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hat-if.xkcd.com/35/

 그래도 번역이나마 오랜만에 인터넷에 이리저리 퍼진 글을 쓴 김에 두세 개 정도만 더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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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드라이어를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미터인 공기가 통하지 않는 상자 안에 넣고 켜면 어떻게 될까요? - Dry Paratroopa

 일반적인 헤어드라이어는 1875와트의 전력을 소모합니다.

 이 1875와트의 전력은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상자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1875와트의 전력이 들어갔다면 결국에는 1875와트의 열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전력을 사용하는 어떤 장치건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꽤 유용한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요금이 더 나올까 봐 충전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마다 뽑아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 사실을 이용해 간단한 규칙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꽂아놓은 충전기를 만져보았을 때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루에 1페니 정도의 전기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휴대폰 충전기처럼 작은 것이라면 1년에 1페니도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거의 어떤 전자제품이건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충전기에 랩탑이나 스마트폰을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거나 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헤어드라이어는 상자 안으로 열을 내뿜습니다. 만약 헤어드라이어가 녹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상자는 섭씨 60도 정도까지 가열될 것입니다. 그 온도에서는 상자가 외부와의 접촉으로 열을 잃는 속도와 헤어드라이어가 열을 제공하는 속도가 같으므로 이 계(system)는 열평형을 이루게 됩니다. 만약 바람이 불거나, 열전도율이 뛰어난 물이나 금속 표면 위에 상자가 놓여 있다면 평형 온도는 좀 더 낮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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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끄러운 상자는 참 따뜻해! 너 나랑 친구 하자!
훼에에에에에엥

 만약 상자가 금속으로 되어 있다면, 60도의 표면에 5초 이상 손을 대고 있다간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나무로 되어 있다면 좀 더 오래 만질 수 있겠지만, 헤어드라이어가 닿아 있는 쪽은 불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상자 내부는 오븐과도 같을 것입니다. 상자 내부의 온도는 상자의 두께에 따라 달라집니다. 더 두껍고 열전도율이 낮을수록 상자 내부의 온도는 높아질 것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드라이어가 녹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지만 헤어드라이어는 절대 망가지지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제 헤어드라이어가 무적이 되었으니, 그 출력에도 제약을 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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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

 18750와트짜리 헤어드라이어가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자의 표면은 섭씨 200도가 넘게 됩니다. 이는 약간 낮은 온도의 후라이팬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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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러운 상자가 아침을 만들고 있어! 내 친구는 참 멋져!
치이이이이익

 테이프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다이얼 옆에 남은 공간이 아직도 많으니, 더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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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자의 표면은 이제 섭씨 600도입니다. 상자가 어두운 붉은 색으로 빛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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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러운 상자야, 넌 너무 뜨거워!
우우우우웅

 알루미늄 상자라면 내부가 녹기 시작합니다. 납 상자라면 외부도 녹을 것입니다. 바닥이 나무라면 이미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건 헤어드라이어는 끄떡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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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메가와트짜리 레이저로는 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습니다. 상자는 이제 섭씨 1300도로서 용암의 온도에 버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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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아아아아

 계속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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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메가와트가 상자 내부에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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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랗게 빛나는 상자의 표면은 섭씨 2400도에 이릅니다. 만약 철로 되어 있다면 벌써 녹아버렸을 것입니다. 텅스텐 같은 걸로 되어 있다면 좀 더 버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력을 조금만 더 올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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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메가와트에 이르면 상자가 흰색을 띕니다. 이 상태를 버틸 수 있는 물질은 별로 많지 않으므로, 상자 역시 파괴되지 않는다고 가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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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히도 바닥은 버티지 못합니다.

 바닥을 뚫고 떨어지기 전에 누군가가 물풍선을 그 밑에 던집니다. 수증기 폭발로 인해 상자는 문 밖으로 튀어나와 인도에 떨어집니다. 만약 저와 같이 불타는 건물에 갇히실 경우, 제가 제안하는 탈출 방법은 듣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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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이라는 건 거짓말입니다. 영화 백투더퓨처에 따르면 1.875기가와트로는 시간여행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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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상자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습니다. 엄청난 열로 인해 상자에 수백 미터도 접근하기 힘듭니다. 바닥은 거대한 용암이 되어버렸고, 50~100미터 내의 모든 것들은 불타버렸습니다.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릅니다. 주기적인 가스 폭발로 인해 상자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다른 곳에 떨어져 바닥을 불구덩이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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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헤어드라이어는 안 녹아도 저 테이프들은 녹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18.7기가와트입니다. 이제 상자 주변의 환경은 우주왕복선 발사 순간에 바로 그 밑에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고열로 발생한 상승기류로 인해 상자는 사방으로 튀어다닙니다.

 1914년에 H. G. 웰즈는 SF 소설 해방된 세계(The World Set Free)에서 비슷한 장치를 상상했습니다. 그는 한 번 폭발하고 마는 폭탄이 아니라, 도시의 중심에서 지속적으로 폭발하며 결코 끌 수 없는 불지옥을 만들어내는 폭탄을 상상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으스스하게도 그로부터 30여년 뒤에 일어났던 일들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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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에서 불량국가들에 대한 테이프 금수조치를 실행했다는군요.


 플러그를 뽑아놓지 않은 헤어드라이어는 위험하지만, 이 녀석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상자는 이제 계속 하늘 높이 튀어오릅니다. 땅으로 떨어질 때마다 지표를 초고온으로 가열하고, 급격히 팽창하는 공기가 상자를 다시 하늘 높이 날려보내는 것이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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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테라와트는 1초마다 집채만한 TNT가 터지는 것과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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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테라와트에서는 이제 다이얼에 숫자 적을 공간이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대규모 화재들이 스스로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풍계(wind system)를 만들어내며 지표를 휩씁니다. 놀랍게도 이제 이 헤어드라이어는 지구상의 모든 다른 전자기기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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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으로 튀어다니는 187테라와트짜리 상자는 1초마다 3회의 트리니티 핵폭탄 실험에 달하는 에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이제 에너지를 더 늘린다고 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크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이 상자는 지구가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계속 돌아다닐 것입니다. 다른 걸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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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자가 캐나다 상공을 지나고 있을 때 다이얼을 다시 0으로 돌립니다. 상자는 급격히 냉각되며 지구로 떨어져, 캐나다 서북부의 그레이트 베어 호수에 떨어지며 엄청난 수증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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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다이얼이건 힘껏 돌리면 11까지 돌아갑니다. 여기서 단위는 페타와트입니다.


 공식적으로 인간이 만든 물체 중 가장 빠른 것은 1970년대에 태양 연구를 위해 발사한 헬리오스 2 탐사선으로, 태양 근처를 지나면서 최대 초속 70킬로미터의 속도를 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2톤짜리 맨홀 뚜껑이 그것보다 빨랐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 4피트 지름의 맨홀 뚜껑은 1957년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의 지하 핵 실험 시설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플럼밥 작전이란 핵 실험으로 1킬로톤짜리 핵폭탄이 지하에서 폭발했으며, 그 충격파가 설계상의 문제로 그 지점에 집중되면서 뚜껑은 엄청난 에너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초당 160프레임을 촬영하는 초고속 카메라가 뚜껑이 날아가는 것을 딱 1프레임만 촬영할 수 있었는데, 이는 최소 초속 66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를 냈다는 뜻입니다. 이는 지구의 탈출속도의 6배에 달하지만, 결과를 계산해보자면 우주로 날아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형태 때문에 대기와의 마찰로 파괴되었거나 10킬로미터 정도 수직으로 날아올랐다가 지구로 다시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호수 깊은 곳에서 다시 가동되기 시작한 헤어드라이어가 담긴 상자 역시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상자 아래에서는 수증기가 급격히 팽창하여 상자를 위로 밀어올리고, 호수는 표면 전체가 수증기로 변합니다. 엄청난 에너지로 인해 플라즈마 상태로 변한 호수는 상자를 더 빠른 속도로 밀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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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자는 맨홀 뚜껑처럼 대기와의 마찰을 겪지는 않습니다. 엄청난 열로 인해 대기가 플라즈마로 변하면서 저항은 지극히 약해집니다. 상자는 대기권을 탈출해 멀어져가면서, 태양처럼 밝았던 빛도 희미해져 갑니다. 미 대륙의 북서부 대부분이 불타고 있지만, 최소한 지구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물론 차라리 그랬더라면 하고 생각할 한 가족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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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의 전기요금은 대략 20조 달러 정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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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last, best hope for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