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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에 나온 초저예산 독립영화입니다. 7000달러라는 제작비는 감독이 각본 쓰고 주연 맡고 편집하고 음악도 작곡하고 친구와 가족 데려다 배우로 동원한 덕분에 나올 수 있는 예산이죠. 결과물은 그래서 얼핏 보기에 별로 돈 안 들인 것 같기는 하지만, 낮은 조도에 거친 필름 그레인에 핸드헬드 촬영, 앞뒤없이 등장하는 짤막한 대사들이 겹쳐 저예산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라는 묘한 착각까지 줍니다.

 영화는 두 발명가들이 우연히 타임머신을 만들면서 시작됩니다. 물론 발명한 물건은 써먹어야 할 테고, 늘 그렇듯이 그걸 써먹던 와중에 일이 꼬이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지죠. 잘 아시다시피 시간여행이나 평행우주 패러독스와 골치아픔이야 이미 SF계에선 흔해빠진 소재고, SF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런 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일반인(?)들이 인셉션이나 소스 코드 정도 보고 혼란스러워 할 때 그 정도면 영화가 너무 친절한 거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인라인이 '너희 좀비들' 같은 골치 아픈 이야기를 쓴 것만 해도 벌써 1958년의 일이니까요. 덕분인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미 그런 시간여행 패러독스 같은 건 능숙하게 꿰고 있는데다가 오히려 활용할 생각까지 하는 통에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지고요. 영화는 얼핏 사건을 진행 순서 그대로 보여주는 듯, 부드럽게 연결되면서도 사실 잘 따져보면 다양한 시간대를 섞어 편집해넣은 것이라 결말부에 이르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을 매우 혼란스럽게 전개시켜 줍니다. 상당수의 설명은 간신히 스토리를 이해할 정도로 생략되어 있어 보는 사람이 앞뒤 정황을 맞춰서 만들어내야 하고, 그 복잡한 플롯에도 러닝타임은 고작 77분에 불과하죠.

 제가 썩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긴 해도 처음 봐서 완전히 이해하는 건 웬만해서는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아마 몇 번을 반복해서 본다 치더라도 공부할 생각으로 표를 그려가면서 보지 않는 한은 역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타임머신이 나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겠지만, 이보다 난해한 전개를 보여주는 물건이 과연 있을까 싶군요. 글만으로도 스토리를 설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테고, 결국 저는 스토리 이해를 위해서 표를 찾아 보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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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xkcd에서 분석한 영화 플롯들. 크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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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제대로 된 플롯 차트. 폰트 크기만 봐도 질리지 않습니까. 클릭하면 스포일러가 됩니다.
 
 물론, 역으로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지는 드문 매력이고 감독의 재능을 드러내 보이는 요소긴 합니다. 최소한 진부한 소재지만 영화 자체는 진부하지 않거든요. 자신 있으신 분은 한 번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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