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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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강의하는 학교의 성적 이의 신청 기간입니다.
학생들에게 문의가 자주 들어오고 있지요.
그런데... 뭔가 착각을 하는 학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수는 서비스 업종이 아니며, 성적 이의 신청은 '교섭'이라는 것을 모르는 학생들 말이지요.
저도 성적 이의 신청을 해본 일이 있어서 알고 있지만, 이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사실 '교수님이 틀렸어요.'라고 납득시키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교수라는 특성상 '틀렸다'라고 인정시키는게 힘듭니다.
특히 연세가 많은 교수들은 더 그런거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따지고 드는건 의미가 없지요. 설득하려고 해 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러십니까?"라고 하면, "어 그래? 근데 상대평가라서 자네보다 열심히 한 친구들이 많은데."라고 나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잘 쓴 리포트라도 교수는 문제점을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어요.
(사실 논문 심사가 좀 그런 면이 강하다고 하죠. 교수 잘못 만나면 논문 통과는 포기해야 할 정도...)
아무리 말해봐야 교수가 NO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지요.
그런데... 따지고 드는 친구가 가끔 있습니다.
제 경우는 불쌍하게 생각되어서 기회를 주거나 봐주는 편이지만, 성격이 좋지 않은 교수라면 결코 그렇지 않겠죠.
그것도 전화로 갑자기 말입니다. 사실 성적 이의 신청은 교수를 찾아가서 인사하고 부탁하는게 예의일텐데 말이지요.
그건 역시 아직 사회 경험이 부족한 걸까요?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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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가르치는 직업은 가장 전통적인 서비스업중 하나입니다..
단지 교수가 성적 이의를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게 문제의 관건일듯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본래 교수가 해야 하는 역할은 크게 세 가지 입니다.
1. 연구, 2. 강의, 3. 산학협력 프로젝트
위의 세 가지가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한 사람이 세 가지를 모두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르거든요.
연구 잘하는 교수가 강의는 아주 못할 수도 있습니다.
<뷰티풀 마인드>의 내쉬 교수를 보세요 - 란닝구 바람으로 강의실에 들어가 학생 무시하고 숙제만 내 줍니다.
강의 잘하는 교수라 하더라도 논문은 죽었다 깨나도 못 쓸 수도 있습니다.
강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지만, 연구는 창의력과 오랜 노력의 산물이거든요.
연구를 잘하든 강의를 잘하든 둘 중 하나는 꽤 하는데,
산학협력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학교에 펀딩을 따 오는 것은 전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상 산학협력은 영엽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영업 쪽 일은 연구나 강의와는 체질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산학협력으로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교수는 연구에 전념할 절대 시간 자체가 무척 부족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연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그 밑의 대학원생들이 고생을 무척 많이 하죠.
프로젝트 결과를 연구 논문으로 만들 수는 있는데, 국내 학술저널에는 게재가 가능하지만 해외 SCI에는 못냅니다.
한국에서의 응용 사례를 해외 저널에서 별로 궁금해하거나 크게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교수 밑에서 대학원생으로 있으면 용돈은 궁하지 않은 데 논문 쓸 시간이 없어서 졸업이 늦어집니다.
석사과정을 하기에는 괜찮지만 박사과정을 하다가 자칫 10 년의 세월이 그냥 훅 가버릴 수도 있어서, 잘 선택해야 하죠.
다시 말해 산학협력 잘하는 교수가 연구 논문을 잘 써낼 가능성은 매우 낮고, 제자들도 논문 실적이 안나와서 고생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Top 10 에 들어가는 학교의 인기학과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10위권 밖의 학교와 비인기학과의 교수들의 '1 순위 업무'는 학생들의 취업입니다.
연구, 강의, 산학 프로젝트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 취업이 잘 안되면 모두 다 꽝입니다.
그런데... 학생들 취업이 잘되고 안되고는 어떤 교수가 노력 많이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즉, 교수가 개인적으로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KPI로 잡혀 있는 셈이죠.
"노력은 적게, 결실은 많이"
학생들은 이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철이 덜 든 어린 학생들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래서 사정이 어떻든 성적만 잘 받으면 그만이라고 떼를 쓰는 것 정도는 약과입니다.
온갖 사연을 구구절절히 적으면서 성적 안올려주면 자신의 취업과 장학금이 날아간다는 읍소형,
왜 남보다 내가 더 성적이 안나왔냐고 화를 내면서 "저 친구보다는 무조건 잘받아야 공정하다"는 주장...
효과적인 대응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학생들이 뭐라고 하던 간에,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대응해주면 됩니다.
"학생의 취득점수는 몇 점, 등위는 전체 수강생 중 몇 번째, 상위 몇 % 이내이므로 상대평가 규정에 따라 학점 xx"
그 다음 중간고사 기말고사 과제물에 대한 채점 기준과 그 학생 답안과 모범답안 간의 차이를 설명하고,
공정한 채점과 성적 산정이 이루어졌으며, 임의로 성적을 올려달라는 것은 학칙에 따라 부정행위라고 합니다.
부정행위를 요구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학칙에 따라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계속해서 무리하게 성적을 올려달라고 일방적인 우기기를 시도할 경우,
더 이상 대응하는 것은 무의미하므로 단과대 학장에게 보고할 테니 학장을 직접 찾아가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성적이의 신청에 대해 메일 한 통 써 주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철저히 성적을 평가하고, 이의신청하면 자존심이 걸레가 되는 채점 내역 설명이 따라오는데다가,
어지간해서는 절대로 성적을 올려주는 경우가 없으므로 이의신청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평판이 나오면...
아무래도 수월해 집니다. 학생들이 어지간해서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게 되거든요. 해 봤자 소용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