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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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옥소독스한 개발자 출신으로 위 내용에 백 번 공감합니다.
그리고 보니 아르바이트로나마 마지막으로 개발 일을 했던 것이 2009년이고,
실제로 정식으로 직접 개발 프로젝트하느라 바빴던 것은 2003년 겨울까지였으니까 벌써 10년 전 일입니다.
어떤 업무든 문서화를 가장 잘 하는 것은 일본입니다.
왕년에 실제로 겪었던 일 중 가장 뼈저리고 황당했던 사례는,
한국산 S/W를 일본 기업에 수출하게 되어서 300 페이지짜리 시스템 메뉴얼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내주었더니
일본의 고객사가 딱 두 달 후에 무려 1000 페이지가 넘는 시스템 메뉴얼 수정본을 만들어 보내 온 사례도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머리가 비상해서 후딱후딱 프로그래밍하고 S/W 개발을 해치우는 것은 꽤 잘하는데,
그 중간 과정에 대한 문서화를 왠만해서는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유지보수가 불가능합니다.
그 프로그램을 짠 사람마저도 "내가 어떻게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심지어 왕년에 어려운 프로젝트를 하다가 진도도 잘 안나가고 코딩 과정에서 딱 막혀버려서,
프로젝트 팀원들이 머리 식힌다고 맥주를 꽤 마시고 다시 일하러 돌아와서 코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왠지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고, "역시 머리가 유연해져야 일이 잘된다"라고 서로를 치하하며 일을 모두 마쳤죠.
컴파일도 잘 되었고, 원하던 기능이 잘 구현되어 모두가 기뻐하고 있었는데... 후에 수정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몇 일 후 다시 수정하려고 소스를 까서 보니, 뭔 생각으로 짠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었죠.
알콜 코딩이 왜 무서운 가 그 때 깨달았습니다 - 술 기운에 프로그래밍한 코드를 보고는 추적이 아예 불가능하더군요.
그게 화면 하나 제어하는 스크립트였다면 그냥 없는 셈 치고 처음부터 다시 짜서 만들어도 상관 없는데,
무려 DB 딴에서 저장 프로시저로 코딩해 놓은 것이라 다시 작업하려면 말도 안되는 공수가 들어가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되어서 무쳑 곤란했었더랬죠.
멀쩡할 때도 개발 문서를 잘 안남기는데 알콜 코딩을 해 놓은 것에 대해 개발 문서가 남아 있을 턱도 없고...
위에 벌거지님 이야기만이 아니더라도 사실 개발문서는 매우 중요하지요. 기술이 축적되느냐, 아니면 중간에 끊기느냐 라는건 개발할 때의 문서화가 잘 되어있느냐, 못 되어 있느냐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위는 코딩 관련이지만, 기계쪽 설계 이야기를 좀 하자면, 기본적으로 기계 설계는 이전 물건의 참조도면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도면이 위에서 말한 일종의 개발문서 중 하나인 셈인데, 이게 잘못 되어 있거나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으면 정말 생고생을 하게 되더군요. 기계 문제 생긴거 1년동안 고생고생해서 해결해 회사 전체 공유했더니, 저 멀리 앉아계시던 부장님 한분이 '어? 그거 전에 내가 해결 했던 건데?' 라고 말하거나. 어느순간 잘못된 도면으로 그 이후 잘못된 도면 참조한 모든 도면을 다 수정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나...
제대로 된 문서 하나 남겨놓으면 그 이후로 두고 두고 편한데, 이런저런 이유로 못하게 만드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보다가 막판 장면을 보고 울화통이 터졌네요. 저야 관련 업계 사정은 잘 모릅니다만, 게임 산업 물어뜯는 거 보면 동네 깡패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창하게 E3 쇼를 열고, <라오어> 같은 작품으로 잔치 분위기인데, 게임 규제 법안을 보면 한숨만 나오는군요. PS 전용 걸작이 나온 마당에 PSN을 아직도 막아놓다니, 어이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