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상대적으로 약한 신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그 중에 아예 신체 그대로 근력을 증폭시키고 방어력을 보강해주는 물건이 강화복이죠. 사용자가 그냥 착용하면 그만이기에 다른 도구에 비해 거추장스럽거나 번거로울 게 없습니다. 당연히 수많은 창작물이 이런 설정을 고안하는데, 그렇다고 죄다 똑같은 건 아닙니다. 시대 배경, 용도, 분위기에 따라서 저마다 묘사하는 바가 천차만별입니다. 은밀하게 침투해서 적을 기습하는 쪽과 화력을 퍼부으며 전면전을 펼치는 쪽은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어요. 현실적으로 나가는 작품과 대놓고 판타지인 작품은 또 다를 테고요. 이런 특징으로 분류하면 종류를 몇 가지로 묶을 수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생김새에 따라 4가지 정도로 나누는 편입니다. 외골격, 슈트, 갑옷, 보행병기 유형이 그것입니다. 강화복이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이 4가지로 딱 자를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SF물에서 어떤 식으로 설정을 짜는지 대충 감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sfexosarmor1.jpg

[가장 현실성 있는 외골격 컨셉 아트. 테크노 스릴러에 자주 나옵니다.]


우선 외골격 유형은 말 그대로 인조 골격을 갖다 붙인 형태입니다. 주로 팔이나 허리, 다리에 착용하며, 주 용도는 근력 증폭입니다. 무거운 짐을 들거나 보다 빨리 뛰도록 도와줍니다. 어디까지나 뼈대에 지나지 않아, 방어력을 제공하거나 기타 무장을 달기는 힘듭니다. 언뜻 보면 그리 티가 나지 않아서 복장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좀 어색하긴 해요. 특히 요즘 군인들처럼 별별 군장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외골격 좀 붙인다고 확 달라 보이진 않을 걸요. 그런 만큼, 현실성이 있는지라 아마 가장 먼저 개발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미군은 갈수록 보병 군장이 무거워져서 고민인데, 이를 해결할 방도 중 하나로 강화복을 꼽습니다. 시제품은 이미 나왔으며, 30kg가 넘는 등짐을 지고도 무리 없이 행군한다고 하죠. 사정이 이런 터라 근미래를 무대로 한 테크노 스릴러에 가끔 나오곤 합니다. <고스트 리콘: 퓨처 솔져>의 밑그림에 골격 차고 다니는 모습이 나오죠. 정작 본편에 적용을 안 해서 좀 아쉬운데, 왜 뺐는지 모르겠네요.



sfexosarmor12.jpg

[슈트 유형은 모양 때문인지 주로 은신 기능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슈트 유형은 이름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특징이 있습니다. 막말로 쫄쫄이에 가깝다고 할까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기에 여성 캐릭터가 곡선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풍채 좋은 남성이 입어도 그럴 듯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별로 없는 듯. 슈퍼 히어로의 스판덱스를 떠올릴 수도 있으나, 그것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겉보기는 부실하지만 생명 유지 기능은 충분하며, 간혹 나노 머신이나 기타 기술을 이용해 방어력을 올려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간결한 생김새 덕분에 스텔스 용도로 딱 어울립니다. SF물에서 은신 위주의 캐릭터가 나오면 십중팔구 쫄쫄이를 착용했을 겁니다. 그 때문인지 색감은 대개 검은색이나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이고요. 강화(powered) 속성이 약해서 강화복이란 명칭 대신에 그냥 ~, ~갑옷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폴아웃> 시리즈에 나오는 중국제 은신 갑옷이 좋은 예인 것 같네요. 이것도 언뜻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아직 이런 용도나 생김새의 복장은 없습니다. 가벼운 우주복을 연구 중이긴 한데, 실제 활용도는 알 수 없죠.



 sfexosarmor13.jpg

[그레이 나이트 아머. 이 정도면 진짜 갑옷 입은 기사로군요. 오오, 이런 게 강화복이죠.]


갑옷 유형은 중세 기사의 갑옷처럼 방어구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형태입니다. 겉모습이 투박하고 묵직하기에 다양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생명 유지는 물론이요, 장갑이 탄탄하므로 방어력도 뛰어나고, 피드백할 곳이 많으니까 근력도 늘어나고, 추가 무장을 달아도 되며, 기타 관측이나 탐지, 은신 기술을 넣기도 합니다. 흔히 강화복이라고 하면 금방 떠올릴만한 것들이 다 여기에 속하죠. 어쩌면 4가지 유형 중 개수가 가장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갑옷 유형이 잘 나가는 이유는 우선 강화복의 시초를 잡은 <스타쉽 트루퍼스>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서 ‘고릴라처럼 육중하게 생겼다’는 언급이 나오니, <영원한 전쟁>처럼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또한 흉측한 외계 괴물과 맞서 싸우려면 챙겨 넣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당연히 두터워지고 갑옷처럼 생기기 마련입니다. 외골격이나 쫄쫄이에 아무리 첨단 기술을 적용한다 해도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하니까요. <크라이시스>처럼 나노 머신 하나로 뭐든지 쌈싸먹는 경우도 있긴 해요. 허나 튼실한 갑옷이 심리적으로 더 든든해 보이잖아요.


종류가 많아서 그런지, 똑같은 갑옷 유형이라도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첫째는 폐쇄형으로 강화복 전체가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기동보병이 입는 물건이 여기에 속하며, 사지가 달렸으나 인간형과 거리가 멀기도 합니다. 틈새도 없이 판으로 덮어놔서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로봇이랑 구별이 안 가고요. 둘째는 부착형으로 방어구를 일정 부위에 추가하는 방식입니다. 헬멧, 상체, , 다리, 종아리, 신발 등이 따로 떨어졌으며, 그래서 어느 정도 인간형을 유지합니다. 로봇이라는 오해도 덜 받고요. <헤일로> 시리즈에 나오는 스파르탄 묠니르가 이런 식이죠. 여러 기능 면에서 폐쇄형이 훨씬 뛰어나 보이지만, 이쪽은 둔하게 생긴지라 뛰거나 현란한 동작을 펼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고로 비주얼도 살리기 힘들죠. 마스터 치프가 기동보병마냥 고릴라 같이 생겼다면, 거기에 감정이입 하는 유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개인마다 취향은 다르므로 육중한 갑옷에 더 매력을 느끼는 독자도 있겠지만요. (저도 육중한 갑옷이 더 좋더군요.)



 sfexosarmor14.jpg

[이런 모양의 강화복은 생김새 때문에 보행병기와 헛갈릴 수도 있겠습니다.]


보행병기 유형은 사용자가 탑승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입니다. 얼굴과 사지의 움직임을 피드백 받아 활동하지만, 그 모양새는 이족 보행 병기의 조종석에 탄 것과 흡사합니다. 옷을 입은 게 아니라서 가끔씩 이게 강화복인지 워커인지 헛갈리기도 합니다. 특성상 인간형이긴 하나, 머리나 어깨, 허리 등은 구현하지 않으며, 내부에 복잡한 기기 장치가 들어차기도 합니다. 모양은 갑옷보다 훨씬 투박하고, 덩치가 2m를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해요. 당연하겠지만, 인체 움직임을 미세하게 따라 하지 못합니다. 이걸 타고 발레를 출 일은 없다는 뜻이지만, 애초에 그런 용도로 쓰지도 않습니다. 산업용이라면 어지간한 중장비와 함께 작업할 테고, 군경용이라면 전방에서 전투나 진압을 맡겠지요. 기본 무장도 중기관총에서부터 시작해 개틀링이나 화염방사기, 로켓 등 중화기를 장비합니다. 전차는 못 되어도 걸어 다니는 장갑차 역할은 가능하고요. <디스트릭트 9>에 나오는 프론 강화복이 이것인데, 배틀메크 같은 것과 혼동하는 관객도 있나 봐요.


저는 SF물의 강화복을 이와 같이 4가지로 나눕니다만,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분류입니다. 그 많고 많은 강화복을 한 울타리에 모두 묶을 수는 없겠죠. 특성이 겹치는 것도 있을 거고, 예외적인 것도 있을 거고…. 여하튼 이 기준에서 제일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기동보병 강화복 같은 갑옷 형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보행병기 유형이고요. 뭔가 든든하고 우직스러운 면이 있어야 강화복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숫자가 제일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차후 나올 <일리시움> 같은 실사 영화들은 외골격을 차용하기도 하더군요. 이쪽이 간단한 만큼, 더 표현하기 쉬워서 그런 듯합니다. 만약 이런 영화들이 히트 치면 강화복 대세가 또 바뀔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