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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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질문 게시판에 PKD가 약물 중독자였는가 또는 약에 취해서 글을 썼는가에 대하여
질문이 올라오고 이에 대한 답변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진정한 약물(환각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올더스 헉슬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멋진 신세계>를 쓴 바로 그 올더스 헉슬리 맞습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말년에 LSD의 효과에 매혹되었고, 약물이 "온전한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주장했습니다.
락 그룹 <도어스(Doors)>는 올더스 헉슬리의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으로부터 이름을 빌려왔는데,
바로 이 <인식의 문>이야말로 올더스 헉슬리가 환각제에 의하여 환상에 빠진 경험에 대하여 상세히 기술한 글이죠.
심지어 헉슬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와이프에게 LSD를 주사해 줄 것을 부탁하여 LSD 주사를 두 차례나 맞고는
와이프가 곁에서 낭독하는 티벳 <사자의 서>를 들으며 환각상태에서 작고했습니다. (JFK가 암살된 날과 같은날이었죠)
헉슬리는 환각제를 투여받으면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인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인식의 문>을 발표한 후 죽을 때까지 환각제를 정기적으로 투여받았으며, 그 효과가 긍정적이라고 믿었습니다.
헉슬리의 조부는 "찰스 다윈의 불독"으로 불렸던 저명한 생물학자였고 (웰즈의 <모로 박사의 섬> 중에도 언급됩니다)
본인도 젊은 시절 작가가 되기 전에는 본래 의학을 공부하였으며, 그의 친동생은 아예 노벨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영국을 대표한다고 말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워낙에 저명한 의사 집안의 구성원이었던만큼
올더스 헉슬리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을 한 후 의사의 처방을 통해서 LSD를 비롯한 환각제를 받아 투여했습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았든 어떻든 하여간에...
올더스 헉슬리는 약에 중독된 폐인 레벨의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환각제에 큰 흥미가 있었고 실제로 환각제를 많이 경험하였으며
환각제가 인간의 인식을 확장하는 등 나름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믿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에세이집 <모크샤>는 이러한 작가의 환각제 경험을 담은 글을 묶은 책이죠.
그리고 헉슬리의 마지막 소설 <금지된 섬>=<아일랜드>를 보면 지상낙원으로 묘사된 팔라의 사람들은
'모크샤'라는 비약을 통하여 환각을 경험하고 종교의식을 하며 원만한 부부생활에도 도움을 받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사족]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의사 처방만 있으면 LSD같은 강력한 마약을 집에서 막 주사할 정도로 받아오는 게 가능한 것인지...
혹은 올더스 헉슬리의 집안이 워낙 빠방한데다가 의학 / 생물학 영역에서 어미어마한 명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본래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지만 헉슬리이기 때문에 입수가 가능했던 것인지...
그냥 이런 부분도 좀 궁금하더군요.
마취제 혹은 진통제 , 각성제의 환각성으로 금지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저 시점에서는 환각제로 금지되어 있지 않았거나, 쉽게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근래 유명해진 모 약품처럼, 효과좋은 마취제에서 남용으로 인해 마약으로 분류되는 사례처럼, 환각성이나 마약성이 대중의 관심대상으로 떠오르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전까지는 각성제, 마취제, 정력제등으로 널리 널리 사용되곤 했습니다. 19세기 중반 유럽 지도층 인사들중에는 지금기준으로 마약중독자가 꽤나 존재했습니다. 폐햬가 공식화되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법입니다.
LSD 같은 경우는 정신과에서 치료용이나 중환자의 진통제로 사용되던 물건입니다. 미국에서도 1966년까지 민간에서 공급되었으니 별다른 규제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따라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았다고 보는게 맞을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