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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화성의 모습은 황량하고 칙칙합니다. 그리 멋진 이미지는 아니죠.]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겁니다. 영화계에서 SF팬들을 경악시킨 사건이 하나 터졌죠.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즈의 소설을 영상화한 <존 카터>가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유명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데다가 거액을 들여 만든 터라 다들 기대치가 꽤 높았습니다. 하지만 극장에 걸리자마자 혹평이 이어졌고, 메타 점수, IMDB 평점, 썩은 토마토 지수에서 줄줄이 반타작이 났습니다.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난 4월에는 결국 실패작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것도 이전에 다시 없을 실패작으로요. 이제 ‘존 카터’란 이름은 말아먹은 프로젝트의 대표명사이자 상업영화계의 재앙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걸요. 비판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고전을 너무 늦게 리메이크했다는 점이 가장 클 겁니다. 버로우즈가 소설을 쓸 때만 하더라도 화성은 미지의 모험을 펼치기에 꽤 이상적인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세월이 상당히 흘렀고, 그만큼 과학계도 발전했으며, 대중과학의 패러다임도 변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화성은 지구와 이웃한 행성이라 스페이스 오페라나 우주탐험물의 무대로 써먹기 적당합니다. 고전 SF물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들이 주무대로 삼고, 그런 영향 때문에 요즘에도 각광을 받죠. 허나 지금 시대가 어떤가요. 달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탐사한 천체가 바로 화성입니다. 아니, 달은 위성이니까 빼버리고, 태양계 행성 중에서 이만큼 인류가 가까이 다가간 곳이 또 없죠. 이는 몇몇 과학계나 우주 애호가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패스파인더가 착륙하는 장면은 신문과 TV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소저너나 오퍼튜니티의 영상이 화제를 타기도 했습니다. 과학이나 SF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붉은 대지를 굴러다니는 로버 그림은 한 번쯤 봤을 걸요. , 화성은 더 이상 미지의 장소가 아닙니다.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게 아니라서 여전히 호기심이나 음모론이 남아있긴 하나, 1900년대 초반의 감수성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그런 감수성으로 만든 작품은 흥행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존 카터> 이전에 화성을 배경으로 한 유명 영화로는 <우주전쟁>이 있습니다. 원작소설은 19세기에 나왔는데, 영화는 몇몇 설정을 빼고 소설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영국 대신 미국을 보여주고, 로켓을 타고 날아오는 장면은 아예 뺐지만, 그 외에는 거의 똑같죠. 문제는 막판 화성인의 몰락까지 고스란히 따왔다는 겁니다. 원작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글쎄요. 19세기 유럽인들이야 아직 천문학이 미숙했고, 의학이 한창 발달하는 터라 그런 결말도 납득했을 겁니다. 하다못해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먹히는 해결책이었을 거에요. 그때만 하더라도 인류가 지구 밖을 벗어나는 건 꿈 같은 이야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화성 정도는 자주 들락거리는 시대입니다. SF물도 온갖 종류가 생겨서 별의별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고요. 이런 마당에 낙지 닮은 화성인이 지구 생태에 적응하지 못해 죽는다는 플롯은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나요.


그런 반면, 제목부터 B급임을 팍팍 내세우는 <화성침공>도 있습니다. 애초에 쌈마이 감수성을 작정하고 만든 작품입니다. 화성인들은 해골에 두뇌를 붙여놓은 괴상한 모습이며, 우주선이랍시고 나오는 것도 싸구려 UFO처럼 보입니다. 외계와 소통하려던 명망 있고 지적인 교수는 한낱 장난감으로 전락해서 머리만 굴러다니죠. 자랑스러운(?) 미국 대통령은 위선과 허풍에 가득 차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보지만, 한 큐에 나가 떨어지고요. 내용누설이라 함부로 설명하진 못하지만, 지구인이 화성 침략자를 물리치는 방법 또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어이가 가출한 연출이 화성이라는 이름 아래 줄줄이 펼쳐지죠. 워낙 매니악해서 그런지 극장 흥행도 대단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SF물에서 바라보는 화성의 참모습 아닐까요. 지구 가까이 있으니 예로부터 즐겨 쓰였지만, 그 바람에 요즘처럼 모던한 시대에 활용하기는 퀴퀴해진 늙다리 행성이요.


2000년대 초반에는 화성 소재 영화가 3편이나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미션 투 마즈>, <레드 플래닛> 그리고 <화성의 유령들>까지 비슷한 시기에 줄줄이 개봉했죠. 설마 텔레파시가 통한 건 아닐 테고, 그냥 우연일 테지만 좀 신기합니다.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탐사대가 원정 나갔다가 재난에 휘말린다는 게 줄거리의 대략적인 공통점입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나 존 카펜터 같은 스릴러 전문 감독들이 맡았으며, 시종일관 미스터리를 고집했고요. 아쉽게도 세 작품 모두 평이 안 좋았는데, IMDB 평점을 보면 5~6점 사이를 달립니다. IMDB 평점이 꼭 공신력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만큼 관객들에게 어필을 못했다는 뜻도 됩니다. 영화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하필 배경이 화성이라 좀 어중간해서 그랬던 거 아닐까요. 화성이 음모론의 단골 메뉴라서 미스터리/스릴러 장르에 잘 어울리긴 하지만, 덕분에 뭔가 싸구려 티를 지우지 못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화성을 아예 배제해서 문제인 영화도 있었는데, <토탈 리콜> 리메이크가 그랬죠. 원래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여행가는 내용이지만, 그냥 지구 내부에서 사건이 터지는 걸로 설정을 바꿨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계속 말한 바와 같이 화성이 구질구질하니까 그렇겠죠. 최신예 블록버스터답게 현실적이고 모던한 영상을 보여줘야 하는데, 화성은 그런 거랑 거리가 멀거든요. 칙칙하고 을씨년스러운 붉은 별이니까요. 하지만 화성을 빼버렸기에 <토탈 리콜> 리메이크는 밍밍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90년대 영화판은 온갖 잡스러운 B급 상상력을 동원했고, 그걸 보는 재미가 깨알 같았는데요. 어쩌면 화성이 나와야만 하는 <토탈 리콜>은 애초부터 2012년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게임이지만 비슷한 경우로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도 있네요. 외계인 기지를 습격하기 위해 화성으로 날아가는 게 원작 스토리였는데, 리메이크에서는 그냥 지구에서 싸우는 걸로 해결 봤죠. 왜 스토리를 바꿨는지 모르겠습니다. 게임 제작진도 화성을 싫어했나


이렇게 보자면, 화성은 요즘 세대의 SF 블록 버스터와 별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워낙 고참격인 행성이라 그만큼 고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마추어 천문가나 SF 팬들 중에는 저런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황량하고 시뻘건 그 대지에 매력을 느끼는 거죠. 허나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먹히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차후로 화성을 소재로 한 대박 영화가 나올지야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존 카터>의 사례도 있고 하니, 당분간은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