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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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사람은 허영을 위해,
어떤 사람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 조금씩 다른 방식이지만 한가지 중요한 것은
동기에 따라 행동하고 또 움직인다는 겁니다.
그것은 본성과도 관련된 문제이죠.
어떤 사람은 보다 이타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보다 이기적인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교육? 환경?
저는 타고나는 부분도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단지 처벌받지 않기 위해 법을 지키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은 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는다면 불법이나 나쁜 일도 서슴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법을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법을 지키는 자신을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그런 사람들은 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룰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누가 지적하거나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 룰을 존중하고 지키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이익과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상엔 분명 그런 이타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이 세상의 발전은 그런 사람들의 행위를 위선이나 자기만족 기만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의 행위에 의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태생적 한계와 거기에서 오는 갈등과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가능성과 또 상생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에 대한 회의 만큼이나 저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선의가 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인간은 모두 다 썩었다고 말하며 외면할때, 그 속에 함께 묻어버리는 진실과 소중한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닐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종교가 해야할 일'인데 바로 그 일이 종교라는 관념 자체의 반대쪽 극에 서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일 겁니다.
애초 종교에서 말하는 윤리란 건 힘위 윤리이자 규범적 윤리거든요. 즉 '네가 착하게 살면(사실은, 신의 말을 잘 들으면) 너에게 포상(가령 천당)이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벌(즉 지옥)이 있다'는 방식이죠. 이런 윤리관의 문제가 뭐냐면 어떤 계기로 그 사람이 신자이긴 거부하는 순간 그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자연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 그 신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될 수도 있고 그쯤 되면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할 수밖에 없죠. 여기서 신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는 건 단순한 예시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3제국 총통, 니뽕 왕, 이 땅의 개신교회 절대다수 목사와 그 신도들 등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며 살거든요.
결론을 말하면 종교라는 건 애초부터 윤리를 바로세울 능력도 권리도 없었다는 겁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종교라는 관념이 가진 정의 자체가 현대 윤리관에 대비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된다고 할 수 있거든요.
글쎄요, 종교를 어떻게 정의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종교를 {기독교, 불교, 힌두교, 기타 등등}으로 정의하지 않고, "믿음에 대한 가르침의 모음"으로 정의합니다.
누구나 믿음은 가질 수 있고, 그 믿음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의 가르침이 그 아들에게는 종교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혹은 선생님, 또는 어떤 유명인사의 강연, 또는 책을 통해서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살아가며 직접 경험한 것을 통해서라도요.
이러한 믿음이 모였거나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그것을 넓은 의미에서의 종교로 부를 수 있습니다.
무슨무슨교 하는 이름이 붙지 않았더라도요.
혹여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대 철학은 학문으로써 과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논증 불가능한 것, 즉 믿음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 때문에 종교와는 다릅니다.
윤리가 어떤 구조로 형성되어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다룰 지언정, 실제 선악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당위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시, 믿음과 가르침으로 돌아와서, 믿음과 그 가르침은 중요합니다.
어떤 신념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은 크게 바뀝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과 그냥 별 생각없이 사는 사람의 행동과 그 성취는 다를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이나 통계, 논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제3세계 사람들이 굶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부를 결정할 수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뇌물을 받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것도 선택 가능한 문제입니다.
애초에, 돈을 중요시하느냐 명예를 중요시하느냐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느냐 사회적 최선을 우선시 하느냐 하는 것도 믿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중요한데, 그 믿음을 어떻게 얻어내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냥 살면서 주어지는 경험만으로 쌓는 믿음은 최선의 믿음이 되기 힘듭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믿음을 갖추기 위해 어느정도 노력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을 혼자 힘으로 하긴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모아 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뭐, 이미 많이들 그렇게 하고 있긴 합니다만,
예를 들어 빌 게이츠는, 돈 많은 사람은 부를 대물림하기보단 자선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그걸 실천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꼭 그렇게 하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밝힌 정의에 따르면 일종의 종교입니다.
각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한 종류이죠.
어떤 논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옳다고 여겨져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이런 것이 좀 더 필요합니다.
글쎄요. 이런 논의에서 단어의 정의가 매우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새로이 규정해야 한다거나 기존 의미가 애매한 것도 아닌 개념을 토론자의 재정의로 진행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보이네요. 말씀하시는 의도는 알겠는데 달내음님이 말씀하시는 건 종교가 아니라 종교적 태도라는 게 제 입장입니다. 그리고 드신 '믿음'에 대한 예시 대부분은 그나마 종교적 태도라기 보단 신념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보고요.
그런 면에서 사전적 의미의 종교와 그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만한 기성종교적 관점을 비판하는 제 이야기는 달내음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일단, "믿음과 그 가르침의 모음"이라는 제 정의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다만 앞에 종교 이야기를 할 때 제가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밝히고 싶었구요.
기성종교의 근본적 비윤리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도 현대 기독교에 대해 반감이 굉장히 많긴 하지만
아예 현대윤리와 양립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욕먹을 짓을 해가면서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 바르게 살거나 남을 돕거나 합니다.
활발하게 자선사업을 벌이는 기독교 단체도 있구요.
자연과학적, 이론적 관점이 아닌 공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실제로 사람이 좀 더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을 반례로 들겠습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제대로 활용된다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힘의 윤리'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만한 기성종교적 관점이 아니며, 저는 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모든 기독교도가 그러한 교리를 맹목적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서로 사랑하라' 하였을 때 '천국가고 싶으면 서로 사랑해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이고, 사람들은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따랐습니다.
불교에도 극락과 환생의 개념이 있긴 하지만, 기독교에서 하는 식으로 협박조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부처는 그저, '잘못된 욕심을 버리고 바른 삶을 살아라'라고 하였고, 사람들은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따랐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신학과 교리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근본적인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종교의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닥 크지 않다고 봅니다. 제 관점에서는, 오히려 종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맹목적으로 생각하며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어쨌든, 종교적 가르침에서 뭔가 얻을 게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지요.
전체적으로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행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논지같은데, 그 주장은 '종교가 문제'와 '행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두 명제로 나눠집니다. 후자의 경우는 그야말로 종교와 상관없는 개인차기 때문에 제 논의 바깥이므로(='기독교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므로) 언급하지 않겠고요, 달내음님이 주장하시는 제 종교윤리의 문제에 대한 반론은 핵심을 조금 벗어난 면이 있습니다.
철학적 용어로 말하면 종교 윤리 명제는 가언명제입니다. 간단히 말해 조건절이란 게 있다는 거죠. '네(=신도)가 만약 ~을 한다면' 혹은 '네(=신도)가 ~을 하려면' 이 항상 붙습니다. 예를 들면 '네가 나쁜 짓을 한다면 넌 지옥에 갈 것이다'나 '네가 천당에 가고 싶다면 넌 착한 짓을 해야 한다'는 식이죠. 이런 가언성은 그 종교의 본질 자체에 내재된 겁니다. 그걸 행하는 사람이나 단체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에요. 종교의 교리 문제라는 거죠. 따라서 제가 말한 힘의 윤리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만한 기성종교적 관점이 맞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제가 말하는 종교가 가진 문제란 건 그것이 가진 양지와 음지 중 음지를 강조한 게 아니라 그 윤리성의 본질적인 논리에 관한 것이고 그 논리에 의하면 종교적 윤리는 가언적이기 때문에 해당 조건(혹은 계약이라해도 좋겠죠)의 파기가 가능하며 그것이 현대 윤리학과 배치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은 달내음님의 개인적 해석일 뿐이니 반론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모초무님이 말씀하시는 '힘의 윤리'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힘의 윤리를 극단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며 따르는 개신교도가 우리나라에 많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기독교 계열 교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이 종교에 관한 일반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첫째로, 말씀하시는 철학적 일반론은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옳지 못합니다.
모든 신도들이 모초무님처럼 철학적 관점에서 교리를 비판, 논증한 뒤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는 오히려 과학이 아닌 믿음을 다루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논증불가능한 주장이라도 옳다고 여겨지면 귀하게 여기고 따릅니다.
(여기서 이 믿음은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 믿음은 아닙니다. 수정가능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부처가 되는 여러 길 중 하나를 발견했다"라고 말했지 기독교에서처럼 자기가 간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불교가 창시된 이래로 불경은 지금까지 계속 수정되어왔고 앞으로도 수정가능합니다. )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 누군가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서로 사랑하라"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이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은 힘의 윤리와 관계가 없으며, 사람들의 삶에 실제로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둘째, 애초에 근본 교리에 그런 힘의 윤리를 내세우지 않는 종교도 있습니다.
앞서 한 번 이야기했는데, 불교나 원불교 계열의 종교에서는 천국이나 지옥을 바르게 살아야 하는 근본 이유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무의미한 고통을 없애려면 헛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인과에는 응보가 따르게 마련이다"
정도가 있겠는데, 말씀하신바 힘의 윤리와 그 문제점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행위에 대해 규범적 윤리로써 근거와 그 당위를 제시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으시는 것은 아니실테고요.
1. 달내음님이 주변에서 비교적 제정신인 개신교인을 얼마나 많이 경험하셨건 그게 그 종교의 교리와 근본 철학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애초부터 그 종교가 스스로의 본질을 그렇게 정의했는데 거의 찾기도 어려운 사례를 들며 일반론을 부정하신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2. 불교의 경우도 '기독교에 비하면' 일 뿐이지 상벌이 있습니다. 성불이나 자기완성도 그 이유가 내부에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행동동기에 있어서 가언적이기는 미찬가지입니다.
제 주장은 종교적 윤리는 그 자체가 힘(즉 신의 권능 또는 칠연성을 띤 가르침)에 의존하는 가언적 윤리이며 그런 이유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비록 지엽적인 반례들이 제시된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하면 벌을 받고 잘하면 상을 받는다는 종교의 근본적 윤리이 가진 가언성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이죠.(물론 여기서 종교란 달내음님이 자의적으로 말씀하신 종류의 것은 아닙니다.)
저랑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도 다르시네요.
첫째로, 저는 개인적 경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인 중 여러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을 보자면 마틴루터 킹 목사도 있고, 테레사 수녀도 있고, 김수환 추기경도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상당부분을 자선사업에 바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장 종교배경을 가진 NGO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요.
둘째로,
'서로 사랑하라'와
'삿된 욕심을 버리고 바르게 살아라'
에 대해서 말하자면,
저는 기독교와 불교의 각 중심 교리가 천국이나 극락이 아닌 위 둘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바르게 살아라'는 가언적 명령이 아니죠.
앞서 한번 이야기한 바 있는데, '천국가고 싶으면'이라는 단서가 붙지 않습니다.
계속 종교에서 무언가를 권장할 때 반드시 힘, 그중에서도 신의 권능이나 사후 세계 등 비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무시 가능한 것을 근거로 사용하게 마련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우리가 왜 '서로 사랑하고' '바르게 살아야' 할까요? 사후에 더 편하게 살고 싶어서? 그게 아닙니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삶이 더 나은 삶이 되고, 또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또 바른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하신 것이고요.
말씀드리건데, 모든 소위 말하는 종교인이 저와 같은 관점에서 종교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욕먹는 사람들도 있지요.
승려 중에서도 사후 극락왕생 빌어준다고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에게 돈 뜯어내는 치들도 있구요.
하지만 거꾸로, 저와 같은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분명 꽤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한다는 입장이구요.
지금와서 덧글을 보실 지 모르겠네요.
안타깝지만 제가 말히는 종교 윤리의 가언성에서 달내음님이 개인적으로 종교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달내음님이 정언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의 가르침도 역시 그건 님의 개인 생각익뿐 그 종교 경전에 가언명령으로 나와 있어요. 달내음님이 예로 든 훌륭한 종교인들 역시, 그 사람이 그런 것이지 그 종교가 그런 것이란 근거는 되지 않고요.
그런 상황에서 달내음님이 아무리 개인 견해를 사실이라고 말해봤자 저로서는 '이 사람은 자기 방식으로 종교를 바꾸겠다는 것인가?'란 생각밖에 들지 않겠죠.
달내음님이 종교를 어떻게 바라보건 죄송하지만 그건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달내음님의 관점과 상관 없이, 종교 교리는 경전에 씌어있고 종교인들은 그걸 속세법보다 우선으로 산다는 게 중요하죠.
의견차이가 좁혀지지가 않네요. 모초무님께서 제시하시는 논지들은 부당합니다.
제가 하는 주장들을 전부 '개인 생각'으로 치부하셨는데, 해당 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가는 상관 없습니다.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
저와 모초무님의 의견은 그저 다를 뿐이고, 저는 모초무님 의견을 별다른 근거없이 '개인적인 생각'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종교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서 같은 경전을 두고도 다른 종교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경전에 써있는 교리들이 여러모로 애매하기도 하구요. 그러므로, 쓰여있는 문자 그대로의 내용보다는 읽는 사람이 그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문자 그대로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끼리도 해석이 달라 서로 피터지게 싸우는 형국인데요. 애초에 경전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잘못하고 있거나 사기꾼이거나 둘 중 하나구요.
다음으로, 이 논의에서 제가 종교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종교의 가능성이지 종교의 완전무결성이 아니거든요. 종교가 단 한 사람의 삶에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만 증명하면 제 주장은 옳은 겁니다. 저 자신에 대해서라도요.
저는 성경을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억지로나마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 정도 완독을 했습니다. 왠만한 기독교도들보다도 많이 봤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보고 읽은 경전에서 "서로 사랑하라"를 저는 정언적 명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옳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반면에, 천국가고 싶다고는 단 한번도 생각 안 해봤습니다.
고로, 기독교는 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며, 종교는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는,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공감하고 받아들일 만한 가르침이 종교 경전에 있다는 겁니다. 힘의 윤리랑 상관 없이요.
불교에서는 지금생에서 깽판치면 다음 생에서 고생한다고 적혀있긴 합니다만, 그 부분은 그냥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어차피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요. 읽는 사람이 "바르게 살아라"라는 등의 가르침을 정언적으로 받아들일만하다고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그걸로 좋은 겁니다. 내세니 뭐니 갖다붙이려면 얼마든지 갖다붙일 수야 있지만, 마찬가지로 떼어내려면 얼마든지 떼어낼 수 있습니다. 그냥 앞뒤 다 자르고 맘에 드는 부분만 받아들여도 됩니다. 여러번 말씀드리지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했고, '여러 길 중 하나를 찾았다' 했습니다.
종교인들 전체가 다 근본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종교를 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제가 달내음님 개인주장이라는 근거가 직접 이야기하신 '해당 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가는 상관 없습니다' 입니다. 달내음님은 계속 근본주의가 아닌 이들도 많다 그러시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어요. 종교 교리가 그런 걸 저더러 어쩌라는 건가요.
달내음님이 성경을 얼마나 열심히 보았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시 해당 종교의 교리가 달내음님 주장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종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전의 가르침을 '그건 무시해도 됩니다'라고 하면서 본인의 개인 경험을 받아들이라고 하면 저로선 달내음을 계속 상대해야 할 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겠죠.
종교윤리의 가언성은 종교의 교리가 내재했을 뿐아니라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제가 아니라 해당 종교의 신학자들을 비롯해 종파에 대해 어필하며 교리를 바꾸라고 해야할 겁니다. 9하지만 상술했듯 그렇게 되면 그건 종교가 아닌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상대 논지를 부당하다고 말하려면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정확히 파악해야겠죠. 제 주장의 근거는 교리를 행하는 사람에 있지 않습니다. 교리 자체에 있죠. 오히려, 종교의 본질적인 면을 무시하며 반례의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바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 의존하는 것이며 달내음님이 취한 논리와 근거 되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제 주장이 개인주장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주장인가의 여부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에 무관하다고 했죠.
둘째로, 세계에는 수많은 경전이 있고 교리가 있고 그에 따른 해석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수없이 많아요. 믿는 사람이 단 한 명 뿐인 종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해석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싸우고 죽이기까지 하죠. 모초무님 주장은 어떤 종교에는 맞지만 어떤 종교에는 틀립니다. 한 종교의 교리 내에서도, 어떤 한 부분에는 맞더라도 어떤 부분에는 틀립니다. 세상에는 기독교만 있는 게 아니라 불교도 있고, 원불교도 있고,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교도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이름의 종교에서 같은 경전을 읽더라도 읽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그에 따라 믿는 바가 다릅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도 다른 믿음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에서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봅시다. (http://en.wikipedia.org/wiki/Religion)
Religion is an organized collection of belief systems, cultural systems, and world views that relate humanity to spirituality and, sometimes, to moral values.
모초무님이 말씀하시는 정의보다는 제가 말하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저는 이 정의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믿음의 집합"인 종교는 수없이 많은 형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세계의 유일한 종교가 아닙니다. 그들이 교리를 대하는 방법이 그 유일한 방법도 아니구요.
종교라는 단어 자체로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가언적 윤리는 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가 가언적인 것은 아니라구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주장을 증명하려면 단 하나의 반례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단 하나의 종교만 제시하면 되죠. 반례의 숫자로 밀어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어디 한 번 해볼까요?
어렵게 찾아다니거나 경전을 뒤질 필요도 없습니다. 만들면 되니까요.
쉽게, '달내음교'라고 하죠.
교리는 두 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와 '바르게 살아라'.
정언적이죠? 아무런 가언적 근거도 내세우지 않았으니까요.
믿는 사람이 한 명뿐이라고 해서 종교가 아니라고 하진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교리라고 생각하구요.
모든 종교가 가언적인 것은 아니며, 종교는 사람의 삶과 세계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마지막으로, 토론하시는 데에 예의를 좀 더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저하고 의견이 다르고 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시겠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셔선 안 됩니다.
서로 의견이 달라서 토론을 하는건데, 일단 본인 의견이 옳다고 정해놓고 얘기를 하시는듯하군요.
내가 당연히 더 잘 알고 있는 문제이고 당신은 나와 다르게 무지하기 때문에
나와 같은 말을 못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듯한데요.
빈정거리다 못해 계속 상대해야할 지 회의가 든다니,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네요.
본인이 본인 생각을 굳게 믿는다는 것이 본인이 틀림없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토론에서 양 쪽이 진지한 자세로 이야기한다면, 양 쪽이 자기 생각을 굳게 믿는다는 얘기이고,
양 쪽의 주장이 서로 다르다면 어느 한 쪽은 틀리게 마련이죠.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믿어도, 자기 주장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상대방 얘기를 끝까지 듣기 전까지는 모르는겁니다.
그러니까,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 상대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만 합니다.
본인이 틀린 경우에는 물론이고, 본인이 옳은 경우에도 그래야 합니다.
두 경우 다 토론 중에 본인이 옳다고 믿기는 마찬가지니까요.
저는 진지하게 근거를 들어가며 이야기했고, 예의를 지키고자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토론을 지속하는 데에는 이게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싶네요. 상대가 옳을 수도 있다고 믿는 것보다 더요. 상대가 옳든 그르든 대화는 해야 하게 마련이니까요.
종교의 정의를 영문위키에서 인용한 것은 한국어위키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의 정의에 제가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기반한 정의는 부정확합니다. 불교를 예로 들어 보면, 부처는 신과는 거리가 큽니다. '부처'는 '깨달은 자'라는 뜻일 뿐이고 엄밀히 말해 신도 아니며 신앙의 대상도 아닙니다. 불교의 본질은 부처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신앙으로는 불교 또는 거기에서 갈라져나온 종교들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서 몇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불교는 그 가르침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옳다 여겨지면 따르는 것이고, 잘못됐다 생각하면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달내음교'는 불교의 한 갈래입니다. 바르게 살아라 하는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니까요.
경전의 가르침을 무시해도 된다고 해서 기분이 상하셨다고 하셨는데, 제가 의도한 내용이 전달이 안 되어서 그렇게 받아들이신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지금생에서 깽판치면 다음 생에서 고생한다고 적혀있긴 합니다만, 그 부분은 그냥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어차피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요. "
이 부분을 그렇게 받아들이신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해서 좀더 말씀드리자면,
불교에는 실제로 '동의하지 못하겠으면 따르지 말아라' 하는 교리가 있습니다.
제가 글재주가 부족해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은데, 바로 아래에 근거를 적었습니다.
"여러번 말씀드리지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했고, '여러 길 중 하나를 찾았다' 했습니다. "라구요.
싯다르타는 깨달은 자, 즉 부처가 되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고, 자신이 제안하는 길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창시 이래로 계속 교리가 수정되어왔고, 또 여러 갈래로 갈라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일한 길을 주장하는 기독교도들과는 다르게 서로 피터지게 싸우지는 않죠.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니까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것은, 싯다르타 본인이 아니라 나중에 달마선사의 제자인 임제라는 스님이 한 말씀인데, 부처가 직접 하신 말씀이라도 직접 생각해서 잘못되었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보다 더 높은 선을 추구하라는 의미이기도 하구요. 살불살조(蓬佛殺佛)라고도 하는데, 불교 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즉,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한 것은 그냥 무시하라고 막 한 말이 아니라, 실제 불교 교리가 그렇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꼭 불교가 아니더라도 제 주장을 증명하는 데에는 반례 한 개(예를 들어, 달내음교)만 있으면 충분하므로 다른 종교를 신경쓸 필요가 없었기도 합니다.
달내음교를 객관적으로 신념이라고 하셨는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생명의 바퀴'라는 믿음을 하나 교리에 추가해보겠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 살다가 몸이 죽어도 그 혼과 업은 남아 어떻겐가 우주의 바퀴를 굴리는 데에 관여한다구요.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우주를 만들고 그 영향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쯤 되면 종교라고 불리울만 하죠? 제가 혼자 생각해낸 것은 아니고 원불교에서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논쟁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하겠습니다.
논쟁의 목적을 '말로 싸워 이기는 것'으로 보시는듯한데, 논쟁은 토론의 한 종류이며, 의견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최소한 서로 가진 바 정보 하에 동의 못하겠다는 점이라도 찾아내야 합니다.
법적 논쟁이든 과학적 논쟁이든 종교적 논쟁이든, 그냥 어느 한쪽이 이기고 기분좋고 한쪽이 기분나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결론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에서는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 다른 사람의 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논쟁은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를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온 삶이 다르고 보아온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의 차이는 피할수 없습니다.
어느 한 쪽이 본 것을 다른 쪽은 못 보기 마련이니까요.
이 때 논쟁은 꽤 괜찮은 해결책입니다. 주먹질이 오가지도 않고, 누가 해고당하거나 돈을 잃거나 칼을 맞는것도 아니구요.
다만, 제대로 된 논쟁에 한해서 그렇습니다.
정당한 근거나 주장이 무시되거나, 논지와 관계없는 인신공격이 오간다면 그 논쟁은 그냥 시간낭비입니다.
누가 이기는가와는 상관없이요.
그런데 제가 합의점을 배제했다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를 모르겠네요.
저와 모초무님은 의견이 명백하게 달랐고,
저는 제가 가진 의견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을 뿐인데요.
'좋게좋게'가 무슨 의미인지도 이해하기 힘들 뿐더러
제 주장을 이 이상 어떻게 좋게 말씀드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 지식과 글실력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제 생각을 설명드린건데요.
동의하지 않는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되나요?
합의점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애초에 이야기를 시작을 안 했을겁니다.
이렇게 길게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구요.
실제로 달내음교를 인정해주셨으니 합의점을 약간이나마 찾긴 찾은 셈이구요.
저는 모초무님이 가지신바 생각대로 주장과 근거를 제시한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계속해야할지 회의가 든다 말씀하신 것이나 여러차례 빈정거리듯 말씀하신 것은
주장이나 근거와는 관계없는 인신공격에 해당합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면 동의하지 않는다 말씀하시면 되죠. 잘못되었으면 잘못되었다 말씀하시면 되구요.
어느 쪽 주장이 옳았든 해선 안 될 일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모초무님이 이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있다고 추측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암시를 하려 한 적도 없구요. 진지한 답변 감사드리고, 좋은 하루 되세요.
우선,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한국어 위키의 종교에 대한 정의는 영문 위키와 거의 같습니다.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해당 언어권에서 이해하는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달내음님과 저 둘 중 하나는 영어를 못 하거나 한글을 못 읽거나 혹은 둘 다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영문위키의 정의에서조차 달내음님에게 편리한 부분만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가장 처음의 이야기에서도 말했지만 전 달내음님의 주장에 대해 '제 전제는 이런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제 와서 '브리태니커의 정의야 님 생각이고 전 (아마도 공인성과 보편성 양쪽 모두 더 떨어진다고 보이는)위키가 맞다고 보는데요'라고 하면 저로선 또 다시 이 논쟁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죠.
불교 교리의 경우는 달내음님이 경전에서 말하는 의미를 심각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제외하더라도, 경전에서 그렇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불교 신앙인을 구속하고 압박하는 것은 현실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교의 교리적 관점이란 점은 변하지 않죠. 달리 말하면 '네가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자체가 이미 가언명제 속에 있다는 겁니다. 다르게 바꾸면 그 교리는 '네가 하고싶은데로 하더라도'가 되거든요. (이쯤에서 정말 하기 싫은 소리를 하게 되는데-달내음님이 본인의 경전 독파 횟수를 계속 강조하기에 저도 알만큼은 안다는 어필을 안 할 수가 없어서요- 계속 여러 종교의 경전을 수차례 읽고 해당 종교의 신도들보다도 그 종교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하시지만 불교 대학교를 다니며 불교 관련 학점을 이수했고 철학을 복수전공하며 종교철학이나 윤리학에 대해 공부해 철학사 학위를 땄던 시절을 되짚어 볼 때, 달내음님이 해당 종교들에 갖고 계신 이해도는 그냥 평범한 신도 수준이라고 봅니다.)
달내음교의 경우는, 달내음교에서 무슨 교리를 추가하건 그게 신앙으로써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본인이 종교라고 주장하니 그렇게 알고 있겠다는 말 밖에는 못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논쟁은 제가 설명하는 것 보다는 사전적 정의를 가져오는 게 낫겠습니다.
논쟁 [論爭] 【명사】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말이나 글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툼.
합의점을 찾는 건 토론의 목적이고요, 논쟁의 목적은 그런 게 아닙니다. 아마 토론이나 논의와 혼동하신 듯한데 논쟁의 목적 자체가 그 다툼에서 승리하는 것이죠.
이 논변의 흐름을 보죠.(숫자는 리플 순서)
1. 달내음님이 본문에 대해 종교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주장
2. 제가 종교는 처음부터 그럴 능력이 없다고 주장 -> 1번에 대한 시각 피력
3. 달내음님이 종교는 그럴 능력이 있다고 주장 -> 2번에 대해 반론
4. 제가 서로의 정의가 다른 듯 하며 제 정의로는 종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주장 ->3번에 대해 시각 차이 확인
5. 달내음님이 제 정의가 틀렸으며 종교는 그런 게 아니라고 주장 -> 4번도 틀렸다고 주장
애초 논쟁을 재차 시도하며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며 시작한 쪽은 제가 아니라 달내음님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게 '저 사람은 내재적 모순에 대해 지엽적인 반례와 개인적으로 시도하는 정의, 그리고 맥락에 상관없이 본인에게 편리한 부분만을 취사선택해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군'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논쟁을 계속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그 회의가 무능한 제 논변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건 상대와 이야기 하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건 그에 대해 달내음님이 제게 예의를 요구할 계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건 명백히 제 개인의 심적 상태와 그 반영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계속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데 제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그렇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양쪽 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설마 둘 다 상대방 말을 잘 듣고 있는데 그렇게 이야기 했을 것 같지는 않고 말이죠. 뭐 현재 달내음님은 제가 회의가 든다고 말한 것과 빈정거렸다는 점에 대해 화가 난(혹은 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사실 전 달내음님을 빈정거린 적도 없고 설령 했다 해도 빈정거림이 인신공격이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아요(사실 이 뿐만 아니라 달내음님 주장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반론하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지한 태도에 관한 사족은 윗 글에서 달내음님이 본인은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한 말은 '그러니 당신도 그렇게 해 달라'는 의미로 이해했기에 붙인 것이었습니다. 아니라면 서로에게 아무 문제 없겠군요.
좋은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배운 학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입니다.
저의 관점에서는 이타적이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행동에서 만족을 얻느냐는 거죠.
이기적인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은 남을 도와주거나 , 남을 배려하는 행동에서 어떤 만족을 얻지 못하거나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는 보는 방향이 틀리다라고 정의합니다.
둘다 만족을 위해서 하는 거죠.
예를 들자면 골동품도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에게나 가치 있는 것이지, 아닌 사람에게는 폐품입니다.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 행위에 대한 만족도가 틀려서 그런 셈이죠. 물론 전부를 이걸로 몰아넣기에는 인간이란 동물은 복잡한 존재이고, 이런 면도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타다 이기다 따지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행위가 타인의 피를 갈취하는 행위인 사람도 있고
자신의 만족을 챙기는 행위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겠죠.
이기적이다 이타적이다.. 라기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다들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 자연스레 이타적인 삶을 살게 되는 이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이익 추구의 결과가 사회에 득이 되는가 실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각 개인의 문제이기보다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보는 게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즉, 사회 시스템이 '정직하게 일 잘 하는 사람'을 얼마나 보상해주느냐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업무 능력이 거의 동일한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뇌물과 착복 등 부정을 통해 돈을 벌고, 다른 한 사람 정직하게 일만 한다고 하면,
어느 쪽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봅시다.
회사의 내부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확립되어있지 않다면 부정한 방법을 쓰는 사람이 수십년 간 큰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회사라면 부정한 사람은 조기에 적발하여 조치하고 정직한 사람만 살아남겠죠.
오히려, 회사의 내부관리가 철저한 것이 잘 알려진다면
원래라면 부정을 저지를만한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정직하게 일을 할 것입니다.
즉, 각 개인의 입장에서 가장 쉽게 돈 버는 방법이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범죄보단 쉬워야 합니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고위관직자를 바라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둘러싼 사회 시스템, 다시말해, 그들을 감시해야 하는 경찰과 검찰, 투표하는 시민들의 책임이 비리를 저지른 사람의 책임보다도 더 큽니다. 비리를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놓치는 것 없이 강력하게 처벌할 책임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비리를 저지르기 전에 금전적, 정치적, 명예적 관점에서 심대한 위협을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야만 '자연스레 이익을 추구하는 삶'이 이타적인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 착하다'는 말이 '저 사람 바보같다'는 말 대신 쓰이는 세상이니까요.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타고난 싸이코패스가 있는 것처럼 타고난 이타주의자가 있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보다 중요한 건 이타성의 평균치인 것이겠죠.
굳이 말하자면 사악한 인간보다는 착한 인간이 훨씬 더 높은 비율로 타고날 거라고 봅니다. 그 범위와 범주의 문제였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항상 타인을 바라보며 고려하고 생각할 것을 교육받아오며 존재해 왔죠. 이건 달리 말하면 사악한 인간 유전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일 겁니다.
전 개인적으로 과거에 비해 지금의 세상이 더 나아지는 이유는 단순히 문명과 문화의 발전 때문만이 아니라 상술한 이유로 생물학적인 거름망이 계속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는 쪽입니다.
사람을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으로 나눈 뒤, 이타적인 사람은 이타적인대로 살게 놔두고 이기적인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살게 놔두어야 할까요?
각 사람의 내면에는 여러가지 모순되는 마음과 행동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저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과 '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어'라던가,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러지는 않겠어'라는 결과가 나오곤 하죠.
이렇게 사람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내면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데,
내면에서 떠오르는 여러 모습 중 어떤 것을 택해 밖으로 꺼내놓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짓습니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 '괴물'과 '착한 사람'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천사와 악마라고도 하죠. 이런 잠재성을 가진 사람은,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고로, 세상을 좋게 바꿔나가는 것은 분리된 도덕적 인간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 좋은 잠재성을 지닌 모든 인류가 책임을 갖고 각자의 잠재성을 끌어냄으로써 해내야만 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이기와 이타에 대해서 좀 적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타와 이기는 상대적인 단어입니다.
즉, 어디까지를 자기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거죠.
자기 한 몸뚱이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사람이 있고,
우리 가족만은 잘 먹고 잘 살아야 된다는 사람이 있고,
가족에 친구까지 더해서 다 같이 잘 먹었으면 좋겠는 사람,
우리 마을이 소중한 사람, 우리 회사가 소중한 사람, 우리 나라가 소중한 사람, 우리 지구 전체가 소중한 사람
등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마음의 넓이'가 넓을수록 선하고 성숙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각 사람이 가진 지식, 경험, 세계관, 그리고 가진바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얼마나 큰가에 따라 드러낼 수 있는 행동이 달라지겠지요.
당장 우리가족 먹을 것도 없는데 옆집에 식량 나눠줄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잠재성일 뿐이고,
여기에 더해 좋은 일을 해야만 하겠다는 신념과 의지가 있어야만 실제로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각 사람들은
1. 세계관을 가능한 한 넓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구촌 한 가족임을 인식하고
2. 자기 자신과 각 사회 구성원이 제 역할을 다해 충분한 물질적, 정신적 여유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3. 선하게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신념을 갖추고 널리 알림으로써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게 원래는 종교가 해야 되는 일인데, 현재 종교는 나쁜짓만 무진장 하는 게 알려져서 사람들한테 외면받고 있고,
국가 공교육은 이런거에는 신경도 안 쓰게 하는 시스템이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이거와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어 매우 슬픕니다.
미래과학적 관점에서 새로이 도덕론을 정리하고 널리 알려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