습니다. 한낱 연예인의 단일 상품조차 그런 가격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비판받기는 했지만 말이죠. 김수환 추기경같은 분의 한정판 사진집이 10만원 가치조차 안될 정도로 부실하다거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만일 한정판 사진집이 신부님이나 수녀님의 부를 불리는데 사용되는 것이라면 글쓴 분의 말씀이 맞을 겁니다. 그렇지만 종교도 결국 사람에 의해 굴러가는 것인데 종교인들도 먹고는 살아야겠죠. 세속인의 먹고 사는걸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실제 생존을 위한 돈으로서 말이죠. 예전에 종교신문을 보는데 종교인들이 나이를 먹고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노후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기사를 봤던 적이 있습니다. 몇몇 배부른 목사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배고프고 힘든 생활을 하십니다.
쌍팔년도 시절에 강남에 위치한 유명 사찰들의 부정부패나 작금의 대형교회의 세습같은 부류를 본다면 특정 종교인들이 사람의 마음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종교는 잘못이 없는 겁니다.
만약 그 사진집이 1만원이었다고 하더래도 누군가에겐 무슨 사진집이 1만원이나 하냐면서 종교가 장사나 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정 재화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죠. 종교와 돈은 무조건 서로 연결되면 안된다고 생각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종교와 종교인도 결국 돈은 필요하단걸 아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소한의 돈만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하시는 종교인들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간결하기 쓰느라 여러 사정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낱말을 잘못적어 격한 반발을 불러왔다고 판단합니다.
<종교는 사람의 마음으로 대상으로 하는 장사이다>. 툴카스님은 장사, 이 용어 때문에 격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여기에서 용어를 잘못 적었다고 여깁니다. <종교 활동은 사람의 마음으로 대상으로 하는 경제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바꾸고 시작합니다. 처음에 쓴 구절에 비해 애매모호하지만 용어를 잘못 쓴 것을 고친 계기가 되었습니다. 종교와 관련있는 경제 상황은 단순하게 장사로 치부할 수 없고요. 여기에서는 고마워 합니다.
그런데 툴카스님이 쓰신 댓글을 살피니 저를 오판을 한 부분이 있으며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 있습니다. 첫문단의 끝문장부터 얘기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한정판 사진첩에 걸린 가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만원이든 10만원이든 심지어는 백만원이든 살 수 있다면 기여코 샀습니다. 의인의 생애를 나타낸 사진첩. 그 자체만으로도 도무지 가격을 잴 수 없으니까요. 그 생각을 할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어떻게든 얻고 싶을 정도로요.
그러나 그 때 접했던 가격인 10만원은 제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한정판 사진첩을 살 경우에는 다른 활동을 전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목적지가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쓰는 교통비와 식비 중 태반을 써야시피하니까요. 돈을 넉넉히 가져오지 못해서 그 성물을 사지 못한 점에는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제 자신이 못나기 때문에 하늘이 주신 기회를 저버렸도다>. 이렇게 되돌아 보면서요. 이 내막을 털어놓으면서 한정판 사진집이 10만원 가치조차 안될 정도로 부실하거나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오판입니다. 그 때는 제 인생을 바꾸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4년 전에 있던 일을 차분하게 되돌아볼 만큼요. 그 사진첩을 샀으면 제 삶이 더욱 크게 바뀌었을 텝니다.
두 번째 문단에 후반부에 나타났던 사연은 저도 크게 안타까워 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종교인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내막을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여기에서는 매우 길게 적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도 그러한 내막을 어렴풋이나마 느낍니다. 사는 곳이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읍내입니다. 밖에 다니면서 좁은 동네에 개신교 계열 교회가 너무 많다고 느낍니다. 임실순복음교회, 임실침례교회, 임실반석교회, 임실교회, 임실새소망교회 이외. 제가 찾은 계신교 계열 교회가 다섯이며 집 근처에는 교회 하나가 세우는 중입니다. 건설 중까지 포함하면 임실 읍내에서는 계신교 교회가 여섯 이상인 셈입니다. 제가 찾지 못한 곳도 있을 테니까요. 반면에 천주교는 임실천주교회, 한 군데 입니다.
교회수 만을 살피더라도 개신교 계열이 이상할 정도로 많다고 느낍니다. 여기에서 남한 개신교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이러하다고 여깁니다. 한정된 신자 수에 많은 교회. 이 내막이 개신교 계열에서도 빈익빈부익부가 확연하게 나타나는 근원으로 살핍니다. 더구나 천주교처럼 안정망이 없다는 점이 더욱 심각합니다. 천주교는 국가에 세금을 납부합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도 세금을 냅니다. 그러면서 천주교 성직 종사자에게는 4대 보험에 들어가니까 은퇴한 뒤에도 연금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천주교에서 구현한 안전망이 없다시피 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지만, 모든 활동을 신자로부터 받은 헌금으로 기대야 하는 처지에 물론 여기에서도 예외가 있겠지만요. 문제가 여기에 그치지않고 다른 분야에도 있습니다. 몰지각한 종교인과 신자가 벌이는 작태만으로도 매우 골치아픕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앞문장에 언급한 점과 같은 다른 사항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길게 썼으니까요.
<종교와 돈은 무조건 서로 연결되면 안된다고 생각하시다면>에서 안타까워 합니다. 툴카스님이 이런 생각을 하실만큼 제가 글을 잘못 썼는가부터 되돌아 봅니다. 그 때, 절두산 순교 박물관에서 겪은 이 생각으로 종교는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돈이 제대로 들어와야 종교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거죠. 사람을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도 크게 유용하지요. 김수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하셨던 의로운 활동은 천주교도께서 묵묵히 내신 헌금이 토대였다는 점은 아둔한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안 이상 이와 관계있는 분야를 살피면 유심하게 살피고자 합니다. 본문에서는 이런 변화를 나타내지 않고 그 시기에만 느낀 감정만을 기술했으니까 툴카스님이 저를 오판하신 듯 합니다.
툴카스님이 제 잘못을 지적하는 댓글을 보자 본문에 쓰지 않는 내막과 더불어 그 동안 있었던 변화까지 서투르게나마 적습니다.톨카스님이 잘못 판단하셨다고 여긴 부분을 찾으면서 꼭 필요한 부분만큼은 집어서내면서요. 톨카스님이 댓글을 대한 답글을 써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이 댓글을 쓴 이유를 적습니다. 오판으로 생긴 오해가 풀리시기를 바라면서요.
서로 대화를 하면서 이야기해도 본인이 의도한 바에 70%도 전달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때문에 부처님의 염화미소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나름 사정이 있을거라 생각을 하고 댓글을 썼는데 보시기엔 과격해 보였나 봅니다. 글의 늬앙스가 가격이 비싸서 못사겠고 이건 장삿속이 아닌가 하는 의미로 보였었습니다. 이부분은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시리라고 판단해 봅니다.
제가 쓴 댓글에 대해서도 글쓴분의 의도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여기시는만큼 저 또한 글쓴분이 제 댓글에 대해 잘못 파악하고 계신 부분이 있어 보이지만 어차피 큰 틀에서 보면 틀리진 않은거 같기에 구구절절히 따로 적진 않겠습니다.
종교인의 노후에 관해선 각 종교계마다 복잡한 사정이 있을 것이고 댓글에서 예시로 들다보니 쓴거라 딱히 거론하진 않는게 나을거 같습니다. 사실 그 부분말고도 돈이 필요한 것들이 다 있죠.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에 돈이 필요한만큼 종교활동엔 사실 돈이 들 필요가 없다는게 종교의 큰 의의가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양무제가 수나라를 일으키고 불교를 크게 일으키고 각종 사찰을 짓고 스님들을 대접합니다. 나중에 달마대사를 만나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달마대사 왈 공덕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예상해 봅니다. 외국에선 십일조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데에 무슨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부처님의 말씀대로 배우고 따르는데 어떤 돈이 들겠습니까.
덕분에 다시 한 번 종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국민학생때 집 근처 교회의 여름학교인가를 우연하게 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친구 x명을 데리고 오면 그 교회안에서만 쓸 수 있는 내부화폐인 달란트를 얼마 준다 이런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나이때 치고는 명석했네요(그런데 지금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