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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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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아웃과 고지라 팩핀. 괴수와 핵전쟁 아포칼립스도 잘 어울리는 한쌍이네요.]
<고지라> 리부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한 내용입니다.
<고지라>, <매드 맥스>, <웨이스트랜드> 시리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핵전쟁을 소재로 한 재난물이나 묵시록이라는 겁니다. 마침 우연히도 세 작품 모두 리부트 혹은 리메이크 중이기도 합니다. 다만, 순항 중인 다른 두 작품과 달리 <고지라>는 제작에 난황을 겪는 것 같아요. 감독은 열성인데, 각본이 바뀌었다는 소문도 들리고, 제작자가 영 시큰둥하다는 말도 있어요. 하긴 그럴 법도 합니다. 애초에 고지라는 일본 감수성에서 태어난 괴수이고, 그러니 미국인들이 다루기엔 좀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처럼 재앙에 가까운 괴물을 만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심해에서 온 괴수>나 <킹콩>처럼 괴수물의 원조는 미국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놈들은 사람을 기습하는 것에 가깝지 세상을 아예 쑥대밭으로 만들진 못하죠. 예전에 ‘갓질라’가 나와서 실망을 안겨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말인데, 이왕 새롭게 만드는 거 장르를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 싶더군요. <웨이스트랜드>처럼 핵전쟁 아포칼립스라면 어떨까요.
고지라와 핵전쟁 아포칼립스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서로 통하는 면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폭격 당한 공포가 우러난 괴수이기 때문입니다. 설정상 수륙 활동을 하던 생물이 수폭 실험의 영향을 받아 거대화했습니다. 별명도 수폭대괴수. 고지라가 도시를 때려부수는 장면은 곧 폭탄이 떨어진 거랑 다를 바 없죠. 개봉연도가 1950년대 중반쯤이니까 아직 일본이 원폭 투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시기이기도 하고요. <심해에서 온 괴수>의 영향도 받았을 테지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참된 이유는 저런 심정을 자극해서 그럴 겁니다. 따라서 <그날 이후> 같은 작품과 밑바탕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으로 멸망한 세계를 다루므로 역시나 핵무기의 공포를 상징하기 딱이거든요. 고지라는 세상을 뒤엎기 전에 퇴치를 당하고, 아포칼립스에서는 이미 뒤엎어진 세상을 다루니 시기가 서로 다르긴 해요. 하지만 이건 사소한 차이일 뿐, 근본적인 주제는 비슷합니다. 괴수물이 아닌 장르로 만든다 해도 고지라의 원형을 해치진 않을 겁니다.
그런 고로 배경 설정이 여타 핵전쟁 아포칼립스와 유사해도 별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흔히 강대국끼리 싸우다 세상이 죄다 망했다는 서론을 깔고 들어갑니다. 러시아가 미국을 쳐들어가거나, 미국이랑 중국이 자원을 놓고 다투었다는 식이죠. 그러다 누가 핵을 날렸는데, 이게 전세계로 확산되는 바람에 쑥대밭이 되었고요. 이런 강대국 역할을 고지라가 대신합니다. 열강들의 전쟁 중에 핵을 쓰다가 괴수가 탄생합니다. 괴수는 곧바로 가까운 육지에 상륙해 보이는 것을 모조리 파괴합니다. 인류는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힘을 합해 맞서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단단한 피부에는 그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으며, 방사열선의 위력은 대도시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듭니다. 지구가 워낙 넓으므로 고지라가 일순간에 인류 사회를 망가뜨릴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일단 거쳐간 곳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지며, 다른 국가들도 대책을 세우느라 남을 도울 틈이 없습니다. 아니, 돕기는커녕 괴수를 막아보겠다며 폭격이나 안 하면 다행이죠.
주인공은 이렇게 폐허가 된 도시의 생존자입니다. 지옥으로 변한 세상에서 절망에 절어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은신처를 떠나 험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묵시록 작품의 캐릭터가 으레 그렇듯이 더 살기좋은 안전지대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순수한 물과 싱싱한 먹거리, 제대로 작동하는 편의시설,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조직과 든든한 방호력까지…. 가는 과정이 고통스럽겠지만, 일단 거기까지만 가면 지옥에서 낙원으로 승천하는 격이죠. 그래서 핵폭격에 대비한 지하 방공호가 있다는 황무지로 무작정 출발하는데, 그 와중에 수많은 참상을 목도합니다. 길거리에 시커멓게 늘어붙은 주검이나, 방사능에 오염되어 시름시름 죽어가는 군중,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들, 고지라가 신의 재앙이라 부르짖는 광신도, 괴수가 적국의 생체병기라 주장하며 이쪽도 생체병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쟁파, 무질서가 판치자 자기 세상 만났다며 남을 약탈하는 폭도 등등.
[이런 형식으로 나가도 고지라의 원형과 주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장 신경 써서 표현해야 할 요소가 이 부분일 겁니다. 인간의 과오로 세상이 얼마나 망가지는지 고발하는 대목이죠. 그러니 작품 형식은 일종의 로드 무비가 좋겠습니다. 기실 핵전쟁을 포함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중에는 여행기가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매드 맥스>나 <웨이스트랜드> 시리즈도 멀리 여정을 떠나는 내용이죠. 이런 형식은 이리저리 발품 팔며 세상의 참사를 둘러보기 적당합니다. 관객은 주인공 시점으로 몰락한 도시를 살펴볼 수 있고요. 그러자면 재난을 대변할 수 있는 장소도 여러 군데 만들어야 할 겁니다. 생존자들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판자촌, 약탈자들이 깽판 치는 소굴, 한때 붐볐지만 이제는 썰렁해진 번화가, 처참하게 부서진 도시의 랜드마크 등등. 방사능에 더러워진 자연 환경도 보여줘야 할 테고요. 꺼먼 재가 낀 강물이 흐르거나 화염에 휩싸여 뼈만 앙상한 숲처럼요. 당연히 거기 사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일 테고, 주인공을 돕거나, 방관하거나, 아니면 해치려 들겠죠. 이 모든 것이 세상의 변화에 속합니다.
다만, 여타 전쟁물과 다르게 여기서 공포의 핵심은 살아 움직입니다. 전쟁은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괴수는 실체가 있어서 쿵쿵 돌아다닙니다. 전후 상황을 그리는 작품과 달리 재난이 현재진행형이므로 언제든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고지라가 서쪽으로 갔다는 사람도 있고, 바다로 잠수했다는 소문도 있고, 죽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괴수가 찾아올테니 떠나자는 이도 있고, 반대로 괜히 돌아다니다 화를 당하면 안 된다고 머무르려는 이도 있겠죠. 하지만 목소리만 많지, 증명할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재난이 한층 복잡해지는 한편, 막연한 전쟁보다 훨씬 구체적인 이미지를 띨 겁니다. 또한 어떻게 도시를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도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괴수를 눈 앞에서 본 사람과 대화하거나, 이걸 기록한 문서나 필름을 보거나, 도로에 생긴 큼지막한 발자국을 지나칠 수도 있고요. 막판에 주인공이 말로만 듣던 고지라를 만나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으로 주저앉는 것도 괜찮은 연출이겠죠.
고지라 외에 다른 괴수는 안 나오는 편이 낫습니다. 전쟁의 공포를 부각하려면 괴수는 한 마리인 편이 좋습니다. 1954년 원작과 1984년 시리즈도 그랬잖아요. 오직 고지라만을 내세워 주제를 강조했죠. 1984년 시리즈는 별다른 부제도 없이 제목도 그냥 ‘고지라’였고요. 괴수가 여러 마리 나오다 보면 으레 격투기로 빠지고, 인간 사회보다 괴수들 쌈박질에 눈길이 쏠립니다. 다른 괴수가 왜 생겨났는지도 이야기해야 하니, 플롯이 통일성을 잃고 산만해질 거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고지라가 일으킨 재앙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해야 합니다. 핵전쟁 아포칼립스에는 방사능으로 커다래진 돌연변이 괴물도 나오긴 하는데…. 이 역시 빼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너무 돌연변이들이 설치다 보면, 정작 괴수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할 테니까요. 낙진 때문에 신체가 변한 인간들이 인권을 위해 싸우는 플롯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괴수 아포칼립스에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만들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셈입니다. 일단 고지라의 근본적인 주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근래엔 일본에서도 고지라를 전쟁의 상징으로 써먹지 않더라고요. 2001년의 <괴수총공격>이 반전을 주제로 삼았을 뿐, 다른 시리즈에서는 불가항력의 재난으로만 묘사했습니다. 핵전쟁으로 괴수가 깨어나 멸망한 세상이면, 자연히 전쟁의 공포를 주제로 삼게 되겠죠. 또한 식상한 괴수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제껏 괴수를 이용한 핵전쟁 아포칼립스라고 할 만한 작품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전에 없던 시도인 만큼, 익숙한 고지라도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울러 서구 쪽에서도 냉전 동안 소련과 대치하며 위기 상황을 여러 번 넘겼습니다. 핵전쟁의 공포를 오래도록 겪었으므로 낯설지 않은 주제겠죠. 어설프게 일본 쪽 감수성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들이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어요.
물론 실제 고지라 리부트는 전형적인 괴수물에 가까울 겁니다. 만에 하나라도 핵전쟁 아포칼립스로 나올 확률은 없겠지요. 허나 고지라도 나온 지 60년이 넘어갑니다. 뭔가 색다른 시도를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저런 컨셉의 고지라 영화도 한번 나와줬으면 하네요.
※ 예전에 논의했던 괴수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시물: http://www.joysf.com/?mid=forum_sf&search_target=title&search_keyword=%EA%B4%B4%EC%88%98+%EC%95%84%ED%8F%AC%EC%B9%BC%EB%A6%BD%EC%8A%A4&document_srl=4299415
고지라를 이세계의 드래곤 으로 설정하여 쓰러뜨려야할 최종보스로 설정을하고... 힘든 현실에서 허덕이는 주인공은 고지라를 쓰러뜨리겠다고 가히 나서는 열혈바보로 설정하고, 여행하면서 만난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고지라를 처치하러 떠난다...
그와중에 방사능 돌연변이 괴수들을 주인공을 막는 적수들로 등장시키고, 최종보스로 고지라 로 설정을해도 스토리가 자동적으로 떠오릅니다.
고지라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삽엽충들이 존재하는데... 원조에서는 이것을 발견해서 이 생물이 중생대때 부터 살아온 생물이라는것을 밝혀냈고, 84년판 고지라에서는 기생생물들 역시 거대화 돌연변이가 되어서 등장하죠.
그리고... 반전으로 고지라를 쓰러뜨려도. 세상은 변하지않는다... 라는 결말을 넣으면... 왜인지 쓸데없이 암울한 엔딩이 되겠지요...