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서 종종 하는 말이지만, 자고로 글쓰기는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떻게 써야 좋을지 머리를 쥐어뜯는 작가나 지망생이 어딘가에 있겠죠. 그런데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전부 똑같은 작품을 쓰진 않습니다. 누군가는 애틋하고 감성 넘치는 사랑 이야기를, 누군가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미스터리를 쓰겠죠. 그러니 글 쓰는 난이도도 장르나 종류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더군요. 가령, 일반적인 액션물보다는 연애물이 훨씬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남녀간의 심리 차이나 섬세한 감수성 묘사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으니까요. 물론 창작이란 행위에 순위를 매길 순 없습니다. 연애물이 액션물보다 정말 쓰기 어렵다 해도 로맨스 작가가 무조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어요. 로맨스 작가는 그만큼 액션이나 전투, 공포 묘사가 약하기도 하니까요. 다만, 일부 장르는 다른 것보다 특별한 기교가 필요할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우선 위에서 계속 언급했던 연애소설은 꽤 통속적입니다. 남녀의 사랑은 고전적인 주제이니 로맨스 소설도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을 겁니다.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시도하는 장르고요. 그러나 흔하다고 해서 곧 만만한 건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은 다른 별에서 왔다는 농담처럼 심리 상태가 판이합니다. 그 점을 잡아내 어울리도록 묘사하려면 마음을 꿰뚫어보는 시각이 필요하겠죠. 제대로 된 여성상이나 남성상 없이도 흥행하는 소설이 많으나, 흥행한다고 작품성까지 좋은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사람이란 동물이 사랑에 빠지면 일견 유치해지는 법입니다. 사랑놀음을 하는 남녀 역시 유치해지고, 작가는 닭살이 돋지 않도록 애써야죠. 그러면서 가슴 뛰는 생동감을 놓쳐선 안 될 테고요. 이게 꽤 어려운 작업이라 내로라하는 세계적 장르 작가들도 어정쩡한 연애를 그릴 때가 흔합니다. (아시모프 같은 천재도 연애소설은 소질이 없다는 걸 알고 충격 먹기도….)


공포소설 역시 제대로 쓰기가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연애도 그렇지만, 공포 연출도 잘못하면 유치해질 우려가 있어요. 공포라는 게 꽤 근원적인 감정이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쉽지 않으니까요. 귀신이 나와 피칠갑하는 게 전부가 아니죠.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무서워하는지, 심적 상태가 어떤지 서술해야 합니다. 당연히 심성을 관찰하는 눈이 뛰어나야 하고, 이런 안목이 하루 아침에 길러지지도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사람은 익숙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낯선 것, 처음 보는 것, 새로운 것을 자꾸 만들어내는 솜씨가 필요합니다. 이 점은 시리즈물을 쓰거나 다작을 할 때 치명적입니다. 시리즈를 길게 이어가다 보면 반복적인 소재를 쓰기 마련입니다. 다작을 하면, 독자가 작가의 일정한 패턴을 인식할 테고요. 당연히 작품 유형에 차츰 익숙해지고, 공포와는 멀어지겠죠. 또한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무서운 내용이 나온다’는 걸 전제하기에 더 놀라기 어렵고요.


추리소설은 특성상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져야 하죠. 정교한 트릭을 짜고, 이를 드러내지 않는 한편, 어느 정도의 단서나 복선은 던져줘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가 미스터리의 윤곽선을 이해해야 나중에 사건의 전모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복선을 얼마나, 어떻게 드러낼 지가 관건입니다. 복선을 꼭꼭 감췄다간 너무 뜬금없게 보이거든요. 나쁜 추리 소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반전을 꾀한답시고 아예 힌트를 주지 않는 겁니다. 이러면 독자가 무작정 형사나 탐정의 꽁무니만 쫓아다녀야 하고, 막상 범인이 잡혀도 별 감흥을 받지 못해요. 그렇다고 단서를 주르륵 늘어놓다간 눈치 빠른 독자가 답을 금방 맞춰서 김이 빠지겠죠. 더불어 트릭을 짜는 것도 골치 아픕니다. 매번 책을 쓸 때마다 완전 범죄가 될만한 계획을 세워야 하니,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겠죠. 추리작가도 사람인지라 머리에 한계가 있고, 그래서 나중에는 독자가 작가의 한 수를 넘보기도 하더군요.


물론 앞서 말했듯이, 그렇다고 이 세 장르가 다른 것보다 뛰어나다는 건 아닙니다. 장르에 우열을 가릴 수야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좀 더 기교가 필요하다는 것뿐입니다. 기교 없이도 쓸 수야 있겠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특별한 솜씨를 곁들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